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
1. 후한의 황족
劉康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황족. 유리의 아들이자 영제#s-2의 조카.
174년에 아버지인 하간왕 유리가 죽자 아버지의 봉국인 하간을 받지 않고 여름 6월에 제남왕에 임명되어 효인황제로 추존된 영제의 아버지인 유장의 제사를 받들었으며, 본래 유강이 봉국으로 받은 제남은 본래 전한의 한경제 때 오초7국의 난으로 폐지된 곳이다.
경제에게 오왕 유비를 필두로 초왕 유무, 조왕 유수, 치천왕 유현, 교서왕, 제남왕 유벽광, 교동왕 유응거 등이 반란에 가담했다가 주아부의 활약으로 반란이 평정되면서 이들의 봉지는 폐지되면서 한나라로 흡수되었는데, 이전에 제남왕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영제가 제남국을 부활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의 뒤를 이어서 유빈이 제남왕이 된 것으로 보인다.
1.1. 미디어믹스
영웅조조에서 제남왕이 등장하고 제남왕의 재위 기간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에 불분명하지만, 184년 이후 조조가 제남상으로 부임했다는 점, 유강이 174년부터 제남왕이 되고 영제가 조카라는 점을 보면 이 사람으로 추정된다.
제남의 관리들과 연회를 하는 와중에 조조가 제남상으로 부임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부정부패를 저지른 관리들이 우리들을 조사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한다. 조조가 온 것 때문에 괜히 걱정한다고 했다가 관리로부터 제남의 백성을 다스릴 권한은 국상에게 있고 제남왕은 발언권이 없어서 자신들을 보호해줄 수 없다고 하자 그러면 전임 국상들은 어떻게 쫓겨났냐고 발끈하면서 잘 상의해보라고 한다.
원씨 가문에는 명절 선물을 보내 원술로부터 앞으로 조심하라면서 사람을 보내주겠다는 내용을 받았는데, 제남왕은 이 편지를 보고 원소가 와주길 바라면서 원소가 경성으로 갔기에 어림도 없다고 여겼다. 조조가 제남상으로 부임해 관리들의 부정을 적발하자 조조에게 국상은 생사 결정권이 없다면서 관리들에 대한 처벌은 조정에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2. 위나라, 서진의 인물
劉康
(? ~ 285)
조위, 서진의 산양공. 헌제의 손자. 아버지는 헌제의 아들들 중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산양왕 칭호를 받았던 유의일 가능성이 제일 높다. 유의도 생모는 기록이 없아 확실치 않으나 헌제에게 시집간 조조의 딸들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다.
234년에 헌제가 죽자 태자는 그 전에 죽었으므로 작위를 계승해 산양공에 임명되어 51년간 지냈다.
265년에 위나라가 멸망하고 서진이 건국되자 진무제로부터 유선과 함께 자제 한 사람이 부마도위에 임명되었으며, 267년에 진무제에게 내조했고 285년 9월에 사망했다. 아들인 유근(劉瑾)은 4년 간 재위하고 289년에 죽었고 그 아들인 유추(劉秋)가 즉위해 20년 동안 재위, 영가의 난 때 흉노에게 살해되고 봉국이 폐지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의 문종실록 1450년 6월 10일의 기록에 따르면 두씨통전에 실려 있는 왕후의 상중 습작의(襲爵議)에 위나라 상서가 아뢰길 두씨향후 유강이 작위를 계승하면서 사자에게 대신 주고 준 문서에 절할 때 유강은 소복을 입었다고 한다. 유강이 상을 치루는 것에 대해 진정, 왕숙 등이 의논했고 왕숙이 유강이 3년상에 처해 최질(縗絰)을 하고 있으니, 상(喪)으로 인해 명한다면 다시 소복을 입어도 상관없지만 왕명을 존숭한다면 길복으로 받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