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택

 


'''박용택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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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택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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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s-2 MVP'''
박재형
(배재고등학교)

'''박용택
(휘문고등학교)'''

김민규
(북일고등학교)







'''KBO 포스트시즌'''
'''2002 플레이오프 MVP'''


'''2009 KBO 리그 타격왕'''


'''2005 KBO 리그 득점왕'''


'''2005 KBO 리그 도루왕'''


'''2013 KBO 리그 페어플레이상'''


'''2004 KBO 올스타전 홈런레이스 우승자'''

보유 기록
7년 연속 150안타
2012년~2018년
통산 최다 안타
2,504안타
10년 연속 3할 타율
2009년~2018년
통산 최다 경기 출장
2,224경기


'''박용택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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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등번호 33번'''
홍현우(2001)

'''박용택(2002~2020)'''

결번


<color=#373a3c> '''성구회'''
<rowcolor=#373a3c> '''회원번호'''
'''기록'''
'''가입년도'''
'''비고'''
'''11'''
'''2,504안타'''
'''2016년'''
-

<colbgcolor=#0066b3><colcolor=#ffffff> '''KBS / KBS N SPORTS 해설위원'''
'''박용택
(朴龍澤 / Yong-Taik Park)
'''
'''생년월일'''
1979년 4월 21일 (45세)
'''출신지'''
[image] 서울특별시 강동구
'''국적'''
[image] 대한민국
'''학력'''
고명초 - 휘문중 - 휘문고[1] - 고려대[2]
'''신체'''
185cm, 90kg[3]
'''포지션'''
'''좌익수''', '''지명타자''', 중견수, 우익수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8년 고졸우선지명 (LG)
'''소속팀'''
[image] [image] [image] '''LG 트윈스 (2002~2020)'''
'''등장곡'''
김범수 - 나타나[4][5][6]
'''해설위원'''
KBS N SPORTS 해설위원 (2021~)
'''응원가'''
아리랑 목동(2002~2008) #[7][8]
'''박정아 - New Ways Always (2009~2017)#'''[9][10][11]
구단 자작곡 (2018~2019) #[12][13]
홍경민 - 자작곡 (2020) #[14][15]
'''가족'''
부모님[16], 여동생 박혜진(1980년생), 아내 한진영(1979년생), 딸 박솔비(2007년생)
'''종교'''
무종교[17]
'''별명'''
'''너무 많아서 문서 참조'''
'''병역'''
면제[18]
'''에이전트'''
[19]
1. 개요
3. 플레이 스타일
3.1. 타격
3.2. 수비
3.3. 주루
5. 해설위원 시절
6. 흑역사
6.1. 2002년 손가락 부상 사고
7. 사건사고/논란
7.1. 2009년 수위타자 논란
7.2. 2011년 청문회 사건
7.3. FA 계약 논란
8. 팬 서비스
9. 기타
10. 연도별 주요 성적
10.1. 2,500안타 달성
10.2. 그 외 주요 기록

[clearfix]

1. 개요


[image]
'''NO.33 LG의 심장'''
LG 트윈스의 前 야구선수. KBO 최다안타 기록을 보유한 LG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한때는 LG팬들의 애증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이후 성숙한 모습을 보이며 2000~2010년대 LG의 상징이자 혼으로 여겨졌다.
데뷔 때부터 주로 좌익수로 출전하였고, 입단 직후 당한 어깨 부상으로 송구에 약점을 보였다. 이후 2010년 LG 외야 빅5가 구성되자 주로 지명타자로 출전하였고, 2011년도 역시 지명타자로 출전이 예정되어 시즌 전 장타자 변신을 선언하며 체력단련에 매진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시적인 성과는 거두지 못하며 시즌 후 외야로 돌아가게 된다. 이후 12시즌부터 15시즌까지 중견수좌익수로 출전하다가 16시즌부터 지명타자 전업한다. 입단 당시 LG 감독이었던 김성근이 박용택에게 외야에서 하루에 공을 500개 이상 던지게 하는 가혹한 훈련을 시켰고, 그 여파로 어깨가 망가져 공격은 좋으나 수비에서는 줄곧 부진을 나타냈다.
공식 별명은 구단에서 응모전을 통해 붙여 준 '''쿨가이'''와 지하철 광고로 인한 '''메트로박'''이였으나 2009년 수위타자 관련 사건과 더불어 별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버렸으며 현재도 '''김태균'''에 이은 KBO 별명계의 독보적 아이콘 중 하나이다. 자세한 사항은 '''박용택/별명''' 참조.
이래저래 팀의 암흑기동안 여러차례 산전수전을 겪었음에도[20], 그 와중에도 20년 가까이 팀을 꿋꿋하게 지탱해 준 LG 트윈스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다. 데뷔 첫해인 2002년 LG의 마지막 포스트 시즌에서 2013년까지 무려 10년이 넘게 계속된 하위권과 포스트시즌 복귀 등을 전부 겪은 다사다난한 21세기 LG 트윈스 20년 역사의 산증인. 같은 시기에 팀의 간판이었던 선배 이병규도 잠시 일본에 진출한 적이 있지만, 박용택은 한번도 팀을 떠나지 않았다. 거기에 박용택은 팀이 하위권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에 팬과 구단에서 가치를 저평가받았고, 주장으로서 청문회를 겪는 수모도 참아야 했다.
2020년대 들어 '''KBO 리그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출장한 선수이자 사상 첫 개인 통산 2,500안타 달성자'''이다.[21]
그럼에도 선수 생활 끝까지 팀이 우승을 한 적이 없었다. KBO 리그에서 '''유일하게 2000안타 이상을 친 타자 중 프로야구 우승 기록이 없다.''' 2000안타 클럽 중 박용택을 제외하고, 양준혁부터 가장 적은 안타를 친 전준호까지 모두 우승기록이 있으며, 똑같이 KBO리그 우승 기록이 없는 박용택과 함께 LG의 프랜차이즈 타자인 이병규지바 롯데 마린스에 갔다온 김태균NPB 우승 기록이 있다.[22]


2. 선수 경력



'''박용택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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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플레이 스타일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는 말이 있는데, 지금까지 야구를 하고 있는 박용택이 결국 가장 강한 자다."'''

안치용KBS N SPORTS 해설위원[23]

2010년대 후반 들어 '''KBO 최다 안타''' 등 기록 중심으로 평가 받고 있어 박한이장원준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꾸준한 선수"'''라는 인식이 있다. 하지만 커리어 로우 시즌인 2008년을 제외하고 '''박용택의 커리어는 충분히 화려하다.''' 당장 상술했듯 데뷔 시즌부터 플레이오프 MVP를 수상하고, 데뷔 4년차인 2005년엔 도루왕과 득점왕을 동시에 수상하고, 2009년엔 타격왕도 돼보고 3할 시즌이 12번[24]이고 타격 순위권에도 4번이나 들어봤다. 다만 이승엽, 이대호처럼 타 팀 간판 타자들의 커리어 하이 시즌에 비해 활약이 한끗 모자라긴 하다. 일단 본인이 홈런 타자도 아니고...
물론 선수로서 꾸준함은 엄청난 강점이다. 그 덕에 데뷔시즌부터 지금까지 팀을 대표하는 간판타자이자 강타자로 활약하였고. 다만 MVP에 가깝게 가 본 적이 없다는 것이 마이너스. LG에서 영구결번이 거론되고, 실제로 되었던 선수 중에서 김용수와 이병규는 MVP 근처까지 가본 경험이 있는 선수라는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아쉬운 점.[25]

3.1. 타격


공격에서는 한 시즌 150안타 언저리와 두 자릿수 홈런, 3할 타율은 보장해줄 수 있는 선수. 호타준족 좌타자라 볼 수도 있겠지만 정작 호타준족의 상징인 20-20 클럽에는 한 번도 가입한 적이 없다. '''통산 홈런이 213개, 통산 도루가 313개가 넘는 선수'''인 것을 생각해 보면 굉장히 의외이다.[26] 그나마 아까웠던 시즌이 홈런 18개, 도루 22개를 기록했던 2009시즌이다.
한 시즌 20홈런을 넘겨본 적은 없지만 대신 2루타 개수가 수준급이다. 어느 정도냐면 '''통산 2루타 개수가 441개'''로 그 위로는 '''이승엽(464개)''', '''양준혁(458개)''' 밖에 없다.[27] 즉, 두 자릿수 홈런과 수준급 개수의 2루타를 동시에 기록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중거리 타자. 게다가 전성기 시절에는 100m 달리기를 11초 20에 주파할 정도로 주력도 빠르고, 주루 센스도 뛰어나서 도루도 두 자릿수를 기록할 수 있는 타자였다. 이 덕분에 타순에서 테이블 세터클린업 트리오를 유동적으로 이동하였다. 다만, 주루 능력이 감소한 2016시즌부터는 거의 3번 타자로 나섰다. 박용택이 테이블 세터로서의 능력을 상실하자 LG는 이천웅홍창기의 등장 이전까지 김용의[28] 안익훈 같이 리그 평균 이하의 타자로 테이블 세터를 구성했을 정도니 박용택이 LG의 공격력에서 얼마나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는지는 설명이 필요없다.
안타와 2루타의 개수는 엄청나게 많고,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음에도 통산 200개 이상의 홈런을 쳤지만 정작 단일 시즌 기준으로 100타점 이상을 올린 적이 없다. 이는 위에 설명했던 것처럼 타순 배치와도 연관이 있다. 박용택이 주로 맡았던 타순은 1~3번이었다. 특히 테이블 세터는 출루를 먼저 해서 뒤에 나오는 클린업 트리오가 많은 타점을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된 역할이다. 설령 홈런을 친다고 하더라도 주자가 없는 선두타자 상황에서 치는 것이 많기 때문에[29] 타점이 적을 수밖에 없다. 3번에 배치되더라도 시즌을 치르다 테이블세터에 문제가 생기면 곧잘 박용택이 리드오프로 나서곤 했다. 무리하게 테이블 세터에 배치되면 아예 홈런 생산성과 장타를 잃어버리게 되는 선수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론 박한이가 있다
LG 공격력에서 박용택의 영향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가 바로 2017시즌. 이 해에 박용택은 39살의 고령인지라 사실상 풀타임 지명타자로 뛰었는데[30] '''WAR 3.73''', '''wRC+ 140.7'''이라는 성적을 올렸다. 무려 팀내 3위이자[31] 야수 중에서는 군계일학. 그 다음으로 WAR이 높은 야수가 유강남이었는데 2.60으로 박용택과는 현저히 차이났다. 거기에 포수지명타자의 수비기여도 차이까지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괜히 '''"LG의 심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게 아니다.
박용택의 성적을 논하는 데 타격폼이 빠질 수 없다. 본디 신인 시절에는 레그킥을 크게 하는 타격폼을 구사했지만 로베르토 페타지니에게 타격폼을 전수 받은 이후 레그킥을 일절 하지 않는 타격폼으로 바뀌었다. 테이크백을 할 때에도 오른쪽 어깨가 움직임이 크지 않은 것도 특징. 그래서 박용택이 안타를 치는 장면을 보면 소위 '받혀놓고 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 타격폼 역시 상황에 따라 변화를 가져가는 것으로 호성적을 올리고 있다. 좌투수나 기교파 투수를 상대할 때, 카운트가 불리할 때에는 컨택 위주의 타격을 가져간다. 정확하게 공을 맞추기 위해서 스탠스를 넓게 해 다리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그러다보니 테이크백 역시 크지 않다. 스윙이 크지 않다보니 공을 볼 시간이 늘어 다양한 구종에 대처할 수가 있다고 한다. 이 덕인지 딱히 좌투수에게 약하지는 않다.
우완 정통파나 파이어볼러 투수들에게는 다르게 대처한다. 다양한 변화구에 대응할 필요가 없으니 게스 히팅에 주력한다고. 스탠스는 편하게, 다만 오른발을 살짝 뒤로 당겼다가 앞으로 갖다 놓으며 큰 스윙으로 일관한다. 힘에는 힘으로 대항한다는 원리라고. 이 덕에 장타는 많이 나오지만 삼진도 통산 3위(1392개)에 들 정도로 삼진이 적은 타자는 아니다.[32][33]
또 다른 단점으로는 상당한 준족임에도 뭔가 안 어울리는 엄청난 병살타 개수(177개, 통산 7위)가 있다. 아마 타구 속도가 빠른 편이라 그런 듯.[34]
박용택의 이런 타격론은 본인 혼자 뿐만이 아니라 팀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이 탓에 LG의 진짜 타격코치는 박용택이라는 농담도 있을 정도. 다만 이 탓인지 박용택에게 강한 투수는 LG에게 강한 투수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김광현'''.[35] 덤으로 LG가 거포를 못 키우는 이유가 박용택 때문이라는 말까지 있다. 타격코치인 박용택이 거포가 아니니까.
2002~2008시즌 타격폼 모음
2009~2020시즌 타격폼 모음

3.2. 수비


리그 최고 수준인 타격과 주루 실력에 비해 수비 실력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지만 사실 박용택은 리그 수준급의 수비력을 자랑하는 외야수다. 희한하게 MBC 청룡 시절부터 수준급 외야수가 끊임없이 터져나온 LG 트윈스의 팀 특성도 있고 국민 우익수 이진영이나 낙구 지점에 이미 쫓아가서 만사 귀찮은듯 공을 잡아버리는 수비력의 이병규를 선배이자 동시대의 외야수 동료로 둔 탓에 박용택의 수비력이 저평가된 것일 뿐이다.
워낙 발도 빠르고 타구 판단 능력과 캐칭 능력도 뛰어나다보니 2014년 36살이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주전 중견수로 활약했다. 의외의 사실이지만 실책 개수도 이병규보다 적다. 다만 늘 언급되듯이 송구가 약점으로 꼽히는데, 송구 방향은 정확하게 가는 편이긴 하지만 속도가 정말로 한숨만 나오는 수준이다. 다만 좌익수로 나올 때는 은근히 보살을 많이 한다. 주자들이 박용택이 송구를 하는 것을 보고 무리하다가 죽은 것도 있지만(…). 즉 박용택은 어깨 부상으로 인한 송구에서의 약점이 있었지만 빠른 타구 판단 능력과 빠른 발로 만회하여 전성기 시절에는 리그 상위급의 좋은 수비를 보여주었다.
입단 당시에는 어깨가 강해[36] 중견수와 우익수를 봤으나 김성근의 무리한 훈련 방식으로 결국 어깨 부상을 입게 되었고 이후에도 부상 회복이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우익수로 출장하면서 어깨를 혹사당한 결과 어깨가 계속 망가지며 송구 능력이 더욱 저하되며 수비 포지션을 중견수로 전환했다. 중견수 전환 이후에도 빠른 발을 이용한 넓은 수비 범위로 송구의 제약을 만회했으나 나이가 들며 수비 범위도 좁아지며 좌익수로 나섰고, 2016시즌부터는 붙박이 지명타자로 나서는 중. 그래도 간간히 수비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긴 한다.

3.3. 주루


신인 시절부터 준족으로 주목 받았던 선수다. 한때 100m 달리기 기록이 11초20일 정도로 발이 빨랐고 주루 센스도 좋았다. 그 덕분에 2002년 데뷔 이후로 2015년까지 '''14년 연속 두 자릿수 도루 성공'''이라는 어마무시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2005년에는 도루왕 타이틀을 따내기도 했다.[37] 특히 도루 성공률은 무려 80%에 이른다. 참고로, 현재까지 KBO리그에서 14년 혹은 그 이상으로 연속으로 두 자릿수 도루를 성공시킨 선수는 4명 뿐인데 박용택이 3번째이다. 전준호(1991년 ~ 2008년, '''18시즌, 통산 도루 1위(549개)'''), 정수근(1995년 ~ 2008년, 14시즌, 통산 도루 4위(474개)), 박용택, 이용규(2005년 ~ 2018년, 14시즌, 통산 도루 공동 8위(363개)) 순이다. 모두 주루계에서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들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 대단한 기록.
다만, 햄스트링 등의 부상과 노쇠화로 인해 주력이 상당히 느려졌으며 40대가 된 2018년 이후부터는 옛날처럼 번개 같은 주루 플레이는 거의 불가능하고, 그냥저냥 센스와 경험으로 팀에 폐만 안 끼치는 정도. 예를 들어 2019시즌 7월 27일 kt wiz와의 경기에서 외국인 타자 카를로스 페게로와 더블 스틸을 성공시킨 적이 있다. 2020년에는 대타로 나서서 출루하면 대부분 대주자로 교체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시즌 최종전에선 기습적으로 2루 도루를 성공하기도 했다.

4. 별명


김별명 못지않게 별명이 늘어나서 결국 항목이 분리되었다.


5. 해설위원 시절


2021년부터 김태균과 함께 KBS N SPORTS의 해설위원으로 발탁되며 해설택이라는 별명이 추가됐다. 팬들은 다른 해설위원들처럼 특정 팀 편파중계를 안 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6. 흑역사



6.1. 2002년 손가락 부상 사고


2002년 데뷔하자마자 라뱅 이후로 오랜만에 1군에서 풀타임으로 뛰는 신인타자로서 각광을 받았으나, 시즌 후반부를 달려가던 9월 중순경 어느날, 세수를 하다가 난데없이 세면대를 잡고 팔굽혀펴기를 시도(!)했었다. 운동선수의 무게를 세면대가 이길 리는 없고 결국 와장창... 이런 식으로 손가락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하면서 한동안 라인업에서 제외되기도 했었으며 당시 김성근으로부터 "선수도 아니다."라는 소리를 듣기까지 했다. 본인조차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어 들어가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을 만큼 흑역사 중 하나.

7. 사건사고/논란



7.1. 2009년 수위타자 논란


[image]
가장 대표적인 논란인 롯데 홍성흔과 경쟁했던 '''2009년 수위타자 논란.''' 당시 홍성흔보다 2리 차이로 앞서있던 박용택이었고, 롯데 vs LG 경기[38]에서 본인은 출전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LG 투수들이 홍성흔을 상대로 아예 칠 수 없게 빠져버리는 볼만 계속 던졌다. 이후 안타를 쳐도 뒤집기가 불가능한 5번째 타석이 되자 그제서야 스트라이크를 넣었다. 심지어 4번째 타석에서 홍성흔이 4연속 볼넷으로 나가자 덕아웃에서 웃고있는 모습이 잡혔다.[39] 이 때문에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데다 팀이 한창 DTD이론을 입증하던 2010~11시즌 주장을 맡아서 많이 힘들었는지 구설수가 그 때에 상당히 편중되어 있다.[40] 이 논란으로 인해 '''졸렬택'''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이후 꾸준히 선행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연탄 나르기 봉사를 팀 연례 행사로 정착시키는 등 꾸준한 노력과 훌륭한 팬서비스로 안좋은 이미지를 어느정도 떨쳐냈다. 그러나 이 수위타자 논란은 2020년 은퇴 투어를 하지 못하게 된 여러가지 논란 중에 대표적인 논란이 되었다.
저 '''졸렬한 타율관리'''라는 헤드라인의 단어선정이 절묘해, 사실상 사어에 가까웠던 졸렬이라는 단어가 재조명되어 지금처럼 인터넷을 넘어 사회에서까지 활발히 쓰이게 된 시발점이 된 사건. [41] [42] 비슷한 사례로 박희태를 모르는 사람도 '내로남불' 이라는 단어는 사용하듯이 박용택을 모르는 사람도 '졸렬' 이라는 단어는 알 정도로 일반대중의 언어생활까지 바꾸어 놓았다는 점에서 야구 내의 기록으로 그친 최다안타보다도 야구를 넘어 대한민국 사회에 더욱 대중적으로 영향력이 있었던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졸렬하다'는 고작 몇년 유행하다 사라지는 흔한 유행어로 그친 것도 아니고, 10년 이상 폭넓게 사용되며 일반적인 형용사로 자리잡았다.
스포츠 선수는 보통 해당종목 내에서 제한적인 영향력을 갖는 편이라 연예인, 정치인 등에 비해 셀렙으로서 급수(?)는 한급 떨어지는 편인데 그런 운동선수가 스포츠종목을 넘어선 전국구 유명인으로서의 인지도를 가지려면 국가대표 혹은 해외 상위리그에서의 활약이나 세계적 신기록 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쉽게 말해, 스포츠면이 아닌 일반사회면에서도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전국구 유명인이라는 것이다. 박용택은 그런 종목을 넘어설 정도의 유명세는 가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종목을 넘어서 본인의 인지도 이상의 영향을 끼쳤던 사례.
당연한 이야기지만 워낙 유명해져서 박용택 본인도 이 졸렬한 타율관리를 알고 있다고 한다. 졸렬이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고.
그리고 이는 본인이 여러 차례 사과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 은퇴 투어가 무산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실제로, 박용택의 커리어에서 대한민국 사회에 가장 파급을 일으킨 사건은 야구 종목내의 기록이나 국가대표 등에서의 활약이 아닌 바로 이 졸렬사건이었음을 생각하면 은퇴투어 무산에 이 사건의 지분은 상당했다. 비난은 한순간이고 기록은 영원하다는 말이 있지만 비난 또한 결국 10년이란 세월을 지나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43]

7.2. 2011년 청문회 사건


아는 사람만 아는 2011년 8월 8일 청문회(라 쓰고 10명 정도가 모여 "정신 차리고 야구해라" 시전)에서 '''썩소'''를 짓고 팬들 좀 힘들게 하지 말라는 말에 '''당신 몇 살이야? 내가 당신을 힘들게 하는 거야, 아니면 당신이 날 힘들게 하는 거야?'''라며 응수, 이후에 버스에 타지 않고 마지막까지 청문회단을 바라보았다고 후기에 나와있는데, 막상 증거 자료로 올라온 영상엔 잘려있다.[44]
그런데 2차 청문회에서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차를 주차장에 버린 채 다른 비상 출입구로 분노한 팬들을 피해 도망갔고 원정 버스를 타야되는 관계로 어쩔 수 없다시피 나온 3차 청문회에서 팬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얼마나 응원을 많이 하는지 알겠다는 이야기를 하더니 갑자기 '''선수들 너무 많이 부담스럽습니다'''는 내용을 말하면서 문제는 더 커졌다. 저 장면은 1차 때와 달리 당시 아이폰으로 촬영하던 유저가 아프리카 플레이어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로 생중계하던 터라 확실하게 들린 상황.
웃긴 건 주장이란 사람이 깔끔하게 사과만 해도 문제가 없는 상황에 그동안 열심히 자신들에게 응원해준 팬들에게 한다는 소리가 고작 '''너무 부담스럽습니다'''[45]라고 했단 거다. 재밌는 건 8월 18일 3차 청문회에서 저 이야기를 한 이후 '''20일간 LG는 홈경기 승리가 없다가 두산을 정성훈#s-1의 홈런으로 간신히 이겼단 거'''다. 박용택의 타격도 찬물의 향연 뿐. 벤치 클리어링 때도 전혀 나서질 않는 태도 때문에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7.3. FA 계약 논란


박용택이 다시 FA가 될 경우 조인성처럼 팀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박용택의 경우 조인성과는 다르게 첫 번째 FA에서 소속팀 우선 협상기간 때 구단이 엄청난 옵션을 걸었음에도 군말하지 않고 곧바로 도장을 찍었다. FA의 경우 보통 시장에 나가는 걸 이용해 자신의 몸값을 올린다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이며 그만큼 구단에 충성도가 높다. 향후 LG 감독까지 노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며 어깨 부상에도 불구하고 팀을 위해 열심히 뛰어준 공로도 있는 선수다. 반면에 조인성의 경우 이미 전 FA에서 돈을 더 받기 위해 협상 기간을 질질 끌은 적이 있으며 SK에서 더 큰 금액을 지불했기 때문에 이동한 것이지 구단 윗선과 관계가 나빠서 간 것은 아니다. 결국 2014 시즌 후 FA 재계약 성공.
그리고 2013년 2위 확정이 되자 참았던 눈물이 폭발 눈물택, 콧물택 별명이 추가되었다.
2018년 시즌 종료 이후 4차 회의까지 갔는데도 좀처럼 FA 재계약 협상이 안 되고 있다. 구단은 박용택의 불혹을 앞둔 나이도 문제거니와 2018 시즌에 프로 통산 현역 선수 최다안타 경신을 제외하면 박용택이 보여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고 수비도 안 되는 지명타자일뿐만 아니라 이 해 팀이 또 완벽한 DTD 시즌을 보내면서 LG의 주장으로서의 자격ㆍ리더십 부재 논란이 지난 2011 시즌보다 더 크게 부각되었던 터라 큰 계약을 주기가 어려운데다가 시즌 중후반 팀의 극적인 추락으로 어느 때보다 더 크게 부각된 박용택의 리더십 부재ㆍ주장 자격 논란으로 일부 LG 팬들의 박용택을 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은 지금 상황인데, 박용택은 진짜 4년 계약을 원하는지 시간만 계속 흐르고 있으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박용택이 욕심을 부린다는 의구심이 생겼으나 구단과 2년 계약에는 합의를 봤다는 기사가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연봉 협상에서 또 문제가 터지면서 협상이 길어지고 있다. 나이가 마흔을 앞둔데다가 지명타자 아니면 나올 수가 없는 수비 못 하는 선수에게 2년 계약이면 대우가 나쁘다고 할 수가 없는데도 난항을 겪자 엄청 까였다. 2019년 1월 20일 LG와 2년 총액 25억원(계약금 8억원, 연봉 8억원, 옵션 1억)에 계약 체결했다. 우호적인 팬은 지난 2번의 FA 계약 때 적게 받았다는 평을 받았는데 말년에 보상받은 느낌이라는 평을 하고 부정적인 팬들은 노장에게 많이 줬다고 했다.[46][47][48] 사실 논란이랄 것도 없는 사안이다.

7.4. 은퇴 투어 논란


2020년 시즌을 진행하면서 은퇴 투어를 하기로 했는데[49] 야구팬들 사이에선 박용택이 은퇴 투어를 받을 만한 선수인지에 관해 설전이 오가고 있다. 옹호측은 박용택이 훌륭한 선수고, 야구장 안팎에서 팬에게 친절한 선수였으니 자격이 있다고 하며, 비판측의 의견은 해외 리그 진출, 한국시리즈 우승, 국가대표 활약이 없으며 역대 WAR도 최정, 김태균, 최형우보다 낮고, 타이틀도 3번밖에 못 얻었는데 그 중 하나가 논란이 되는 타격왕 타이틀인데 과연 은퇴 투어 자격이 있느냐는 의견이다. 무엇보다 롯데 시절 홍성흔 때 '졸렬한 타율관리'로 홍성흔을 제치고 타격왕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롯데팬들이 11년 전 그 기억을 잊지 않고 반대 의견에 가장 앞장서고 있다.
게다가 언론의 흔들기성 보도도 박용택의 은퇴투어에 관한 이미지 폭락에 한술 더 뜨고 있다. 연이은 은퇴투어 관련 이슈를 메인기사에 올려 안 그래도 댓글창이 불타고 있다. 당시 박용택 본인은 2군에 있어서인지 아무런 반문을 하지 않고있다. 반대파들은 대부분 "고작(?) 국내 통산 최다안타 기록을 가지고 은퇴투어가 말이 되냐"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반론도 존재한다. 최다안타는 다른 부문의 기록들(예: 홈런)보다도 꾸준히 제몫을 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인데 과연 이 기록의 가치를 폄하할 수 있느냐는 식으로.
결국 이 문제로 네이버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고, 결과는 반대가 70%가까이로 반대여론이 많게 나왔으며 결국 8월 10일 은퇴투어를 사양한다는 본인 입장이 나왔다.
고사 기사 후 어째서인지 박용택이 은퇴투어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씁쓸하다는 식의 기사들이 나오며 야구팬들의 헛웃음을 자아내고 있다.
당연하겠지만, 상대팀 선수에게 자기 팀의 홈구장에서 은퇴 행사를 열어주고 선물을 준다는 것은 소속팀을 떠나서 프로야구 전체 차원에서 사랑과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선수이고 상대팀 팬조차 이 선수의 은퇴를 지켜보기 위해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정도의 선수라는 뜻이다. 이른바 '적이지만 존경할 만한', 매력적인 선수라는 것. 이런 선수의 매력에는 분명 단순히 숫자인 기록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선수가 쌓아올린 실적과 더불어 언행이 오랜 시간 겹쳐서 만들어진 평판, 스타성 등등 여러 가지 요인이 섞여 빚어내는 것이다.
영화 같은 것을 봐도 적의 강함과는 별개로 미워할 수 없는, 주인공보다 인기가 좋은 매력적인 악역 캐릭터도 있고 그냥 밉기만 한 악당도 있듯이, 단순히 실력만 뛰어나다고 이런 매력은 생겨나지 않는다. 이 '매력' 을 리그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실력에서 오는 카리스마로 쌓아올리던 혹은 호감 가는 캐릭터성으로 쌓아올리던 무엇으로 쌓아올리던 그것은 선수 개개인의 몫이다. 명백히 타이틀 몇 개, 누적 얼마 이상 하고 선을 딱 그을 수 있는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 선수라면 해줄만하지' 하는, 다수가 동의하는 암묵적인 기준은 분명 있다. 야구팬들 사이에서 은퇴투어감으로 꼽히는 선수들을 보면 대개 국가대표에서 인상깊은 활약을 보였거나, 해외리그에서 준수한 성적으로 활약하며 해외리그든 국대든 상대팀 선수가 아닌 '우리 선수' 로서 온 KBO 팬이 한마음이 되어 응원을 해 본 경험이 있는, 소위 말하는 타 팀 선수지만 한때나마 정을 준 적이 있는 선수가 주로 꼽힌다. 이 선수들은 이렇게 은퇴투어의 주체가 되는 타 팀 팬들에게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고 쌓아올린 것이다.
혹은 양준혁 급으로 야구팬 전체의 존경을 받을만한 압도적인 커리어를 쌓아서 강함에서 오는 카리스마로 이 매력을 쌓아올리는 선수도 있고, 여튼 이 '매력' 혹은 '호감'이라고 할 만한 요소를 쌓아올리는 방법은 수많은 방법이 있다. 오승환이나 임창용, 강정호 같은 선수들은 실력은 뛰어날지언정 이 선수들이 일으킨 사회적 물의가 선수의 '매력' 을 깎아먹는 요소가 되어 반대 의견이 많은 것이고.
한 보기로 이승엽은 박용택에 비하면 팬들에게 훨씬 불친절한 선수였고 다년간의 해외리그 경력으로 안타수나 출장경기수 등 몇몇 누적기록은 박용택에 비하면 밀리나, 한때 리그를 지배한 압도적인 실력과 해외와 국가대표 시절 KBO 응원팀을 초월해 전 국민적인 응원을 받던 활약으로 폭넓은 존중을 이끌어낼 수 있었고, 사상 첫 은퇴 투어의 주인공이 되었다. 박찬호는 MLB에서 리그를 지배하는 특급 선수도 아니었고 KBO 경력은 단 1년뿐이지만 야구를 넘어 어렵던 시기 모국에 희망을 주어 전 국민적 사랑을 받았기에 올스타전에서 전 구단 팬들의 축복을 받으며 은퇴식을 치를 수 있었다. 물론 이는 명백하게 수치화할 수 있는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논란이 된 것이나, 결과적으로 전 구단 팬을 상대로 한 투표에서 반대의견이 많았다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박용택은 LG 트윈스의 대선수임은 분명하지만 타 팀 팬들에게는 '적이었지만 은퇴를 축하하고 싶을 정도로 존중받을 만한 급이 되는' 선수까지는 아니라는 말이 되겠다.
결국 흐지부지되나 싶었으나 2020년 9월 8일 광주 KIA전[50]에서 KIA 선수단 제안으로 소소하게 은퇴 기념 꽃다발을 건네고 양팀 선수단이 단체사진을 찍으면서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처음에 은퇴투어 이야기가 나왔을 때 자연스레 이승엽의 사례를 떠올려 대부분 그 정도까지 해줘야하냐는 반응이었으나 타팀 팬들도 이 정도라면 괜찮다는 반응들이 많이 보였고 이걸 시작으로 타 구단에서도 비슷한 이벤트를 열어줄 가능성도 생겼다. 실제로 9월 16일 한화전에서 한화 선수단이 비슷한 이벤트를 열어줬다. 팬들 사이에서는 이 이벤트가 영향력이 꽤 컸는데 당장 전날까지 심심하면 싸우던 LG 트윈스 갤러리와 KIA 타이거즈 갤러리가 이 이벤트 하나로 분위기가 바뀔 정도였다.[51] 그동안 박용택을 조롱하던 KIA 갤에서도 졸렬택 사건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이미지가 안좋진 않았을 거라며 꽃다발을 든 표정을 보고 짠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타팀 팬들 입장에선 박용택이 LG 팬들에게 어느 정도의 존재인지를 깨닫게 된 일화.
이후 9월 16일 마지막 대전 원정경기 2연전 첫날에 최원호 한화 감독대행과 이용규 한화 주장으로부터[52] 격려의 꽃다발을 받는 고별 이벤트가 진행됐고 9월 20일 마지막 두산 정규시즌 원정경기에서도 같은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이웃이라는 특성상 주장, 감독, 선수단들이 단합하여 그의 은퇴 관련 이벤트를 만들어주었다. 그의 전성기 포지션이었던 좌익수 방향으로 사진 촬영이 이뤄진 것이 포인트. 또 10월 2일 마지막 수원 원정경기 3연전 첫날에 KT 주장 유한준[53] LG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박경수가 꽃다발을 전달해주는 고별식을 진행했다. 삼성도 10월 8일 잠실 최종전에 앞서 삼성 주장 박해민과 LG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우규민이 꽃다발을 전달해주는 고별식을 진행했다. NC와의 마지막 원정경기가 있었던 10월 24일에는 NC 감독 이동욱과 주장 양의지와 함께 촬영식을 가졌고, NC 구단 차원에서 꽃다발과 기념 액자를 선물했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남아있는 시즌 마지막 원정경기 시리즈 첫날에도[54] 박용택에 대한 소소한 고별 행사가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어떤 선수가 은퇴투어를 하는지 지켜보자.

8. 팬 서비스


'''KBO 리그에서 팬 서비스가 좋기로 손꼽히는 선수.''' 각종 행사에서 팬들에게 사인을 잘 해주기로 유명하며, 팬들에게는 사인받기 난이도가 낮은 편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이다. 사인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팬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좋은 케이스.
러브 페스티벌 행사에서는 그의 사인을 받지 못한 팬들에게[55] "끝나고 해드릴게요"라는 말을 남겼고, 실제로 행사가 끝난 후에 거의 한 시간을 사인해 주고 있었다. 결국 구단 관계자가 팬들의 양해를 구하고서야 사인회가 종료되었을 정도. 또한 2014년에 있었던 두번째 FA에서는 협상을 기다리던 팬들이 구단 사무실 근처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56] 박용택은 계약이 끝난 후, 사무실 바깥에서 기다리던 팬들에게 제일 먼저 감사의 인사를 하면서 사인을 해 주었다고. 이후 있었던 인터뷰에서는 "팬 여러분 덕택에 계약할 수 있었다"는 인터뷰를 했고, 덕분에 '''팬덕택'''이라는 훈훈한 별명이 하나 더 늘어났다. 또한 '''"누가 내 사인을 비싸게 판다고 하면, 내가 팬들에게 사인을 남발해서 희소가치를 떨어뜨리겠다"'''는 발언으로 야구팬들의 찬양을 받기도 했다.[57][58] 자신의 사인볼이 중고나라에 올라온 것을 기자에 의해 알게되자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다.
2017년 말 류중일 감독의 취임식 직후 몰려든 팬 중 한 명이 "사진 좀 찍어주세요" 라고 부탁했는데 이를 거절하면서 갑분싸 되는가 싶더니, 바로 '''"사진 대신 사인 해 드릴께요"''' 라고 하면서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59] 그리고 또한 퇴근 후 팬 사인 도중 새치기 하는 팬에게 "뒤로 가"라고 하면서 뒤로 보냈다.
LG 트윈스 경기를 직관해본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만나봤을 법 한 달마아저씨(박제찬씨)[60]가 2014년 6월 13일 돌아가시자, 비보를 듣고 직접 빈소에 찾아 조문을 하는 모습을 보여 팬들에게 작은 파장을 남겼다.[61]입관식에도 참석하셨으며, 입관 때 본인이 쓰던 배트를 함께 넣어드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기사가 나온 당일 박용택은 홈런포함 4타수 3안타 2타점의 맹타를 치며 보답을 했다. 참고로, 달마아저씨의 빈소에는 구단 관계자들이 찾아와 장례에 도움을 주었다고 하며, 유지현 코치도 조화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LG 프런트가 칭찬받은 드문 사례들 중 하나.
사랑의 골든글러브 2회 수상(최다 수상자)에서 볼 수 있듯이 프로야구 선수 중 대표적인 선행 천사로 알려져 있으며, 팬들과 함께 자신의 야구용품을 경매에 내놓아 거둔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는가 하면 2011년 사랑의 골든글러브 수상 소감으로 팬들과 같이 연탄봉사를 제안해 사비를 털어 행사를 시작했고, 2011년부터 시작된 연탄 봉사는 팬들과 LG 선수단 대부분이 참여하는 연례 행사로까지 정착되었을 정도이다.
앉은자리에서 사인 1000개는 할수있다고 한다

9. 기타


  • 드물게 알려진 일인데, 타격 준비 자세에 걸리는 시간이 그 유명한 박한이보다 더 오래 걸린다. 다만 박용택은 처음에 타석에 들어설 때만 하지만 박한이의 경우엔 매 투구 1구 1구마다 하므로 실질적으로 경기를 지연시키는 쪽은 박한이 쪽. 재미있게도 둘 다 1979년생에[62] 좌타자, 그리고 백넘버가 33번이다.[63]
  • 부상으로 인해 어깨가 좀 약하다는 것 말고는 이렇다 할 단점이 없는 호타준족인데도[64] 이상하게 저평가 받는 경향이 있다. 아마 활동 시기가 암흑기를 관통했고, 거기에 수위타자 논란까지 일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홈런 타자가 아니기에 화려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작용한다.
  • 2009년 11월 즈음에 LG 트윈스 갤러리에 본인 인증을 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인증글에 달린 댓글로 그날 박용택이 어쨌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 일명 쥐갤실록으로, 쉽게 말해서 박용택의 그날그날 성적에 따라 리플 분위기가 바뀐다는 것이다. 박용택이 잘할 때는 '메느님 찬양' 같은 댓글이 주로 달리지만, 찬물이라도 끼얹는 날에는 '찬물이 콸콸콸' 같은 찬물드립부터 시작해서 '마무리 투수 출격' 이라든가, 심지어 '또 그러면 집에 김동주( or 이호성)찾아간다'는 차마 못 할 말까지 달릴 정도.그래도 비시즌 동안에는 박용택 응원 댓글이 많이 달린 걸 보면 LG팬들의 박용택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5, 6월달의 현기증 나는 찬물질로 인해 미칠 듯한 십자포화를 맞고 결국에는 공지에서 내려가버리고 말았다. 현재는 개념글 첫 페이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2013년의 용암택 모드로 쥐갤러들의 재평가를 받으며 2013년 시즌 이후 당당히 공지란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데 2015년 11월 17일, 갑자기 인증 글이 삭제되어 버렸다. 쥐갤.. 카오스행.. 삭제 사유는 본인이 직접 지우셨다고. 이에 야갤럼들은 박용택이 광역 고소미로 적금을 받아서 세 번째 FA를 챙기려 한다는 드립이 흥했다. 박용택이 못 할때마다 욕 댓글을 하나둘 적던 쥐갤럼들은 단체로 패닉 상태.
이 후 박용택 마이너 갤러리가 새로 생기면서 실록은 이 곳에서 편찬되고 있다. 여전히 실록은 욕이 반 사랑이 반이다.
  • 메이저리그까지 살펴보면 콜로라도 로키스의 강타자였던 '산사나이' 토드 헬튼과 비슷한 점이 많다. 우선 둘 다 한팀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이고 팀의 암흑기와 전성기를 모두 겪었다. 또한 둘 다 프로 선수 생활 동안 불과 한 번의 월드 시리즈, 한국 시리즈 무대에 올라가서 우승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또한 꾸준하게 장수한 리그 정상급 타자였고, 리그에서 포지션별 최고의 타격을 보여준 선수에게 수여하는 KBO 골든글러브MLB 실버 슬러거를 똑같이 4번씩 받았지만 시즌 MVP는 못했다. 다만 타자친화구장인 쿠어스 필드에서 활동했던 헬튼과는 달리, 박용택은 투수친화구장인 잠실 야구장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KBO와 MLB의 비교 여부를 떠나서, 단순히 기록만 비교해봐도 박용택이 낮게 평가된다.[65]
  • 야갤에서는 그의 응원가와 조인성의 응원가를 합친 무적엘지 조인성이 퍼졌는데 미묘하게 잘 맞아 떨어지자 이거야말로 진정한 잉금님의 응원가라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본래 응원가는 졸렬한 응원가라고 까였다.
  • 특이하게 30세 이후로 뛰어난 성적을 내고 있는 타자 중 한 명이다. 보통 신체적 능력이 전성기인 27세 이후로 점점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고[66] 30세 전후로 성적이 떨어지면 몰락한다는 징크스가 있는데, 박용택은 이를 정면으로 깨뜨리고 있다. 당장 밑의 통산 성적을 봐도 알 수 있다. 20대에는 .280정도 치는 적당한 중거리 히터였다가, 만 30세 시즌에 생애 첫 타격왕 타이틀을 차지한 후, 타율면에서 단 한 시즌도 3할 밑으로 떨어져본 적이 없다. 이를 두고 혹자는 농담삼아 20대 때는 2할을, 30대에는 3할을 기록하고 있으니 40대가 되면 4할치는 거 아니냐(...)라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30대에 타고투저 시즌을 많이 만나서가 아니고 할지 모르지만 조정 타격수치를 봐도 30대 > 20대가 맞다. 물론 30대에 들어서 지명타자로 들어서는 경우가 많아지며 타석에 집중할수 있게 되어 타격에 버프를 먹은점이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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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야구선수 이재우와 상당히 닮았다. 특히 이재우가 2013년 들어 콧수염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거의 도플갱어 수준. 그렇다보니 이재우는 돡용택이라고 불리기도 했었다.. 소위 팬들은 이 맞대결을 미러전이라 칭한다. 사회인 야구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만화가 유영태도 이런 개그를 써먹었는데, 이재우가 사회인 야구 코치로 오게 되었다며 사진을 올렸는데 그게 박용택. 뭐 그냥 대놓고 노린 개그다. 이 미러전에서의 성적은 타율 .400(15타수 6안타)으로 박용택의 승리. 박용택이 스토킹에 출연해서 밝히기론 이재우가 마운드에 있을 때 한 번 타석에서 씩 웃어주면, 혼자 땅에 던졌다 하늘에 던지는 식으로 무너져서 상대하기 쉬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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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박용택과 이재우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 동기동창이기도 하다. 그런데, 2016년 시즌 들어 박용택만 왕따당하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2015-16 오프시즌에 심수창이 FA로, 이재우가 방출 후 이적으로 이 팀에서 모두 만났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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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첫 해 풋풋한 박용택
두 프랜차이즈 스타의 풋풋하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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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2년차였던 2003년의 어느 날
2005년 올스타전에서 MBC 청룡의 1983년 유니폼을 입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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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실 2010년대 들어와서 안경 쓰고 콧수염을 기르고 살을 불린 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아랍, 인도 이미지 또는 일본순사 이미지가 붙어서 그렇지 20대 시절 박용택은 90년대 LG의 훈남선수였던 현재 말많은 엘무원캐넌의 뒤를 잇는, 아니 동시대 LG의 꽃미남 듀오였던 이대형, 심수창과 함께 크보 대표 미남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잘생긴 선수였다. 그래서 2010년대에 야구를 보기 시작한 팬들은 박용택이 이런 시절도 있었냐 하면서 놀라는 경우도 있다. 사실 지금도 또래 선수들에 비하면[67] 잘 생긴 편이다. 2017년 골든글러브를 탔을 때, 나지완보다 내가 잘 생겨서 받은건가 농담조로 말한 것을 보면, 본인도 나름 외모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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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구마구2014에서는 모마만의 고유한 엘리트 중 하나로 나왔는데,[68] 그 성능이 심히 사기스럽다. 당장 컨택트만 봐도 82 백인천[69] 엘리트와 똑같다. 그리고 2014년 12월 3일 마구마구에서도 엘리트가 나왔는데, 컨택은 모바일 버전보다 2가 낮지만 수비와 스피드가 똑같이 84로 강화되었고 퀵스로잉이 잠재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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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의 아버지
  • 트와이스일본인 멤버 사나가 아버지의 사진을 공개했는데, 야구팬덤에서는 박용택 아니냐는 우스개 소리들이 돌았다.
  • 그외 닮은 사람들이 많다. 야구인 박노준, 탤런트 이병욱과 닮았다. 박시후와도 닮았다. 현재 KBS 유튜브에 태조 왕건, 무인시대 등이 무료 스트리밍되고 있는데, 이병욱이 사극에 자주 나오는 배우라서 박용택이 자주 소환될 듯 하다. 냇가에서 전투하면 찬물택, 칼을 휘두르면 박용택 헛스윙이나 특타택, 장수를 베면 홈런택, 졸개를 베면 안타택, 헛소리를 하면 병살택 등으로 드립이 성행하고 있다.
  • 신화의 멤버인 김동완과는 휘문고등학교 동기이다. 배우 조인성은 고명초등학교 2년 후배.

  • 2016년 KBO의 사회공헌사업으로 대한적십자사와 손을 잡고 구단 별로 적십자사 홍보대사를 뽑았는데, LG에서는 박용택이 뽑혔다.
  • OPS 1.000을 한번도 넘겨본 적이 없다. 심지어 타격왕 시즌인 2009년에도 0.999라는 충격과 공포의 숫자를 남겼다... 물론 지나치게 크고 아름다운 통산성적을 보면 OPS에 크게 눈이 안 가는 건 사실이지만... 오히려 지나치게 통산성적이나 시즌성적들이 좋기 때문에 놀라운 기록이기도 하다.
  • 찬물 이미지 때문에 득타율이 낮은 선수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통산 득타율 0.309(!)지난 10년 동안 프로야구 득타율 3위에 랭크될 정도로 높은 득타율을 기록했다.
  • 도루 성공률이 굉장히 좋다. 260번 성공에 57번 실패로 82.44%를 기록할 때도 있었다. 역대 크보에서 200도루 이상한 선수들 중에는 가장 성공률이 높았다. 하지만 세월에 따른 주루 능력의 하락은 어쩔 수 없는지 성공률이 큰 폭으로 떨어져 2017년 종료 기준으로 305성공 86실패(78.0%)를 기록 중이다. 물론 이도 충분히 높은 성공률로, 박용택보다 높은 도루 성공률을 기록중인 선수는 이종범(81.9%, 은퇴), 김상수(79.8%), 김민호(78.9%, 은퇴) 이종욱(78.8%, 은퇴), 김종국(78.4%, 은퇴) 5명에 불과하다.
  • 같은 팀의 이병규가 KBO 영구결번 중 유일하게 우승 경험이 없는 영구결번인데, 2020년 예고 은퇴를 선언한 박용택이 올해 우승을 못하고 은퇴하면서 유이한 우승 경험이 없는 은퇴 선수가 된다. 심지어 둘 다 같은 LG 트윈스 출신. 여기에 한화 김태균도 올해 은퇴 선언을 하면서 우승 경험 없이 은퇴한 선수는 세 명이나 되었다.[70] 그래도 이병규와 김태균은 해외 진출까지 넓혀보자면 일본시리즈 우승 경험이 있다.
  • 응원가가 바뀐 뒤로 사람이 바뀌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노쇠화가 극심하게 왔다. 응원가가 New ways always[71]이던 시절에는 엘지 최고의 타자이자 리그 최고의 타자였지만 응원가가 바뀐[72] 2018년부터 귀신같이 부진하거나 부상으로 신음하고 있다.
  • 코로나 19 여파로 미국에 KBO 리그 경기가 중계되면서 뜻하지 않게 미국 야구팬들의 인기를 조금씩 모으고 있다. 미 현지시간으로 5월 6일 오전 5시 30분에 중계된 대 두산전때 타석에 오른 모습과 외야 관중석에 걸린 걸개를 ESPN에서 캡쳐해 보여줬는데, 이것이 계기가 된듯. 특히 박용택의 외모와 착용한 안경이 주목을 받았는데, 41세라는 나이에 못지 않은 외모에 "전혀 41세 같지 않다."라는 댓글과 함께 '그가 쓴 Reading glass가 마음에 든다.'는 코멘트도 달렸다. 참고로 reading glass는 미국에서 독서 때 착용하는 안경으로 박용택이 쓴 안경과 흡사해 불린 것이다[73]. 또 야구 팬들답게 박용택이 생애 통산 2,319개의 안타를 기록했다[74]는 것에 '대단한 선수'라는 칭찬도 마지않게 올리고 있다. 일부 미국 팬들 가운데 아직 KBO 최애팀을 고르지 못한 일부는 박용택 때문에 LG팬이 되겠다는 댓글도 달았다.#
  • KBO 리그 최후의 1970년대생 선수이다[75]. 박용택이 2020 시즌 후 은퇴를 하면서 1970년대생 현역 야구선수들은 더 이상 KBO 리그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10. 연도별 주요 성적


  • 붉은 글씨는 1위 기록. 진한 글씨는 리그 5위 내 기록. 푸른 글씨는 KBO리그 역대 최고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장타율
출루율
2002
LG
112
375
.288
108
28
'''6'''
(3위)
9
175
55
68
20
38
.467
.359
2003
'''133'''
(1위)
494
.257
127
21
'''6'''
(1위)
11
193
51
68
'''42'''
(2위)
40
.391
.321
2004
109
393
.300
118
15
2
16
185
58
51
10
32
.471
.357
2005
'''126'''
(1위)
'''472'''
(2위)
.280
132
'''25'''
(4위)
1
15
204
71
'''90'''
(1위)
'''43'''
(1위)
43
.432
.344
2006
'''126'''
(1위)
'''476'''
(3위)
.294
'''140'''
(4위)
'''26'''
(4위)
3
16
'''220'''
(2위)
64
69
'''25'''
(4위)
50
.462
.361
2007
'''126'''
(1위)
'''479'''
(1위)[76]
.278
133
24
'''4'''
(5위)
14
207
66
69
20
43
.432
.335
2008
96
334
.257
86
12
2
2
108
32
39
16
34
.323
.325
2009
111
452
'''.372'''
(1위)
'''168'''
(2위)
'''31'''
(3위)
'''5'''
(4위)
18
'''263'''
(3위)
74
'''91'''
(5위)
22
36
'''.582'''
(5위)
.417
2010
107
370
.300
111
21
0
9
159
45
62
19
38
.430
.372
2011
115
414
.302
125
21
1
15
193
64
57
13
26
.466
.347
2012
127
'''499'''
(2위)
.305
'''152'''
(2위)
'''34'''
(1위)
3
11
225
76
'''82'''
(4위)
'''30'''
(5위)
42
.451
.362
2013
125
'''476'''
(5위)
'''.328'''
(4위)
'''156'''
(2위)
22
4
7
207
67
'''79'''
(5위)
13
52
.435
.393
2014
124
464
.343
'''159'''
(4위)
24
2
9
214
73
71
11
75
.461
.430
2015
128
487
.326
159
28
2
18
245
83
66
11
34
.503
.370
2016
138
509
'''.346'''
(5위)
176
24
0
11
233
90
84
6
58
.458
.412
2017
138
509
'''.344'''
(5위)
175
23
2
14
244
90
83
4
72
.479
'''.424'''
(5위)
2018
134
524
.303
159
38
1
15
244
76
89
3
47
.466
.362
2019
64
195
.282
55
9
0
1
67
22
19
3
18
.344
.340
2020
97
217
.300
65
15
0
2
81
33
22
1
13
.401
.338
<color=#373a3c> '''KBO 통산
(19시즌)'''
<color=#373a3c> '''2236'''
(1위)
<color=#373a3c> '''8088'''
(1위)
<color=#373a3c> .308
<color=#373a3c> '''2504'''
(1위)[77]
<color=#373a3c> '''439'''
(3위)[78]
<color=#373a3c> 44
<color=#373a3c> 213
<color=#373a3c> '''3657'''
(3위)[79]
<color=#373a3c> 1185
<color=#373a3c> '''1256'''
(5위)
<color=#373a3c> 312
<color=#373a3c> 790
<color=#373a3c> .452
<color=#373a3c> .371

10.1. 2,500안타 달성


2020년 10월 6일, 잠실 삼성전에서 이승현을 상대로 드디어 '''통산 2,500안타'''를 역대 최초로 달성하였다. 이는 그가 데뷔 시즌인 2002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꾸준택의 면모를 보여준 덕에 결국 이루어 낸 대기록이다. '''KBO 최초이고, 양준혁의 기록보다 182개 더 많다!'''
2500안타는 매우 진귀한 기록인데 우리보다 프로야구의 역사가 수십 년 앞서있고 선수층도 훨씬 두터운 일본조차도 '''2,500안타 이상 기록자는 채 10명이 넘지 않으며, 현재까지도 타격의 달인, 전설 논객으로 대접받는 장훈이 3,085안타로 일본 프로야구 최다안타 기록 보유자'''이다. 물론 일본 선수 중 메이저리그를 경력을 합치면, 스즈키 이치로가 4,300개가 넘어 압도적인 1위이며 장훈이 부동의 2위이지만 다른 리그로 진출하지 않은 선수로 한하면 장훈이 1위의 기록을 차지하게 된다. 이 외에도 통산 안타 2,500개 이상의 기록은 노무라 카츠야, 오 사다하루, 마쓰이 가즈오, 마쓰이 히데키 등 일부만이 넘어선 기록이며, 오치아이 히로미츠, 나가시마 시게오, 후쿠도메 코스케,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등 내로라하는 대타자들도 넘지 못한 기록이다.
이런 사례들을 볼 때 적어도 한국에서 '''역대 최다 안타, 최초 2,500안타라는 기록'''이 어느 정도의 입지인지 비교는 가능하다. 비록 타격왕 경쟁에서 보여준 논란, 선수생활 막판의 영양가 논란이 있었다 하더라도, 결코 그런 해프닝으로 폄하될 수 없는 수 없는 대기록을 달성한 대선수임은 분명하다. 타 팀 선수들이 괜히 마지막 방문 경기마다 은퇴 기념식을 해주는게 아니다. 더군다나 이 기록은 '''대졸 선수로서 달성한 기록'''이기 때문에 최근 고졸 선수들이 주류를 이루는 프로야구의 추세를 보아 적어도 대졸 2,500안타 기록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들어 보인다.
박용택의 은퇴 이후에 누가 그의 기록을 넘을 수 있을지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실 현역 선수 중에서 박용택 다음으로 많은 안타(이하 2020년 10월 31일 기준, 2,209안타)를 친 김태균은 올해는 부상과 부진이 겹치면서 제 활약을 못하다가 8월 15일 이후에 엔트리에서 말소되었고, 끝내는 박용택보다 일찍 은퇴를 선언하였다. 이후의 현역 선수들은 두 선수의 기록보다 '''한참 밑'''이다. 그것도 '''2,000안타보다 아래'''에 있는데, 박용택과 김태균 다음으로 가장 많은 안타를 치고 있는 '''최형우(1,986안타)'''를 비롯해, 손아섭(1,904안타), 이대호(1,900안타), 김주찬(1,887안타), 정근우(1,877안타), 이용규(1,850안타)가 2,000안타 가시권이라고 볼 수 있는데[80], 문제는 손아섭(1988년생)과 이용규(1985년생)를 제외한 나머지 4인은 '''김태균과 같은 1982년세대'''로 상당히 많이 노쇠하여 올해만 해도 이대호나 최형우를 빼고는 선발 출전 기회가 적었으며, 이용규 또한 이전 시즌을 통으로 쉰 데다가 부상으로 인해 출전 횟수가 줄어든 점을 감안하면[81] 박용택의 기록에 도전할 수 있는 선수는 '''매 시즌 150안타 이상을 치고 있는 손아섭김현수'''(1,799안타)[82]정도만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박용택의 이 기록은 향후 4 ~ 5년 동안은 유지가 될 것으로 보여진다.[83]

10.2. 그 외 주요 기록


  • 개인 통산 최다 안타: 2504 안타
  • 개인 통산 최다 출장: 2236 경기
  • 개인 통산 최다 타석: 9138 타석
  • 개인 통산 역대 최다 타수: 8139 타수
  • 개인 통산 200홈런-300도루 동시 달성자(역대 1호)[84]
  • 10년 연속 3할 타율: 2009~2018(역대 1호)[85]
  • 7년 연속 150 안타: 2012~2018(역대 1호)

[1] 90회 졸업생이다. 문과/이과 중 문과를 택했다.[2] 경영학과 98학번[3] 예전에 벌크업 했을때 100kg가 넘어갔었다. 하지만 벌크업 이후 타자로써의 대실패 이후 곧바로 체중을 감량하였다. [4] '''내 눈앞에 나타나~ (박 용 택!) 왜 네가 자꾸 나타나~ (박 용 택!) 두 눈을 감고 누우면 왜 니 얼굴이 떠올라~ (L~G! 박 용 택!!)''' [5] 시크릿 가든 OST 곡이다. 시크릿 가든이 유행하던 시기에 구단측에서 꽃미남으로 밀고 가기 위해 골라준 곡이라고 한다. 본인은 처음 들었을때 손발이 오그라들었다고. 반주는 "왜 내 눈 앞에 나타나"에서 왜를 빼고 부르는게 포인트.[6] 2017시즌 이후 저작인격권 문제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다가 2020년 10월 28일 잠실 마지막 정규시즌 홈 경기에서 대타로 출전할때 3년 반 만이자 마지막으로 틀었다. 협의가 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등장곡으로 원곡의 일부를 재생하는 행위가 저작인격권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결론이 안 나와 있는 상황이라, 그 애매함을 이용해서 한번 틀었던 것일 수도 있고 원작자에게 양해를 구한 것일 수도 있다.[7] 안타~ 안타 안타~ 안타 안타 박용택~[8] 녹음자의 말에 의하면 2003시즌까지는 확실히 썼다고 했지만 2008년 남성훈 응원단장 시절까지 쓰였다.[9] 무적 L!(L!) G!(G!) 박용택! 오오 오오오 오오 오오오오 오오 X4. 원래는 무적 L!G! 박용택 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추임새가 들어갔다.[10] SBS 스포츠가 만든 '야구본색 2' 다큐멘터리 '택의 기억' 편에서 LG 골수팬으로 유명한 가수 홍경민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LG팬인지 아닌지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노래를 언급했다. 본인이 콘서트를 하고 있다가 무심결에 야구 얘기가 나왔고 "여기 계신 분들 중에 LG팬을 구별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그 후 홍경민이 즉흥적으로 박용택 응원가 도입부를 부르자 앞에 있던 일부 팬들이 '''본능적으로''' '오오 오오오오~'를 이어부르며 특유의 율동을 해서 홍경민도 놀랐다고 한다.[11] 2018 시즌부터 '''사용하지 않고 있다'''. 방시혁은 사용해도 된다는 입장이었으나 편곡자였던 원더키드가 사용을 거부했다. 응원가는 KBO 최고의 응원가 5위 안에 들을 수 있는 명곡이기 때문에 더더욱 아쉽다.[12] 오오오 엘지 박용택~ (박용택!) x4[13] 팬 공모전을 통해 나온 곡 중 박용택이 직접 골랐다. 전상규의 야잘잘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 강승호에게 주기 위해 만든 곡이며, 그렇기에 방정맞고 발랄하게 만들었지만 '''엘런트에서 후렴구까지 전부 잘라먹고 도입부만 반복한다고 한다.'''[14] 무적 L! G! 박용택~ 무적 L! G! 박용택~ 무적 L! G! 박용택~ 오오오~ 오오~ 오오오오오오~ X2[15] 홍경민이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박용택의 원래 응원가(New Ways Always)와 박자, 빠르기가 동일하다. 거기다 가사까지 비슷하다. 이와 달리 평은 좋지 않았는데 신나지 않고 음조가 어두워서 그런 듯 하다.[16] 아버지 박원근 옹은 농구선수 출신으로 1947년생이시다. 당대 기준으로 상당히 늦은 나이에 첫째 박용택을 본 셈. 프로 출범 이전 실업농구 시절 명성이 높은 가드였다고 한다.[17] 본인이 무교라 밝혔다[18] 아마추어 시절 턱부상으로 인한 병역면제 판정. 하지만 여기서 면제를 받지 않았더라도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해 메달을 획득했기 때문에 병역 특례를 받았을 것이다.[19] 손혁, 양현종, 조동화가 소속되어 있다.[20] 같은 기간 동안 LG 트윈스 한 팀에서 8명의 감독들이 거쳐갔고, 감독대행도 2명이나 있었다.[21] 한미일 프로야구 사상 개인 통산 2,500안타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박용택을 포함해 총 109명이다. 미국에서 101명이 2,500개 이상의 안타를 쳤고(여기는 19세기 말부터 존재했던 리그임을 감안하면 적은 수라고 볼수있다. 그리고 한 시즌의 경기수도 한국과 일본보다 많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8명만이 2,500안타 고지를 넘어섰으며, 그 가운데 최다이자 유일한 3천안타 이상 기록자는 3,085개 안타의 장훈이다. 단일 리그에서 세운 공식 기록상으로는 박용택이 한국 유일의 2,500안타 달성자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한-일 통산 2,842안타를 친 이승엽도 있다.[22] 다만, 김태균은 병살을 너무 많이 쳐서(...) 우승 당시에도 비판을 받긴 했다.[23] 실제로 둘은 입단 동기며. 1979년생 동갑이다.[24] 2004년, 2009~2018년, 그리고 규정타석엔 미달하나 2020년 역시 3할이다.[25] LG는 2020년 시즌까지 KBO 10개 구단중 페넌트레이스 MVP를 배출해보지 못한 유일한 구단이다.[26] 박용택과 더불어 홈런과 도루를 동시에 200개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한 명밖에 없는데, 바로 300홈런-267도루를 기록한 '''박재홍'''이다. 아울러 200홈런-300도루로 기록 범주를 바꾸면 오직 박용택만이 이 기록을 세웠다. [27] 다만, 내년 시즌에 최형우(421개)가 박용택의 기록을 넘길 수 있다. 아니, 최형우가 '''매 시즌 평균 30개 이상의 2루타'''를 치는 만큼, 만약 내년 시즌에 최형우가 그 이상을 칠 수 있다면, 박용택뿐만 아니라 양준혁, 심하면 통산 1위인 이승엽의 기록도 깰 수 있을 것 같다.[28] 다만 김용의는 2016시즌에는 3할을 기록하며 테이블 세터로서의 능력을 보여줬다. 능력을 보여준 게 한 번 뿐이고 그나마도 규타 미달이라는 게 문제지...[29] 그래도 박용택의 통산 만루홈런 개수는 8개로 역대 5위에 해당할 정도로 적지 않다.[30] 8월 초~중순 즈음 외국인 타자 제임스 로니의 존재로 인해 좌익수로 출전한 적이 있기는 하다.[31] 1, 2위는 외국인 투수인 데이비드 허프헨리 소사[32] 배드볼히터로 유명했던 이병규는 게스히팅보단 천재적인 컨택 능력으로 타격을했기 때문에 이미지에 비해서 통산 삼진은 800여개로 그리 많지 않은 편이고 볼삼비도 박용택보다 뛰어나다.[33] 커리어 내내 볼삼비가 1:2 수준으로 그렇게 좋진 않다가 2012년이 돼서야 2:3 정도가 됐다. 2014년이 커리어에서 볼넷이 삼진보다 많은 유일한 시즌이다.[34] 사실 병살 항목 들어가면 알겠지만, 주력이 좋다고 병살도 무조건 적은 건 절대 아니다. 두산의 박건우를 떠올려봐도 될 것이다. [35] 실제로 박용택은 김광현에 대해 "2년 연속으로 왜 저런 녀석이 또 나타나서 타율 몇 리라도 까먹게 되는건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며 김광현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36] 2002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보살 장면이 있다.[37] MBC-LG 출신 중에는 1985년 김재박 이후 20년 만에 나온 MBC-LG 출신 도루왕이었다. 다만 이후 이대형이 등장하면서 박용택의 준족 이미지가 가려진 감이 있다.[38] 롯데는 시즌 마지막 경기였고, LG는 잔여경기가 남아있었다.[39] 또 LG의 최종전 최다 안타 기록 때문에 선발 출장했는데, 계속해서 범타로 물러나자 타율이 떨어질 것을 우려했는지 뜬금없이 교체되었다.[40] 그런데 그래봤자 2011년 아는 사람만 아는 청문회 정도가 끝이다.[41] '졸렬'이라는 단어가 사어였다는 서술은 국어학적 근거가 없으며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이 문서에도 나오듯이 '졸렬택'이라는 별명이 쓰이게 된 계기는 공중파 뉴스에서 '졸렬한 타율관리'라는 타이틀로 보도가 된 것인데, '졸렬'이라는 말이 사어에 가까웠다면 뉴스에 저런 타이틀이 나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반박 각주를 단 사람은 뉴스 작성자가 특히 어휘력이 높아 사어를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뉴스를 접한 시청자 대다수가 문제없이 뉴스를 이해했다는 점에서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다.) 실제로 사건이 있었던 이전 해인 2008년까지 뉴스를 검색해보면 '졸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기사가 숱하게 발견된다. 사어였던 '졸렬'이 '졸렬택'을 계기로 부활했다는 것은 '졸렬택' 덕분에 그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된 (비교적 어린) 네티즌들의 과장된 추측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졸렬'이라는 말이 '졸렬택'을 계기로 인터넷에서 전보다 활발히 쓰이게 됐다는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바로 뒤에 반박 각주를 달아놓은 사람처럼 이 단어가 사어였다고 철썩같이 믿는 사람도 꽤 있는데, 어차피 사어인지 아닌지 국어학자 등 권위있는 전문가가 언급한 적이 없으므로 두 각주를 모두 보고 독자가 판단하면 될 것이다.[42] '졸렬'이라는 단어가 사어였다는 서술은 앞뒤가 아주 잘 맞는다. 졸렬이란 단어는 그 전에도 숱하게 사용되었는데, 문제는 09년 졸렬한 타율관리 이전 사용량을 보면 '졸렬' 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기사는 1997년 2건, 1996년 4건으로 이미 80년대부터 1년에 2~3차례밖에 신문기사에 사용되지 않을 정도로 일상 생활에서는 전혀 쓰이지 않고 기껏해야 성명문 등에서 격식을 갖추어 비난할 때나 쓸까말까하게 사어화된 단어였다.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대략 해방후 5~60년대까지 널리 쓰이던 단어라 50년 가까이 쓰여 데이터가 많이 쌓인 것일 뿐, 70년대에 이미 1년에 10건~20건 전후로 사용량이 줄기 시작해 80년대 이후로는 이미 일상생활에서 쓰이지 않는 사어였다. 2009년 이후로야 이 졸렬이라는 단어의 사용빈도는 뭐 말 안해도 알 것이다. 실제로 구글트렌드를 보면 10년간 검색량이 100건이었다가 2009년 하반기부터 갑자기 사용량이 폭증하는 등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이상 사어였던 단어가 저 졸렬한 타율관리를 계기로 갑자기 부활한 것이 맞다.[43] LG를 자주 까는 것으로 유명한 스포츠 웹툰 작가 바운스킴은 이번 은퇴투어에 대해 이 사건을 카툰으로 그려 박용택을 에둘러 비판했다. 문제의 그 화 [44] 이 부분에 대해 동영상 올리는 이는 애초에 영상 자체에 큰 내용이 담겨져 있진 않다고 언급되어 있다.[45] 사실 팬들이 부담스럽다는 말 때문에 먼저 욕먹은 이가 있는데 바로 롯데공필성 코치. 08~10시즌에 사직이나 마산에 좌석이 만원이 되면 롯데는 거의 져버리는 이상한 징크스가 있었는데 공필성이 이를 두고 "팬들이 너무 많으면 부담스럽다."라고 쉴드를 쳐서 롯빠들이 어이없어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팬들이 이렇게 많이 왔으니 더 잘해야 할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 하지만 그 심정을 팬들이 알아서 이해하게끔 한다면 몰라도 팬들앞에서 저렇게 대놓고 말하는 건 확실히 별로 옳지 못한 행위.[46] 다만 지금까지 보여준 활약에 비해 FA로 받은 돈은 그리 크지 않아서, 나름 납득한다는 의견도 있다. 라뱅은 3년 25억에 계약한 바 있다.[47] 차후 밝혀진 바로는 금액과 기간은 꽤 빠르게 합의했으나 은퇴 후 조건을 맞추는게 시간이 좀 걸렸고 심지어는 어차피 안 가기에... 그냥 몇달동안 느긋하게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48] 사실 프런트들은 전지훈련지 섭외, 구장관리 ,연봉협상으로 인해 오프시즌 때 더 바쁘다. 거기에 인사이동도 팀워크에 해를 끼친다고 연말에 하기에... 남는게 거의 확정인 선수에게 시간을 많이 투자할 이유가 없다.[49] 처음부터 본인이 원해서 한 것은 아니었고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에서 제안했다고 한다.[50] LG 트윈스의 마지막 광주 원정의 첫 날이었다.[51]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기아라는 단어를 쓰면 ㄴㄷㅎ이 돌아오며 기아가 아닌 홍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무조건 멸칭을 쓰지 않으면 말이 안통할 정도로 두 갤의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은퇴투어 후에는 심심하면 홍어드립을 치던 디씨 고닉들조차 기아라고 부르던 기간이 있었다.[52] 공교롭게도 최원호 감독대행과 이용규 모두 LG 선수 출신이다. 특히 최원호 감독대행과는 2002년 한국시리즈를 같이 뛴 인연이 있다. 이용규와는 2004년 딱 한 해만 같이 뛰었는데 현재의 위치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미미했던 신인 대주자 요원이었다.[53] 박용택이 은퇴하면 그가 갖고 있던 KBO 리그 최고령 야수 타이틀은 유한준에게 넘어간다. 이택근도 있기는 하지만 2020년 그의 행보를 감안한다면 사실상 은퇴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54] 현재 남은 원정 시리즈는 10/13~15 사직 롯데전 3경기, 우천 취소로 날짜가 정해지지 않은 창원 NC전 1경기와 문학 SK전 1경기가 남아 있다. 고척과 대구에서는 고별식을 하지 못했는데 은퇴투어 논란 여파가 남아있던 8월 20~21일과 8월 25~26일이 각각 마지막 고척 원정과 마지막 대구 원정이어서 하지 못했다. 그나마 삼성의 경우 10월 6일 잠실 삼성전에서 2500안타 축하 행사 때 꽃다발을 준 것으로 아쉬움을 살짝 달랬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삼성에서 10월 8일 엘지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은퇴를 축하하는 간단한 꽃다발 증정식과 함께 삼성 선수단들과 코칭스텝들이 일렬로 도열해서 축하를 해줬다.[55] 러브 페스티벌은 선수들을 몇 개 조로 묶어놓는다. 행사에 참가할 때면 특정한 조를 신청해야 하기 때문에 박용택이 참가한 조가 아니면 사인을 받지 못하는 것.[56] 당시 분위기는 급박했다. 구단 공홈에서는 팬들의 FA 계약 요청 서명운동과 영상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서도 박용택의 이름은 수 시간 동안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었다.[57] 하지만 본인은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있다. 사인 거래가 문제면 종이에 미리 해서 뿌리면 되지 않나? 그런데 직접 말로 한 기억은 없다"고 했다.[58] 실제로 이런 말을 한 야구선수는 미우라 다이스케다.[59] 보통 야구선수 들은 사인 대신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이다. 그러니 사진보단 사인이 희소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60] 뇌병변 지체 4급 판정을 받은 장애인이면서도 LG 트윈스의 경기를 잠실, 문학, 목동, 멀리는 대전, 창원까지도 따라다니시던 열혈 LG팬.[61] 생면부지까지는 아니며 팬사인회에서 수줍어 했다던 사연을 공개했으며 잠실로 보이는 곳에서 같이 찍은 사진도 있다.[62] 다만 박한이는 빠른 1979년생이라 1978년생과 동기이다. 실제로 인터뷰 등을 보면 박용택은 박한이를 부를 때 형이라고 부른다.[63] 단, 박한이는 프로 1년차에 32번을 달았었다가 33번으로 옮긴것이다.[64] 통산 19시즌 동안, 213 홈런과 313 도루로 리틀쿠바에 이어 2번째 200-200기록, 역대 최초 200-300을 기록했다.[65] 토드 헬튼(MLB 통산 17시즌) - 슬래시라인 .316 / .414 / .539, 2519안타, 369홈런, 1406타점 vs 박용택(KBO 통산 18시즌) - 슬래시라인 .308 / .371 / .453, 2439안타, 211홈런, 1157타점[66] 메이저리그 이야기지만 신체능력만 놓고 보면 만 27세도 아니고 만 18세가 피크라는 연구결과까지 있을 정도다. 다만 뼈가 다 굳는 나이는 만 24~25세 정도가 맞으며, 20대에는 아직 신체능력이 빠르게 감소할 나이는 아니기 때문에 경험에서 오는 이득까지 고려하면 만 26~27세가 가장 성적이 좋다는 통계가 있다.[67] 박용택과 동갑내기인 98학번 선수 중 리그에서 이름을 그나마 알린 선수를 꼽자면 최희섭, 이현곤, 안치용, 이혜천, 김수경, 현재윤, 이재우, 추승우 정도가 있다. 추승우가 그나마 샤프하게 생긴 편이고, 현재윤은 나중에 동안 이미지가 생겼으며 나머지는... [68] 온라인 마구마구에는 2014년 12월 3일 추가 전까지 그의 엘리트가 없었다. 사실 초기 모바일 출시 당시에는 00년도 선수까지 업데이트 되어있었기 때문에 00년 이후에 엘지는 엘리트 카드가 없어서 덱간 균형을 맞추기 위해 나온 카드였다. 08봉중근 엘리트 카드 역시 같은 이유.[69]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한 4할 타자, 기본 컨택트 91.[70] 여담으로, 올 시즌 마지막 경기를 끝으로 은퇴한 윤희상권오준은 각각 1회, 3회의 우승 경력이 있다.[71] 무적 L!G! 박용택 워어어어어어어 워어어어어어어어 x4[72] 워어어 엘지 박용택~ 박용택! x2[73] 아울러 별칭으로 해리 포터가 착용했던 안경과 똑같다고 해서 '해리 포터 안경{Harry Potter Glasses}'이라고도 부른다.[74] 다만, 그가 2,319안타를 친 것은 2018년 6월 23일이었다. 이 시점 즉, 2020년 시즌 전까지의 그가 친 안타는 2,437안타.[75] 1979년생[76] 박한이와 동률.[77] 양준혁 (2318 안타)의 1위를 2018년 6월 23일 토요일 롯데와의 11차전 4회말 1아웃 고효준을 상대 4구를 쳐 우측을 완벽히 가르는 2루타를 만들었다. 이 안타와 함께 동시에 1100타점을 넘긴건 덤[78] 1, 2위는 각각 이승엽(464개)과 양준혁(458개).[79] 1, 2위는 각각 이승엽(4077루타)과 양준혁(3879루타).[80] 일단 최형우는 내년 시즌 초에, 손아섭과 이대호는 내년 중반 즈음에 2,000안타 달성이 유력하다. 다만, 최형우는 선수생활 초중반에 방출이 된 점이, 이대호는 장기간의 해외 진출이 걸림돌이다.[81] 실제로 정규 시즌이 끝난 직후, 정근우(LG)는 은퇴를, 김주찬(KIA)과 이용규(한화)는 원래의 소속팀에서 방출되었다. 다행히 이용규는 극적으로 키움에 합류해 2,000안타에 대한 가능성을 조금 열긴 했지만, 현역 연장 의지가 강한 김주찬은 끝내 원하는 구단을 만나지 못한 채 2021년 1월 5일에 은퇴를 선언했다. 가뜩이나 코로나 19의 여파로 인해 각 구단마다 선수, 코치 할 것 없이 칼바람이 몰아치는 상황이라서...[82] 손아섭과 같은 동년배이지만, 통산 안타 숫자가 다른 이유는 김현수가 2년 정도 MLB에서 활동하며 국내 리그에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김현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손아섭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많은 수의 안타를 때렸을 가능성이 있다.[83] 박용택이 가지고 있는 여러 기록들 중에서 '''최다 안타'''뿐만 아니라, '''최다 경기 출장''' 역시 향후 몇 년 동안은 유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본인(2,236경기)'''과 현역 2위였던 김태균(2,014경기)이 은퇴를 한 상태에서, '''현역 선수들 중에서 가장 많은 경기 수를 출장한 선수가 강민호(1,855경기)인 점'''을 감안하면...[84] 200홈런-200도루로 범위를 낮추면 박재홍에 이어 박용택이 2호 기록 달성자다.[85] 양준혁, 장성호, 손아섭 등 리그를 호령한 교타자들이 이 기록에 도전했지만 박용택을 제외하고는 모두 9년 연속 3할 기록에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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