황제의 딸
1. 개요
건륭제 통치 시절 18세기 중국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대만 CTV, 중국 후난TV 합작 드라마이며 대만의 유명작가 경요가 극본을 집필하였다. 1997년에 촬영하여 1998년 대만에서 첫 선을 보였으며 예상치못한 인기로 1998~1999년에 후속작 촬영을 하여 1999년에 2부가 방송되었고 2003년엔 3부가 방송되었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제일 처음에 방영했던 시리즈는 1부라고 표기하도록 한다. 원제는
당시 무명 배우들과 저예산으로 만든 이 드라마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권에서 세계적인 히트를 치며 중국 역사상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드라마로 기록되었다.[출처1] 중국에서는 '''65%'''를 넘는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하여 후난 방송영상 그룹은 중국에서 두 번째로 큰 방송국으로 성장하였으며 무명이었던 배우 조미, 임심여, 판빙빙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국 연예계에서 대스타로 활약하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도 최고의 중국 드라마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명작이기도 하며 대륙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한창 인기 끌 무렵에는 사회적 파장도 엄청나서 극중 제비의 무공을 따라한다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1부에서 제비가 황제의 진노를 피하기 위해 목을 매는 척 연기를 하는 장면을 본 아이가 그것을 따라 목을 매면서(...) 학부모들의 원성이 빗발치기도 했다.
이 드라마가 중국에서 전무후무한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이 드라마의 대본을 대만 최고의 연애소설 작가이자 대만의 김수현 작가라 불리는 경요가 제작했기 때문이다. 중국 본토에서도 경요의 소설은 엄청난 인기를 끌어, 대만과 중국의 화해 모드 조성에 일조했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이다.
당연하지만 내용은 허구다. 실존 인물들도 등장하긴 하지만 내용의 주축이 되는 환주공주 제비, 명주공주 자미, 복씨 형제 등은 허구 인물이다. 예전만 해도 포털 사이트에 건륭제의 딸 환주공주가 진짜로 집을 나갔냐는 질문이 올라오기도 했는데, 이 글을 보고 있는 똑똑한 위키러들은 그러지 말자(...). 두 평민 공주는, 경요가 베이징의 지명들이 구체적인 것[1] 에 호기심을 느낀 차에 '공주묘'라는 지명과 건륭제에 대한 전설을 듣고 창작한 것이다.
'
이처럼 폭넓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역자가 구분을 하기에 곤란함을 느꼈는지 그냥 싸잡아서 공주라고 번역해놓아서 공주가 아닌 청아 역시 청'공주'라고 번역되었다. 청아는 극중에서 건륭제의 이복동생인 유친왕의 딸로 나오며, 친왕의 딸인 청아는 공주가 아닌 군주라고 해야 맞다. 다만 이러한 구분은 군주제가 폐지된지 한참 된 현재는 많이 흐려진 상태로 중국에서도 대부분 거거라고 하면 공주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실이므로 크게 잘못된 번역이라고 할 수는 없다. 후에 진짜 황제의 딸로 밝혀진 자미(임심여)는 명주공주가 되며[2] , 황제의 며느리로 인정받은 제비는 환주'군주'로 책봉된다. 굳이 작위의 서열을 구분해보면 공주(자미)가 군주(제비)보다 윗급이다.
한편 원작자 경요는 <황제의 딸 소설판> 작가의 말에서 '공주묘'라는 지명에 착안하여 집필을 시작하였으나 청나라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고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현대인의 감각으로 집필했다며 고증과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3]
2. 방영정보
대한민국에는 인천방송을 통해 1999년 10월 2일에 1부가, 2000년 2월 5일에 2부가 방송되어 예상치 못한 히트를 기록하며 수도권에서 시청률 4%를 달성했고 지금도 일부 케이블TV에서 방송되고 있다.[4] 방영 시기인 1999년에서 2000년 무렵 경인방송을 먹여살렸던 시청률 쓰리톱 중의 하나였다.[5] 당시 한국 정부가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방송 3사에 중국 드라마 방송 금지령을 내렸다는 기사까지 나왔으나 딱히 중국 드라마가 아닌 외국 프로그램에 대한 라디오 및 텔레비전 제한 정책을 하고 있었을 뿐, 과장된 기사로 밝혀졌다.
대만은 황제의 딸 최초 방송 국가로 1998년 4월에 중국 텔레비전에서 첫 선을 보였으며, 반응은 압도적이었다. 1부 평균 시청률은 12.1%였는데 최종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재방송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으로 시청률 1위를 찍었고 1년도 채 안 되어 세 번이나 방송하였다. 2부 평균 시청률은 13.68%이였으며 12월까지 재방송을 하는 바람에 1999년 3월부터 12월까지 그야말로 황제의 딸 열풍이었다.
중국 본토에서 1부 평균 시청률은 47%, 최고 시청률 62.8%를 기록하며 중국 드라마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갱신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방송국을 살린 구세주 작품이라 불렸다. 그 당시에는 10년 안에 어떤 TV 시리즈도 이 기록을 깰 수 없으리라 예측하였으나…. 그런데 그것이 다음해에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다음 해(1999)에 황제의 딸2가 빠르게 전작의 기록을 깨고 전국 평균 시청률 54%를 돌파하였으며, 베이징, 상하이, 후난 방송의 평균 시청률은 각각 57%, 55%, 52%를 기록, 최고 시청률은 65%를 넘어섰다.
황제의 딸3은 배우가 대부분 교체되고 어두운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후난 15.9%, 베이징 6%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였으나 호평은 받지 못했으며 전작 1, 2부와 같은 기적은 이뤄내지 못했다.
홍콩에서는 옆 방송국인 TVB에 시청률에서 하도 발리던 아시아 텔레비전(이하aTV)가 구입[6] , 1, 2부가 방송되어 (99년 2부 방영 당시 atv 홍보 영상), 자사 제작 드라마 종횡사해(縱橫四海)[7] 와 함께 쌍으로 TVB를 완전히 물먹였다. 1부 최고 시청률은 27%를 기록했으며 2부가 주춤하는 사이 TVB는 반격에 나섰지만 2부는 평균 시청률 23%, 최고 시청률은 30%를 기록하였다. 평소 TVB에 비교해서 그렇게까지 대단한 시청률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aTV로선 지금까지 전무한 시청률이었으며 TVB는 대패했고 aTV가 TVB를 이긴건 32년 역사상 처음의 쾌거였다. 그러나 그 이후 aTV는 곧바로 이어진 TVB의 대반격에 밀려났다.[8]
여담으로 TVB는 aTV가 1, 2부로 물먹인 것에 열받았는지 2003년에 3기를 구입, 황금시간대(월~금 20:00~21:00)에 방송해 복수하려고 했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3기가 막장으로 제작되었던 터라 낮은 시청률을 기록했고[9][10] 결국 얼마 못 가서 다른 시간대(월~금 오후 6시[11] )로 옮겨버렸다. 그런데 원작자 경요가 이 소식을 듣고 격분, 다시는 TVB에 자기 소설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절대로 안 팔겠다고 했다. 흠좀무. 그래도 최근엔 사이가 풀어진 모양인지 아니면 당시 aTV의 경영이 막장 일변도를 달려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신 황제의 딸은 TVB에서 방송했다.
몽골에서는 워낙 인기가 많은 나머지 배급사가 1부 마지막 3편을 영화관에서 상영 하였다(......)
2.1. 1부(1998)
2.1.1. 기본정보
2.1.2. 시청률
[image]'''후난경제TV'''
2.2. 2부(1999)
2.2.1. 기본정보
2.2.2. 시청률
[image]'''후난경제TV'''
2.3. 3부(2003)
2.3.1. 기본정보
3. 수상이력
조미는 당시 China TV Golden Eagle Award 역사상 최연소 여우 주연상을 수상하였다.
4. 캐스팅
주연은 조미. 캐릭터를 잘 살렸으며 본업이 배우인데도[13] 개그맨 해도 괜찮을 정도로 놀라운 몸개그와 개그 연기를 선보였다. 본래 제비 역에는 조미가 아닌 이정의가 캐스팅이 되었는데, 이정의가 다른 드라마 촬영 스케줄과 겹쳐 이 역을 포기하게 되고, 쾌활하고 발랄한 이미지가 있는 조미에게 이 역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여 캐스팅이 변경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 자미 역에 조미가 내정되어 있었고, 새아공주 역에는 임심여가 내정되어 있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충격과 공포... 나름 잘 소화해냈을 수도 있겠지만 자미=임심여라는 공식이 뇌리에 박힌 현재의 팬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외에도 임심여, 소유붕, 판빙빙 등이 국내에서 인기를 끌었다.
대만 작가 경요의 작품이다보니 대만 출신 배우들이 주연으로 출연했는데 중국 본토와 대만의 발음이 상당히 다르다 보니 대만 배우들의 목소리는 더빙되었다. 오왕자(소유붕)와 자미(임심여), 복이태(진지붕)의 목소리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이 때문. 반면 조미는 상해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꽤 좋은 보통화(중국의 표준어) 발음을 보여준다. 1부에서 조미가 보여준 산동 사투리 연기는 발군.
2부는 1부에서 계속 이어지는 이야기. 위구르와의 국경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위구르 왕 아리화탁이 자신의 딸 함향을 건륭제에게 바치고 함향은 향비에 책봉된다. 그러나 정인이 있던 향비는 황제의 손길을 거부하고 그 과정에서 황실에서 구박덩어리인 제비와 자미 일행과 향비가 가까워지며 일어나게 되는 이야기들을 담았다. 건륭제 시기 이민족으로서 황제에게 진상된 '향비', 문자의 옥으로 부모를 잃은 소검 등 다양한 인물의 등장으로 정치적, 시대적 상황도 잘 드러냈다. 스케일도 더 커졌다.
시청률은 하늘로 치솟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지만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극단적으로 흘러가는 캐릭터 묘사로 인해 원성이 자자했으며(특히 제비와 오왕자) 작품성으로는 1편보다는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 열악한 촬영 환경으로 배우들이 엄청나게 고생한데다가 이미지 고착을 우려한 조미, 임심여, 소유붕, 판빙빙이 3기의 출연을 고사하면서 3기 제작은 난항에 빠진다.
황제의 딸 3은 경인방송에서 방송되었지만 출연 배우들도 이강 역 주걸과 그 가족들, 청아와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다른 배우들로 바뀌었다. 게다가 오왕자가 태후의 강요로 후궁을 들이고 그 후궁이 오왕자의 아들을 낳은 뒤 오왕자의 정비인 제비를 모함해 위기에 빠뜨리고 결국 정비 자리까지 뺏는가 하면 전쟁터에 나간 이강이 적국의 공주에게 붙잡혀 돌아가지 못하고 마약에 중독되는 등, 답답한 스토리 전개로 시청자들에게 외면당했다. 물론 황제의 딸 3도 돌이켜보면 수많은 스타 배우들을 배출하였지만 해당 출연진들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상 흑역사에 가깝다. 하지만 원작자이자 작가인 경요는 3편은 본인이 쓰고 싶었던 이야기였다며 내용을 아끼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이가 나쁜 데에는 주걸의 성격이 완벽주의라 다른 멤버들을 지치게 했다는 의견이 많다. 일부에서는 음해성 루머인지, 주걸이 본인의 비중을 늘려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는 소문도 있다. 이 소문에 일리가 있는 것이, 2부에서 이강의 비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걸은 2010년에 음주운전을 하고 버로우를 탄 후 뜬금없이 자신의 블로그에 황제의 딸에서 같이 작업한 대만 배우들[14]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가 대륙 스케일의 평생까임권을 얻었기 때문에 촬영 도중 이들과 보이지 않는 적지 않은 마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부에서는 주걸과 소유붕의 가벼운 몸싸움은 있었고 동생으로 출연한 진지붕과도 트러블이 있어서 이 둘은 한때 주걸에게 법정에서 보자는 경고까지 했다고 한다. 다만 나날이 연기가 발전하는 것이 뚜렷하게 보이는 주걸에 비해[15] 소유붕의 연기가 완벽주의자이자 연기를 전공한 영화학도인 주걸의 성에 차지 않았을 거라는 추측도 있고, 정통배우인 자신과 달리 대만 출신에 아이돌 멤버이기까지 한 소유붕과 진지붕에 대한 우월의식도 작용한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훗날 소유붕은 이때를 회상하며 촬영장에서 대만 출신 배우라는 이유로 무시도 많이 당하고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일들로 인해서 주걸과 나머지 출연진들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는 게 기정사실화돼있었지만, 황제의 딸 20주년 특집으로 출연진들이 당시를 회상하며 한 인터뷰에서 새아 역의 배우가 "지금에 와서 그때 사이가 안 좋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촬영장 분위기가 크게 나쁘거나 하진 않았으며 다들 나이도 비슷하고 합숙하며 촬영을 했기에 늘 함께 어울리며 잘 지냈다"고 언급했다.
임심여 역시 마찬가지로 초반에는 북경에 왔더니 겨울에 난방도 되지 않는 조그마한 방에서 지내고 방에 벌레가 수시로 출몰하는 등 무척 고생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도 다 옛날 이야기라, 임심여는 "넷이서 10년 만에 만나서 식사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블로그를 통해서 알리기도 했다.
판빙빙이 후속작에 별 열의가 없었던 것도, 그녀의 비중이 자미의 하녀 수준으로 너무 낮았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 방영 당시 "공주의 하녀를 맡은 판빙빙이 공주들보다 더 예쁜 것 같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촬영을 시작하며 처음 만났을 때 제비, 새아 역의 조미와 장항은 "금쇄가 저렇게 예쁘면 우린 어떡해!!!"라는 대화를 나누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황제의 딸 3 촬영 전 임심여는 스케줄 문제로 출연을 거절했고, 소유붕은 다음 작품이 현대극이므로 3편에 출연하게 될 시 머리를 밀어야 하기 때문에(...) 거절, 조미는 말괄량이 이미지가 고착되는 것을 우려해서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있다.[16]
5. 여담
OST의 경우 대만의 2인조 밴드 동력화차(動力火車)가 부른 시즌 1의 오프닝 곡 <당(當)>이 제일 유명하고 인기가 많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엄청나게 히트했고, 발매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동력화차의 대표곡으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지금도 종종 콘서트나 TV 프로그램에 자주 소환되고 있다. 이 곡을 들으면서 그때당시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눈물까지 보이는 팬들도 많다. 그야말로 황제의 딸 그 자체를 상징하는 곡이기도 해서 당연히 리메이크판 신 황제의 딸 OST로도 활용되었다. 그 밖에 제비 역의 조미가 직접 부른 <유일개고낭(有一個姑娘)>, <자종유료니(自從有了你)>도 인기를 끌기도 했다.
신 황제의 딸은 2011년 7월에 방영. 국내에서의 관심은 구작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그래도 이름값이 있는지 국내 포탈에서도 검색해보면 스틸 사진이 제법 뜬다. 구작과 달리 자막이 널리 퍼지지 않아 잘 알려져 있지 않다가, 2018년 나무위키에서도 정식 문서가 만들어졌다.
배경이 청나라 시대라서 등장한 남성들은 변발로 분장했는데, 머리를 '''삭발'''하고 뒤에 변발을 붙였다고 전해진다.[17] 얼마나 빡빡 밀었는지 머리에 광이 날 정도(...) 하지만 이건 주연급이나 일부 조연급 인물만 그렇고, 엑스트라들을 보면 다들 변발을 하기는 했는데 머리에 '''항상''' 모자 같은 걸 쓰고 있다. 다만 소유붕은 인터뷰에서 "항상 이렇게 머리를 빡빡 밀었던 것 때문에, 남자 배우들이 두피에 상처가 생기는 등 무진장 고생을 했다"고 한다.
또한 촬영 기간에는 배우들이 하루에 2시간만 수면을 취했을 정도로 강행군이었고, 2부는 겨울에 걸쳐 제작되어서 배우들이 감기로 고생하기도 했다. 또한 패옥이나 귀걸이 같은 장신구는 제작비 문제로 인해 일부는 플라스틱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제비 역을 맡은 조미는 이 플라스틱 귀걸이를 꼈다가 알레르기가 생겨서 고생하기도 했다.
2014년 기사에 따르면 이 드라마가 방영될 당시 북한에서 이 드라마를 본 사람을 매우 엄벌에 처했다고 한다. 김정일이 어지간히 찔리는 부분이 있었던 듯.
2016년에는 애니화가 발표되었다. 중국의 알리바바픽쳐스가 제작하며, 조미가 감독으로 참여한다.
6. 등장인물
※ 괄호 안은 1~2부 출연 배우 / 3부 출연 배우
6.1. 주요 인물
6.2. 주변 인물
- 금쇄 (판빙빙 / x)
자미의 시중을 드는 소녀로 자미와 함께 제남에서 북경으로 왔다.
- 유청, 유홍 남매 (육시우, 진영)
제비와 함께 옛집에 사는 식구로 평소에는 제비와 무예를 팔며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제비나 자미가 위험에 처할 때 항상 도움을 준다. 2부에서는 회빈루라는 이름의 식당을 개점해 장사를 하고 있다.
유청은 작중에서는 은연중에 자미를 의식한 듯한 행동을 보여주지만, 자미가 이강과 이어지고 도주 생활 중에 금쇄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금쇄와 이어진다. 3부에서는 유청의 이름 언급은 있지만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유청은 작중에서는 은연중에 자미를 의식한 듯한 행동을 보여주지만, 자미가 이강과 이어지고 도주 생활 중에 금쇄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금쇄와 이어진다. 3부에서는 유청의 이름 언급은 있지만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 건륭제 (장철림 / 적룡)
- 황후 (대춘영 / 강려여)
- 용상궁 (이명계 / )
황후의 시중을 드는 늙은 상궁. 황제의 평민 딸이라며 궁으로 들어온 제비를 아니꼽게 여겨 황후를 부추겨 수방재 식구들을 괴롭힌다.
- 영비 (조려연 / 진리)
- 복륜 내외[A]
- 하우하 (임심여[18] )
자미의 어머니로 작중 시점에서는 고인이다. 신유년 가을 젊은 건륭을 만나 짧게 사랑을 나눴고, 혼자 자미를 낳아 길렀다. 병으로 눈을 감기 전 딸에게 아버지의 비밀을 알려주며 그를 찾아가라고 한다.
6.3. 1부 등장인물
- 복이태 (진지붕)
학사부 복륜의 차남이자 이강의 동생. 제비를 좋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포기하고 서장의 부마가 될 위기에 처한 형을 대신해 새아의 환심을 사 서장의 부마가 된다. 2부 말미에 새아가 회임을 해 돌아오기 어렵다며 근황을 전했다.
- 새아공주 (장항)
서장의 공주로 제비와 비슷한 성격. 채찍을 잘 다룬다. 청나라와 서장 간의 무술 대회에서 이강에게 반해 그를 반려자로 삼으려 하나 이태에게 시집을 간다.
- 서장왕
새아의 아버지로 청나라와의 수교를 위해 찾아온다.
6.4. 2부 등장인물
- 소검 (주굉가 / 황효명)
제비의 한헌기사 사건 후 등장. 회빈루에서 혼자 술을 마시며 시를 읊는 모습에 일행들이 친해지고 싶어 먼저 다가간다.[19] 제비와 자미가 단두대 호송차로 끌려갈 때 빼돌리면서 함께 여정을 떠나게 된다.
보여주는 능력만 보면 타고난 엄친아인 영기와 이강마저도 능가하는 수준. 문무도 출중하지만 사방에 발이 넓어 가는 곳마다 소검의 인맥을 통해 도움을 받는다. 게다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제비를 적절히 통제하면서도 그녀가 하고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너그러운 모습까지 보여주었기 때문에 제비가 큰 호의를 품게 되었고, 반면 궁에서 자라 도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영기는 제비의 관심을 받는 소검을 질투하기 시작한다.
원래는 끝까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을 작정이었으나, 남양에서 영기의 질투가 극에 달하자 제비가 자신의 누이임을 밝힌다. 부모가 황제의 손에 죽었기 때문에 강한 복수심을 품고 있지만 동생 제비를 생각해 이를 드러내지 않고 용서하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갖췄다. 2부 말미에 제비의 오라버니라는 특권으로 황궁 출입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되며 신부 화장을 돕던 청아와 만나 사랑에 빠진다.
3부 극초반에는 청아와 비밀 연애를 하고 있으며 항주 순시에서 혼인 승낙도 받아내지만 태후에게 자신의 비밀을 들켜 청아와 헤어지게 된다. 헤어지긴 했어도 마음은 청아를 향해 있으며 운남에서 버마와 전쟁을 할 때는 책사 자격으로 전쟁을 돕기도 한다. 이후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공주 신분을 포기한 청아와 함께 대리로 가서 혼인하고, 마찬가지로 함께 대리로 온 동생 부부와 함께 행복하게 산다.
보여주는 능력만 보면 타고난 엄친아인 영기와 이강마저도 능가하는 수준. 문무도 출중하지만 사방에 발이 넓어 가는 곳마다 소검의 인맥을 통해 도움을 받는다. 게다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제비를 적절히 통제하면서도 그녀가 하고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두는 너그러운 모습까지 보여주었기 때문에 제비가 큰 호의를 품게 되었고, 반면 궁에서 자라 도주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영기는 제비의 관심을 받는 소검을 질투하기 시작한다.
원래는 끝까지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을 작정이었으나, 남양에서 영기의 질투가 극에 달하자 제비가 자신의 누이임을 밝힌다. 부모가 황제의 손에 죽었기 때문에 강한 복수심을 품고 있지만 동생 제비를 생각해 이를 드러내지 않고 용서하는 대인배적인 모습을 갖췄다. 2부 말미에 제비의 오라버니라는 특권으로 황궁 출입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되며 신부 화장을 돕던 청아와 만나 사랑에 빠진다.
3부 극초반에는 청아와 비밀 연애를 하고 있으며 항주 순시에서 혼인 승낙도 받아내지만 태후에게 자신의 비밀을 들켜 청아와 헤어지게 된다. 헤어지긴 했어도 마음은 청아를 향해 있으며 운남에서 버마와 전쟁을 할 때는 책사 자격으로 전쟁을 돕기도 한다. 이후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공주 신분을 포기한 청아와 함께 대리로 가서 혼인하고, 마찬가지로 함께 대리로 온 동생 부부와 함께 행복하게 산다.
- 몽단 (무봉빈)
위구르에서 온 용사로 함향의 정인. 어릴 때부터 함향과 사랑에 빠져 영원을 약속했으나 아리화탁이 강경 반대했으며, 야반도주도 번번이 실패했다[20] . 죽다 살아나 향기를 잃은 함향과 재회한 뒤 혼례를 올리고 대리에 먼저 가서 기다리겠다고 한 뒤 퇴장한다.
6.5. 3부 등장인물
해녕 진방직의 사녀[22] 로, 태후의 눈에 들어 영기의 첩으로 들어온다. 본인도 영기를 마음에 품고 있어서 제비와 영기 사이가 멀어지도록 교묘하게 이간질하는 한편, 보란듯 아들을 낳아 황실의 총애를 한몸에 받으며 적비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청아의 충고를 들은 영기가 지화의 만행을 모두 알아채면서 냉대를 받게 되었고, 영기가 제비와 함께 몰래 궁을 떠나려는 계획을 듣고서 제비와 소검의 정체를 황제에게 일러바치기까지 한다. 하지만 전화위복이 되어 영기가 공식적으로 황자 자리를 포기하고 제비와 함께 나가게 되자 그제야 두 사람 앞에 무릎을 꿇으며 사죄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자길 냉대해도 좋으니 떠나지만 말라고 애원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떠나고 영기는 요절한 것으로 처리되어 상을 치른다. 최종회 후일담에서 자미와 친해져 학사부에 눌러앉다시피 하고 있다는 근황이 전해진다.
그러나 청아의 충고를 들은 영기가 지화의 만행을 모두 알아채면서 냉대를 받게 되었고, 영기가 제비와 함께 몰래 궁을 떠나려는 계획을 듣고서 제비와 소검의 정체를 황제에게 일러바치기까지 한다. 하지만 전화위복이 되어 영기가 공식적으로 황자 자리를 포기하고 제비와 함께 나가게 되자 그제야 두 사람 앞에 무릎을 꿇으며 사죄하는 처지로 전락한다. 자길 냉대해도 좋으니 떠나지만 말라고 애원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떠나고 영기는 요절한 것으로 처리되어 상을 치른다. 최종회 후일담에서 자미와 친해져 학사부에 눌러앉다시피 하고 있다는 근황이 전해진다.
- 모사 (류타오)
버마(미얀마)의 8공주. 공주 신분이지만 종종 남장을 해 전장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 버마가 중국 변경지역을 습격하면서 전쟁으로 이어졌는데, 이 과정에서 이강과 대립하며 라이벌이 된다. 자신의 독침을 맞은 이강에게 해독약을 주는 수상한 행보를 보여주기도 한다.
청군의 한밤중의 코끼리 부대 습격에서 이강에게 자신이 여자임을 들키며, 중상을 입은 이강을 버마로 데려와[23] 치료한다. 오랜 기간 혼수상태인 이강에게 은주분[24] 을 먹이게 하고 천마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자신과의 결혼을 강요하지만 강경하게 반대하는 이강과 그가 애타게 찾는 자미를 보고 포기한다.
청군의 한밤중의 코끼리 부대 습격에서 이강에게 자신이 여자임을 들키며, 중상을 입은 이강을 버마로 데려와[23] 치료한다. 오랜 기간 혼수상태인 이강에게 은주분[24] 을 먹이게 하고 천마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자신과의 결혼을 강요하지만 강경하게 반대하는 이강과 그가 애타게 찾는 자미를 보고 포기한다.
- 하영영 (장근근)
강남 항주 순시 중에 만난 취운각 기녀. 17세. 건륭(황제)이 타고 있던 용선 근처에서 노래를 하다 건륭의 눈에 들었고, 건륭이 그녀를 하우하의 환생으로 착각해 귀비로 책봉하려 했지만 주변의 반대[25] 와 본인이 자유로운 삶을 살길 원해 항주에 남는다.
7. 관련 문서
[출처1] "瓊瑤電視戲劇風格的蛻變:《還珠格格》 ― 一個類型(genre)的分析" (PDF)아카이브 판[1] 작중 소연자가 입궁전 살았던 옛집(대잡원)은 개꼬리골목에 있다고 서술되는데, 이 역시 경요가 수집한 베이징의 실제 지명이다.[2] 극중 '거거'로 책봉했다고 나오는 것은 고증이 틀린 것이다. 건륭제의 증조할아버지인 순치제가 이미 정식 품계에서 거거라는 호칭을 없앴기 때문.[3] 극중 제비는 황궁의 궁녀들을 노비라고 딱한 처지 취급하고 다른 황족들은 노비일 뿐이라며 얕잡아보는데, 청나라 궁녀들은 팔기 출신으로 출신성분으로 치자면 자미보다 높을것이다. 또 막 입궁한 제비에게 만주인의 복식을 해야 한다며 화분혜를 신게 하는데, 건륭제는 화분혜를 한족의 전족문화라며 금한 바 있다. ( 연희공략에서 이를 이용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당연하지만, 공주인 제비가 황자와 황족자제들과 상서방에서 공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 드라마 소품의 관점에서는 작중 황궁 내 모든 여성이 대랍시를 쓰고 있는데, 대랍시는 서태후가 발명한 아이템이다.[4] Hero Action 같은 채널이 대표적이다.[5] 나머지 둘은 박찬호 선발등판경기와 iTV 랭킹전이다. 그야말로 경인방송의 몇 안 되던 리즈시절.[6] 1999년 당시 aTV 방송국의 고위층 중 한 명이 원작자 경요와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7] 주윤발과 장국영 주연의 영화와는 이름만 같고 내용은 전혀 다르다. 도대우(陶大宇), 주해미(周海媚), 담요문(譚耀文), 양공여(楊恭如) 등이 출연한 드라마로 상권, 사랑을 두고 벌어지는 형제간의 갈등을 다룬 42부작 드라마. 같은 시간대에 방영했던 TVB의 '형사정집당안4'와 나란히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인기작임에도 불구하고 유튜브에 검색해도 방영분이 전무하며 해당 제목과 같은 영화와 예고편과 일부 장면만 편집한 영상만 존재하나 요우쿠 등의 사이트에 이 제목을 검색하면 모든 방영분을 볼 수 있다.[8] 황제의 딸과 종횡사해로 2연타를 먹인 이후 aTV는 2000년에 아화강시유개약회 2(我和殭屍有個約會II), 2001년 백만부옹(百萬富翁)(영국의 ITV의 인기 프로그램인 누가 백만장자가 되는가?(Who Wants to Be a Millionaire?)의 라이선스를 얻어와서 제작, 방송한 프로그램. 전성기 땐 시청률 불패의 신화를 써내려갔던 미스 홍콩까지 격퇴시킬 정도의 인기를 누렸었다. 한국에도 MBC에서 퀴즈가 좋다로 나온 적이 있었고 tvN에서도 2013년에 판권을 구입해 퀴즈쇼 밀리어네어라는 이름으로 방송했다. 참고로 비슷한 시기에 경쟁사 TVB에서도 一筆OUT消라는 퀴즈쇼를 방송했는데 이쪽은 BBC의 위키스트 링크의 라이선스판. 2018년에 aTV가 OTT채널로 재개국하게 되면서 새로 제작, 2018년 6월까지 방영했다.) 등으로 반격의 기세를 2000년 초반까지 이어갔지만, 이후 aTV는 속절없이 다시 TVB에 열세로 밀려나 결국 망하고 OTT로 규모가 줄어들었다.[9] 당시 평균 시청률이 23%, 최저 시청률이 18%. 1, 2부 이상으로 흥할 거라 예상하고 고가에 판권을 구매한 것에 비해서 결과가 안 나오자 옮겨버린 것. TV 외의 다양한 대체재가 존재한 2018년에도 TVB 드라마의 본방 평균 시청률이 20%대 중반대, 못해도 20%대 초반이란 점을 감안하면 결과가 안 좋다고 봐야 한다.[10] 여담으로 3기는 홍콩뿐만 아니라 대만에서도 시청률이 전혀 좋지 못했다고 한다(...)[11] 참고로 당시 이 시간대 aTV와의 경쟁 프로그램은 6시 뉴스였다(...). 그리고 TVB도 매주 저녁 6시 반에 뉴스를 방송하기 때문에 결국 1시간대 편성(중간광고 시간 포함)이 절반으로 깎이는 안습한 처지가 된 셈이다.[12] 더빙판으로 방영[13] 당시 조미가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고 나중에 본인의 정식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지만, 본업이 가수는 아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조미는 공식석상에서 이 주제가를 절대 부르지 않는다.[14] 소유붕, 진지붕이 저격대상이었고 심지어 상대역이었던 임심여도 은근슬쩍 돌려깠다. 임심여까지 굳이 깐 이유는 2004년경, 임심여가 토크쇼에 나와 주걸과 키스신을 찍다가 주걸이 대본에도 없던 혀 마중(...)을 나와서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주걸은 여기에 별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임심여 팬들에게 까였다.[15] 조미, 임심여, 소유붕과는 달리 스타성이 부족한 감은 있지만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의 주걸의 연기력만큼은 까는 이가 없을 정도다. 다만 후술한 사건으로 인해 황딸에서 오열하는 주걸의 얼굴이 필수요소가 되어서 웹상에서 신나게 조리돌림을 당했다(...)[16] 여담으로 조미는 황제의 딸 하차 후 차기작으로 주성치의 영화 소림축구에 캐스팅되어서 연속으로 대박을 터뜨린다. 하지만 소림축구 속 조미의 역할은 오히려 황제의 딸의 제비보다도 훨씬 더 굴욕씬이 많고 그만큼 더 많이 망가지는 캐릭터였다. [17] 그런데 황제의 딸에서 보여준 변발은 음양두라고 해서 앞머리는 밀고 뒷머리를 땋은 것인데, 건륭제 시대의 변발과는 맞지 않다. 실제 당대에는 금전서미라는 뒷꽁지 하나만 남긴 변발을 했다. 실제로 건륭제 시기 때 음양두를 하고 다녔다면 목이 벌써 댕강 날아갔을 것이다. 아무래도 비주얼 상의 문제인 듯.[A] A B 1~3부까지 캐스팅 변경 없음[18] 자미와 1인 2역이다.[B] A B 2~3부까지 캐스팅 변경 없음[19] 일행들은 정체를 숨기고 다가갔지만 향비를 빼돌리려고 작전을 짜는 사이 정체가 다 들통나게 된다.[20] 함향은 날 때부터 몸에 특유의 향기를 지니고 있었으며 북경에 오기 전 7번의 도주를 시도했지만 향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한다.[21] 신 황제의 딸에서는 제비, 소검 남매의 어머니로 등장한다.[22] 진방직의 딸들은 '지' 돌림에 금, 기, 서, 화로 이름을 지었다.[23] 자미가 수를 놓은 이강의 갑옷을 전사한 병사와 바꿔치기했다. 이 자수와 동심호신부 때문에 일행들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고, 자미도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24] 양귀비 꽃의 씨앗으로 만든 가루. 민간에서는 백면으로 불린다. 약을 먹으면 고통을 덜 수 있지만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끊기 어려운 마약으로 묘사된다.[25] 황후는 일개 기녀가 귀비가 될 것이라는 소문에 혈서까지 쓰며 황제에게 호소했지만 건륭은 그저 질투로 받아들이고 귀비 책봉식을 강행하려 했다. 이에 황후가 머리를 자르고 이마를 찧기까지 하며 반대하자 건륭은 책봉식을 미루기로 하고 황후에게 먼저 궁으로 돌아가 정심원에 있으라며 보내버린다. 순시 후 정심원을 찾은 제비 일행은 아예 머리를 다 깎고 비구니가 된 황후를 보고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