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우 보돌라
[image]
1. 생애[4]
1.1. 선수 생활
1.1.1. 클럽
보돌라는 그의 고향인 브라쇼프에서 축구를 시작했지만 디비자 A 데뷔는 CA 오라데아에서 했다. 그는 17살에 루마니아 축구계에 첫 선을 보였고 루마니아에서의 커리어 대부분을 오라데아에서 보냈다. 그러다 1937년, 보돌라는 잠시 루마니아의 빅클럽 중 하나인 베누스 부쿠레슈티로 이적했고 그 곳에서 3시즌을 보내면서 2차례 디비자 A 우승을 경험했다.
보돌라는 1940년에 오라데아에 다시 돌아왔는데 당시 오라데아를 포함한 북부 트란실바니아 클럽들은 헝가리의 넴제티 바이녹사그에 편입되었고 오라데아도 너지바러디 AC란 이름을 썼다. 그리고 보돌라도 헝가리 식의 이름인 보돌러 줄러(Bodola Gyula)로 불렸다. 너지바러디에서 5시즌을 보내면서 보돌라는 헝가리 리그 MVP도 수상하고 리그 우승도 맛보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보돌라는 잠시 루마니아에 돌아가 페러르 클루지에서 뛰다 1946년에 다시 헝가리에 갔고, 부다페스트에 정착했다. 보돌라는 1949년에 은퇴할 때까지 MTK 헝가리어에서 뛰었다.
1.1.2. 국가대표
보돌라는 루마니아 대표팀에서 총 48경기에 출전하여 31골을 득점했는데 아직도 이 기록은 게오르게 하지, 아드리안 무투[5] 에 이어 루마니아 대표팀 최다 득점 순위 3위에 올라 있다. 국가대표팀에선 세 차례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보돌라의 첫 A매치는 1931년 5월의 불가리아전이었고, 두 차례의 월드컵에 출전했지만 루마니아는 두 번 모두 1라운드의 벽을 넘지 못했다.
1940년 이후 보돌라는 헝가리 국적을 취득했고 그 이후엔 헝가리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보돌라는 헝가리 대표팀에서 13경기 4골의 기록을 남겼다.
1.2. 이후
선수에서 은퇴한 이후 보돌라는 헝가리의 여러 클럽에서 감독으로 지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두두슈[6] 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30년대 루마니아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 중 한 명. 리그 득점왕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전성기때는 시즌마다 10골 이상은 안정적으로 기록해주었다. CA 오라데아에서는 2008년에 그들의 홈구장을 스타디오눌 율리우 보돌라로 명명하면서 보돌라를 클럽을 대표하는 레전드로 대접해주고 있다.
1970년 월드컵 당시 루마니아 대표팀 감독이었던 안젤로 니쿨레스쿠는 역대 루마니아 최고의 선수로 니콜라에 도브린과 게오르게 하지가 아닌 보돌라를 꼽기도 했다.
3. 가족
그의 아들 보돌러 죄르지(Bodola György, 1952-2007)는 헝가리의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였다.
4. 수상
4.1. 클럽
- 디비자 A 우승 2회: 1938-39, 1939-40(베누스 부쿠레슈티)
- 넴제티 바이녹사그 우승 1회: 1943-44(너지바러디 AC)
- 디비자 A 준우승 1회: 1934-35(CA 오라데아)
- 넴제티 바이녹사그 준우승 1회: 1942-43(너지바러디 AC), 1948-49(MTK 헝가리어)
4.2. 개인
- 헝가리 올해의 선수 1회: 1942
[1] 헝가리식 이름으론 보돌러 줄러(Bodola Gyula)이다.[2]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3] 출처: 위키피디아, 11v11[4] 출처: 위키피디아, 11v11[5] 둘 다 35골로 루마니아 대표팀 역대 공동 최다 득점자이다. 경기당 득점율에선 0.64의 보돌라가 0.28의 하지, 0.44의 무투를 크게 앞선다.[6] 루마니아식 표기로는 duduş, 헝가리식 표기로는 dud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