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연

 

1. 소개
2. 작중행적
3. 기타


1. 소개



''' 후궁여의전의 등장인물 '''
[image]
'''이름'''
''' 김옥연[1] 金玉妍 '''
'''배우'''
신지뢰
'''거주지'''
계상궁 태극전
'''품계'''
격격→ 가(嘉)귀인 → 가빈 → 가비 → 가귀비 → 가빈 → 가귀인 → 가빈 → 가비
→ 가귀비 → 숙가황귀비(淑嘉皇貴妃)
'''가족'''
남편 건륭제 애신각라 홍력, 자녀 4황자 영성, 8황자 영선, 9황자 영유[2], 11황자 영성

2. 작중행적


등극 후 홍력의 총애를 받으며 4황자 영성을 낳게 되면서 가빈으로 승격된다. 항상 시비를 걸고 상당히 교만하여 다른 후궁들은 시선에서 아웃시키지만 황후 부찰 랑화에게만큼은 항상 깍듯이 대한다. 전작의 하상재기귀인과 별 다를 바 없는 캐릭터로 보였다. 그러나 2권까지의 행보를 잘 살펴보면 랑화의 음모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지 않으며 실질적으론 중립이고 남들 다 암투에 피해를 받을 때 여전히 총애를 받고 황자를 무사히 낳아 지위가 상승하는 등 상당히 노련한 모습을 보인다.[3]
고희월과는 겉으론 친한 듯하지만 사실은 사이가 안 좋으며 희월이 아약의 귀신을 봤다며 정줄을 놓자 자기보다 두계급 높은 희월에게 싸대기를 날려 진정시키는 패기를 보여준다. 후궁들 중에는 그나마 소록균과 친하게 지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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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여의전 전반부의 흑막'''
사실은 매우 치밀하며 자신의 아들을 황위에 올리기 위해 온갖 암투를 벌인다. 랑화를 부추겨 영릉향을 넣은 옥팔찌를 여의와 희월에게 하사하게 했고 이빈 황기운의 유산과 매빈 백예희의 출산은 옥연의 짓이며 이것들을 여의가 저지른 것처럼 보이게 하였고 황후에게 충성하는 척하며 황후 소생의 7황자 영종을 죽게 만들었다. 또한 랑화의 시녀 소심을 매수하여 황기운과 백예희의 일을 조작했고 랑화가 죽은 후엔 소심에게 소록균의 주화를 손에 쥐고 자살하게 하여 홍력이 록균을 의심하게 만들고 영황에게 적복진이 음식에 독을 넣어 제영을 죽였다고 말했다. 그 후 황귀비인 여의가 안길파상 대사와 사통을 했다고 모함했으나 해란의 계책과 릉운철로 인해 역관광당하여 계상궁에 연금당하고 황자들의 양육권을 뺏기고 귀비에서 빈으로 강등당했다. 그래도 정신을 못차려 궁밖에 나와 통곡하자 빡친 홍력이 귀인으로 강등시켰다.[4][5] 록균이 9황자 영유에게 보낸 병에 쥐가 들어있어 영유가 놀라 요절하면서 록균을 증오하게 되고 홍력이 위로 차원에서 빈으로 승격시켜준 후 11황자 영성을 낳고 총애를 회복해 다시 귀비로 승격되었다.
부찰 제영의 독살의 용의자이다. 일단 랑화는 아닐 가능성이 높아졌고 옥연이 영황에게 부찰 제영의 사인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기 때문.
13살 때 만난 조선의 세자(경종?)를 그리워하고 있다. 둘은 서로 좋아했고 세자는 이미 세자빈이 있었지만 자신은 좋은 가문 출신이기에 그의 후궁이 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세자가 그녀를 공녀로 보낸다. 세자는 조선의 힘이 약하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고 옥연은 나라의 안전을 위해 악행을 행하게 된다. [6]
영성이 총애를 잃은 후 상심에 빠져 개를 길렀는데 영선이 낙마하여 돌보지 못한던 중 개가 광견병에 걸려 5황녀 경시를 죽게 했고 홍력의 분노를 정면으로 맞게 된다. 홍력이 영성은 절대 황제가 될 수 없고 너는 공물일 뿐이라고 하자 멘붕하여 병에 걸렸다. 여의가 그녀를 찾아와 냉궁에서 음식에 약을 써 류머티즘에 걸리게 한 일, 부찰 제영의 독살, 이빈과 매빈의 사건, 영황과 영장이 총애를 잃은 사건, 소심과 아약을 매수한 범인인지 묻자 자신의 아들이 등극 후 첫 황자가 되어 주목을 끌고 황제가 되어 조선을 도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했다며 인정했다.[7][8] 여의가 조선의 세자가 새 공녀를 바쳤고 너는 조선인인지도 알 수 없는 사생아임을 밝혔다고 하자 정신붕괴를 일으켰고 결국 병사하였다.[9] 홍력은 숙가황귀비로 추존하였고[10] 얼마 전에 죽은 관여자를 그녀의 무덤에 대신 집어넣었고 그녀의 시신은 행방을 알 수 없다.
옥연의 악행은 황실의 체면 때문에 홍력이 묻어두었고 조선에선 홍력의 눈치를 봐 옥연의 가족들을 유배보내고 새 공녀를 바쳤다.

3. 기타


고귀한 출신과 다른 후궁의 출신을 비웃는 오만함, 심계가 깊은 면 때문에 후궁견환전 원작의 호온용과 비교되는 캐릭터이다.
설정상 후궁중 최고 미인. 다만 후에 들어오는 후궁 한향견은 더 예쁘다는 듯.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고향에서 홍삼을 가져와 지속적으로 먹는다고 한다. 덤으로 김치도 가져온다.
조선출신이라 흰옷, 정확히는 유백색 옷을 자주 입는다고 한다. 붉은색을 좋아해 홍색 계열 옷도 입는다.
화장술이 뛰어나고 조선의 기악에 정통하며 가야금연주를 잘하고 장구춤, 부채춤과 검무를 잘춘다. 다 총애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슬하에 4황자 영성과 8황자 영선, 9황자 영유, 11황자 영성을 두고있다.
또한 김옥연의 설정은 역사적으로 어긋난 부분이 많다. 김옥연의 모티프가 되는 숙가황귀비 금가씨의 집안은 조선 출신 유민들로 구성된 포의 가문으로 조부 창명이 순치제의 배동이었고, 증조모(증조부 신다리의 정처)가 순치제의 유모로 활약하며 서서히 중앙 정계에 진출했다. 이후의 인연으로 숙가황귀비의 오빠는 이부시랑에 올랐고, 숙가황귀비는 보친왕 시절의 홍력의 시첩으로 출가할 수 있었던 것.
조선에서 중국으로 양반가 출신의 공녀를 보낸 일이 실재하기는 한다. 조선 전기 권씨, 한씨, 황씨 등의 인물들이 명나라에 바칠 공녀로 차출되어 보내진 기록이 남아있는데 저 가운데 황씨와 한씨는 확실하게 양반이다. 특히 청주 한씨 가문은 자매를 각각 영락제와 선덕제의 후궁으로 보냈는데, 이들의 오라비인 한확은 명 황실과의 연에 힘입어 출세가도를 달렸다. 덧붙이면 이 양반이 바로 인수대비의 아버지다. 조선 후기에는 종실 출신으로 도르곤과 혼인한 의순공주도 있긴 하다. 이쪽은 공녀는 아니고 공주와 혼인하고 싶다고 구혼해 대복진으로 데려가긴 했다.
김옥연을 조선 왕실의 종실이라고 설정하는 것은 조선 왕실의 관습에 맞지 않다. 보통 외가 쪽 혈통은 종실로 인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쪽은 외척이라고 불렸다. 종실과 외척의 구분으로는 외척은 벼슬이 가능했으며, 성종 이후로 조선에서는 종친이 벼슬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예를 들어 문정왕후의 오빠 윤원형이 벼슬을 했고 딸이나 자매인 왕비를 두고 벼슬을 한 관료가 많다.
또한 만약 조선 왕실의 부계가 같은 친척이라고 하여도 동성을 제외하고 본관이 같아 동본이므로 관계로 세자하고는 혼인하기 힘들다. 조선시대에는 동성동본이외에도 이성동본끼리 부계가 같다고 혼인을 피했다. 하지만 조선도 외가쪽 친인척과 결혼하는 것은 널널한 편으로 연산군정비와 칠촌 관계였으니 세자가 외척 8촌과 혼인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드라마에서는 조선 출신이 아닌 북국이라는 가상의 나라의 공녀 김씨로 바뀌어서 등장한다. 실제 배우는 중국 여배우 신지뢰라는 배우를 기용했다. 바뀐 설정에 대해서 여러 이유가 추측되고 있는데, 조선은 명나라에 공녀를 바쳤어도 청나라에 공녀를 바친 적 없다는 역사적 사실, 한국을 배려해서 가상의 나라로 바꿨다는 이유, 사드배치로 인한 한한령 때문에 한국을 떠올릴 수 있어서 조선을 북국으로 바뀌었다는 이유 등등, 여러가지가 있다.
여러모로 전작인 후궁견환전보다 실망스럽다는 평과 함께 드라마는 주연 배우 덕분에 기대된다는 평이 많다.

[1] '''조선 출신으로''' 조모가 대비(명성왕후?)의 사촌 여동생이다. 공녀로 바쳐져서 보친왕부의 격격이 된 이후에 홍력이 건륭제로 즉위하면서 가귀인으로 책봉이 된다. 실제 역사에서는 공녀가 아니라 정황기 포의 소속 조선인의 후예였다. 그녀의 친정은 정묘호란 때 청나라의 포로가 된 평안도 의주 사람 신다리의 일족이었는데, 이 집안은 조선 출신 중 청나라에서 가장 출세한 집안이었다. 드라마에선 설정이 바뀌어 북국 출신이 된다는 듯하다. [2] 드라마에서는 사산됨[3] 그래서 사실은 진정한 고수라는 의견이 나왔다.[4] 드라마에서 9황자 영유가 사산된 시점이다.[5] 다만 조선과의 관계를 생각해 아주 내치지는 못한다.[6] 조선의 지원 역시 적극적으로 받았다.[7] 역사적으로 한반도 출신으로 중국 황후가 된 기황후와 오버랩된다. 물론 황후와 일개 후궁이라는 포지션 차이는 있지만, 적어도 기황후가 자기네 모국에 저지른 패악질에 비교한다면 이 사람은 그보다는 개념이 있다고 할 수 있다.[8] 그러나 건륭은 처음부터 공녀인 김옥연의 아들들에게 황위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9] 자신이 공물일 뿐이고 세자가 자신을 이용한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10] 전혀 어울리지 않는 숙(淑)자를 시호에 추가해 비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