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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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상은은 아버지 이충우와 어머니 채태원 사이에서 태어난 3형제 중 장남이며 이명박의 큰형이다. 둘째동생이 이상득이다. 사실은 이명박이 막내가 아니라 '이상필'이라는 막내 남동생이 더 있었는데 어린 나이였던 한국전쟁때 누나 이귀애[2]와 함께 사고로 죽었다고 한다. 이 외에 자매로는 첫째딸인 이상은의 누나 '이귀선'[3]과 이명박의 동생 '이말분'[4]이 있다고 한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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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이상득처럼, 이상은도 90을 바라보는 옛날 사람치고 흔치 않게 키와 체격이 동나이대에서 상당히 크며[7], 얼굴이 작고 어깨가 떡벌어진 체형이다.[8] 대신 방송언론에 공식적으로 짧게 나왔던 목소리나 말투는 이명박과 흡사한 편이다. [9] 80살 당시 BBK와 다스와 관련된 내곡동 특검을 할때 특검에 조사받으러 출석한 적이 있다.

2. 다스 실소유주 논란


1933년에 태어나, 경상북도 포항시동지상고를 졸업하였다는 이력 외에 젊었을 때 대학 진학 여부나 직업 등 행적에 대해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이후 중년이 된 40대 시절인 70년대부터 경기도 이천에서 목장을 운영하기도 하고, 제주도 서귀포에서 1800평 규모의 감귤 농장을 하기도 하는 등 농업쪽에 종사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87년 대부기공(DAS[10])의 경영자가 되면서 이 직업을 30년간 쭉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도의 감귤 농장 땅은 이명박이 대통령이 될때까지도 팔지 않고[11] 이상은이 가지고 있었으며, 농사도 이상은이 직접 한게 아니라 농장관리인 박모씨에게 계속 관리비 월급을 50만원씩 주면서 20년 넘게 농사를 시켰다고 하는데, 2000년대초부터 과수원을 가꾸는 일은 그만두게 하고 그냥 땅 관리만 맡겼다고 한다..
그러나 이 관리비 월급이 '다스 실소유주 논란' 을 증폭시키는 요인 중 하나로, 농장 관리비를 농장 시작할때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거의 20년동안 이상은 본인이 안 주고[12], 친동생인 이상득이 내줬다고 한다.[13] 그러나 BBK 주가조작 사건에서 알려졌다시피 이상은은 90년대는 커녕 80년대 중반인 1985년 사돈(이명박의 처남)인 김재정과 함께 도곡동에 1500평이 넘는 땅을 14억6천만원[14]에 샀었다. '''50만원도 본인이 안 내고''' 동생이 내 주던 판국에 그런 엄청난 금액의 땅을 샀다는 것에서 의혹이 짙으며 그런 상황에 몇년 안 되어 대부기공(다스)까지 김재정과 세웠다는 데서 '''땅 사고 회사 세울 그 돈이 어디서 났는지''' 의혹을 지우기 어렵다.
주진우기자가 이상은의 운전기사였던 김종백을 취재한 바로는 '이명박 전대통령 못지 않은 짠돌이'라고 하는데, 운전기사 김종백과 식당에 가서 '''국밥 한 그릇'''만을 시키고 공기밥을 추가 한 다음 운전기사보고는 공기밥만 줬다고 했다고 한다. 당시 김종백은 서운함과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 외에 2만원짜리 침술원에 가서 돈없는 노인인 척 침술사를 속이고 수년간 1만원에 침을 맞기도 하는 등 뭔가 상당히 천박한 일화들이 다스 이슈 당시 많은 언론의 탐사취재에 의해 보도되었다.
조선일보가 과거에 보도한 바로는 이명박이 가장 어려워하는 형이라, 대통령에 나갈때 이상은에게 '형님 재산을 좀 공개해 주셔야겠다'고 하자 "니 대통령 나가는데 왜 내 재산을 공개해!"라면서 신경질을 내서, 깨갱했다고 하는데 상술된 경제적 상황을 보면 그게 진짜일지 진실은 알 수 없다. 게다가 김종백씨가 밝힌 바로는 이상은이 바지회장이었기 때문에 이명박의 부하이자 이상은의 자식뻘인 다스사장 김성우에게 심한 모욕을 당한 일도 있었다고 했으니, 조선일보의 보도는 믿기 어렵다.
당시 한달에 다스 법인카드 400만원 이하를 술값으로 쓰도록 '''사장인 김성우가 회장인 이상은에게 요구하여''' 합의했는데 이상은이 특정달에 400만원을 넘게 쓰자, '''사장실로 이상은을 불러 면전에다가 카드명세서를 집어던지며 '400만원 넘게 쓰지 말라고 했잖냐'며 크게 소리를 질렀고''', 이상은의 운전기사 겸 실질비서였던 김종백도 이상은을 따라갔다가 놀랐다고 한다. 근데 이상은은 별말도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김종백이 처음 이상은 운전기사로 고용되자마자 '''김성우가 부모뻘 회장인 이상은을 직원들 다 보는데서 개무시하길래''' 둘만 있을때 '그래도 회장님인데 사장님이 너무하시는거 아니냐'고 했다가, '니까짓게 뭘 안다고 까부냐'며 뺨까지 맞을뻔 했다고 한다. 다행히(?) 김성우가 쌍욕만 계속 하고 때리려던 건 참아서 맞지는 않았다.
이명박의 차명재산 의혹이 제기된 회사인, 자동차 부품 회사 다스(DAS)의 회장이다. 2010년 전까지 DAS의 지분 대다수를 이명박의 처남인 김재정과 함께 투톱급으로 가지고 있었고, 이상은은 2대주주였으나[15], 2010년 2월 김재정의 사망 후 그의 부인 권영미에게 상속되는 과정에서 상속세 문제로 김재정의 부인 지분이 이상은보다 상당히 적게 되어 이상은이 최대주주로 등극하였고, 현재 홀로 40% 이상의 압도적인 지분을 가지고 있다.
김재정의 부인에게 가지 않은 나머지 지분은 상속세를 주식으로 납부하고[16], 재단에 기부도 하는 등의 복잡한 과정을 통해 기획재정부청계재단에게 넘어갔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경매로 팔아서 현금화하여 국고에 넣을 예정이었으나, 가격문제로 수년동안 전혀 안 팔리고 있다. '''간단히 말해 김재정의 상속세로 국고에 들어가야 할 돈을 정부가 못 구해서 못 넣고 있다.''' 사실 김재정 소유 부동산들이 어느 정도 있었으나 거의 다 근저당이나 채무문제가, 그것도 얍삽하게 억대 땅에 몇백만원 어치씩 걸려 있어서 부동산으로 상속세 물납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청계재단은 참고로 이명박이 출자하여 만든 재단이다.

3. 여담


  •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그의 사택이 나왔는데 일본 이름인 오다 요시타카(小田好孝)라고 쓰인 문패가 걸려있었다.# 옛 운전기사인 김종백의 말에 따르면 내곡동 특검 압수수색 때 시간을 벌기 위해 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동생 이명박이 오사카에서 살던 시절의 일본 이름이 츠키야마 아키히로(月山明博)였던 것을 보면 오다 요시타카라는 이름은 실제로 썼던 이름은 아니고 그냥 시간을 버는 용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1] 당시 2012년 내곡동 특검에 출석하던 때의 모습이다.[2] 이명박의 누나면서 이상은, 이상득의 동생.[3] 이명박이 대통령 재임 중이던 2010년 1월말에 사망했다. 그리고 약 일주일 뒤인 2월초에 이명박의 처남 김재정도 심장병으로 인한 1년간의 투병끝에 사망했다.[4] 훗날 이름을 '이윤진'으로 개명하고, 선교사가 되어 중국랴오닝성 선양시에서 '생명길신학교'라는 학교를 세우고 학장이 되어 선교사업을 한다고 한다. 주로 조선족들이 축이 되어 이뤄지는 선교사업인 듯. 또한 선양은 만주지방전체에서 하얼빈, 장춘, 푸순 등과 함께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대도시라, 만주전체 인구밀도가 높지 않음에도 선양 자체의 인구는 꽤 많은 편이다. 조선족이 가장 많은 지역이야 지린성연변이지만, 길림성 옆의 랴오닝성헤이룽장성에도 조선족이 꽤 많다.(만주에 있는 길림성, 요녕성, 흑룡강성을 동북3성이라 부르며, 중국에선 이 지역들이 조선족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5] 총 7남매(4남3녀) 중 5남매(3남2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생존했고, 첫째 누나 이귀선의 사망 이후로는 3남1녀가 생존해 있다. (이귀선)-이상은-이상득-(이귀애)-이명박-이윤진-(이상필) 순.[6] 50대 후반의 이상은. 오른쪽의 체격 큰 사람이 이상은이다. 왼쪽의 일본사람은 초기 다스의 지분을 가지고 다스의 기술을 지원하던 후지기공의 회장이다.[7] 동생 이상득도 형 이상은처럼 키가 180이 넘는데, 3형제 중 이명박만 빼고 두 사람은 체격이 크다. 물론 이명박도 1940년대생 치고 큰편이지만 두 형들이 워낙 압도적으로 커서 체격 차이가 많이 난다. 정치인 시절 이상득과 이명박이 함께 있을때 찍혔던 사진들을 봐도 키와 체격 차이가 상당히 크다.[8] 당장 맨 위의 사진을 봐도 어깨가 벌어졌고 뒤에 있는 사람과 머리크기가 상당히 차이가 난다. 물론 원근의 문제가 있겠지만[9] 물론 이상득까지 세형제가 말투는 같은 사투리치고도 상당히 비슷하고 음색도 큰 차이는 안 나지만 이명박 특유의 말 뒷부분을 끄는 듯하면서도 살짝 쉰 듯한 목소리는 이상은이 더 가깝다. 이상득은 끄는 투가 둘에 비해 약하며 삼형제 중에서 가장 큰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경상도 남성의 사투리치고 나긋나긋한 느낌이 꽤 느껴지는 레어한 말투라서 두 사람과 다르다. [10] 훗날 대부기공을 다스(DAS)로 이름을 바꾼다.[11] 땅값도 엄청나게 올라서, 1977년 당시 땅을 살때는 약 1800만원에 샀는데 30년 뒤인 2007~2008년에는 거의 30배가 되어 5억이 넘는 땅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땅값이 오른 이유는 근처에 서귀포 중문단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12] 90년대 중반부터는 언급이 없으니 그때부터 이상은 본인이 준 걸로 보인다.[13] 이 논란이 나오던 때가 이명박의 대통령 후보 시절인데, 당시 국회 부의장 이상득의 비서실장이던 장다사로는 기자의 질문에 '이상득 부의장님의 형님(이상은)이 당시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어서 더 힘드실 때였다고 한다. 그런 형님이 힘들때는 동생이 돕는게 우애라서 그러신 것이다.'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그러나 그들의 부친 이충우씨는 1981년에 작고했다. 따라서 부친 생존 시에는 부친 부양비 차원에서 돈을 주었더라도, 부친 사망 후 무려 15년이나 돈을 계속 준 것은 납득하기 힘든 설명이다. 참고로 장다사로는 이상득의 심복으로, 이상득이 구속된 이후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 기획관을 지내는 등 이명박과도 관계가 깊다.[14] 그리고 이후 이 땅의 일부는 10여년 뒤 팔려서 BBK 투자금으로 넘어간다.[15] 원래 김재정이 2% 이상 더 가지고 있어서 김재정이 최대 주주였다.[16] 이를 '물납'이라고 한다. 그러나 세금물납은 보통 부동산으로 하게 되어 있는데, 주식증권으로 하는 방식은 정부에 허가받아 하기가 실제로는 매우 까다로운 상속세 납부방법이다. 게다가 가치가 오를 수도, 내릴 수도 있는 주식의 특성상 주는쪽이나 받는쪽이나 꺼림칙하기 마련이라 실제로 상속세로 납부하는 케이스는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