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 치사 사건

 



1. 개요
2. 상세
3. 배경
4. 관련 문서
5. 외부링크


1. 개요


1997년 6월 4일 한총련 제5기 출범식 행사장으로 예정돼 있던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에서 한총련 간부들이 근방을 배회하고 있던 선반기능공 이석(李石, 당시 23세) 씨를 경찰의 프락치로 지목해서 장시간의 폭행 끝에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운동권, 특히 NLPDR이 대중의 지지를 잃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명칭에 있어서 좀 애매하긴 한데, '치사'라는 것은 '-로 인해서 죽음에 이르렀다'라는 의미다. 문제는 상해치사인가 폭행치사인가 하는 부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혹은 이 사건 가해자들 중에는 폭행치사죄로 처벌받은 사람과 상해치사죄로 처벌받은 사람이 섞여 있을 수 있다. 참고로 폭행치사와 상해치사의 차이를 간단히 설명하면, 어떤 고의를 가지고 있었는가에 따른 차이다. 즉 '그냥 때리기만 하려는 의도'로 폭력을 가하였는데, 그 결과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게 됐다면 폭행치사이고, '상해를 입힐 의도로, 쉽게 말해 어디 한 곳 분질러주려는 의도'로 폭력을 가하였데,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게 됐다면 상해치사다. 압도적으로 상해치사죄가 죄가 무겁다. 반면 처음부터 죽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냥 살인죄에 해당한다. 그 외에 실질적 내용을 고려하면 고문치사라는 표현도 고려할 수 있겠으나, 이 경우 형법 제125조가 규정하고 있는 죄(가혹행위죄), 즉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처럼 국가에 의해서 행해진 고문처럼 보이는 문제가 있어서 이 사건에 쓰기에는 적절치 않다. 또한 프락치 치사사건으로 표현하기도 하지만, 이러면 진짜 피해자가 프락치였던 것으로 오인할 소지가 있어서 역시 사용례가 드물다. 그래서 치사 사건으로 끝난 것이다. 언론에서 이 사건을 '이석 치사 사건'이라고 칭한 예,원본 기사

2. 상세



6월 3일 18시께부터 피해자를 경찰 프락치로 몰아 4일 09시까지 폭행, 고문을 한 뒤 대책회의를 가지고 조직적으로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고 했다. 폭행중엔 침낭으로 감싸 물을 뿌리며 경찰 진압봉으로 때려 폭행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했다. 한양대 투쟁국장 배주환은 의식을 잃어가는 피해자의 코에 최루분말을 뿌리는 등 잔혹한 고문행위를 했다. 사수대원들이 지나치다고 말리자 한총련 조국통일위원장[1] 이준구는 '''"지금은 전쟁상황이다. 인륜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며 고문행위를 독려했다.''' 피해자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내상과 과다출혈로 사망한 뒤였다.
주요 관련자는 다음과 같다.
  • 길소연(22, 한양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 징역 7년형
  • 권순욱(24, 건국대학교 2학년) - 징역 7년형
  • 이호준(24, 건국대학교 3학년) - 징역 5년형
  • 정용욱(20, 건국대학교 1학년) - 징역 3년형
  • 정욱열(19, 건국대학교 1학년, "황소대원"[2]) - 장기 1년 6월, 단기 1년
  • 이모씨(19, 건국대학교 2학년, "황소대원") - 장기 2년, 단기 1년 6월
  • 이창희(27,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3학년. 가명 "뚱이")
  • 서총련 투쟁국장 김 호(25,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3학년)
  • 한양대 투쟁국장 배주환(21, 건축학과 4학년)
  • 한총련 조국통일위원장 이준구(26, 건국대학교 건축학과 4학년)[3]
  • 강위원 한총련의장(27,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 한총련 정책위원(가명 "푸우"), 조직위원(가명 "순이"), 정책 국장 등 15명[4]
사건 당시 여야 모든 정당이 비난 논평을 내고 국무총리, 내무부 장관, 제1야당 당수가 빈소에 조문을 가는 등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그 뒤 김대중 정부 들어서 길소연과 이호준은 1999년 2월 25일 특별사면, 강위원은 1999년 8월 15일 특별사면 되었다. 불과 사건 2년만의 일이라 많은 비판이 나왔다.
한편 피해자 이석은 전라남도 해남군 출신으로 고향에 있는 실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수원에 있는 한 공장에서 선반기능공으로 일하다가 사건이 있기 며칠 전에 다니던 공장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후 거리를 배회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3. 배경


왜 운동권 학생들이 이런 극악무도한 짓을 저질렀는지는 '''프락치''', 연세대 사태 문서를 참조할 것.

4. 관련 문서



5. 외부링크


동아닷컴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동아일보 1997년 11월 8일 선고기사
참세상-2·25 특별사면 대상자 명단
다음-연합뉴스 8.15 특사 명단
학생운동에 '결정타' 이종권 - 이석 구타치사사건
[1] 한총련 내에서 조국통일위원장은 의장 다음의 서열 2위의 직책이다.[2] 건국대의 사수대를 '황소대'라고 불렀다. 참고로 건국대의 상징이 황소이다.[3] 당시 한양대 교내상황을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다. 검찰은 각종 시위상황과 프락치 조사사실등을 강위원 한총련의장(27.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에게 전화 등을 이용, 보고해왔을 것으로 보고 이 부분에 대한 수사를 했다. [4] 사건축소의 지시와 대책회의의 주재를 한 지하 지도부. 상해치사 및 범인도피 등의 혐의로 전국에 지명수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