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 야스켈라이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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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핀란드의 전 축구 선수로 포지션은 골키퍼였다.
15년간 볼턴에서 활약한 볼턴 원더러스의 명실상부 레전드이다.
2. 커리어
1992년 만 17세의 나이로 핀란드리그 소속팀인 미켈린 팔로일리야트에서 데뷔하였다. 1994년에 주전 골키퍼가 되었고 1996년 바산 팔로세우라로 이적해 활약한다.
2.1. 볼턴 원더러스 FC
1997년에는 풋볼 리그 퍼스트 디비전[2] 소속이던 볼턴 원더러스로 이적했고, 볼턴의 프리미어리그 승격시즌인 00-01시즌에 십자인대 부상을 입어 반시즌을 나서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력을 입증하고 주전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시즌인 01-02시즌, 얘스켈래이넨은 바클레이스가 선정하는 올해의 골키퍼상을 수상하였고, 1997년 볼턴에 온 이래로 팬들이 주는 수많은 클럽 상들을 수상하였다. 그는 아스널, 레알 마드리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그리고 밀란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이적설에도 관련되었고, 뤼트 판니스텔로이의 축구 커리어에서 첫 번째로 그의 페널티킥을 막은 선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얘스켈래이넨은 팀에 대한 높은 충성도를 나타내며 이적 없이 볼턴에서 꾸준히 뛰었다.
2007년 5월 13일, 얘스켈래이넨은 볼턴 원더러스가 클럽 역사상 지금까지 단 두 번밖에 진출한적 없는 UEFA컵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도운 공로가 인정되어 팬 선정/선수단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모두 석권했다. 07-08시즌 이후 계약이 만료되기 때문에 볼턴을 떠나 다른 팀으로 이동할것이라는 수많은 추측에도 불구하고 6월 11일 4년 계약을 동의했으며, 7월 9일 공식적으로 재계약을 맺었다.
2008년 11월 2일 맨체스터 시티 FC를 상대로 볼턴에서의 400번째 경기를 치렀고, 6일 후에는 헐 시티 AFC를 상대로 400번째 선발 출전 기록도 세웠다. 그리고 400경기 출전 기념으로 2009년 8월 스코티시 프리미어리그 소속 하이버니언과 친선경기를 가졌고 이 경기에서 클린 시트를 기록했다.
2011년 3월 12일 버밍엄 시티와의 FA컵 8강전에서 500번째 출전을 기록했다. 400경기때와 마찬가지로 500번째 선발 출전 역시 이로부터 약 일주일이 지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를 상대로 이룩했다.
2011-12시즌 볼턴은 이청용의 부상을 비롯한 여러 악재 속에서 강등권을 헤매다 결국 풋볼 리그 챔피언십으로 강등되었으며, 얘스켈래이넨의 계약도 만료되었다. 결국 얘스켈래이넨은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팀을 떠났으며, 2012년 6월 13일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와 1+1년 계약을 맺었다. 2012-13시즌 웨스트햄의 주전 골키퍼로 리그 38경기를 모두 소화한 얘스켈래이넨은 2013년 4월 계약 연장 옵션 실행이 확정되며 2014년까지 계약기간이 연장되었고, 시즌 종료 후 웨스트햄 올해의 선수상 후보에도 올랐다. 다만 윈스턴 리드에 밀려 수상은 실패. 2013-14시즌에도 주전으로 시즌을 시작했으나 노쇠화가 진행되며 결국 아드리안 산 미겔에게 주전 자리를 내줬다.
2014-15시즌에도 계약 연장과 함께 팀에 남았으나 한 경기를 교체로 출전하는데 그쳤고, 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났다. 이후 EFL 리그 1으로 강등된 위건 애슬레틱 FC와 1년 계약을 맺었다. 당초 주전은 새로 영입된 리처드 오도넬이 맡았으나, 10월 3일 월솔 FC전에 선발 출전한 이후 40세의 나이가 무색한 뛰어난 활약으로 주전 자리를 되찾고 32경기중 15경기에서 클린시트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치며 위건의 리그 1 우승과 챔피언십 승격의 주역이 되었다.[3] 역시 클래스는 어디가지 않는다. 그러나 챔피언십으로 승격된 16-17시즌에는 다시 주전에서 밀려났고, 팀은 다시 3부리그로 강등된 채 얘스켈래이넨은 계약 만료로 팀을 떠났다.
2.2. 이후
이후 인도 슈퍼 리그의 ATK와 1년 계약을 맺었으나, 반 시즌가량만 뛰고 코치로 전환하면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3. 은퇴 이후
은퇴 이후 볼튼 시절 팀 동료였던 샘 리케츠가 감독으로 있는 잉글랜드 내셔널리그 팀 렉섬 AFC에서 코치직을 맡고 있다.
4. 국가대표 경력
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998년 3월 25일 몰타와의 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했다. 초기에는 핀란드의 주전 골키퍼였던 안티 니에미(Antti Niemi)가 건재해 7년간 백업으로만 뛰었으나, 니에미가 2005년 핀란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한 후 주전 골키퍼가 되어 4년간 뛰었다. 이후 2009년 10월 29일 클럽에서의 플레이에 더 충실하기 위해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그러다 유로 2012 예선 도중 국가대표팀 주전 골키퍼 오토 프레드릭손이 부상으로 이탈하자 협회측에서 얘스켈래이넨에게 복귀를 요청했고, 딱 한 경기만 뛰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2010년 10월 6일 헝가리전에서 출전했다. 경기는 1-2로 패배. 이 경기까지 포함에 국가대표팀에서 총 56경기를 뛰었다.
5. 여담
아들 윌 야스켈라이넨(Will Jääskeläinen)도 축구선수이며, 포지션도 아버지와 같은 골키퍼다. 본인이 헌신했던 팀인 볼턴 원더러스 유스에 2017년까지 소속되어 있다가 이후 크루 알렉산드라로 이적하였고 19-20 시즌부터 주전으로 활약중이다.
[1] /ˈjussi ˈjæːskelæi̯nen/. 다만 잉글랜드 현지에서는 본인도 언론도 그냥 적당히 영어식 발음을 섞어 '야스켈라이넨'으로 불렀다.[2] 지금의 풋볼 리그 챔피언십[3] 참고로 이 우승이 얘스켈래이넨 커리어 통산 첫 우승이다. 그 이전까지는 소속 팀이 팀이다보니 1부 리그 수준에서의 우승은 꿈도 못 꾸었고, 아주 옛날 볼턴이 초창기나 그 전 핀란드 리그 시절에도 우승 경력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