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예프

 

1. 우크라이나의 수도
1.1. 역사
1.2. 교통
1.3. 키예프 관광
1.4. 여담
2. 우크라이나의 주
3. 소련 해군의 군함
3.1. 항공 중순양함
3.2. 구축함


1.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 (우크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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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어 : Київ (Kijiv, 키이우)
러시아어 : Ки́ев (Kiyev, 키예프)
영어 : Kyiv(공식 표기), Kiev(민간 표기)

1.1.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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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해로 연결되는 드네프르 강 양 어귀에 존재한다.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로, '루스 도시들의 어머니'라고도 불린다. 키예프 공국의 수도였으며, 드네프르강을 이용, 흑해와 발트해를 연결한 무역으로 번창하였다. 우크라이나/역사 항목 참조.
멸망하기 전까지 당시 동슬라브 지역(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벨라루스 일대)에 있었던 수많은 공국들의 형식적인 수장 노릇을 했으며, 류리크 가문의 분화가 발생하여 공국들의 분열이 발생하기 전까지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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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던 키예프 공국이었지만, 13세기 초인 1200~1230년엔 루스 공국들 간의 전쟁으로 인해 수차례 점령되고 약탈당했다. 그나마 명맥은 유지했으나 1240년에 몽골 제국의 침공이 이어지고 말았다.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어 폐허로 변했다.
결국 이 일로 더 북쪽에 있었던 노브고로드 공국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에 주도권을 내주게 되었고, 이후 블라디미르-수즈달에서 갈라져나온 모스크바 대공국이 키예프 계열 공국들을 완전히 정리하면서 러시아 지역의 역사는 키예프 대신 모스크바 중심으로 흘러가게 된다.
14세기 리투아니아 대공국이 킵차크 칸국의 지배로부터 키예프 시를 해방시킨 이후로 15세기까지 리투아니아의 영토였으나 타타르족의 계속된 침략으로 회복이 늦어졌다. 16세기 루블린 조약으로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연방 국가로 합쳐지는 와중에 키예프는 폴란드 왕국의 도시가 되었다. 코사크들이 우크라이나를 크림 타타르족으로 방어하기 시작하자 키예프 시의 인구가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다. 한동안 키예프 시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요새 도시 중 하나에 불과했으나 코사크 헤트만 페트로 사하이다니치의 지도하에 다시금 부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키예프 시는 인쇄소를 적극 운영하고 성직자들의 부패를 일소하고 기강을 확립하면서 우크라이나 문화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코사크 지도자 보흐단 흐멜니츠키가 봉기한 이후(대홍수 항목 참조) 키예프는 러시아 제국의 영토가 되었으며, 19세기 말에는 러시아 산업혁명의 한 중심지가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중요한 도시가 되었으며, 1934년에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수도가 하리코프에서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 기간 중에 인구는 급속도로 팽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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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도시는 크게 파괴되었으나 전후 빠르게 복구하여 소련 제3의 대도시가 되었다. 녹지가 많아서 소련에서 가장 푸른 도시라는 명성도 가지고 있었다. 후에 소련에서는 1982년 키예프 1500주년기념메달을 만들었다.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현장이 키예프에서 불과 100km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키예프는 체르노빌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였다. 체르노빌 폭발 사고 당시 2차 증기 폭발로 원전 바닥이 완전히 녹아버릴 위험성이 제기되었는데, 그렇게 되면 키예프의 상수원인 드네프르 강은 그대로 방사능 오염이 되기 때문에 도시 전체를 고스란히 버려야 할 정도의 헬게이트가 열릴 뻔했으나 당시 체르노빌 발전소 사고 현장에서 3명이 지하로 내려가 배수밸브를 개장하는데 성공하는 영웅적인 행동으로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운좋게도 사고 이후 바람이 며칠간 거의 줄기차게 남풍이 불었기 때문에 가까운 거리치고는 방사능 낙진의 피해가 최소화되었다. 당시 사고로 인한 방사능 피폭 피해는 소련과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 정부에 의해 완전히 은폐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다. 참고로 사고 며칠 후 키예프 축제가 있었는데, 당시 우크라이나 서기장은 축제를 취소하기는 커녕 강행했고 이날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많은 양의 방사능에 피폭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86년 키예프 5월 축제와 관련된 모든 사진 기록은 우크라이나 정부에 의해 완전 말소되었고, 당시 우크라이나 서기장은 훗날 자살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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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말부터 2014년 초까지 이곳을 중심으로 대규모 친서방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 친러 정권을 전복시킨 유로마이단이 일어났다.

1.2. 교통


시내 교통비는 비싸봐야 한화 약 250원 정도로 매우 저렴한 편이다.
  • 도시철도 : 키예프 메트로. 지하철은 3개 노선이 깔려있다. 과거 소련에서 중요한 노선이기도 했고 연식도 오래되었다.
  • 기타 시내교통 : 경전철,노면전차, 버스, 미니버스, 트롤리버스
  • 철도 : 키예프 역에서 키옙스키 역, 몰도바, 폴란드, 헝가리 등 주변 각국으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다. 하지만 최소 16시간 이상은 가야하는건 함정. 그렇기 때문에 기차보다 비행기를 선호하는 추세이다.[2] 기차는 일반열차와 고속 급행열차(인터시티[3])로 나뉘는데 일반기차는 1,2,3등석이 있고 장거리 열차는 모두 침대칸이다.
  • 공항 : 보리스필 국제공항과 키예프 줄리아니 국제공항이 있다. 보리스필 국제공항은 키예프 동쪽 29km 지점에 있는 단 러시아 노선은 상호 제재로 단항했고 에어 아스타나, 터키항공, LOT 폴란드 항공 등을 이용하여 들어와야 한다. 키예프 시내에 있는 키예프 줄리아니 국제공항은 유럽 서부로 통하는 공항이다.

1.3. 키예프 관광


박물관을 비롯한 관광 시설 상당수가 성의없이 방치되어 있는데, 박물관이 입장료가 한화로 200~400원 정도로 아주 싸서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설명이나 볼 게 진짜 아무것도 없다던지 하는 일이 다반사다. 우크라이나의 관광 인프라는 거의 흑해 해변에 몰빵된 상태이기 때문에 관광을 목적으로 키예프를 방문했다면 실망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위 단락에서 알 수 있듯 워낙 역사가 깊은 고도기도 해서 관광 인프라가 부실할 뿐 관광자원은 상당히 많다. 다른 관광지도 그렇겠지만 여기는 안내가 부실하다보니 더욱더 알면 알수록 볼만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거대한 어머니상은 실제로 올라가볼 수 있다.
  • 키예프 동굴 수도원(페체르스크 수도원)
지하에 개미집처럼 깊고 복잡한 터널을 따라서 만들어진 수도원. 성인들의 실제 미라가 다수 안치돼 있다.
  • 성 소피아 성당
이름이 같은 터키의 하기아 소피아와는 다른 성당. 1037년 키예프 대공국의 야로슬라브 1세 대공이 비잔틴 양식으로 만들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 우크라이나 국립 체르노빌 박물관
멀지 않은 체르노빌에 직접 가 볼 수도 있지만 우크라이나 시내에서도 체르노빌 관련 전시를 볼 수 있다.
  • 클럽 Closer
키예프 시내 외곽에 있는 클럽 겸 복합 예술 문화 공간. 전자음악테크노 씬에서 주목받으며 떠올랐다. 내부에 레스토랑, 레코드 스토어가 있다.

1.4. 여담


이곳 지명을 딴 키예프급 항공모함이 있다.
이곳에 소재한 축구팀 디나모 키예프는 우크라이나의 국민 축구팀이자, 구소련 전체를 대표할 만한 명문 구단이다.
러시안 레일로드의 세 주요 노선 중 하나는 모스크바와 이 도시를 연결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생활 물가가 월등히 비싼 편이다. 이 점은 다른 나라도 별반 다를 바가 없지만,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으니... 다른 지역에서 키예프로 상경 온 젊은 대학생들이 우크라이나의 열악한 경제 사정상 심각한 생활고를 겪는다. 우크라이나 전반의 소득수준은 떨어지지만 키예프에서는 집값이 왕창 비싸고 월세비도 높기때문에 돈이 많은 불로소득자들이 많은데 키예프 시내에 외국인들과 부유층들의 화려한 생활, 하루 숙박비가 우크라이나 평균 월급에 해당하는 호화 호텔들이 즐비한 구시가지, 널려있는 고급승용차를 보면서 이들이 느끼는 우울감이나 소외감은 우리나라의 그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고학력자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대학생들 중 상당수가 범죄 혹은 매춘의 길로 빠지는 바람에,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하철에 사람이 별로 없는 칸에서 우크라이나 남성 한 명이 유창한 영어로 달러가 가득 들어있는 지갑이 떨어져있는 걸 발견했다며 같이 나누자고 제안하는 모습을 정말 흔하게 볼 수 있는데[4][5], 이 때 러시아어로 튕기면 금방 도망간다. 러시아어를 못하고 영어만 쓰는 외국인들이 범죄자들의 주 표적이다. 기차역의 물건 보관함은 비밀번호 설정이 있으나 마나... 기차역 물품보관함 직원들과 절도범들이 짜고서 비밀번호를 푼 뒤 비싼 물건을 훔쳐가고 잡지도 못하는 일이 태반이다.
2011년 8월 8일 이후부터 이상 소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코끼리가 울부짖는 듯한 금속성 소음인데, 스펙트럼 분석을 해보면 절대 동물의 발생 기관에서 발생하는 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Strange sound 항목 참조. 소리는 여기에서 확인 가능하다.
소음에 관한 추측은 몇가지가 나와있는 상태인데 자세하지는 않지만 여기를 참고하자. 항목을 보면 과학자들이 해명한 것도 나오지만 한국에선 워낙 마이너한 이슈라 관심이 없다. 한국에서도 대구광역시에서 2011년 4월 경 관측되었고 그 외 서울 근교인 성남시, 이천시 등에서도 들렸다.
헤비급 복싱 챔피언 선수로 유명했던 비탈리 클리츠코가 현재 키예프 시의 시장으로 당선되어 공직에 있으며, 2019년부터 재선에 도전한다고 한다. 그리고, 시장으로서의 능력 역시 인정받으며 우크라이나의 차기 대권주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2. 우크라이나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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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예프 주'''
Київська область
주도
키예프 시
인구
1,725,082 (2018)
면적
26,517 km2
인구밀도
61.32명/㎢
시간대
UTC+2

대한민국으로 치면 경기도에 해당된다. 그 유명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이 주의 북쪽 끝에 위치하며. 키예프 시로부터는 110km 떨어져 있다.

3. 소련 해군의 군함



3.1. 항공 중순양함


키예프급 항공 중순양함 참조.

3.2. 구축함


키예프급 구축함 참조.

[1] 당시 우크라이나 SSR 1서기 셰르비츠키는 1990년 자연사했다.[2] 더 익스트림한 여행을 원한다면 장거리 버스도 있다. 하지만 최소 누워서 가는 침대칸 기차보다 더욱 힘들다.[3] 인터시티 열차는 한국 현대로템으로부터 수입한 열차이다. [4] 어떻게 이런 뻔한 사기에 사람들이 걸리냐고 의아해할수도 있는데, 키예프 시에 성매매 원정 관광온 외국인들이 바가지 뒤집어쓰고 돈이 거덜난 뒤에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낚이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5] 요즘은 얘네들이 터키나 러시아까지 원정을 왔는지 이스탄불, 모스크바에서도 볼 수 있다. 참고로 저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면 어디선가 경찰복이나 경찰증명서(당연히 가짜다)를 가진 패거리가 와서 "어디서 지갑이 없어졌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당신 그 지갑이다. 검사좀 해야겠으니 돈 다 꺼내라!" 라고 강압적으로돈과 피해자 지갑속의 돈까지 꺼내게 한 다음에 스리슬쩍 갖고 빈지갑만 돌려주는 수법에 당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