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두서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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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대한민국 국보 제240호'''
'''윤두서 자화상'''
尹斗緖 自畵像


'''소재지'''
전라남도 해남군
'''분류'''
유물 / 일반회화 / 인물화 / 초상화
'''수량/면적'''
1폭
'''지정연도'''
1987년 12월 26일
'''제작시기'''
조선 숙종 36년(1710)
1. 개요
2. 본문
3. 기타
4. 바깥고리
5. 국보 제240호


1. 개요


조선후기의 선비 화가인 공재 윤두서[1]가 직접 그린 자화상. 국보 제240호로 지정되어 있다. 윤두서의 집안인 해남 윤씨의 종가인 녹우당에서 소장하고 있다.

2. 본문


윤두서가 숙종 36년인 1710년에 그린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상 조선시대에 그려진 자화상중 남은것 중에서 최고의 수작으로 꼽힌다. 강세황도 자화상을 그려서 전하지만 윤두서의 것과 비교하면 세밀한 묘사나 표현력에서 모자라다는게 중론이다.
날카로운 눈은 정면을 응시하면서 마치 자기 자신과 대결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굳게 다문 두툼한 입술에서 강인한 인상이 느껴진다. 얼굴의 수염 한올까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서 보는 이들을 압도시킨다. 일반적인 인물화들과는 달리 머리위의 탕건과 양 귀가 생략되어 있는걸로 보이고 독특한 그림이다.
현재로서는 얼굴밖에 보이지 않는 그림이라서 한때는 윤두서가 얼굴만 그리고 나머지를 그리지 않은 미완성 작이거나 파격적으로 얼굴만 그린 실험작이라는 추론이 많았으나, 일제 강점기때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사료집진속" 제3권에 윤두서 자화상의 옛 사진이 실려있는데 그 사진에 보면 상반신의 윤곽이 뚜렷한 걸로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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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최첨단 기기를 동원해 정밀 조사한 결과 상반신의 의복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게다가 생략된걸로 여겨진 귀도 붉은선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상반신 의복 윤곽이 보이지 않게 된데에는 후손들이 '''표구를 잘못해서''' 그렇다는 의견이 설득력이 높다. 1960년대에 말려져 있던 이 그림을 펴서 표구하는 과정에서 그림을 두꺼운 배지에 그냥 붙여버린 탓에 상반신의 의복 윤곽선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나 국보라서 함부로 손댈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다시 표구를 한다는건 불가능하고 사진들을 보면서 실물을 감상할 때 상상력으로 결합하는 수밖에는 없을 듯하다.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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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작 영화 관상(영화)에서 주인공 김내경의 포스터가 윤두서 자화상을 오마주한 것으로 보여 화제가 되었다.

4. 바깥고리



5. 국보 제240호


윤두서가 직접 그린 자신의 자화상으로 크기는 가로 20.5㎝, 세로 38.5㎝이다. 윤두서(1668∼1715)는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이자 정약용의 외증조로 조선 후기 문인이며 화가이다.

종이에 옅게 채색하여 그린 이 그림에서 윤두서는 윗부분을 생략한 탕건을 쓰고 눈은 마치 자신과 대결하듯 앞면을 보고 있으며 두툼한 입술에 수염은 터럭 한올한올까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화폭의 윗부분에 얼굴이 배치되었는데 아래 길게 늘어져 있는 수염이 얼굴을 위로 떠받치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자화상은 허목의『미수기언』이나 김시습의『매월당집』을 보면 고려시대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18세기에 들어서는 이강좌, 강세황의 작품들이 전해온다. 이런 자화상 가운데 윤두서의 자화상은 표현형식이나 기법에서 특이한 양식을 보이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1] 1668년 6월 28일(음력 5월 20일) ∼ 1715년 12월 21일(음력 11월 26일). 윤두수와 혼동하는 사람이 많은데 윤두서가 훨씬 후대 사람이다. 윤두서의 증조부가 바로 고산 윤선도이고 윤두서의 외증손자가 정약용. 정확히 윤선도의 다섯째 아들 덕렬(德烈)의 둘째 딸의 셋째 아들이 정약용이다. 그가 26살에 진사에 급제 했어도 숙종 시절 당시 집권한 세력이 세력인지라 윤두서의 벼슬 가능성은 희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