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원더러스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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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턴 원더러스 FC'''[1]
'''Bolton Wanderers F.C.'''
'''정식 명칭'''
Bolton Wanderers Football Club
'''애칭'''
말들 (The Trotters), 원더러스 (The Wanderers), 화이트 (The Whites)
'''창단'''
1874년
'''소속 리그'''
EFL 리그 2 (EFL League 2)
'''연고지'''
노스웨스트 잉글랜드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 호리치 (Horwich)
'''홈구장'''
유니버시티 오브 볼튼 스타디움 (University of Bolton Stadium)[2]
28,723명 수용 가능
'''라이벌'''
프레스턴 노스 엔드 FC, 위건 애슬레틱 FC, 베리 FC, 블랙번 로버스, 번리 FC, 로치데일 AFC
'''소유주'''
Football Ventures (Whites) Ltd
'''회장'''
샤론 브리탠 (Sharon Brittan)
'''감독'''
이안 에버트 (Ian Evatt)
'''주장'''
제이슨 로우
'''역대 한국인 선수'''
'''이청용 (2009~2015)'''
'''공식 웹사이트'''

'''공식 한국 사이트 및 팬 카페'''

'''우승 기록 '''
'''EFL 챔피언십 (2부)'''
(3회)

1908-09, 1977-78, 1996-97
'''EFL 리그 1 (3부)'''
(1회)

1972-73
'''FA 컵'''
(4회)

1922-23, 1925-26, 1928-29, 1957-58
'''FA 커뮤니티 실드'''
(1회)

1958
'''클럽 기록 '''
'''최고 이적료 영입'''
요한 엘만데르 (Johan Elmander)
(2008년, From 툴루즈 FC, 820만 £)
'''최고 이적료 방출'''
니콜라 아넬카 (Nicolas Anelka)
(2008년, To 첼시 FC, 1500만 £)
'''최다 출장'''
에디 홉킨슨 (Eddie Hopkinson) - 578경기 (1952-1970)
'''최다 득점'''
냇 로프트하우스 (Nat Lofthouse) - 285골 (1946-1960)
'''프리미어 리그 득점왕'''
(5회)

알버트 셰퍼드 (1905-06)
조 스미스 (1920-21)
윌리 모이어 (1948-49)
냇 로프트하우스 (1955-56)
프랭크 워싱턴 (1978-79)
1. 개요
2. 상세
3. 역사
3.1. 2007년 이전
3.2. 2007-08 시즌
3.3. 2008-09 시즌
3.4. 2009-10 시즌
3.5. 2010-11 시즌
3.6. 2011-12 시즌
3.7. 2012-13 시즌
3.8. 2013-14 시즌
3.9. 2014-15 시즌
3.10. 2015-16 시즌
3.11. 2016-17 시즌
3.12. 2017-18 시즌
3.13. 2018-19 시즌
3.14. 2019-20 시즌
3.15. 2020-21 시즌
4. 기타
5. 선수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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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프로 축구단. 한국에서는 이청용이 뛰었던 구단으로 유명하다. 오랜 역사와 전통에도 불구하고 영광보다 수난사가 많아 상위권 리그와 하위권 리그를 오가는 날이 많은 곳이며, 2000년대 초반 강등권 언저리에서 맴돈 탓에 한국에서는 '''꼴튼'''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외축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막 태동하던 시기인 2003~2006년 동안에는 은퇴직전의 한물간 선수들을 긁어모으는 모습을 보여줘서 '''옹'''튼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2. 상세


리그 최고 성적은 1920년대에 거둔 3위. 그나마 FA컵은 4번 우승하고 3번 준우승한 경력이 있다. 가장 최근의 대회 우승 성적은 1958년 FA컵 우승, 풋볼 리그 컵인 칼링컵을 2004년 준우승한 적이 있다.(우승은 미들즈브러 FC.) 전통적으로 선굵은 잉글랜드식 킥 앤 러쉬 축구, 쉽게 말해 뻥축구를 선호하는 구단으로 경기를 보다보면 공이 땅에 있는 시간보다 공중에 떠있는 시간이 더 많은 듯한 착각이 든다. EPL에 대한 한국인들의 막연한 환상을 깨주는 구단이며 풀럼과 함께 잠 안 올 때 보기 딱 좋은 것이 볼턴의 경기. 빅 샘 감독 시절부터 약간의 다양성을 위해 창의적인 소수의 공격 자원을 배치하는 '우직한 열 명과 천재적인 한 명'의 축구를 추구해 왔으며, 프리미어 리그 시절 볼튼을 거친 테크니션으로는 니콜라 아넬카, 제이 제이 오코차, 유리 조르카에프, 게리 케이힐, 이청용 등이 있다.

3. 역사



3.1. 2007년 이전


1874년에 토마스 오그덴 교사가 '크리스트 처치 FC'를 창단한 게 기원이다. 1877년에 술집에서 팀명을 현 명칭으로 바꾸고 1881/82 시즌부터 FA컵에 참가하기 시작했으며, 1888/89 시즌부터 풋볼 리그 원년 멤버로 참가해 1892년 승강제 도입 후 1899년까지 7시즌동안 1부 리그에 머물렀고, 이후 1~2부 리그를 맴돌다가 1911년부터 1부로 돌아와 정착하기 시작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1919년 찰스 포어레이커 감독이 취임한 뒤 25년간 팀을 지휘하며 훗날 '화이트 호스 파이널'로 불릴 1923년 FA컵을 비롯해 1926, 1929년까지 3번 우승한 적이 있었고, 1933~35년까지 2부에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승격해 1964년까지 1부의 붙박이로 만드는 데 기여를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53포병연대로 자원입대한 주장 해리 고슬린이 전사하고 훈련시설이 폭격으로 파괴됐으며, 1946년 홈구장 번든 파크에서 열린 FA컵 vs. 스토크 시티 3차전에서 관중 대량난입으로 사상자 400여 명이 나오는 등 슬픈 일이 많았으나, 1944년에 부임한 월터 롤리 감독은 전쟁 후 1946년에 유소년 출신 냇 로프트하우스를 1군으로 합류시키면서 팀을 개혁시켰다. 1950년 빌 리딩 감독이 부임한 후 1952/53 시즌에 FA컵에 다시 진출해 결승전까지 가서 스탠리 매튜스가 이끄는 블랙풀과 맞붙어 '세기의 대결'을 만들어냈으나 4-3으로 졌고, 1958년 FA컵 결승전에선 뮌헨 참사로 주전 8명을 잃은 맨유를 만나 2-0으로 이겨 다시 트로피를 땄다.
1960년에 로프트하우스가 은퇴한 후 팀은 점차 부진하여 1963/64 시즌에 22팀 중 21위로 강등당해 상당 기간을 2~3부 리그에 머물러왔고, 1978년에 1부 리그로 오른 바 있었으나 1980년에 또 강등당해 1987/88 시즌에 4부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1985년 리버풀에서 온 필 닐이 감독직을 겸하며 팀을 잘 추스려 1988년에 3부로 다시 승격시켰고, 이후 감독직에 전념했다가 1992년에 밀월 감독이던 브루스 리오치가 지휘봉을 넘겨받아 스트라이커 존 맥긴리를 축으로 1993년에 디비전1(2부), 1995년에 프리미어 리그로 각각 승격시켰으나. 리오치 감독이 아스날로 떠나면서 부진한 모습을 보여 한 시즌만에 꼴찌로 강등당했다. 1996/97 시즌 때 디비전 1 우승으로 프리미어리그에 다시 승격한 후, 정든 번든 파크를 버리고 신축구장 리복 스타디움에서 다시 시작하려 했으나 18위로 아쉽게 강등당했다.
1999년에 사업가 필 가트사이드가 고든 하그리브스 회장으로부터 팀을 사서 구단주가 됐고, 친정팀 선수였던 샘 앨러다이스를 감독으로 불러 2000년에 월솔에서 영입한 공격수 마이클 리케츠의 활약으로 2001년에 프리미어리그로 다시 승격했다. 2002/03 시즌에는 노장 유리 조르카에프와 제이제이 오코차를 싼 값에 영입해 정규시즌에서 웨스트햄을 제치고 17위로 턱걸이를 했으며, 앨러다이스 시절에는 팀의 부족한 재정을 감안, 다른 팀에서 버림받은 선수들을 주로 영입하여 지략과 용병술로 커버해내 상위 리그에서 끈질기게 버텨왔다.
2003/04시즌부터 볼튼은 상위권에서 시즌을 보내기 시작했다. 2003/04 시즌 8위를 기록하며 두 시즌 연속 하위권에서 탈출했고, 리그컵에서 결승전에 진출하여 1958년 FA컵 우승 이후 46년 만의 메이저대회 우승에 도전했으나 미들즈브러에 2:1로 패하며 준우승했다. 2004-05 시즌은 6위로 마치며 UEFA컵에 진출했고 2005-06 시즌은 리그는 8위, UEFA컵에서는 해당 대회 우승팀인 세비야 FC와 비기는 등 1승3무로 조3위로 32강에 진출했다. 32강에서 올림피크 마르세유를 만나 1차전 홈에서 0-0으로 비기고 2차전 원정에서 선제골을 넣어 원정골을 기록했으나 프랑크 리베리에게 동점골, 탈 벤 하임의 자책골로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클럽 레코드로 니콜라 아넬카를 영입한 2006-07 시즌에는 2006년을 3위로 마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후반기에 아쉬운 성적으로 36라운드 기준으로 5위에 있는 상황에서 샘 앨러다이스가 돌연사퇴하고 수석코치인 새미 리가 감독이 된다. 새미 리는 잔여 경기를 1무1패로 마치며 7위로 간신히 UEFA컵 진출권을 지켜냈다.

3.2. 2007-08 시즌


빅 샘이 떠난 뒤부터 볼튼은 더 이상 중상위권에서 경쟁하지 못하게 되었다. 새미 리 감독의 본격적인 첫 시즌이었던 2007-08 시즌 초반 새미 리 감독은 리그 10경기에서 단 1승만을 기록한 채로 경질당했다. 후임으로 과거 WBA, 노팅엄 감독이었던 게리 멕슨을 선임했다. UEFA컵에선 2년 전과 마찬가지로 1승3무 조3위를 기록하며 팀을 32강에 진출했다. 이때 같은 조에 독일의 거함 바이에른 뮌헨이 있었는데 원정에서 무려 2대2로 비겨버렸다. 백업 골키퍼로 나온 알리 알 합시가 클로제와 토니를 앞세운 뮌헨의 공격을 막아내며 올리버 칸과의 대결에서 판정승을 거두기도.. 32강에서는 라리가의 강호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홈에서 1대0으로 무찌르며 홈어웨이 1:0으로 16강에 진출했다.[3] 16강에선 스포르팅 리스본을 상대하여 홈에서 1대1로 비기나 원정에서 1-0으로 아쉽게 패하며 더 이상 진출하지 못했다. 리그에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아넬카의 결승골로 깜짝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유럽대항전과의 병행 때문인지 체력 문제를 노출, 좀처럼 강등권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겨울이적시장에서는 전반기에만 리그에서 10골 이상을 득점하며 팀 공격을 사실상 홀로 이끌던 아넬카를 첼시 FC로 이적시키며 공격력에서의 약점을 노출하게 된다. 그래도 겨울이적시장에서 몇 년간 주축이 되는 매튜 테일러와 게리 케이힐을 영입하기도 했다. 33라운드까지 18위로 강등권에 있었으나 마지막 5경기에서 뒷심을 발휘, 3승2무를 기록하며 강등권 레딩에 승점 1점차 16위로 잔류에 성공했다.

3.3. 2008-09 시즌


프리시즌 때 빅 샘 시절의 멤버들인 이반 캄포와 지안나코풀로스, 엘 하지 디우프가 팀을 떠난 뒤, 지난 시즌에 강등된 버밍엄 시티로부터 파브리스 무암바와 함께 클럽 레코드를 들여 툴루즈의 공격수 요한 엘만데르를 영입했다. 개막전에서 승격팀 스토크 시티를 상대로 홈에서 스타인손의 마법같은 골과 엘만더의 데뷔전 골을 곁들여 3:1로 승리했다. 이후 9경기 1승으로 무난하게 하위권으로 내려갔다가 11월 들어 맨시티, 헐시티, 미들즈브러, 선덜랜드를 상대로 5경기 4승을 거두며 게리 멕슨 감독은 프리미어리그 11월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12월과 2009년 1월 첼시와 빌라, 리버풀, 아스날, 맨유 등 강팀들을 줄줄이 상대하며 7경기 6패를 당해 11월의 호성적을 까먹으며 위기에 몰렸다. 다행히 23라운드 빅 샘이 부임한 블랙번에 2-2 무승부를 거두고 24라운드 토트넘전에서 3-2 승리를 거두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겨울이적시장에서 팀의 주장인 케빈 놀란이 뉴캐슬로 떠나고 울버햄튼에서 마크 데이비스가 들어왔으며 케빈 데이비스가 주장이 되었다. 겨울이적시장이 닫힌 이후 볼튼은 웨스트햄과 뉴캐슬, 미들즈브러에 승리를 거두며 13위로 넉넉하게 잔류에 성공했다. 케빈 데이비스와 매튜 테일러는 각각 시즌 12골과 10골을 득점하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3.4. 2009-10 시즌


2009-10 시즌을 앞두고 FC 서울이청용을 영입하며 한국팬들에게 이름을 제대로 알리기 시작했다. 이청용과 함께 WBA의 수비수 폴 로빈슨, 헐 시티의 미드필더 샘 리케츠, 그리고 피파온라인2에서 떡대 수비수로 유명했던 빌라의 수비수 잿 나이트를 영입했다. 이적시장이 닫히기 전에는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공격수인 이반 클라스니치를 임대영입했다.
그러나 8월 경기 3경기에서 내리 패하며 암울하게 시즌을 시작했다. 개막전 선덜랜드와의 홈경기에서 이적생 대런 벤트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0:1로 지더니 지난시즌 후반기 급락으로 간신히 잔류했던 헐 시티를 상대로 원정에서 1:0으로 지고 말았다. 4라운드 리버풀[4]과의 홈경기는 두 번이나 리드를 잡고도 아쉽게 2:3으로 역전패하고 말았다. 이후 6경기에서 3승2무1패를 기록하며 어느 정도 반등에는 성공했다. 버밍엄 원정 경기에서 교체투입된 이청용이 결승골을 넣었으며 에버튼과의 홈경기는 이청용이 선제골을 기록하며 3:2 승리에 공헌했다. 하지만 에버튼전 승리 이후 첼시-빌라-블랙번과의 3경기에서 1득점 11실점이라는 답도없는 성적으로 3연패를 기록하며 강등권으로 추락, 게리 멕슨 감독에 대한 경질설이 커지기 시작했다. 승격팀 울브스에게도 졌다가 맨시티와 홈에서 3:3으로 비기고 강등권 웨스트햄을 상대로 이청용의 골로 3:1 승리를 거두며 경질설을 잠재우는듯 했다. 그러나 19라운드 승격팀이자 지역라이벌팀인 번리 FC 원정에서 가패당하다가 간신히 비긴 뒤, 20라운드 헐 시티에 홈에서 2:0으로 앞서다 어이없게 2:2로 비기며 멕슨을 경질하라는 항의 전화가 쇄도했고 결국 멕슨은 팬들의 성화에 못견디며 경질당하게 된다.
멕슨의 경질 이후 놀랍게도 승격팀 번리 FC를 잘 이끌고 있었던 오웬 코일을 새 감독으로 맞아들이게 된다. 번리를 오랜만에 승격시켜 좋은 성적을 내며 신으로 추앙받고 있었던 코일 감독은 한순간에 번리 팬들에게 유다로 전락했다. 코일 체제의 볼튼은 아스날과의 연전에서 패배했지만 첫 승리를 공교롭게도 코일 감독의 원소속팀이었던 번리를 상대로 이청용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며 따내게 된다. 이후 5경기 연속 무득점과 함께 2무3패로 다시 강등권이 되었지만 28라운드, 29라운드 강등권 경쟁팀인 울버햄튼과 웨스트햄과의 중요한 맞대결에서 이청용이 모두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연승을 거둬 강등권에서 벗어나게 된다. 14경기 무승을 기록중이었던 선덜랜드에 원정에서 4:0 대패를 당했지만 곧바로 위건을 상대로 홈에서 4:0 대승을 거두며 안정권에 들어선 듯 했다. 그러나 에버튼과 맨유, 빌라, 첼시 등 강팀들을 연이어 상대하여 무득점 4연패로 다시금 강등 위기를 겪게 된다. 4경기 남겨둔 상황에서 18위 번리와 불과 5점차.
반전은 다음 경기인 35라운드 스토크 시티 원정이었다. 홈깡패로 유명했던 스토크 원정에서 전반 13분에 허용한 킷슨의 선제골로 후반 40분까지 끌려가고 있었지만 후반 40분 이후에 나온 매튜 테일러의 극적인 2골로 2:1 역전승을 거두게 되고 번리와의 승점차를 8점으로 벌리며 잔류의 8부 능선을 넘게 되었다. 그리고 36라운드 강등이 확정된 최하위 포츠머스와의 홈경기에서 2:2 무승부를 기록하며 10년 연속 프리미어리그 잔류에 성공하게 된다. 최종전 버밍엄 시티에 홈에서 2:1 승리를 기록해 빌라와 함께 버밍엄을 상대로 더블을 기록한 유이한 팀이 되었고 리그를 14위로 마감했다.

3.5. 2010-11 시즌


그러나 2010/2011시즌 들어서는 작년부터 자신의 색을 입혀오던 오언 코일 감독의 각고의 노력으로 점점 롱볼에서 벗어나 이청용마틴 페트로프라는 테크닉을 갖춘 윙들이 양측면에 자리잡고 중앙의 데이비스가 이 둘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많이 나아진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여기에 그간 이청용의 패스를 많이 날려먹으며 한국 팬들도 속을 뒤집던 최전방의 요한 엘만더가 대오각성하면서 득점이 급상승하고 성적도 월등히 좋아지고 있는데 이를 주도하는 게 이청용이라는건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강팀을 만나도 잠그지않고 거칠고 강한 압박으로 맞상대를 하는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1월 7일 토트넘 핫스퍼와의 경기에서 토트넘을 4:2로 털어버리는 저력까지 보여주었다. 14라운드에서는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5-1로 털어버리고 '''단독 4위'''로 올라섰다.
볼턴의 이런 대활약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분석이 많은데 역시 리그가 14라운드까지 진행된 시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DTD 이론이 언젠가는 적용되지 않을까 여기는 게 대부분이다. 확실히 팀 컬러가 바뀌며 전력이 상승한 것은 분명하지만 두텁지 못한 스쿼드에 자금 사정도 안 좋은 볼턴이 리그 4위라는 성적을 볼턴이 계속 유지할 순 없을 거라는 의견. 결국 리그 15(무), 16(패) 라운드에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서 6위로 내려갔고, 이후 이청용이 출장하지 않은 마지막 경기인 첼시와의 경기에서 4:0으로 대패하는 등(이 스코어는 이 시즌 홈에서 당한 최다골차 패배였다.) 맥을 못 추고 10위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볼턴의 팀컬러가 바뀌며 강팀들을 물고 늘어지거나 털어버리는 경기들이 많아지고, 움직임 자체가 달라졌기에 일시적인 상승효과가 아니라 진짜 이 성적을 유지할 것이라 보는 사람들도 있다. 확실한 것은 작년의 강등권 걱정하던 팀에서 벗어나 최소한 리그 중위권, 혹은 중상위권의 실력을 갖춘 팀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 정도만 해도 1년만에 장족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이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는 데 걸리는 가장 큰 문제는 선수층이 얇다는 것. 이청용이 아시안컵에 차출되며 중도에 빠진 이후 이 공백을 제대로 메꾸지 못해 '''1무 4패'''의 처참한 성적을 남기고 5할 승률 유지에도 실패한 상황이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몇명 사오면 좋겠지만 구단이 재정이 넉넉한 편도 아니라서...
그래도 이청용의 복귀 이후 2011년 2월 23일까지 5경기에서 4승 1패라는 준수한 성적을 거두며 8위까지 올라왔다. 승률은 딱 5할. 리그 27 경기 9승 9무 9패라는 매우 균형잡힌(...) 경기를 하고 있다. 승점은 36점으로 6위인 리버풀 FC 와는 단 3점 차이. 리버풀 역시 감독이 바뀌며 상승세를 타고 있긴 하지만 충분히 따라잡을 가능성이 있는 점수이고, 볼턴 역시 상승세를 타고 있기 때문에 아직 모른다. 물론 워낙 중위권 싸움이 치열해 삐끗하면 주욱 미끄러질 수 있는 건 볼턴도 마찬가지.
2011년 3월 13일 기준으로 프리미어 리그 7위. 6위인 리버풀과의 승점차는 단 2점이다. 거기에 FA컵도 이청용의 결승골로 버밍엄 시티를 누르고 4강에 진출했다. 다음 상대가 상대적으로 만만한 스토크 시티라고 생각됐으나 정작 5:0으로 참혹하게 대패하면서 53년만의 FA컵 결승진출은 물거품이 되었다.
2011년 4월 25일에 대어 아스날 FC를 2:1로 낚으며 기사회생했으나 3일뒤에 풀럼 FC 원정에서 0:3으로 털리고 4일뒤에는 강등권에서 해메고 있는 블랙번 로버스에 0:1로 일격을 당했고 35라운드 선더랜드 AFC 전에서도 2:1로 역전패하면서 유로파 리그 진출이 좌절되었다. 그리고 남은 2경기도 블랙풀, 맨시티에게 패하며 지난 시즌과 같은 14위로 마감했다. 사실 볼턴같이 선수층이 얇은 팀으로서는 어쩔수 밖에 없지만. 리그 14위로 리그 잔류는 확실히 성공했지만 중상위팀에겐 순위에 따라 중계권비가 조금이라도 차이를 보이기에 그 점을 놓칠 수 없는 볼턴 사정을 생각하면 안타까울 법했다.

3.6. 2011-12 시즌


그런데 프리시즌 친선 경기에서 이청용이 5부리그 선수 톰 밀러[5]의 살인 태클로 정강이 뼈가 크게 박살나는 부상을 입고 시작하기도 전에 시즌 아웃이 되버리면서 팀에 비상이 걸렸다. 그래도 일단 리그 첫 경기인 퀸즈 파크 레인저스 원정에서 4:0 대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후 이어진 죽음의 일정[6]에서 내리 5연패를 기록하며 리그 최하위로 처지게 되었다. 승격팀인 노리치를 그것도 안방에서 잡지 못한것은 볼턴에겐 상당히 씁쓸한 일이었다. 이청용의 부상이탈이 더더욱 아쉬운 상황. 게다가 10월 2일 리그 상대가 바로 첼시 FC.
게다가 칼링컵 3차예선에서 아스톤 빌라 원정에서 모처럼 2:0으로 이기며 16강에 올랐으나 9월 25일에 있던 조추첨으로 뽑힌 16강전 상대는 또 아스날 FC.
결국 10월 2일 리그 7차전 첼시와의 대결에서 대형참사가 벌어졌다. 전반 초반에 4-0으로 점수차가 벌어지더니 결국 멘탈이 붕괴되며 OME 스러운 경기를 펼쳤다. 결국 경기 결과는 5-1. 볼턴 홈 관중들은 볼턴의 OME 스러운 경기를 보며 야유를 날렸으며 후반 중후반을 넘어서자 경기장을 나가는 관중들이 속출했다. 평소 터치라인 근처에서 소리를 치며 전술 지시를 하던 오언 코일도 이날 만은 고개를 숙인채 굳은 표정으로 일관했다. 결국 리그 최하위인 20위를 유지하며 위기는 계속 되고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청용, 페트로프, 홀든은 코일 감독의 전술의 핵심 선수였다. 그런 선수가 둘씩이나 빠져버렸으니...그리 넉넉하지 못한 볼턴 구단 입장에서 클래스있는 선수의 영입도 어려운 상황. 팀입장에서 볼때 치명타라고 할수 있다. 그리고 이는 리그 결과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상대팀들의 수준이 높다는 점도 고려되지 못할 수준은 아니나 지난 시즌 강팀들을 긴장시키던 패기를 생각해보면...
그나마 리그 8차전 위건 애슬레틱 원정에선 모처럼 3-1로 이기면서 18위로 일단 순위가 올라갔다. 다음 상대들이 선더랜드-스완지--스토크 시티-웨스트 브롬위치-애버튼 순으로 현재 중하위를 달리는 팀들이라 이 팀들과 경기 여하에 따라 순위가 크게 판가름이 된다.
결국 선더랜드에게 2-0, 스완지시티에게 3-1로 연패하면서 강등권에 빠지나 했더니만 스토크 시티를 안방에서 5:0으로 크게 뭉개며 리그 18위를 지키고 있다. 더불어 전번 FA컵 4강전에서 스토크 시티에게 당한 5:0 대패를 고스란히 설욕했다.하지만 이후로 연패 및 무승을 이어가며 결국 19라운드까지 20위 꼴찌인 채로 2011년을 마무리했다.
12월부터 첼시 등으로부터 관심을 받던 수비의 핵 게리 케이힐이 결국 2012년 1월경 첼시로 이적했다. 현 상황으로 보건대 이청용이 복귀하더라도 강등권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뭐, 챔피언십으로 떨어져도 대개 프리미어리그에 있던 팀들이 항상 상위권을 쳐서 다시 올라오는 일이 잦지만...
하지만 1월 22일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3:1로 이기는 저력을 보여주며 강등권 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로 또 연패 속에 33차전까지 19위로 추락하여 강등권 2순위가 되어가는 느낌을 주고 있다. 무암바 일로 FA컵 경기가 연기되면서 토트넘 핫스퍼와의 34차전 리그경기(안방)가 5월 1일로 연기되면서 리그를 4경기 남겨두고 있다. 그밖에 스토크 시티,선더랜드,웨스트 브롬위치와 같이 모두 리그 잔류에 성공한 팀들 여기에서 최소한 2승 이상 성적을 거두고 다른 팀들의 경기 여부에 따라 리그 잔류할 가능성이 남아있다. 하지만 연이은 패배로 강등권인 18위로 미끌어졌다. 남은 건 2경기인데 다음 경기인 웨스트 브롬위치 홈 경길 반드시 이겨야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37차전.자책골과 패널티골로 2:0으로 앞서가면서 17위로 올라서는가 했더니 후반 20분 정도를 남겨두고 2골을 실점하면서 2:2로 웨스트 브롬위치 경기를 끝냈다.그러나 웨스트 브롬위치를 이겼다고 해도 17위 퀸즈 파크가 막판에 스토크 시티를 1:0으로 이기면서 같은 37점 승점이지만 골득에서 앞섰기에 그대로 18위를 차지했을 것이다. 이제 마지막 38차전에서 볼턴이 스토크 시티 원정을 이기고 퀸즈파크가 맨시티 원정에서 져야지만 극적으로 승점 1점차 38점으로 17위로 강등을 면할 방법 밖에 없다. 아무래도 맨시티 원정을 퀸즈파크가 이기긴 어려워보이지만 볼턴도 스토크 시티 원정을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결국 마지막 38차전에서 스토크 시티의 월터스에게 1골을 먼저 허용했지만[7] 역전하여 이기는가 했더니 .... 후반 80분 들어 월터스에게 패널티를 허용하며 2:2로 경기를 끝내고 단 1점차로 퀸즈 파크 레인저스에게 밀려 11년만에 2부리그인 챔피언쉽으로 강등당했다. 스토크 시티만 이겼더라면 2점차로 17위를 차지했을테지만 다 물건너간 뒤였다.#
원래 영세구단인지라 2부리그로 강등되면서 수익이 반토막나자 비상이 걸렸다. 이미 재정적으로 1천억 이상 빚이 있던터에 강등으로 수익도 줄어들면서 2부리그에서 데리고 있을 여력이 안되자 팀내 최다골(8골)을 기록한 이반 클라스니치를 비롯하여 폴 로빈슨, 숀 데이비스, 로빈 블레이크, 리카르도 가드너, 마크 코놀리, 토프 오바데이, 라이스 베넷, 디노 파츨리치, 톰 에커슬리를 비롯한 11명 선수를 방출 및 복귀(임대해온 툰차이 산리, 보야타, 미야이치 료)로 내보냈다. 이 와중에 나이젤 리오 코커를 비롯한 몇몇 선수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팀을 떠났다. 그나마 나이가 30대 중반인 주장 케빈 데이비스는 '볼튼에서 1년 더'를 외치며 헌신을 약속했다. 그 여파인지 주력 미드필더 페트로프, 이글스, 이청용, 마크 데이비스 역시 잔류한 것은 구단 입장에서는 불행 중 다행.
2011~12시즌 토트넘 핫스퍼와 FA컵 8강전에선 미드필더 파브리스 무암바가 경기 도중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지는 바람에 1:1 상태에서 경기가 중단되었다.무암바는 이틀만에 의식을 되찾아 잉글랜드판 신영록이라고 국내에 보도되기도 했다. 여담인데 무암바가 의식을 되찾자마자 꺼낸 말은 "경기는? 우리팀은 어찌 되었나?"였다고. 대단한 프로 의식이 아닐 수 없다. 축구에 대한 크나큰 의지에도 불구하고 결국 무암바는 은퇴하였고, 이 또한 시즌 내내 얇은 선수층으로 고전하던 볼튼에게는 크나큰 불운이었다.

3.7. 2012-13 시즌


12-13 시즌 풋볼 리그 챔피언십에서도 고전 중이다. 리그 14차전까지 17위로 밀려나서 자칫하면 3부리그인 리그 1으로 추락할 수도 있는 분위기이다. 결국 오웬 코일 감독이 해임되고 더기 프리드먼이 감독으로 10월에 새로 들어왔지만 분위기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 21차전까지 순위는 18위라 승격은 힘들어 보이지만, 플레이오프 진출권인 6위와의 승점차이가 7점으로 아직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하지만 자동승격권인 2위와는 15점의 차이가 있어 자동 승격은 기적이 없다면 불가능에 가깝다. 24개팀중 20위까지 추락하며 3부리그 강등까지 떨어지는가 했더니 31차전에선 16위로 일단 한숨돌렸다. 그러나 강등권인 22위와 승점차가 겨우 4점이라서 마음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청용의 스토크 시티 이적설이 겨울에 불발되기도 했던지라 이청용의 팬들에게는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었는데... 33라운드에서 선두권 경쟁을 하던 헐 시티를 4-1로 박살내더니만 이후 5연승을 달리며 37라운드 현재 승점 54점으로 8위까지 올라섰다! 플레이오프 진출권인 6위 노팅엄 포레스트와는 불과 3점 차. 이청용은 13경기 연속 선발출장하고 있으며, 5연승 과정에서 4위 헐 시티전과 7위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전 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상승세에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후반기 챔피언쉽에서 가장 좋은 페이스를 보이는 팀인데다 강등시 전력누수가 크지 않다는 점에서, 플레이오프까지만 가면 정말 기적을 만들어낼지 모른다는 희망이 슬슬 피어오르고 있다.
그리고 42차전까지 리그 6위로 올라서며 플레이오프 진출 희망을 앞두고 있다. 아직 7위 노팅엄 포레스트와 같은 63점이라 남은 4경기 여부가 달려있지만. 그러나 마지막 46차전 블랙풀과 경기에서 2:2로 비기면서 7위로 밀려나 다음 시즌도 2부리그에서 계속 뛰게되었다. 마지막 46차전에서 비기더라도 7위이던 노팅엄과 8위 레스터가 비기면 볼턴이 6위를 지키게 되었지만 레스터 시티가 이기는 바람에 6위로 뛰어올랐기에(볼턴과 승점이 같아졌고 골득실에서 앞서서 극적으로 6위가 됨) 볼턴으로선 더더욱 안타깝게 되었다.

3.8. 2013-14 시즌


13-14 시즌은 21차전까지 리그 18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줄곧 하위권에서 벗어날 기미가 없어 승격 가능성은 포기하고 되려 3부리그인 리그 1 강등을 걱정해야 할 듯 싶었다가 후반부 들어서 조금은 상승세를 타면서 최종순위 14위를 기록하며 리그 1 강등위기는 벗어났다.

3.9. 2014-15 시즌


14-15 시즌도 강등위기에 처했다가 막판에 겨우 추스리면서 44차전까지 18위를 기록하여 강등위기를 벗어났다. 남은 2경기를 져도 강등권과 10점차 이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3.10. 2015-16 시즌


프리시즌 때 이청용이 1부의 크리스탈 팰리스로 떠나게 되었고, 또한 빚더미 때문에 파산 직전까지 놓인 상태였다. 게다가 17년간 회장 자리에 몸담아온 필 가트사이드가 2016년 2월 11일에 암 투병 중 사망하는 등 악재로 인해 22라운드까지 겨우 1승을 기록하며 1승 11무 10패, 승점 14점으로 24위 꼴찌를 기록하며 리그 1 강등권이다. 그나마 30 라운드 기준 강등권인 23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다 2016년 2월 22일 스포츠 쉴드 그룹이 £7.5m(약 131억)에 매입하면서 극적으로 파산을 모면했다. 헐값에 팔린 셈인데 사실 클럽이 지고 있는 부채(£172.9m, 약 3000억)를 모두 상환하는 조건이다. 회장에는 켄 앤더슨을 선임했다.
그러나 2016년 4월 9일 더비카운티와의 경기에서 1:4 로 패하고 로더럼 유나이티드가 밀튼 케인스 돈스 와의 경기에서 4:0 으로 이기면서 로더럼과 볼튼의 승점이 20점이상 차이가 나 풋볼 리그 1으로의 강등이 확정됐다.

3.11. 2016-17 시즌


5년간 브래드포드 시티를 지도하며 이변의 팀으로 키워낸 필 파킨슨 감독을 선임했다.
7라운드 기준 4승 3무로 리그 1 선두를 달리고 있다. 15라운드 기준으로는 8승 4무 3패로 리그 2위로 내려와 있다.
FA컵 64강전에서 이청용샘 앨러다이스감독의 현 소속팀 크리스탈 팰리스 FC와 대결한다. 홈페이지에는 이청용 관련 기사를 올리는중... 볼튼에서 열린 경기는 0-0으로 비겨서 런던에서 재경기를 가졌는데 2-1로 패하며 탈락했다. 이청용은 두 경기 모두 풀타임 출장하였다.
42라운드 기준 23승 10무 9패를 기록 2위를 유지하며 챔피언십 복귀 가능성이 높았다. 마지막까지 3위 플리트우드 타운의 추격을 받았지만, 시즌 최종전에서 피터보로를 3-0으로 꺾으며 승점 86점, 2위로 챔피언십으로 승격하였다. 최종전에서 경기 종료를 몇 초 남기고 관중들이 난입하는 바람에 몰수패로 승격이 좌절당할 뻔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

3.12. 2017-18 시즌


어렵게 챔피언십으로 승격했지만 초반부터 동네북이 되면서 도로 리그 1로 강등당할 것으로 보였다. 11라운드까지 진행하며 2무 9패라는 막장스러운 성적을 기록, 리그 꼴찌에 위치하고 있다. 9월동안 한 골도 넣지 못하다 10월 첫 경기인 12라운드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경기에서 1달여만에 골을 넣고 2대1로 시즌 첫승을 올렸다.
이렇듯 암울한 모습으로 일관하며 독보적인 꼴찌를 달렸으나 점차 조금씩 폼을 회복했고, 득점력 보강을 위해 볼턴을 챔피언십에 올려놓고 떠난 에이스 잭 클러프를 임대로 데려오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37라운드 기준 승점 36점으로 20위에 위치해있다. 다만 승점차가 강등권과 6점밖에 나지 않는 상황이라 안심하기에는 일러보인다.

그리고 45R 같은 강등전쟁중인 버튼 알비온에게 2대0으로 지면서 꼴찌 확정된 선더랜드의 바로 윗순위인 23위로 떨어졌다. 21위 반즐리, 22위 버튼과 2점 차이로 최종전에서 이겨도 자력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라운드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버튼 알비온과 반즐리가 지는 사이 볼튼은 노팅엄 포레스트에게 87 88분 극적인 동점골과 역전골을 작렬시키며 3-2로 이겨 극적으로 잔류에 성공했다. 최종 순위 21위.

3.13. 2018-19 시즌


18/19 시즌 챔피언쉽에서 강등되어 19/20 시즌부터는 3부 리그로 강등이 되었다. 임금체불, 파업, 몰수패사태등 경기 외적으로 시끄러웠던 시즌이었다.

3.14. 2019-20 시즌


챔피언십에서 벌어진 임금체불 문제로[8] 승점 12점을 삭감당한 채 시즌을 시작할 것이며, 팀에는 선수가 8명밖에 남아있지 않아 최악의 상황에는 구단 자체가 해체될 수도 있다. 그나마도 남아있던 8명 중 한명인 2001년생 유망주 루카 코넬이 스코틀랜드 셀틱 FC로 이적하게 됨에 따라 팀에는 7명의 선수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남은 7명 중 6명이 계약이 만료되었고 팀에 이적요청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선수단을 확보한건지[9] 현재 EFL 리그1과 카라바오 컵을 정상적으로 참여하고있다. 그런데 EFL컵 1라운드 로치데일에게 5:2로 지면서 탈락했다...
2라운드에서 스쿼드의 평균 나이가 18살이고, 16살 선수도 있는 볼튼 원더러스가 코벤트리를 상대로 0대0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역사적인 첫 승점을 따 내었다!! 이제 승점은 -11점이 되었다. 그러나 3라운드에서는 5:0으로 대패했고 이후 4라운드 경기는 결국 출전가능한 3명의 성인 선수들과[10] 유소년 선수들로만으로는 버티기 힘든건지 결국 스스로 무기한 연기를 선택했다. 다만 5라운드부터는 다시 정상적으로 진행할예정이다.
설상가상으로 8월 21일, 필 파킨슨 감독이 사임을 발표했다.
그리고 5라운드는 5:0으로 대패했다. 이후 EFL에서 현지시간 8월 27일 오후5시까지 매각 혹은 재정 확보 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을시 제명한다고 통보했다. 베리 만큼이나 상황이 좋지 않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8월 26일 인수가 무산되었다고 밝혔다. 이젠 베리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시간 8월 28일 오전 1시까지 새로운 인수자와 협상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공식적으로 구단 해체작업에 돌입한다....
마감 시간 직전에 극적으로 인수를 원하는 사람을 찾아서 현재 협상이 진행중이라고 한다.
이후 8월 27일 17시 예정된 데드라인이 지나고 14일간의 최종 인수 기간을 부여받았다. 따라서 현지시간 9월 12일 23시 59분까지 인수 과정을 마무리 해야한다. 이시간 이내에 인수에 실패시에는 베리 FC와 마찬가지로 리그에서 제명당하고, 5부리그로 강등당한다.
한국시간으로 8월 29일 새벽 2시에서 3시 사이에 볼튼 원더러스 공식협회에서 이전에 협상이 결렬되었던 풋볼 벤처스와 합의가 잘 되었고 인수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통보함으로써 볼턴은 계속해서 역사를 이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 [11] 이제 구단은 법정관리에서 벗어나 정상적으로 리그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이후 현지시간 8월 30일 16시 경에 팀을 떠났던 잭 호브스 (Jack Hobbs)와 다시 계약하는데 성공하였다. 구단측에서는 토요일 경기전에 4명을 더 영입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6라운드 경기 역시 0-5로 대패했고 이후 볼턴은 키스 힐 (Keith Hill) 감독을 새로운 정식감독으로 선임했다.
시간이 흘러 12라운드 브리스톨 로버스 전에서 대릴 머피와 루크 머피의 골로 2대0으로 승리하며, 시즌 첫 승을 거두었다. 이로서 1승 4무 7패로 승점 -5점. 확실히 선수들을 보강하고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그리고 플리트우드 타운과 MK 돈스에게 승리를 거두며 3연승으로 드디어 마이너스 승점을 탈출했다.
벤 애닉이 출전시간을 많이 부여받지 못하자 시즌 중 볼튼 원더러스와 상호 합의하에 계약을 해지하였다. 겨울이적시장 중 윌 버클리와 아담 칙슨이 자유계약선수로 방출되었다. 스토크시티에서 반시즌 임대로 와 엄청난 활약을 보여줬던 티보 벨린덴의 공백을 어떻게 매울지가 잔여시즌 볼튼의 순위 상승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에단 해밀튼과 아리스토트 은시알라를 각각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입스위치 타운에서 임대해왔다.
논리그 팀인 엔필드 타운과 롱리지 타운에서 무하마두 폴과 조지 토마슨을 영입하였다.
데니스 폴리티크가 볼튼과 재계약을 하였다.
방출되었던 윌 버클리를 재입단 시켰고, 유망주 코너 홀이 내셔널리그의 촐리로 잔여시즌 임대를 떠났다.
셰필드 유나이티드에서 센터백 킨 브라이언을 잔여시즌 임대 영입했다.
조던 분이 볼튼과 합의하에 상호해지를 하였고, 그후 그레이엄 포터 감독이 있었던 스웨덴의 외스테르순드로 이적했다.
최선을 다했지만 이미 무너진 팀을 되살리기에는 너무 늦어 있었고, 선수단도 약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결국 6월 9일. 코로나19로 인한 리그 조기종료와 함께 32년만의 4부리그 강등이 확정되었다.[12]

3.15. 2020-21 시즌


열심히 고군분투 했지만 결국 팀을 잔류시키지 못한 키스 힐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하였다.
새로운 감독으로, 논리그에서 배로 AFC 감독을 맡아 뛰어난 패싱축구를 구사하면서 배로셀로나라는 별명을 팀에 만들어준, 이언 에버트를 위약금을 주고 배로 AFC에서 데려와 선임하였다.
하지만 리그2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15위로 겨우 강등만 면한 수준이다. 게다가 코로나 사태로 예산부족까지 심각해지면서 세미프로로 떨어지지만 않겠다는 생각으로 버텨나가는 중이다.
그러나 후반기에 반등을 하면서 어느새 플레이오프권 근처까지 올라왔다.
32라운드 기준 승점 47점으로 리그 7위로 드디어 승격 플레이오프에 발을 디뎠다.

4. 기타


일본 축구 영웅인 나카타 히데토시가 마지막 선수 생활을 보냈던 팀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비스티 보이즈'라는 영화에서 하정우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볼튼 가는 비행기 좌석이 불편하기 때문에 이 팀과의 원정 경기는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포인트는, 맨체스터와 볼튼은 거리가 20킬로도 안 된다[13](...).
16-17 시즌 유스로 들어온 윌리엄 야스켈라이넨은 볼턴과 핀란드의 레전드 골키퍼 유시 야스켈라이넨의 아들이다. 포지션도 아버지와 똑같이 골키퍼.

대표적인 Vlog 유튜버로 '''Thogden'''이 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의 이름은 시오 옥든(Theo Ogden)이며 2001년생. 아버지 Thogdad과 함께 나온다. 2015-16 시즌 레스터 시티의 우승 확정 때 첼시의 홈구장에서 찍은 Vlog로 인터넷 스타가 되었다. 볼튼의 열혈팬이지만 런던에 거주하며 볼튼 경기 이외에도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나 기타 EPL 팀 또는 SPL 팀 직관 Vlog를 남기고 있으며 경기 전 예측 등 축구를 주제로 컨텐츠를 제작한다. 예를 들면 리버풀이 ~에게 왜 질 것인가 등등. 구독자는 20만 정도. 손흥민이나 황희찬 등 한국인이 활동하는 경기에서는 제목에 한국어를 달기도 했다.

5. 선수 명단


한 때는 11명조차 없었던 흑역사가 있었지만 현재는 많이 늘어난 상태다.

[1] /ˈbəʊltən ˈwɒndərəʳs/[2] 원래 이름은 리복 스타디움. 한때 유구한 역사를 지닌 스포츠 메이커 리복이 이곳 볼튼에서 태동한 지역 기업이기에 구단에 뿌리 깊은 스폰서쉽을 제공했었다. 그러나 리복이 이제는 피인수되어 아디다스의 서브 메이커가 된 탓에 2012-13 시즌부터 유니폼은 아디다스로 변경되었으나,2014-15 시즌부터 유니폼이 마크론으로 변경됨에 따라 구장 이름도 마크론 스타디움으로 변경되었다. 이후 2018년 마크론과의 네이밍 스폰서 계약이 만료되면서 유니버시티 오브 볼튼 스타디움으로 구장 이름이 변경되었다.[3] 이때 ATM의 신성 세르히오 아구에로는 퇴장당했다.[4] 지난시즌 준우승팀이었으나 알론소의 이적 때문인지 개막 후 3경기 1승2패로 흔들렸고 결국 7위로 마쳤다.[5] 당시 뉴포트 카운티 AFC소속.[6] 맨시티, 리버풀, 맨유, 노리치, 아스날 순서(...)[7] 애초에 골키퍼 보그단이 공을 잡았지만 월터스가 보그단을 밀면서 공을 놓치는 바람에 인정된 득점이였다. 그리고 애초에 주심이 크리스 포이였다.[8] 선수들 주급이 20주치가 밀려있다고 한다.[9] 유스팀의 선수들로 스쿼드를 채웠다 당시 참가명단(우측이 글씨가 나이)[10] 나머지는 부상이거나 팀을 떠났다.[11] 이에 대해 라이벌이자 볼턴과 달리 인수가 불발돼 프로리그에서 퇴출된 베리 FC 역시 축하의 메시지를 남겼다.[12] 사우스엔드보다는 잘했지만, 승점 삭감분을 돌려받는다고 쳐도 22위로 어차피 강등을 피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13] 애초의 볼튼의 행정구역이 '''그레이터 맨체스터''' 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