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해자

 

[image]
[image]
1. 개요
2. 내용
3. 을해자병용


1. 개요


乙亥字. 조선 세조 1년, 1455년에 명필 강희안[1]의 글씨를 토대로 만든 금속활자.

2. 내용


1455년에 세조의 명에 따라 구리로 만들어졌으며, 훈사 등 약 150여종의 문헌을 찍어내는데 사용했다. 크기에 따라 대자, 중자, 소자의 3종류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시대의 여러 활자 중 세종이 만들었던 갑인자 다음으로 오래 사용된 활자로 임진왜란 전까지 사용되었다. 또한 조선 전기 활자 중 가장 아름다운 활자로 손꼽히며 조선 활자의 백미라 불린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약탈되었으며 이후 일본에서도 을해자를 사용했다. 1931년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과대학에서 임진왜란 당시 일본이 약탈해간 을해자들을 구해 분석하기도 했다.
{{{#!html
<iframe width="640" height="360" src="https://www.youtube.com/embed/nvVLDQNslhY" frameborder="0" allow="accelerometer; autoplay;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allowfullscreen></iframe>
}}}
2007년 1월에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잠자고 있던 을해자 실물유물 30여점을 발견했다.네이버 뉴스 1, 네이버 뉴스 2

3. 을해자병용


세조가 재위한 후 가장 신경썼던 것이 바로 한글보급사업이었다. 훈민정음은 아버지 세종이 처음 완성하였으나 이때에는 용비어천가와 같은 정권찬양물 몇 권이 제작되어 치적으로 삼는 것 외에는 일반 백성들을 위한 전국적인 한글 보급이 거의 시행되지 못해서 책을 대규모로 찍어내는데 1차적으로 가장 필요한 한글 활자조차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이에 세조가 최초의 한글 금속활자를 만드는데 바로 '초주갑인자병용한글활자'이다. 세종이 만든 금속활자인 갑인자를 한글로 변환해 만든 세계 최초의 한글 활자인 '초주갑인자병용한글활자'는 최초로 찍은 책의 이름을 따서 '월인석보한글자'라고도 부른다.
이후 갑인자병용에 이어 만든 역대 두번째의 한글 활자가 바로 을해자병용이다. 능엄경언해를 찍어내는데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선조대까지도 사용한 기록이 있다. 갑인자병용은 현재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을해자병용이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한글 활자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 또 하나의 한글 활자인 무신자병용(戊申字倂用)과 함께 우리나라의 옛 한글 활자사를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제 1차 사료이자 소중한 문화재이다.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 캐스트 : 한글 금속활자 항목을 참조.

[1] 여인도, 경운도, 오두연수도, 산수인물도, 고사관수도, 고사도교도, 강호한거도 등의 여러 그림과 글씨를 남겼으며 당대에 시서화의 삼절(三絶)이라 불리던 예술인.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었으나 화를 면했고 훗날 신석조와 이종검이 다시 처벌을 요구하였으나 세조의 비호로 무사할 수 있었다. 친동생인 강희맹과 함께 형제 문장가로도 불렸으며 강희맹은 금양잡록 등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