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르 보브찬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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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or "Ice Cold" Vovchanchyn
Ігор Ярославович Вовчанчин
이호르 야로슬라보비치 보우찬친
'''173cm의 단신으로 무체급 경기였던 90년대 MMA를 제패했던 초인. 전설적인 러시안 훅의 강타자.''' MMA계의 명예의 전당에 관한 떡밥이 나오면 초창기 파이터로써 절대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1. 전적
- 주요 승: 애디우손 리마, 로만 디쿠노프, 이고르 게르스, 폴 베어런스, 존 딕슨, 닉 뉴터(2), 개리 굿리지(2), 카를로스 바레토, 프란시스코 부에노, 알렉산더 오츠카, 쇼지 아키라, 사쿠라바 카즈시, 엔센 이노우에, 타카다 노부히코, 마크 커, 길버트 아이블, 발렌타인 오브레임, 밥 슈리버, 댄 보비쉬, 곤도 유키
- 주요 패: 안드레이 베세딘, 미하일 일류힌, 마크 콜먼, 트라 텔리그만, 마리오 스페히, 히스 헤링, 퀸튼 잭슨, 미르코 크로캅, 알리스타 오브레임, 나카무라 카즈히로
- 무승부: 레오나르도 카스텔로 브랑코
- 무효: 마크 커
1.1. 초창기 MMA
1995년 10월 UCMAL에 출전한 보브찬친은 2차전에서 세르게이 본다로비치를 18초만에 펀치로 KO시키며 결승에 진출하지만 안드레이 베세딘에게 니바로 패배하며 탈락한다. 한 달 후 11월에는 IAFC 토너먼트 3차전에서, 미하일 일류힌와 혈전을 벌인 끝에 그라운드에서 패배했다.[1]
하지만 일류히네전의 패배를 마지막으로 미친듯한 연승행진을 이어간다. 1996년 1월 MPS에서 우승하였고, 3월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DNRF 결승에서도 이고르 게르기스를 1분 30초만에 펀치로 압도하며 KO승을 따냈다. 이어 키예프에서 벌어진 IFC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한다. 특히 IFC 준결승에서는 190cm 140kg의 거구인 폴 베어런스를 화끈한 난타전으로 제압하며 주목을 받았다.
1997년 8월 IAFC 러시안 오픈 결승에서는 레슬러인 닉 뉴튼에게 승리하며 우승한다. 테이크다운을 허용하며 톱 포지션을 내줬지만 하위에서 박치기를 날려 탭을 받아냈다.[2] 1998년 WVC 5에서도 결승에서 닉 뉴튼을 만나 14초만에 니킥으로 승리하며 월드 발리투도 우승을 거머쥐었다.
1.2. PRIDE
1998년 10월에는 PRIDE에 진출, UFC 8 토너먼트 준우승자인 '빅 대디' 개리 굿리지와 맞붙었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체격차였으나 스탠딩 상황에서 연발 훅을 작렬시키며 빅 대디를 침몰시켜 레프리 스톱에 의한 TKO승을 거둔다. 이후 WVC 대회에서도 연승을 이어갔고 다시 돌아온 PRIDE 무대에서도 쇼지 아키라, 카를로스 베네토를 연파했다.
1999년 9월 PRIDE 7에서는 영장류 최강의 사나이이자 UFC 토너먼트 2관왕인 '스매싱 머신' 마크 커와 대결했다. 보브찬친은 수차례 커의 안면에 강력한 훅을 꽂아넣으며 경기를 주도해 갔다. 커는 시합을 그라운드로 끌고가 우세를 잡지만 보브찬친이 스윕에 성공하며 그라운드 니킥으로 커를 실신시켰다. 하지만 당시 PRIDE에서는 그라운드 니킥이 반칙이었기 때문에 경기는 무효로 처리되었다. 세계최강의 사나이로 불리우던 커는 비록 패배는 면했으나, 이 경기 이후로 안면타격 공포증을 보이며 급격한 기량의 하락을 보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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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의 PRIDE 8에서는 '치코' 프란시스코 부에노를 1분만에 선 채로 실신시켜버렸다. 통나무가 쓰러지듯 정면을 향해 고꾸라지는 부에노의 모습을 관중들을 경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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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5월에 열린 PRIDE 무차별급 그랑프리에서는 개리 굿리지와 사쿠라바 카즈시를 연파하며 결승에 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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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승에서 UFC 헤비급 초대 챔피언 '해머' 마크 콜먼에게 석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1995년 이래 23경기만의 패배였다. 당시 보브찬친은 굿리지와 사쿠라바를 상대로 접전을 치른 후 올라왔으나, 콜먼은 준결승에서 만난 후지타가 무릎부상으로 2초만에 기권한 탓에 체력을 온전할 수 있었다.
비록 콜먼에게 패했으나 엔센 이노우에와 타카다 노부히코를 연파했고, 다시 만난 마크 커는 판정으로 꺾으며 끝내지 못했던 승부를 결정지었다. 트라 텔리그만[3] 과 마리오 스페히에게 패하면서 전성기가 지났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으나 길버트 아이블, 발렌타임 오브레임에게 승리하며 여전히 헤비급의 강호임을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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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센 이노우에는 이고르와의 정면대결을 택했고, 링 위에서 장렬하게 산화했다.
하지만 노화에 의해 신체능력이 저하되고 무리한 경기일정에 부상이 쌓이게 되면서 하락세를 걷게 된다. 2002년 2월 '텍사스 광마' 히스 헤링에게 패한 것을 시작으로 9월에는 다시 '람페이지' 퀸튼 잭슨을 상대로 그의 우월한 신체조건과 타격센스에 압도당하며 패했고 2003년 8월 미르코 크로캅에게 하이킥으로 패배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PRIDE 미들급(UFC 라이트헤비급)으로의 전향을 결심한 보브찬친은 타카하시 카즈오와 곤도 유키를 쓰러뜨리며 성공적으로 미들급에 안착,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당시 PRIDE 미들급 챔피언이었던 반달레이 실바의 유력한 대항마로 거론되기도 했으나 2005년 6월 알리스타 오브레임에게 초살 길로틴패를 당하며 기세가 한풀 꺾이게 된다. 2005년 8월 당시 떠오르던 일본의 에이스 나카무라 카즈히로에게 판정패하게 된다.
나카무라전 이후로는 사실상 은퇴한 상태.
2. 파이팅 스타일
전설적인 '러시안 훅'으로 유명한 타격가. [4] 2009년 INSIDE MMA에서 선정한 'MMA 사상 최고의 타격가'에서 6위에 랭크될 정도의, MMA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스트라이커이다.[5]
17세에 복싱을 시작했는데 마침 우크라이나에 킥복싱 붐이 일어서 킥복싱을 수련했고 각종 대회에서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다.
90년대 초창기 MMA는 그래플러들의 독무대였다. 그레이시 가문의 브라질리안 주짓수를 필두로 유도, 레슬링 등 그래플러들이 스트라이커를 압도하고 있었던 당시, 보브찬친의 존재는 이색적이었다. 게다가 '''173cm의 단신으로 헤비급의 거구들을 날려버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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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왜소한 체격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시간이 갈수록 진화하는 MMA의 흐름을 뒤로 하고 사라져갔다.
3. 기타
무규칙 룰에서도 많은 시합을 했는데 글러브를 착용하지 않고 싸웠기 때문에 만성적인 부상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한다. 오른손에 나사를 3개나 박았고 왼손에도 1개 박았다. 나중에는 펀치를 날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졌다고 회고했다.
허나 펀치력은 마크 헌트를 능가할 정도로 엄청났는데 수많은 강타자와 싸웠던 게리 굿리지가 싸워본 상대들 중 가장 펀치가 강했고 쇠몽둥이로 맞는 느낌이었다고 했으며 사쿠라바 카즈시 역시 프라이팬으로 맞는 느낌이었다고. 그리고 엔센 이노우에는 트럭에 치인 거 같다고 표현했으며 미르코 크로캅 역시 승리하긴 했지만 펀치 교전에서 얼굴에 펀치가 스쳤는데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글러브 없는 격투기 단체에서도 활약을 했다는 점이 특이할 만하다. '''글러브는 타격가에게 날개를 달아준 도구'''였다. 흔히 글러브를 상대를 보호해주는 장비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더 큰 의의는 '''때리는 사람의 주먹 골절의 위험을 줄여준다'''는 데 있다. 주먹은 생각보다 엄청나게 잘 부러지고, 의외로 꽉 쥐기도 어렵다. 단순히 밴디지만 제대로 해도 주먹은 훨씬 안정적이고 튼튼해지며, 글러브는 더하다. 특히 보브찬친처럼 무지막지하게 체중을 실어서 날려대는 펀치는 상대의 단단한 두개골에 맞으면 약한 주먹 뼈가 버티지 못하고 부러질 위험이 있기에 [6] 마음 놓고 주먹을 날려대기가 쉽지 않다.
실제 핵펀치로 유명한 마이크 타이슨도 다른 복서와 시비가 붙어 싸우다가 주먹이 골절되는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 즉, 타이슨이 마음 놓고 핵펀치를 난사할 수 있었던 데에는 글러브가 한몫했던 것이다. 프라이드에서 '얼음 파운딩'으로 유명했던 효도르도 파운딩을 체중을 실어서 강하게 날렸었는데 글러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주먹부상에 시달렸었다. 즉, 보브찬친은 글러브가 없으면 페널티를 안고 싸우는 상황이었음에도 러시안 훅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이름을 날려 프라이드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파이터는 언제 어디서든 싸울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에 충실했던 파이터다. 글러브 없이도 '공포의 러시안 훅'을 유감없이 날려대며 '러시안 훅의 황태자'로서의 명성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UFC 우승자인 마크 커와 라이벌 플래그가 있었다. 미국 vs 구소련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대결에서, 일본의 팬들은 그에게 '영장류 최강'에 대항하는 '북의 최종병기(北の最終兵器)'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커는 보브찬친과의 경기 후 안면타격 공포증 증세를 보이며 급속하게 몰락한다. 물론 커의 몰락은 금지약물복용의 부작용에 의한 측면도 크다. 실제 K-1 챔피언 출신인 마크헌트와 UFC에서 5라운드 내내 격렬하게 난타전을 벌이며 최고의 경기로 극찬을 받았던 안토니오 실바 역시 약물적발 이후에 맷집이 급속도로 약해지며 KO패를 몇번 당했는데, 마크헌트와의 재대결에서는 1차천의 혈전이 무색하게 뒷통수를 보이며 도망가는 등 심한 안면타격 공포증 증세를 보이며 무기력하게 KO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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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심성이 착한 선수로 알려져 있는데, PRIDE 13에서 트라 텔리그만에게 로블로를 날린 후에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대개의 경우 기세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침을 떼는 경우가 많지만 보브찬친은 주위 사람들이 민망해질 정도로 텔리그만의 상태를 신경썼다고 한다.
러시아의 에밀리아넨코 효도르도 보브찬친이 훌륭한 선수이며 인격적으로도 그를 존경한다고 밝혔다. 레드데빌에서 함께 훈련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젊은 시절에는 매우 난폭한 성격이어서 그가 살던 마을에는 '''그가 나타난 것을 알리는 종'''이 있었다고 하지만, PRIDE 시절의 인터뷰에서 밝힌 사실인데 이후에 가진 다른 인터뷰에서 이를 부정했다.[7] 뭐 프라이드가 사이타마 프로레스라는 우스개소리가 나올정도로 워크랑 스토리 만들기 놀이를 좋아했으니 프라이드때 저 인터뷰와 스토리는 일종의 기믹일 가능성이 높다. 조금만 생각하면 만화틱한 기믹임을 알 수 있는데, 무슨 원시 미개국가도 아니고 우크라이나도 공권력이 존재하는 법치국가인데 '''젊은 힘 센 양아치 한명이 난폭하게 날뛰면 감옥에 갈 뿐이다.''' 헌데 무슨 마을에 그가 나타날 때 울리는 종(...)을 설치하여 다 도망간다는 것인지... 무슨 보브찬친이 바야바도 아니고 그냥 그만큼 무섭다는 기믹 정도로 받아들이자. 그리고 가끔 경기 중에 난폭해지는 선수들이 있긴 한데, 보브찬친은 경기 중에도 반칙이 나오면 정중하게 사과하고 경기 시합 전후에 항상 공손하게 예의를 갖추는 등 기본적인 인성 자체는 잘 갖췄다는 걸 알 수 있다.
격투기를 해서 번 돈으로 고향에 작은 식당을 냈다. 이름은 딸과 같은 '즐라타'.
한국에서 루저의 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맷 휴즈, 션 셔크등과 함께(...) 화제에 오르기도 했었다. 특히 보브찬친은 루저 신분으로 수많은 위너들을 압살했다는 점에서 더욱 부각되었다. 냉정하게 말해 휴즈나 셔크는 타고난 키에 맞는 체급에서 선수생활을 했지만, 보브찬친은 미들급이나 라이트급은 고사하고 페더급에서도 크다고 보기 힘든 키로 무제한급 강자였으니..
[1] 일류힌은 턱으로 보브찬친의 눈을 비벼서 탭을 받아냈다.[2] 역시 무규칙 룰이기에 가능했던 플레이다.[3] 실수로 상대에게 로블로를 날렸는데 오히려 본인이 흐름을 잃고 판정패했다.[4] 러시아 국적이라서 러시안 훅이 아니고, 팔이 크게 뻗어 나오면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훅을 러시안 훅이라고 부른다. 이고르 보브찬친의 주특기로 유명하다.[5] 참고로 1위는 이사람[6] 손은 많은 뼈가 정교하게 결합된 구조여서 충격에 약한 반면, 두개골은 중요한 뇌를 보호해야 하기에 비교도 안되게 단단하다. 체중을 실은 숙련된 펀치를 날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도, 성인 남성들이 홧김에 벽을 쳤다가 손이 부러지거나 금이 가는 경우는 흔하다. 반면 두개골은 실신할 정도로 세게 부딪혀도 멀쩡한 경우가 대부분이다.[7] 그냥 농담이었다고 한다. 다만 자기가 살던 마을 중앙에 종이 있었던 건 사실이라고 한다. 사실을 적절하게 과장해서 만들어낸 농담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