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광(후한)

 



'''劉光
유광
'''
'''최종직위'''
태위(太尉) 겸 녹상서사(錄尙書事)
'''성씨'''
(劉)
''''''
(光)
''''''
중료(仲遼)
'''생몰 기간'''
?년 ~ ?년
'''고향'''
예주(豫州) 패국(沛國) 소현(蕭縣) 
'''태위 재임기간'''
127년 7월 27일 ~ 129년 8월 25일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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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의 관료 자는 중료(仲遼), 예주 패국 소현 출신

2. 생애


상서령(尙書令)으로 지내면서 상주문을 올린다.

효안황제(孝安皇帝)께서는 일찍이 천하를 내버리셨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종묘를 받드시어야 하오지만 폐하께서는 간신들을 가까이 하오면서도 나라를 번성시키라고 명을 내렸사오니 백관들 중 실망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사옵니다.

(중략)

폐하께서는 마땅히 천명을 규합하여 신하들을 이끄시고 폐하께서 제위에 오른지 얼마 안되어 전장(典章, 법령)이 불완전하오니 청하옵건데 예(禮)에따라 일을 처리하옵소서

이후 태상(太常)이 되었다.
127년 7월 9일 태위(太尉) 주총이 면직되자 7월 27일 태위 겸 녹상서사(錄尙書事)가 된다.
음양의 불화를 이유로 129년 8월 25일 면직된다.
조카로는 태위를 역임하는 유구(劉矩)가 있다.
후한서 순제기(順帝紀)에서는 태위를 역임하였지만 순리열전(循吏列傳) 유구전(劉矩傳)에서는 사도라고 나온다. 여기서는 순제기의 기록을 따라 태위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