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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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9년(세조 5년)에 간행된 《훈민정음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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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于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를 모방하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쉽고 요약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
훈민정음(訓民正音),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다. 훈민정음이 가리키는 대상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1443년 12월에 세종대왕이 만든 한국어의 표기체계, 즉 오늘날의 한글을 당대에 부르던 말이고, 두 번째는 1446년 9월[2] 에 발간된 책이다. 여기서는 후자, 즉 '훈민정음'이라는 책을 설명한다.
2. 서문
훈민정음 서문은 본래 한문으로 기록되었으며, 이를 당대의 우리말로 번역(언해)한 서문이 세조연간에 발행된 훈민정음 언해본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충남대학교 언어학과 김차균 교수의 발음으로 전기 중세 국어음에 해당하는 언해본 서문 재구음을 들을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소리를 낸 것 같다고 추측한 것이지 실제로 그러했는지는 알 수 없다.
- 나눔바른고딕 옛한글, 나눔명조 옛한글(이 둘은 여기서 다운 가능), 함초롬체 LVT(아래아 한글 항목 참고), 본고딕(또는 Noto Sans CJK KR, 여기서 다운 가능) 중 하나가 설치되어 있으면 제대로 보인다.
- 언해본의 한글 표기와 현대어역을 실었다.
- 한자 為(할 위)는 爲를 줄여 쓰는 속자이나 원문 표기가 為에 가깝고 당대 가장 엄밀하게 기록되었을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도 그대로 표기하였으므로 원문 표기를 살렸다.[3]
'''언해본 원문''':
나랏〮말〯ᄊᆞ미〮
中듀ᇰ國귁〮에〮달아〮
文문字ᄍᆞᆼ〮와〮로〮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
이〮런젼ᄎᆞ〮로〮어린〮百ᄇᆡᆨ〮姓셔ᇰ〮이〮니르고〮져〮호ᇙ〮배〮이셔〮도〮
ᄆᆞᄎᆞᆷ〮내〯제ᄠᅳ〮들〮시러〮펴디〮몯〯ᄒᆞᇙ노〮미〮하니〮라〮
내〮이〮ᄅᆞᆯ〮為윙〮ᄒᆞ〮야〮어〯엿비〮너겨〮
새〮로〮스〮믈〮여듧〮字ᄍᆞᆼ〮ᄅᆞᆯ〮ᄆᆡᇰᄀᆞ〮노니〮
사〯ᄅᆞᆷ마〯다〮ᄒᆡ〯ᅇᅧ〮수〯ᄫᅵ〮니겨〮날〮로〮ᄡᅮ〮메〮便뼌安ᅙᅡᆫ킈〮ᄒᆞ고〮져〮ᄒᆞᇙᄯᆞᄅᆞ미〮니라〮
–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
'''현대어''':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문·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위해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다.
- 文字는 전통적으로 한자를 칭하는 표현으로, 최소한 설문해자 때부터 등장한다(비슷한 맥락으로 한문은 원래 文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홍윤표 전 연세대 교수는 원문의 文字가 뜻하는 것이 글자 또는 한자가 아니라 '한자로 된 숙어나 성구(成句) 또는 문장'이라고 한다. '문자 쓰고 앉아 있네' 같은 표현의 '문자'와 같다고 한다. 즉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서 한문 구(句)·문장과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이런 까닭으로 (한문 구·문장을 쓸 줄 모르는)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할 바가 있어도 능히 말할 수가 없다'라고 한다. 또한 왜 '문자'를 새로 만들었는데 훈민정문(文)이나 훈민정자(字)가 아니라 훈민정음(音)인지도 이 점과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에 그의 구체적 주장은 이 글의 4쪽부터 13쪽, 그리고 여기 참고.
- '능히'라고 된 부분의 언해 부분은 '시러'인데, 직역하면 '얻어'('실어'가 아니다)이다.[4] 중세 한국어의 '싣다'는 현대 한국어의 '싣다'의 뜻을 지닌 것과 '얻다'라는 뜻을 지닌 것이 두 종류 있었다. 이 단어에서 파생부사 '시러곰'(능히)이 생겼다.
- '사람이'라고 된 부분의 언해 부분을 직역하면 '놈이'이다.(위의 원문에 보면 '노미'라는 표기가 보일 것이다.) 당대의 '놈'은 비칭(卑稱)이[5] 아니라 '사람'을 가리키는 평칭이었다는 해석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者'를 '경우' 또는 '(~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정요일, 2008).
- '펴디몯ᄒᆞᇙ노미하니라'에서 하니라는 중세 한국어 당시 현대 한국어에서의 하다가 아닌 많다를 뜻했다. 중세 한국어에서는 하다를 ᄒᆞ다라 하였다.
'''中듀ᇰ國귁ᄋᆞᆫ 皇ᅘᅪᇰ帝뎽겨신나라히니우리나랏常쌰ᇰ談땀애江가ᇰ南남이라ᄒᆞᄂᆞ니라'''
(중국은 황제 계신 나라이니 우리나라 상담으로 강남이라 하느니라)
- 당시에 중국의 국호는 '명'이었는데도 '중국'이라는 표현이 나와서 의아할 수 있는데, '중국'(中國)이라는 표현은 역사적으로 중화권 일대를 가리키는 가장 보편적인 명칭 중 하나였다. 흔히 말하는 '중원(中原)'의 다른 표현이 바로 '중국'이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또는 '중화(中華)의 나라[國\]', '세상의 중심(中心)이 되는 나라[國\]'라는 의미로 '중국'이라 부른 것으로 이해해도 된다. 언해본 사진을 보면 '중국' 밑에 "황제가 계신 나라, 우리나라에서 흔히 하는 말로 강남을 말한다."라고 작은 글씨로 분명히 부연되어 있다. 강남은 장강(양쯔강) 이남을 말하며, 중국의 이칭 중 하나다. ‘강남 가는 제비’, '강남 천자'와 같은 말에서도 나오는 표현. 명 초기에는 남경(난징)이 도읍이었기 때문.
- 일부 한자의 음을 표기한 부분에서 현 시점에는 없는 ㅇ 받침이 있는데, 동국정운 식 표기법이다. 현재의 ㅇ받침 발음은 초성/종성 무관하게 ㆁ로 표기했다.
3. 관련 서적
3.1. 해례본
세종대왕 때 간행한 최초의 원본과 동일한 훈민정음의 판본이다. 이에 '훈민정음 원본'이라고 불리기도 하나, 다만 현재 남아있어 대한민국의 국보 겸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지정된 훈민정음 간송본 역시 세종연간에 발행된 첫 판본으로 보기는 어렵기에, 역사학계에서는 '원본'이라고 부르지는 않고 '훈민정음 해례본'이라고 부른다.
해례(解例)란, 훈민정음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문자 창제 과정을 종합해 기록하였다는 의미이다. 해례본이 발견되기 전에는 세조 때 간행된 아래의 언해본만 존재하였는데, 언해본에는 한글의 제자원리를 기록한 부분이 누락되어 있어 일제강점기 까지만 해도 “한글 자모는 한옥 창살을 보고 만든 것”이라는 등 온갖 루머가 난무했다. 해례본이 발견됨으로써 한글 자음은 인체의 발음기관을 본뜬 것이고, 한글 모음은 천지인 삼재(三才)를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배치해 만들었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흔히 모르는 사실이 있는데 훈민정음 원본은 한문 서적이다. 당연하게도 한글 창제 당시 한글은 문자로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존재하던 한문으로 한글을 해설해야 했기 때문이다.
원문과 해석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3.2. 언해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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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으로 기록된 해례본을 훈민정음을 이용해 옮긴(언해, 諺解) 책. 현재 전해지는 것 중 가장 오래된 판본은 1459년(세조 5년)에 발간된 《월인석보》의 권두에 수록된 것이다. 세종대왕의 서문, 본문(예의) 부분이 수록되어 있고, 해례본에 있는 제자해(製字解)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한문(+현토)+언해'의 방식으로 쓰여 있는데,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나랏말싸미…'도 언해본에 훈민정음으로 수록된 서문의 첫 구절이다. 흔히 훈민정음의 모습을 떠올릴 때 연상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월인석보 외의 언해본으로 2종(박승빈 본, 일본 궁내청 소장본)이 더 현전하지만 내용상의 차이는 없다.
다만 현대의 학자들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직후에도 훈민정음 언해본은 존재하였을 것이라 추측하여 왔다. 위 두 그림 중 아래 그림이 실제 《월인석보》에 실린 내용이고 원본의 전체를 보고 싶다면 여기로. 위의 그림은 창제 당시의 것으로 예상되는 모습을 국어사학회에서 디지털 기술로 '''재구성한 것'''이다. 관련 기사. 서울대 김주원 교수의 저서 《훈민정음》(2013)에도 관련 서술이 나온다. 두 그림을 비교해 보면 일단 제목이 《훈민정음》과 《세종어제 훈민정음》으로 각각 다르다. 또한 아래의 《월인석보》에 실린 언해 부분[6] 의 첫 네 줄은 같은 책 다른 대목의 언해 부분과 글자체나 글자 간격 등이 상당히 다르다. 전자가 뭔가 더 각진 글씨인 데다 글자를 욱여넣은 듯한 모습. 여타 대목에서는 한 줄에 작은 글자 16자가 들어가지만 첫 네 행에서만은 20자까지 들어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세조 시대에 《월인석보》가 발간되었으므로 선대 왕 세종이 직접 지었다는 뜻인 '세종어제'를 추가하는 과정에서 글자 수가 늘어났기에 목판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즉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그냥 《훈민정음》이라는 제목을 단 채로 위 그림과 같이 가지런한 언해가 붙었을 것이지만 세조 시대에 발간된 《월인석보》에 실린 《훈민정음》에는 '세종어제'를 추가하면서 언해 부분에도 글자를 추가로 욱여넣었던 것. 사실 '세종' 등의 묘호는 해당 임금의 사후에야 붙었으므로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 쓰인 책에 '세종어제'라는 말이 쓰였을 리 만무하다.
2012년 10월 9일 한글날에 네이버에서 디지타이징 버전으로 무료 공개한 버전은 국어사학회에서 재구한 위 버전이 아닌 《월인석보》에 실린 모습인 아래 버전이다. 보러 가기
3.3. 실록본
《훈민정음》은 《세종실록》에도 수록되었다. 해례본에는 실려 있는 '해례'와 '정인지 서문'을 제외한 '세종 서문', '본문(예의)'이 수록되어 있으며, 이를 실록본이라고 따로 칭하기도 한다.
4. 여담
- 훈민정음 해례본에 일종의 이스터 에그가 있다는 식의 설이 있다. 해례본의 아음(어금닛소리, 연구개음)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ㄱ을 설명하는 글자로 임금 君(군) 자를, ㄲ을 설명하는 글자로 아기룡 虯(규<뀨ᇢ) 자를, ㅋ을 설명하는 글자로 즐거울 快(쾌<쾡)자를, ㆁ을 설명하는 글자로 일 業(업<ᅌᅥᆸ) 자를 사용했는데 이를 합치면 君虯快業(군규쾌업), 곧 임금과 어린 용(세자 문종)이 즐겁게 일을 이루었다는 뜻이 된다는 것. KBS 역사저널 그날 관련 블로그
- 훈민정음에 나온 중국을 뜻하는 듕귁이 대륙의 기상을 지칭하는 단어로 인터넷에서 쓰이고 있다.
- 교육부 구 로고나 현용 통합 로고인 대한민국 정부 통합 상징의 글씨체인 '대한민국정부체' 역시 훈민정음의 서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 야민정음과 황정음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일부를 따온 것이다. 황정음은 자신과 오빠들의 이름 일부를 합치면 훈민정음이다. 황정음은 오빠가 둘인데 이들의 이름이 '황훈', '황민규'이다. 해당 항목 참조.
- 초·중·종성으로 분리되는 특유의 메커니즘 때문에 550년 후 한국인들의 고속 타이핑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일부 운동권에서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목적을 두고 "백성들을 더 악랄하게 착취하기 위해서였다!"라고 터무니없는 억측을 펴기도 하며[7] ,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도 세종대왕과 훈민정음에 대해 비슷한 이유로 폄하하는데, 이는 원래 뉴라이트가 1980년대에 활동했다가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극우로 전향한 좌파 운동권 인사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두 집단이 비슷한 주장을 하는 데에는 그들의 사상적 배경에 역사적 유물론 사고가 크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8]
5. 관련 문서
6. 대중매체에서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태종의 죽음으로 극이 끝난 관계로 직접 등장하지는 않았으나 충녕대군이 이미 문자 창제에 뜻을 가지고 당시 세자였던 양녕대군에게 '소제가 문자를 창제하면 형님의 치세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식으로 언급된다.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는 극 최후반부의 중요 사건으로 등장하는데, 실제 역사에서는 반대 상소 한 장 올리고 말았던 최만리가 유생들을 동원한다거나 수양대군을 꼬드겨 세종 대신 옹립하려 한다거나 명나라 환관들이 창제를 저지하기 위해 암약한다거나 장영실과 최해산이 기여한다거나[10] 하는 등 역사상 사실과 까마득히 거리가 먼 장면들이 수두룩하게 나왔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세종이 새 글자의 이름을 짓기 위해 고심하다가 民音訓正(민음훈정 : 백성의 소리를 새김이 마땅하다)을 쓴 후 아나그램을 시도하는 것으로 묘사했다. 같은 세계관의 육룡이 나르샤 최종화에 훈민정음 반포 직전 백성들에게 미리 유포하는 장면이 나온다. 분이는 이를 보고 삼봉이 끝내 만들지 못해 아쉬워했던, 백성과의 소통 수단이 생긴 것을 삼봉이 알면 정말 기뻐했을 것이라 한다. 그 와중 삼봉의 이름을 팔아 훈민정음 반포를 비난하는 사대부에게 나긋나긋 질책하는 장면이 백미.
그리고 개그콘서트 위대한 유산 코너의 황현희가 등장할 때마다 언해본을 읊는데 "이런 젼차로~니르고져"를 건너뛰어버리고 "홇배이셔도"를 많이 반복한다.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는 세종과 문종의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실제 기계로 고안해낸 장영실이 명나라의 기술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명나라 사신에 의해 압송되자 세종이 자신이 탈 장영실이 만든 안여(임금이 타는 가마)에 하자를 내어 안여가 뒤집히는 사고를 유발한다. 이후 명나라에 죄인 장영실을 직접 문초하겠다고 알리고 사면하려는데, 한글 창제를 반대하는 권신들이 문자 제작을 그만두면 장영실의 사면에 힘을 실어주겠다고 권한다. 결국 장영실은 자신이 훈민정음 반포의 걸림돌이 될 것을 알고 자청하여 곤장 100대를 맞은 이후 역사에서 모습을 감췄고 4년 후 훈민정음이 반포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