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경

 



'''유영경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에서


1. 개요


柳永慶, 1550년~1608년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탁소북의 영수.

2. 생애


임진왜란이 터질 때 황해도 순찰사가 되어서 황해도 해주에서 왜적을 물리쳤다. 이때 가족들은 모두 피난시켜서 주상에게 욕 좀 먹었다. 또, 정유재란이 터졌을 때 중책을 맡고도 가족부터 안전하게 빼돌리는 등 상당히 보신주의적 행태를 보여 처벌당하기도 했다. 그래도 왜적의 목 6급을 베어서 칭찬을 듣기도 했다. 게다가 줄을 잘 서서 왜란 이후 병조참판을 거쳐 대사헌,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쾌속 승진했으며 자신의 파벌을 형성해내갔다. 처음에는 동인이었으나 남북 분당 당시 북인으로 옮겼고, 북인이 다시 대소 분당을 하자 소북으로 갈아탔으며, 그 안에서도 불화가 빚어져 탁소북으로 옮겨가 영수가 되었다.
그러다 선조의 후계자 논의가 가속화되자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영창대군의 줄에 서서 그를 밀었으며 이를 이루기 위해 선조의 곁에서 갖은 언플을 시도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영창대군을 세자로 세울 생각까진 안 했던(자세한 건 영창대군 항목 참조) 선조는 광해군을 왕으로 삼으라는 교지를 내리고 승하했다. 어차피 살아남기 힘들다고 본 그는 일부러 자신의 집에 교지를 감춘 채 시간을 지연시키려고 필사적으로 농간을 부렸다. 그러나 인목왕후의 지원을 받은 광해군은 수순대로 즉위했고, 이내 대북이 유영경의 죄상을 짚으며 탄핵에 나섰다. 처음에는 광해군이 그를 두둔했지만(아마도 형식적이었겠지만), 차차 처벌 수위를 높여 영의정 자리에서 내쫓고 파직, 삭직을 거쳐 유배한 다음 자결 명령을 내렸다. 죽은 다음 시신마저 뒤에 도로 끄집어내어져 부관참시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후 인조가 즉위하고서 그의 신원을 복권했다. 허균 정도만 빼고[1] 대북에게 탄압받은 인물들은 이유 불문하고 죄다 복권시켜주긴 했지만(…).[2]

3. 대중매체에서


드라마 허준에 등장하는 정성필이란 인물이 아무래도 이 유영경을 모델로 한 듯하다. 배우는 박영지. 드라마에서도 선조가 승하할 때 어의 허준을 포섭해서 유언을 조작하려다가 실패한 이후 탄핵되고 유배를 거쳐 사형에 처해지는 인물.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초반에 조선 각지에서 올라온 유생들이 유영경은 사문난적으로 목을 치라한다.
[1] 허균은 당시 서인들조차도 잘근잘근 씹었다. 그래서 허균과 관련된 숨은 내막이 있을 것이라 믿는 이들이 많으며 이와 연관된 가상 역사 소설도 적지 않다.[2] 유영경의 복권에 대해서는 이유가 제시되었다. '그렇게 괜찮은 신하는 아니라서 관직까지 복권시키는 건 좀 후하긴 한데 너무 심하게 화를 입었으니까 불쌍해서 복권시켜 준다'는 내용이었는데, 유영경이 질 나쁜 신료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대북에게 피해를 입었답시고 복권시켜주는데 사소한 명분을 건 셈이었다. 대북파에 대한 인조와 서인들의 크나큰 반감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에 유영경같은 간신까지 신원해주는 부조리성을 드러내기도 하는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