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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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윤승균(尹承均)
생년월일
1983년 1월 7일 (41세)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신일고등학교
홍익대학교
신체
184cm, 80kg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5년 두산 베어스 육성선수 입단
소속팀
두산 베어스 (2005~2008)
[1]
1. 개요
2. 선수 시절
3. 사건사고
3.1. 강간 사건
4. 기타


1. 개요


두산 베어스 소속의 외야수이자 '''강간범'''.

2. 선수 시절


2001년 현대 유니콘스의 2차 12순위 지명을 받은 후 홍익대학교에 진학했으나, 빠른 발 외에는 이렇다 할 장점이 없는 데다가 타격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결국 현대 유니콘스에서 지명권을 포기했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2005년 두산 베어스육성선수로 입단하여, 시즌 내내 1군에서 활동한다. 출장 경기수는 1군 116경기에 달했으면서 타수는 90타수밖에 안 된다. 한 마디로 대주자로밖에 쓰이지 않았고, 그나마 몇 번 나온 타석에서도 삽질만 열심히 한 셈. 하지만 도루와 베이스 러닝 능력만은 정상급 기량을 뽐내면서 39도루를 기록, 박용택과 도루왕 경쟁을 했다.
당시 김경문 감독은 그의 빠른 발에 만족하고 타격을 올려 당시 정수근의 FA 이적, 그리고 병풍과 세대교체 실패 등으로 황폐화된 두산의 새로운 중심 외야수로 쓸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3. 사건사고



3.1. 강간 사건


2005년 12월,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성을 집에 데려다 주겠다며 자신의 차에 태운 후 강간하는 초대형 사건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그는 법정에 서게 됐고, 두산 베어스에서는 2006년 5월 8일 1차로 윤승균을 1차로 임의탈퇴 공시하였다. 그것으로 1군 커리어는 끝.
이 사건으로 서울서부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성폭력 치료교육 40시간 이수의 처벌을 받았다.[2] 2007년 5월에 임의탈퇴가 해제된 후 지속적으로 복귀를 시도하였지만, 그 때마다 두산 베어스 팬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 와중에도 1군에 잠시 등록된 적은 있지만 뛰지는 못했다. 두산 구단은 그를 계속 비호했지만,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2군 도루왕만 뜬금없이 따먹고 2008년 11월 30일 보류선수 명단 공시일에 그를 2차로 임의탈퇴 공시해 버렸다.
2010년 말 두산 베어스에서 임의탈퇴가 해제되자 2011년 초 KIA 타이거즈에 입단 테스트 요청을 하였고, KIA 2군에 합류하여 훈련하였다. 마찬가지로 발빠른 외야수 자원이 크게 부족했던 KIA의 사정상 입단 테스트에 합격하여 입단을 눈앞에 뒀으나, 윤승균의 과거를 귀신같이 알아낸 KIA 팬들의 영입 반대 릴레이 끝에 구단에서도 입단 직전에 입단을 승인하지 않기로 하면서 결국 그의 선수 복귀는 완전히 좌절됐다.[3]# ##[4]

4. 기타


윤상균과 헷갈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윤상균은 2012년에 윤요섭으로 개명했다.
윤동균 전 감독과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5]
여담이지만 마구마구 2014에서는 가명으로 처리되어 있지만, 컴투스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는 윤승균 실명 그대로 나왔다.

[1] 입단 테스트 합격 후 2군 선수단 훈련에 합류 했으나, 정식입단 불발. # [2] 그러나 KBO에서는 아무런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3] 대한민국의, 아니 세계 공통으로 성범죄자는 정서상 거의 '''영구 매장'''이다. [4] 비슷한 케이스로 라미고 몽키스의 궈시우옌이라는 사례가 있다. 이 선수는 실업야구를 뛰다가 야구를 그만두고 일반인으로 살아가던 중 뒤늦게 야구에 대한 열정이 생겨서 28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드래프트에 지명돼서 첫 해에 신인왕을 수상한 사연을 가진 선수였다. 그러나 데뷔 첫 해가 커리어하이였고 그 후에는 대타로 간간이 나오면서 추락하다가 2017년 시즌 직전에 술에 취해 여성을 강간하는 바람에 체포되고 구단에서도 방출해 버렸다.[5] 이 사람도 두산(당시에는 OB)에게는 항명사건 때문에 흑역사이긴 하지만 '''윤승균보다는 양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