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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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소속 축구 클럽. 정식명칭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축구 클럽(West Ham United Football Club)으로 1895년 조선소 노동자들에 의해서 창단되었다. 홈구장은 60,000석의 런던 스타디움[1] 이다. 2006년에 아이슬란드의 제과업계 부호 에게르트 마그누손이 아이슬란드 축구협회를 동원해 1740억원으로 구단을 사들여 구단주가 됐지만, 5년도 못가 세계경제위기로 파산해 되팔아야 했다.
성적은 그리 잘난 성적도 없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인데 '''꽤 인기가 있는 구단이다.''' 런던 내에서 아스날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구단으로 엄청난 팬 수를 자랑한다. 포브스 지에서도 세계 축구 구단 자산가치 20위권에 줄곧 선정되던 곳이다. 겨우 20위 정도라고 하겠지만 2016년에는 AS 로마까지 제치고 17위로 선정했다. 그 위에 인테르, AC 밀란 등등 구단이 바로 위에 있을 정도이다.
2. 역사
2.1. 창단부터 2009-10 시즌까지
해머스의 역사를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비디오 (1989년 제작.)[2]
긴 역사에 비해서 우승 기록이 별로 없다. FA컵 3회 우승이 전부. 연고지는 런던으로 토트넘 홋스퍼 FC, 아스날 FC, 첼시 FC, 밀월 FC, 레이튼 오리엔트 FC 등과 라이벌이고, 강등과 승격을 반복한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895년에 기업가 아놀드 힐스와 지역 심판 데이브 테일러와 함께 노동자 팀인 '템즈 아이언웍스 FC'로 창단, 이후 점차 프로 팀으로 변모하면서 1900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고, 1919/20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풋볼 리그에 참가하여 2부 리그에서 고군분투하다가 1923년에 처음으로 FA컵에 출전하여 결승전까지 진출했으나[3] , 볼턴 원더러스에게 0-2로 졌다. 해당 경기 때 '화이트 호스 결승전(White Horse Final)'이라고 부른다.[4] 이 여세를 몰아 1923년에 1부 리그로 진출했으나 계속되는 부진 탓에 1932년에 2부 리그로 강등을 당했고, 32년간 팀을 지휘했던 시드 킹 감독이 해임됐다. 이후 찰리 페인터 수석코치가 감독을 맡았으나, 1950년에 테드 펜턴 수석코치가 감독직을 넘겨받아 끊임없는 리빌딩을 거쳐 1958년에 1부 리그로 복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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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부터 전 아스날 수석코치 론 그린우드가 감독으로 부임해 바비 무어, 제프 허스트, 마틴 피터스를 필두로 1964년 FA컵 우승, 뒤이어 1965년에는 UEFA 컵 위너스컵에서도 우승을 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 3인방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우승시키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트레버 브루킹, 빌리 본즈, 프랭크 램파드 시니어 등 유망주들을 발탁해 세대교체를 하여 1974년에 존 라이얼 수석코치가 감독직을 승계한 후 1975년 FA컵 우승도 거뒀으나, 급격히 팀 전력이 약해지면서 1978년에 2부 리그로 강등되고 말았다가 1980년에 FA컵을 다시 우승하고 [5] 1981년에 다시 승격하고 8년간 중위권을 전전했다.
1984년과 1985년에 트레버 브루킹과 램파드가 각각 팀을 떠나고 빌리 본즈가 노쇠해지자 라이얼 감독은 토니 코티 등의 젊은 선수들을 필두로 하여 1985-86 시즌에 최상위 리그에서 최고 성적인 3위에 안착하는 등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으나, 1988-89 시즌에 또 강등당하여 존 라이얼 감독도 15년만에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라이얼 감독의 후임으로 루 마카리 감독이 임명되었으나 1989-90 시즌에 승격 실패로 해임되었고, 대신 팀의 레전드인 빌리 본즈가 감독이 되어 1991년에 1부 리그에 승격했으나 한 시즌만에 강등당했다가 1993년에 다시 승격했다. 1994년 해리 레드냅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승진한 이래 1990년대 후반 들어 파올로 디 카니오를 비롯해 리오 퍼디난드, 조 콜, 저메인 데포, 프랭크 램파드, 마이클 캐릭 등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중상위권을 유지하며 1999년에 UEFA 인터토토컵에 우승하는 등 나름 성과를 누렸으나, 2001년 레드냅 감독이 해임된 후 2002/03 시즌에 승점 42점에 호화급 멤버들을 갖추었음에도 18위로 아쉽게 강등당했다.
2003/04 시즌을 앞두고 글렌 뢰더 대신 앨런 파듀가 감독으로 부임했고, 조 콜 같은 주전 선수들과 에두아르 시세 등 임대 선수들을 각각 내보내 1천만 파운드를 받아 EPL 복귀 자금으로 썼다. 그는 첫 시즌 웨스트 햄을 챔피언십 4위로 이끌고 플레이오프 결승으로 이끌었으나 챔피언십 6위였던 크리스탈 팰리스에 패배하여 승격하지 못했다. 다만 04-05 시즌 챔피언십 6위를 차지하여 가까스로 플레이오프에 합류한 뒤 입스위치 타운과 프레스턴 노스 엔드를 이기고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했다.
승격 후 첫 시즌인 05-06 시즌 9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하이버리에서 아스날 FC에게 마지막으로 승리한 팀이 웨스트햄이다. 또 최종전에서 식중독 사태에 빠진 토트넘 핫스퍼에 2-1 승리를 거둬 토트넘을 4위에서 5위로 끌어내리고, 마지막 하이버리 경기에서 위건 애슬레틱을 4-2로 이긴 아스날의 4위 탈환에 일조한다.
또한 FA컵에서 결승에 올라가 다음 시즌 UEFA컵 진출권까지 차지한다. 결승전에서 질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리버풀 FC에게 종료 직전까지 3-2로 이기고 있다가 스티븐 제라드의 중거리 슛에 동점을 허용한 후, 승부차기 끝에 패배하여 아쉽게 준우승에 머문다.
06-07 시즌 아르헨티나 듀오인 카를로스 테베스와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를 영입하며 시즌에 대한 전망을 밝게 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두 선수의 활약은 미미했고 웨스트햄은 팀 역사상 최다 연패인 8연패를 당하며 강등권으로 추락한다. 블랙번-아스날[6] 에 연승을 거두며 살아나는 듯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웨스트햄 구단은 아이슬란드의 부호 에거트 마그누손과 비요르골푸르 구드문드손의 WH 홀딩 그룹에 8,500만 파운드에 인수되어 프리미어리그에서 6번째[7] 로 해외 자본에 소유권이 넘어간 구단이 되었다. 이에 따라 마그누손 구단주가 회장직에 앉았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자본의 인수 이후에도 또다시 연패에 빠지며 강등권으로 추락하자 파듀 감독이 경질되었고[8] , 후임으로 前 찰튼 애슬레틱의 감독이었던 앨런 커비실리를 감독으로 선임하여 서로 감독을 맞바꾼 모양새가 되었다. 앨런 커비실리의 웨스트햄에서의 첫 경기는 12경기 무패로 선두를 달리고 있던 맨유와의 홈경기였는데 주장 레오 코커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기는 이변을 연출한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루카스 닐, 매튜 업슨, 루이스 보아모르테, 나이젤 콰시, 칼럼 데이븐포트 등 프리미어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고 애물단지 취급받던 마스체라노는 겨울이적시장에서 리버풀로 떠나보냈다. 그러나 첫끗발이 개끗발이라는 말처럼 이 승리를 마지막으로 이 팀이 도대체 어떻게 선두 맨유를 잡았나 의아스러울 정도인 11경기 연속 무승(3무8패)에 빠졌다. 승격팀 레딩 FC에 0-6으로 패, 전임 감독이 이끄는 강등권 동지 찰턴 애슬레틱엔 0-4로 패했다. 설상가상으로 선수단이 도박에 빠져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29라운드 토트넘 핫스퍼와의 홈경기에서 최악의 먹튀로 시즌 내내 득점이 하나도 없었던 테베스는 그제서야 프리킥으로 시즌 첫 마수걸이 골을 신고했다. 테베스는 데뷔골에 2개의 어시스트를 추가하였고 종료 직전까지 3-2로 이기면서 팀은 10경기만에 무승에서 탈출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추가시간에 베르바토프에 동점골을 허용한 후, 종료 직전에는 이영표의 태클로부터 시작된 역습에 의해 폴 스톨테리의 결승골로 역전을 허용해 3-4로 패배했다. 이날 경기결과로 웨스트 햄은 5승 5무 19패에 꼴찌로 추락하여 잔류권인 17위와 10점차로 벌어졌고(#), 기적이 일어나야만 잔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웨스트햄의 기적이 시작됐다. 블랙번 원정에서 2:1 승리를 거두며 시즌 첫 원정 승리를 거둔것을 시작으로 남은 9경기에서 7승 2패를 기록하여 기적적으로 강등권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 중에는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원정에서 보비 자모라의 결승골과 로버트 그린의 신들린 선방[9] 으로 아스날에 새 구장에서 첫 패배를 안기며 1:0 승리를 거둔 경기도 있었다.[10] 하이라이트는 최종전인데 웨스트햄은 승점 1점만 추가하면 자력으로 잔류를 확정짓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상대팀은 우승팀 맨유고 장소도 원정팀의 무덤이라는 올드 트래포드. 만일 웨스트 햄이 지고 위건 애슬레틱이 강등 라이벌인 셰필드 유나이티드에 승리하면 강등되는 상황. 웨스트 햄은 시종일관 홈팀인 맨유에 밀렸지만 베나윤의 육탄방어와 그린 골키퍼의 선방쇼, 전반 종료 직전 터진 테베스의 천금같은 결승골로 적지에서 맨유를 1-0으로 이기고 자력으로 프리미어 리그 잔류를 확정지었다. 테베스는 이날 결승골을 포함하여 마지막 10경기에서 7골을 득점하여 웨스트햄의 최악의 먹튀에서 강등에서 팀을 구해낸 영웅이 되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테베스는 최종전에서 자신의 골로 격침한 맨유로 이적했다.
가까스로 강등을 피한 웨스트햄은 베나윤, 테베스, 해어우드, 레오코커, 콘체스키가 떠난 가운데 융베리와 벨라미, 다이어, 포베르, 파커, 솔라노를 영입하였다. 그러나 주축 선수들이 대부분 부상 병동에 시달린 가운데 부상에서 돌아와 10골을 기록한 딘 애쉬튼과 전반기 페널티킥 선방 전문가였던 로버트 그린의 활약 덕분에 07-08 시즌은 10위로 안정적으로 중위권에 안착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 마그누손 회장이 공동주주 구드문드손에게 회장 자리를 넘겼으나, 앨런 커비쉴리는 구단의 선수 영입정책[11] 에 대한 불만으로 시즌 개막한지 3주만에 사임하였고, 설상가상으로 그해 불어닥친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아이슬란드가 경제난으로 국가파산 위기에 처하자 구드문드손 본인도 파산한 데다가 스폰서 모기업인 레저업체 XL의 파산으로 유니폼 앞면의 스폰서를 테이프로 가리고 출전하는 상황이 되었다. 커비쉴리의 후임은 첼시의 레전드인 지안프랑코 졸라. 졸라의 웨스트햄은 재정적인 어려움과 함께 전반기에 부침을 겪었고 애쉬튼도 개막전에서 2골을 넣은 뒤 부상으로 이탈했다.[12] 전반기에 그나마 팀을 이끌던 크레이그 벨라미는 겨울 이적시장에서 돈을 퍼붓던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다. 벨라미를 대신하여 이탈리아에서 데려온 19세의 사이보 은세레코는 제대로 망영입이 되었고 시즌 후 피오렌티나의 마누엘 다 코스타와 트레이드되었다. 다행히 칼튼 콜이 재능을 만개하며 10골로 팀내 최다 득점자가 되며 팀 공격을 이끌었고 후반기 성적이 나아지며 유로파 진출권인 7위 풀럼 FC에 승점 2점이 모자란 9위를 차지했다. 라리가 득점왕 출신 디에고 트리스탄이 단기계약을 맺고 빅리그에서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도 했다.
09-10 시즌 개막전에서 승격팀 울브스 원정에서 2:0 승리로 산뜻하게 출발했으나 끊임없는 부상병동과 칼링컵에서 만난 극악의 라이벌 밀월 FC와의 충돌로 어수선한 상황에서[13] 웨스트햄은 좀처럼 하위권에서 치고 올라가지 못하여 강등권을 전전하게 되었다. 수비의 핵이었던 제임스 콜린스가 빌라로 떠나고 주장이었던 루카스 닐이 재계약을 거부하고 에버튼으로 간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수비가 몹시 흔들렸다. 닐 대신 주장을 맡은 매튜 업슨이 고생했다.[14] 2010년 1월에는 전 버밍엄 구단주였던 데이비드 골드와 데이비드 설리번 공동 회장이 지분을 나누어가지며 매각에 성공했다. 그러나 재정 상태가 개선되었음에도 웨스트햄은 2월 버밍엄과 헐 시티에 2연승을 기록한 이후 6연패의 수렁에 빠졌고 막판 승점을 어느 정도 쌓으며 경기당 승점 1점도 안되는 35점이라는 적은 승점으로도 17위로 프리미어 리그에 간신히 잔류했다. 원정 승리는 개막전이었던 울브스전이 전부였다. 강등팀이었던 번리와 헐 시티, 그리고 재정문제로 승점 감점을 당한 포츠머스가 정말 심각할 정도로 못했기에 사실상 잔류당한거나 마찬가지였다. 2002-03 시즌 승점 42점이나 기록하고도 18위로 강등당한 것을 생각하면... 결국 최종전이 끝나고 이틀 후 지안프랑코 졸라는 경질당했다.
2.2. 2010-11 시즌
졸라 감독의 후임은 아브람 그랜트. 이스라엘에서야 유명한 축구 전문가이지만, 첼시 FC 감독으로 있을 당시 세계적으로 그다지 이름이 없는 터라, 말도 많았다..그래도 확실히 능력은 있어서 첼시를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올려 준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둠에도, 운나쁘게도 준우승 트레블(리그,FA컵,챔피언스리그)에 그쳐서인지 감독에서 잘렸다. 이후로 이스라엘에 안 가고 프리미어 리그로 남고 싶다고 뜻을 밝혔는데, 그 다음 감독이 된 포츠머스 FC가 강등권이었던 바람에 별다른 활약을 못했는데 다음 시즌 새로운 감독으로 온 이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도 리그 20위로 가장 먼저 강등되면서 2시즌 연속 강등팀 감독이 되어버렸다.
초반부터 빌라-맨유-첼시를 만나는 등 경기일정이 나빴고, 경기마다 3실점씩 하며 4연패를 당했다. 야심차게 데려온 독일 국가대표 출신 토마스 히츨스베르거는 개막하기 전부터 부상당하며 도움이 되지 않았다. 5라운드 스토크 원정에서 1:1로 비겨 첫 승점을 획득했다. 6라운드 토트넘과의 홈경기에서 1:0승리로 첫 승리를 신고했다. 그러나 토트넘과의 경기 이후 15라운드 위건과의 홈경기에서 3:1로 이기기 전까지 EPL 8경기에서 1승도 올리지 못했다. 19라운드 풀럼 원정에서 3:1로 이기고, 21라운드 울버햄튼에게 홈에서 2:0으로 이김으로써 순위는 16위로 상승, 시즌 처음으로 강등권을 탈출하며 상승세를 타는 듯 했지만, 뉴캐슬 원정에서 0:5로, 아스날과의 홈경기에서 0:3으로 대패를 당했다. 에버튼 원정에서는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하며 2:2로 비겼다.
겨울 이적 시장에서 강등권 탈출을 위해 뎀바 바와 로비 킨, 웨인 브리지, 게리 오닐을 영입하며 전력을 보강했다. 킨과 브리지는 임대 영입.
겨울 이적 시장 후 첫 경기인 블랙풀 원정에서 신입생 로비 킨의 데뷔골에 힘입어 3:1로 승리했다. 하지만 강등 경쟁팀 버밍엄과의 홈경기에서 0:1로 지면서 연승으로 나가지 못했다. 리버풀에서 잘린 후 WBA의 새 감독이 된 로이 호지슨 감독의 첫 경기였던 WBA 원정에서 전반전에만 3골을 허용하며 허무하게 지는 듯 했다. 하지만 신입생 뎀바 바의 동점골을 포함한 2골 활약으로 3:3으로 비기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리버풀과의 홈경기에서 스콧 파커와 뎀바 바, 칼튼 콜의 골을 묶어서 리버풀을 3:1로 잡는 이변을 연출했다. 리버풀은 달글리시 감독 이후 4연승을 달리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는 상황이라 타격이 컸다.
29라운드 스토크 시티와의 홈경기에서 3:0으로 이기며 2연승에 성공했다. 시즌 첫 연승과 더불어 17위로 순위 상승하며 강등권 탈출에 성공했다. 30라운드 어려운 토트넘 원정경기로 치러진 런던더비에서 로버트 그린의 활약으로 0:0 무승부를 거두는 데 성공했다. 더불어 4경기 연속 무패. 울버햄튼에 골득실 1점 앞서 순위는 여전히 17위 유지. 버밍엄에게 패한 것은 아쉽지만 겨울이적시장 이후 열린 6경기에서 3승2무1패를 거두며 상승세를 탔다.
31라운드 박지성의 부상 복귀전으로 관심을 모았던 맨유와의 홈경기에서 전반전 마크 노블의 페널티킥 2골로 먼저 2:0으로 앞서나갔다. 후반 중반까지 2:0을 유지하며 대어를 낚는 듯 했다. 그러나 후반 20분, 28분, 34분 웨인 루니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2:3으로 역전당했고, 후반 39분에는 치차리토에게 쐐기골까지 내주면서 2:4로 패했다. 이 역전패로 웨스트햄의 상승세가 꺾였고, 버밍엄이 볼튼에게 승리하면서 웨스트햄은 강등권 18위로 내려갔다.
32라운드 볼튼 원정경기에서 스터리지에게 2골, 이청용에게 1골을 허용하며 0:3으로 패하며 2연패를 당했고, 볼튼만 만나면 패하는 징크스를 이어나갔다.(2008년부터 볼튼에게 7연패)
33라운드 아스톤 빌라와의 홈경기에서 경기 시작 2분만에 로비 킨이 선제골을 터뜨렸지만 대런 벤트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종료 직전 추가시간에는 아그본라허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뼈아픈 역전패를 당하며 3연패를 당했다. 앞으로 2경기 일정이 첼시와 맨시티 원정경기임을 생각하면 꼭 이겼어야 하는 경기였다. 동시에 위건이 블랙풀을 이기면서 19위로 추락. 17위 위건과 승점 2점 차로 벌어졌다.
34라운드 첼시 원정에서 0:3으로 완패하며 4연패를 당했다. 이날 , 토레스의 첼시 이적 이후 무려 14경기 만에 첼시에서 데뷔골을 터뜨려 화제가 되었다. 울버햄튼이 풀럼과의 경기에서 승점 1점을 추가하며 웨스트햄은 꼴찌로 내려갔다. 17위 블랙풀과의 승점차는 2점. 아직 희망은 있는 상태.
35라운드 맨시티 원정에서 1:2로 아쉽게 패하며 5연패에 빠졌다. 17위 블랙풀이 무승부를 거두면서 잔류권과의 격차는 3점으로 벌어졌다. 그러나 남은 일정은 강등권 경쟁팀 블랙번과의 홈경기, 위건 원정, 중위권 선더랜드와의 홈경기. 3경기를 모두 이기면 기적같이 잔류했던 2006-07 시즌을 재현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36라운드 반드시 이겨야 했던 블랙번과의 홈경기에서 전반 12분 만에 로버츠에게 선취골을 허용하며 어려움에 빠졌다. 웨스트햄은 총공세를 펼쳤지만 후반 33분 히츨스페르거의 동점골로 1:1 무승부에 그쳤다. 이 경기 결과로 인해 웨스트햄의 EPL 잔류가 더더욱 어려워졌다. 울버햄튼이 하필 승리하면서 17위 울버햄튼과 승점 4점차로 벌어졌다. 남은 2경기에서 무조건 이기고 경쟁 팀의 결과를 살펴보아야 하는 상황.
36라운드까지의 순위, 승점은
15위 블랙번 39(-14) 16위 버밍엄 39(-18) 17위 울브스 37(-21) 18위 블랙풀 36(-22) 19위 위건 36(-23) 20위 웨스트햄 33(-23)
웨스트햄이 골득실에서는 그렇게 불리한 상황은 아니고, 37라운드에서 위건을 잡으면 위건을 골득실에서 역전하게 된다. 38라운드 블랙풀은 최종전에서 맨유 원정, 버밍엄은 토트넘 원정을 가야하고, 블랙번과 울브스는 최종전에서 만나야 하기 때문에 웨스트햄에게 기적의 불씨는 남아있는 상황이다.
위건 vs 웨스트햄 단두대 매치 직전 순위, 승점은
15위 블랙번 40(-14) 16위 울브스 40(-19) 17위 버밍엄 39(-18) 18위 블랙풀 39(-21) 19위 위건 36(-23) 20위 웨스트햄 33(-23)
37라운드 위건과 웨스트햄의 운명이 걸린 단두대 매치, 먼저 열린 경기에서 블랙번은 맨유와 무승부를 거뒀고, 울브스는 선더랜드 원정에서 승점 3점을 추가하며 웨스트햄은 두 팀을 역전할 수 없게 되었다. 블랙풀은 홈에서 볼튼을 4:3으로 이겼기 때문에 웨스트햄은 비기거나 지면 자동으로 강등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비기면 골득실에서 불리한 위건도 강등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자폭이다. 버밍엄이 홈경기에서 풀럼에게 1점을 추가해도 웨스트햄은 강등이다.
웨스트햄은 위건 원정경기에서 전반전에만 뎀바 바가 2골을 넣으며 기적이 현실화가 되는 듯 했다. 동시에 버밍엄 경기에서는 버밍엄이 풀럼의 한겔란드에게 2골을 허용하며 웨스트햄에게 유리한 상황이 벌어지는 듯 했다. 이대로 끝나면 웨스트햄이 일정상 굉장히 유리해져 기적같은 잔류 가능성이 높아진다.
17위 버밍엄 39(-20) 18위 블랙풀 39(-21) 19위 웨스트햄 36(-21) 20위 위건 36(-25)
최종전에서 버밍엄과 블랙풀은 최종전에서 각각 토트넘과 맨유 원정경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웨스트햄은 중위권 선더랜드와의 홈경기.
그러나...
후반 12분 은조그비아가 2:1 추격골을 넣더니 후반 23분에는 코너 새먼이 동점골을 넣어 2:2를 만들었다. 웨스트햄은 이렇게 되면 최종전 결과와 관계없이 강등되는 상황이고 위건은 골득실에서 불리하기 때문에 양팀 모두 무조건 1골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둘이 이렇게 자폭하는 듯 하다가 경기종료 직전 추가시간 은조그비아가 3:2 역전골을 넣으며 웨스트햄은 2010-11 EPL 꼴찌와 더불어 강등이 확정된다. 강등이 확정되자 웨스트 햄의 아브람 그랜트 감독은 경질되었다. 이날 웨스트햄의 라이벌 밀월 FC의 팬은 비행기를 통해 'Avram Grant - Millwall Legend' 문구를 DW 스타디움 상공에 띄웠다. 자세한 것은 아래 항목 참조
감독 없이 케빈 킨 임시감독 체제로 치러진 선더랜드와의 홈경기 최종전까지 무기력하게 0:3으로 패배하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한편 최종전 남겨둔 상황에서 시즌 쫑파티에서 팬들의 난동으로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하지만 칼링컵에서 맨유를 4-0으로 관광태우고 4강까지 진출하고, FA컵에서 8강까지 오르는 등 토너먼트에서 강한 면모를 여전히 과시한다.
2.3. 2011-12 시즌
강등 확정 후 그란트 감독을 경질하고 샘 알라다이스를 새로운 사령탑으로 임명했다.[15] 알라다이스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애제자인 뉴캐슬 주장 케빈 놀란을 영입해 새로운 주장으로 삼았다.
11-12 시즌 챔피언십에서 29라운드까지 1위를 달리고 있다.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56점으로 승승장구 중.리 타다나리가 뛰는 사우스햄튼이 2위로 추격 중. 이와 대조적으로 라이벌 밀월은 웨스트햄과 무려 27점(29라운드까지 승점 29점)이나 승점 차가 벌어져 21위에 머무르고 있기에 승격은 고사하고 3부리그인 리그1 강등권(22위까지 강등) 탈출에 신경을 쓰는 판국이다. 뭐 현재 분위기로 보면 승격 희망이 아주 밝아보인다.
그러나 이후론 조금 부진을 보이면서 39라운드에선 3위로 내려앉았다. 그래도 2위인 레딩과 승점차가 1점이라 승격이 바로 되는 2위 진입은 문제없어 보인다.(1위가 사우스햄튼) 하지만 승점을 좁히지 못하고 결국 44차전까지 80점에 머물며 3위로 승격이 아닌 플레이오프 경기를 치루게 되었다. 레딩이 45차전까지 89점으로 사실상 1,2위 상관없이 승격이 확정되었고 사우스햄튼이 44차전까지 85점인데 45차전 미들즈브러를 이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 블랙풀과 버밍엄 시티가 플레이오프행을 확정지은 터에 이들과도 경기를 치루게 된다. 플레이오프에서 우선 6위 카디프 시티를 상대로 2승(2:0,3:0)을 거두고 1승 1무를 거둔 블랙풀과 웸블리에서 최종전을 갖는다. 결국 5월 19일 최종전에서 2:1로 승리를 거두며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하게 되었다.[16]
2.4. 2012-13 시즌
'''프리미어 리그 순위: 10위(12승 10무 16패 45득점 53실점 승점 46점)'''
'''리그컵: 3라운드'''
'''FA컵: 3라운드'''
시즌을 앞두고 줄리앙 포베르, 욘 카레브, 압둘라예 파예, 파파 부바 디오프, 프랑크 누블이 방출되었다. 6년 간 주전 골키퍼로 활약했던 로버트 그린은 자유계약으로 QPR로 떠났다. 프레디 시어스와 마렉 스테치도 자유계약으로 떠났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 유시 야스켈라이넨(볼튼 원더러스), 모하메드 디아메(위건), 조지 맥카트니[17] (선덜랜드), 모디보 마이가(소쇼), 라파엘 슈피겔(그라스호퍼), 제임스 콜린스[18] (아스톤빌라), 알루 디아라(보르도), 맷 자비스(울버햄튼)이 영입되었다. 그리고 앤디 캐롤[19] 과 요시 베나윤을 리버풀과 첼시에서 임대영입했다.
프리미어 리그로 승격한 12-13 시즌 초반부에는 꽤 순조로운 상황으로 리그 10차전까지 4승 3무 3패로 9위를 유지하면서 중위권을 잘 지키고 있다. 그리고 10차전에선 전번 리그 우승팀인 맨시티와 0-0으로 비겼으며 15차전 안방경기에선 첼시 FC를 상대로 3-1 역전승[20] 을 거두며 8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후론 다소 고전하면서 9경기에서 1승에 그치며 24라운드 13라운드로 내려갔다.
최종 리그 순위는 10위. 승격팀 기준으로는 좋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캐피탈 원 컵에서는 3라운드 홈에서 위건에 1-4로 패하며 일찍 떨어졌다.
FA컵은 맨유를 만나 홈에서 친정팀에 돌아온 조 콜의 2어시로 2-1로 역전하여 종료 직전까지 이기고 있었지만 추가 시간에 반 페르시에게 동점 골을 허용했고, OT에서 열린 재경기에서 루니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3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웨스트햄 올해의 선수로 수비수 윈스턴 리드가 선정되었다.
2.5. 2013-14 시즌
'''프리미어 리그 순위: 13위(11승 7무 20패 40득점 51실점 승점 40점)'''
'''리그컵: 준결승'''
'''FA컵: 3라운드'''
13-14 시즌은 초반에 부진하여 14라운드까지 17위를 유지하고 있다.그나마도 강등권과 승점이 같은 상황이라 언제라도 추락할지 모른다. 11월 30일 풀럼을 3-0으로 이긴 걸 마지막으로 12월에는 2무 5패라는 부진한 성적을 거두며 2013년은 19위로 막을 내렸다. 아스날이나 맨유, 토트넘에게 진것은 그렇다쳐도 20위 선더랜드에게 안방에서 무재배, 한때 20위이던 크리스털 팰리스에게 원정 0-1 패배를 거둔게 타격이었다.
2014년 1월 5일 새해 시작하며 치룬 첫 경기인 FA컵 64강전에선 2부리그 팀인 노팅엄 포레스트에게 무려 0:5로 처발리는 수모를 겪으며 탈락했다. 게다가 8일에 열린 맨시티와의 풋볼 리그 컵 준결승전에서도 0:6으로 처발렸다. 21일 안방경기에선 7골차로 이겨야 하는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결국 2차전도 0:3으로 참패하면서 탈락.
그나마 1월 11일에 열린 리그 21차전에서 카디프 시티를 원정에서 2-0으로 이기면서 모처럼 17위로 올라섰지만, 이후 최악의 폼을 이어가던 뉴캐슬에게도 패하고, 맨시티에게는 당연히 지며 다시 강등권에 내몰렸다. 그러나 스탬포드 브리지 원정을 떠나서 첼시의 파상공세를 결사적으로 막아내며[21] 0-0 무승부를 따내며 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이후 2월의 4경기를 전승하면서 순식간에 강등권을 벗어났고, 그간 부진한 활약을 지적받던 케빈 놀란은 4경기에서 5골 1어시스트를 쓸어담았다. 그러나 3월 들어 다시 3연패를 기록하며 14위로 떨어졌는데, 그래도 2월의 승점벌이 덕에 아직 강등권과는 격차가 있다.
최종 순위는 13위.
2.6. 2014-15 시즌
'''프리미어 리그 순위: 12위(12승 11무 15패 44득점 47실점 승점 47점)'''
'''리그컵: 2라운드'''
'''FA컵: 5라운드(16강)'''
14-15 시즌 리그 25라운드 결과 10승 8무 7패 승점 38점으로 8위. 4강권을 넘보던 시즌 전반에 비하면 기세가 떨어졌으나 지난 시즌에 비하면 환골탈태 수준이다. 공수에서 균형있게 좋은 모습을 보인다는 게 큰 강점. 디아프라 사코, 에네르 발렌시아, 스튜어트 다우닝 등 공격진, 케빈 놀란, 알렉스 송의 중원, 애런 크레스웰이 맹활약하는 수비진, 거기에 골키퍼 아드리안 산 미겔까지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다. 35라운드까지 9위를 기록하면서 중위권으로 시즌을 마무리할 전망.
FA컵 3라운드에서 에버튼을 만나 재경기에 승부차기로 이어지는 접전 끝에 승리. 4라운드에서는 브리스톨시티에게 1-0 승리를 거두었으나 디아프라 사코의 출전 문제로 징계를 받았고 5라운드에서 웨스트브롬에게 4-0으로 지면서 탈락했다.
2016년까지 스폰서 계약했던 외환중개사 알파리가 2015년 1월 파산하는 바람에 새로운 스폰서를 찾아야 하게 되었다.
2014-15 시즌을 12위로 마친 후, 샘 알라다이스와 결별하고 슬라벤 빌리치를 감독으로 선임하였다. EPL이 14/15 시즌 페어플레이 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고 유로파리그 진출권을 이미 확보한 리버풀 다음으로 페어플레이 랭킹이 높아 2006-07 시즌 이후 9시즌 만에 유로파리그에 진출함으로써 유럽대항전에 복귀하였다. 단 1라운드부터 치르게 된다.
2.7. 2015-16 시즌
'''프리미어 리그 순위: 7위(16승14무8패 65득점 51실점)'''
'''리그컵: 3라운드'''
'''FA컵: 6라운드(8강)'''
'''유로파 리그: 예선 3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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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16-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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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2017-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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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2018-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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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2019-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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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 20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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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군 선수단
4. 영구결번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이었고, 웨스트햄에서 16년간 활약한 전설적인 수비수 바비 무어의 번호 6번이 영구결번되어 있다. 그리고, 2013년 4월 18일에 공격수 유망주였지만 고환암에 걸린 딜런 톰바이즈가 투병 끝에 단 2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구단에선 영구결번 처리를 결정. 크리스탈 팰리스와의 경기전에 추모 행사가 있었다.
5. 특징
5.1. 유소년 시스템
웨스트햄의 유소년 시스템은 탁월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리오 퍼디난드와 안톤 퍼디난드 형제, 존 테리, 프랭크 램파드, 저메인 데포, 조 콜, 마이클 캐릭 등등 잉글랜드를 책임지는 선수들을 많이 키워냈으며 원클럽맨인 마크 노블을 육성하는데 성공했다. 유망주의 대부분이 잉글랜드 선수라는 점에서 아스날과 대조적이다. 최근에는 대형 신인 데클란 라이스와 벤 존슨을 길러냈다. 하지만 마크 노블 이후에는 유망주들을 키워내면 웨스트햄에 오래 남아있지 않는지라 팬들은 아쉬워하고 있다.
5.2. 국내 인지도
국내에서의 인지도는 형편 없었으나 브라질 코린치안스의 아르헨티나 듀오 하비에르 마스체라노와 카를로스 테베스를 동시에 영입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이 이적은 피파 온라인1에도 반영되어 두명의 뛰어난 선수를 비교적 낮은 레벨의 팀에서 다룰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호응을 얻었고 국내 인지도 상승에 이바지했다. 하지만 두 선수를 잡아둘만큼 웨스트햄의 그릇은 크지 않았기에 마스체라노는 리버풀로, 테베스는 맨유로 가버렸다. 마스체라노는 아무것도 못하고 떠났지만 테베스는 그래도 막판에 부활해 팀의 잔류에 이바지했다.
한때 한국 축구선수 최용수 선수가 입단 성사 직전까지 갔으나 이적료 문제로 불발되었고 김남일 또한 입단 테스트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당시 김남일의 상태가 말이 아니라 입단 테스트에서 탈락하고 진출이 좌절됐다. 한때 한국 축구의 유망주였던 이산 선수가 뛰기도 했었고, 1군 계약까지 이뤄내긴 했었다. 다만 이산은 잉글랜드 4~5부 리그를 전전하다 2006년 그 전시즌 EPL 강등팀인 셰필드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으나 곧 방출되었고, 국내로 돌아온뒤 제주 유나이티드와 계약하였으나 주전을 먹는 데에 실패하며 조용히 은퇴하였고, 현재는 축구 기자로 근무하고 있다. 이산이 웨스트햄에서 뛰던 시절 한국 CF까지 출연해서 국내에서 인지도는 상당한 편. 이산이 뛸때는 조 콜이 뛰던 시절로, 영국생활이 힘든 이산에게 콜이 차로 태워다주거나, 밥을 사주거나 하면서 챙겨줬다는 일화가 있다. 그래서 그런건지 조 콜이 첼시 이적 후 연 파티에서 찍힌 사진에 이산의 모습이 보였다는 소리가 있다.
5.3. 밀월과의 라이벌 전
가장 큰 더비매치는 밀월과의 더비매치인데, 이 경우 경기 결과와 그 당시 팀 상황과는 관계없이 각 팀 팬들이 '''그냥 싸우는''' 더비 매치이다. 그냥 싸우다 모잘라서 벤치를 습격하기도 하고, 경기장에 난입해 잔디밭 위에서 싸우는 경우도 있다. 혹자는 동런던 더비매치(East London Derby) 라고도 하는데, 실제로 영국 정부와 FA마저도 이 두 팀간의 더비 매치는 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렇다고 심판을 조종한다거나, 조편성을 조작한다거나 하는 수준은 아니고, 친선경기를 사전에 하지 말라고 권고하거나(물론, 밀월과 웨스트햄이 친선경기할 일은 스페인에서 카스티야 대표와 카탈루냐 대표가 맞붙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일어날 일은 없다.[22] ) 같이 붙지 말라고 '''기도할 뿐'''이다.
과거 밀월과 웨스트햄 매치에서 하도 팬들이 싸우자 경찰이 다수 배치되었고, 이를 배경으로 1989년 더 펌과 [23] 2005년도에 영화 훌리건스(Green Street Hooligans)도 만들어졌다.[24] 열성 축구팬이라면 볼만한 영화. 밀월의 유니폼과 웨스트햄의 유니폼을 입은 팬들이 단체로 달려가는 모습을 슬로우로 보여준 장면은 명장면이다. 게다가 '''훌리건스의 단체 전투씬 촬영은 실제 웨스트햄과 밀월팬들의 싸움으로 촬영되었다.''' 이건 의도한 것은 아니고, 웨스트햄과 밀월팬들이 엑스트라 모집에 지원해서 촬영장에 알아서 유니폼을 입고 나와서 이루어 진 것이라 한다... 애초에 영화 자체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클럽마다 훌리건들은 그들의 단체명이 존재하는데, 웨스트햄 훌리건들은 ICF(인터 시티 펌)이었다. 웨스트 햄의 훌리건에 관심이 있다면, Cass나 Rise of the footsoldier와 같은 영화도 볼만하다.
하지만 최근 밀월이 성적이 안좋아 3부 리그로 떨어진 탓에 FA컵이나 칼링컵이 아닌 이상 만나기 힘들었었는데, '''09-10 칼링컵 2라운드에서 맞붙게 되었다'''. 덕분에 FA와 영국 치안부, 런던시는 초 비상. 경기가 열리는날, 경기장 주변과 경기장 내부의 다수의 경찰을 투입할 것이라고. 1차전때 싸움이 생기면 2차전엔 경찰특공대까지 투입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한다고. 경기는 초반 밀월이 1-0으로 주도했으나 후반 인저리 타임에 역전당해서, 결국 3-1로 밀월이 패하고 그리고...
'''웨스트햄의 홈 구장 업튼 파크는 인외마경으로 변해버렸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밀월팬들이 그전에 있었던 칼럼 데이븐포트 피습테러[25] 와 잭 콜린슨[26] 을 조롱하는 노래를 만들어서 불렀고, 이에 힘입어 밀월이 선제골을 기록했으나 역전골이 터지자 웨스트햄 홈 팬들이 떼거지로 피치에 침입해서 밀월 선수들을 조롱했다. 그리고 그에 맞서 밀월팬들도 피치 위로 난입했다. 그것도 웨스트햄의 역전골때 한번, 추가골때 또 한번 경기 끝나고 또 한번(...). 잭 콜린슨은 결국 경기가 끝난 후 울음을 터뜨리며 피치를 빠져나갔다. 이날 졸라 감독은 자신의 축구인생 사상 최악의 경기라고 말했다(...).
2010-11 시즌 웨스트햄의 강등 여부가 달린 위건 애슬레틱과의 경기에서 웨스트햄은 2-0으로 이기다가 2-3으로 역전패하며 강등이 확정되었고 밀월 팬들은 웨스트 햄 감독 아브람 그랜트를 조롱하며 밀월의 레전드라는 글귀를 비행기를 통해 경기장 상공에 띄운다.
[image]
웨스트햄의 2010-11 시즌 프리미어 리그 꼴지로 강등이 확정되고. 밀월은 챔피언십 잔류가 이미 확정되면서 그 지옥같은 매치가 2011-12 시즌 챔피언십에서 펼쳐지게 되었다. 다행히도 인명피해(...) 없이 두 경기를 치르고 웨스트햄이 프리미어 리그로 복귀하며 당분간 두 팀 사이의 헬게이트를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거기다가 밀월이 14-15 시즌 풋볼 리그 챔피언십에서 22위를 기록하며 풋볼 리그1으로 강등하면서 동런던 더비는 최소 2년은 기다려야 할듯.
이후 밀월이 챔피언십으로 복귀하긴 했으나, 웨스트햄이 안정적으로 프리미어 리그에 남아있는 상태라 컵대회에서 붙지 않는 이상 둘이 맞붙는걸 보기는 쉽지 않을 듯 했으나...
웨스트햄이 19-20 시즌 현재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밀월은 안정적으로 중상위권에 자리하고 있어, 다음시즌에 오랜만에 이 매치가 성사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즌을 16위로 마감하고, 밀월도 플레이오프권 진입에 실패하며 다시 기다려야 한다.
6. 이모저모
- 별명은 뉴캐슬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재활병동. 과거 경기중 싸움박질을 펼쳐 유명했던 리 보이어와 키어런 다이어가 이 팀에서 다시 만나기도 했으며, 케빈 놀란과 앤디 캐롤이 여기서 뛰었었다. 감독도 뉴캐슬 감독 출신(샘 앨러다이스).
- 런던 동부를 대표하는 클럽이라는 특성상, 강동구의 대장이라는 별명이 있다.#
- 07-08 시즌에는 수비진이 빈약하고 호흡이 맞지 않아 경기 시작 30분 전에 만난 사람들이 수비진을 보고 있다는 비아냥을 샀다. 정작 수비수들 개개인의 능력이 떨어지는 건 아닌데도 말이다.
- 해리 포터 시리즈에 짤막하게 등장하는데 (해리 포터의 룸메이트 중의 한 명인 딘 토마스가 웨스트 햄의 팬) 론 위즐리에게 멍청한 것들이라고 조롱당하며 포스터를 찢겼다.[27] 5권에서는 웨스트 햄 잠옷까지 나온다.
- 이 구단의 전설적인 에피소드 중 하나. 1994년 프리시즌에 열린 옥스퍼드 유나이티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있었던 일로, 계속해서 자신(과 팀 멤버들)을 욕하는 스티브 데이비스라는 팬에게 화가 난 해리 레드냅[28] 이 그를 스탠드에서 끌어내려 "니가 더 잘할 수 있으면 해봐라."라며 경기에 투입시켰는데 그는 거기서 골을 넣었다(...). 그래서 저 선수가 누구냐고 묻는 기자들에게는 불가리아 국가대표 출신 선수라고 구라를 쳤다(...)[29] 단 그 일에 대한 인터뷰를 보면 레드냅이 단지 화가 나서 그랬다기보다는 프리시즌이기도 했던 데다, 당시 상황이 레드 카드랑 부상이 다발한 상황이라 벤치에 여유 인원이 바닥나 있었다. 그래서 잠깐 고민하다 아까 전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관객이 생각나 그리로 가서 정말 더 잘 뛸 수 있냐고 묻고는 집어넣었다고 19년 후에 BBC에서 레드냅과 스티브 데이비스가 재회하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한편, 스티브 데이브스는 축구 좋아하는 영국인답게 여전히 웨스트 햄을 응원하고 있다고 한다.링크
- 2016년, 홈구장을 기존의 '볼레인 그라운드'에서 2012 런던 올림픽의 주경기장으로 사용되었던 런던 스타디움으로 옮겼다.
- 버락 후세인 오바마가 대선 경선 도중 웨스트 햄의 팬임을 밝힌 적이 있고, 상원의원 시절 홈구장에서 경기를 본 적도 있다고 하긴 했지만, 미국인 답게 딱히 축구에 열정적이지는 않은 모양.
- 아이언 메이든의 리더이자 베이시스트인 스티브 헤리스가 이 팀의 광팬이다. 실제로 유스팀에서 뛰었었고 베이스에 웨스트 햄 마크를 달고다닌다.
- 케이티 페리의 전 남편 러셀 브랜드가 이 팀의 팬이다. 러셀 브랜드는 영국의 노홍철같은 존재다. 더불어 대단한 바람둥이였다.[30] 브랜드도 축구를 좋아해서 노엘 갤러거와 둘이 라디오방송에서 축구 얘기한다.
- 홈경기장에서 경기가 끝나면 엄청난 수의 비누방울이 뿜어져 나온다. 공식 응원가 이름도 "I'm forever blowing bubbles". 서정적인 가사가 매력적인 노래이다. 리버풀의 "You'll Never Walk Alone"과 함께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응원가.
- 2016년 업튼 파크를 떠나 올림픽 주 경기장을 보수하여 임대해 사용하게 된다. 문제는, 이 경기장을 차지하기 위해 토트넘 등과 임대료 출혈경쟁을 벌여 승리했는데 막상 이기고 보니 경기장에 잔디 보호용 열선(윈터 브레이크 없이 추운 겨울에 경기가 벌어지기 때문에 EPL 규정 상 필수)이 안 깔려 있어서 웨스트 햄은 울며 겨자먹기로 추가로 200만 파운드를 더 들여야 했다고. (이것 때문에 영국 국회의원이 부실 설계 문제로 OPLC를 깠다.)
- 이외에도 피파 프로게이머인 "Dragonn" 션 앨런을 2016년 5월 6일에 영입했다.
- 백인인구가 많은 연고지를 가진 팀들이 대개 그렇지만, 영국에서는 서포터들의 인종차별 성향이 심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비백인인구가 많은 런던팀 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성향이기에 더 돋보이는 편. 아무래도 런던내에서도 백인이 주류인 이스트 런던이 연고지이기 때문인듯 하다. 현지에서 비백인도 많은 웨스트 런던연고팀들과 달리 해머스 및 이스트런던 연고 팀들 팬들은 대부분 백인이다.
- 프로레슬러 트리플 H도 이 팀의 팬이다.
7. 같이 보기
[1] 수용인원 35,016명의 불린 그라운드(업튼 파크)에서 2016년 이전.업튼 파크는 2017년 철거되어 사라졌다.[2] 참고로 앰블럼은 2015-16 시즌까지 쓰였다.[3] 이 경기는 웸블리 스타디움 개장 경기이기도 했다.[4] 그 이유는 웸블리에 약 20만 명이 들어차면서 백마 '빌리'를 탄 경찰관이 진입했기 때문이다.[5] FA컵 역사상 마지막 2부리그 이하 팀의 우승이다.[6] 파듀와 벵거의 신경전도 있었다.[7] 기존 5팀은 맨유, 첼시, 아스톤 빌라, 포츠머스, 풀럼.[8] 경질된지 2주도 안 되어 찰튼 애슬레틱으로 부임했다.[9] 스카이스포츠 평점 10점 만점을 받았다.[10] 여담으로 하이버리 시절 마지막 홈패배를 안긴 팀도 웨스트햄이다. 2006년 2월 3:2 승리[11] 조지 맥카트니와 안톤 퍼디난드를 상의 없이 선덜랜드에 이적시켜 불만이 있었다.[12] 결국 끊임없는 부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26세의 젊은 나이로 2009년 12월 은퇴를 선언했다.[13] 안전 관리에 대한 책임을 물어 11만5천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받았다.[14] 업슨은 시즌 후 2010 월드컵에 선발되어 독일전에서 득점하기도 했다.[15] 이후 그란트 감독은 이스라엘 구단들의 스카웃 제의를 거부하고 백수로 지내다가 2012년 1월 세르비아 FK 파르티잔의 감독이 되어 5월까지 리그 1위 및 FA컵 우승을 이루면서 리그 더블을 이뤄내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얻어내게 된다.[16] 라이벌 밀월은 39라운드에 19위로 올라오긴 했는데 강등권과 아직 5점 차에 지나지 않아서 불안했는데 막판 선전으로 45차전까지 17위로 2부리그 잔류에 성공했다.[17] 2008년 이후 4년 만에 복귀했다.[18] 2009년 이후 3년 만에 복귀했다.[19] 임대 후 완전영입 옵션[20] 2003년 5월 이후 첼시에 9년 6개월 만에 거둔 승리였다.[21] 주제 무리뉴 감독이 "19세기 축구팀"이라 비아냥거렸을 정도로 필사적인 전원수비를 펼쳤다. [22] 다만 절대로 친선경기할 것 같지 않은 팀들 간에도 친선경기가 벌어지는 경우가 없지는 않은데, 주로 프리 시즌에 초청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친선 대회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2014년 인터내셔널 챔피언스 컵 결승전은 리버풀 대 맨유의 경기였다. 다만 양 팀의 인지도에 정부의 권고까지 있는 상황에서 두 팀이 같은 친선대회에 초청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23] 영국 드라마계 나아가 영국 영화계에 큰 족적을 남긴 앨런 클라크가 감독을 맡았으며, 게리 올드만과 레슬리 맨빌이 출연한다.[24] 참고로 주인공이 일라이저 우드[25] 웨스트햄의 수비수로 여동생의 남자친구에게 피습을 당해 칼로 다섯번이나 축구선수의 생명인 다리를 찔렸다고 한다. 찌른 놈은 징역 6년 먹고[26] 경기 직전 친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었다.[27] 여담으로 론 역을 맡은 배우 루퍼트 그린트는 토트넘 핫스퍼의 팬이다. 웨스트 햄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 [28] 당시에는 수석코치를 맡고 있었다.[29] 이것도 사실은 좀 다르다. 본인에 따르면 'What? Haven't you been watching the World Cup? That's the great Bulgarian Tittyshev!'라 했다는데, 우리나라에 맞게 바꿔보면 요새 축구 안 보고 지냈나? 일본의 대선수 나카무라를 몰라?와 비슷한 뉘앙스이다. 누가 봐도 농담조이지 변명조는 아닌 것.[30] 섹스 중독증 증세가 있었다고 한다. 이후엔 초콜릿, 마약 등 중독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중독되었다.[31] 현재 영국 여왕도 해머스라는 썰도 있었는데 사실이 아니다. 엘리자베스 2세를 포함한 영국 왕실의 대부분은 아스날 FC의 팬이다.[32] 아스날이라는 단어 뜻이 대장간이어서 아스날 팬들은 대장간을 대표하는 대포인 거너스라고 불리듯이 웨스트햄은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팀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팀 애칭이 망치를 뜻하는 해머스이다. 이러다보니 웨스트햄 팬들은 망치를 구성하는 쇠인 아이언스라고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