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인종 고문치사 사건
1. 개요
1989년 10월 15일, 연세대학교 만화 동아리 '만화사랑'에 가입한 동양공전(현 동양미래대학) 학생 설인종이 프락치로 몰려 운동권 세력에게 고문 취조를 받다 사망한 사건.
2. 진행
당시 설인종은 학생운동에 대해서 과격하게 비판하는 등 다른 학생들과는 동떨어진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이에 운동권 소속 학생들은 그를 미심쩍게 여겼는데, 한 학생이 학적과에 조회해보니 설인종이라는 학생은 없었다. 당시에는 많은 프락치가 학내에서 암약하던 시절이었으므로[1] 연고전이 벌어지던 날, 운동권 간부들이 동아리 내에서 설인종을 취조하였다.[2]
취조 결과 그는 동양공전 학생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알아내는 과정에서 고문을 했다는 것이다. 마구 구타하고 정신을 잃을 때마다 물을 끼얹어 깨운 뒤 다시 폭행하였고, 연고전이라 놀러온 고대생들도 취조에 가담하여 여덟 명 정도가 그를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팼다. 결국 설인종은 폭행의 여파로 쇼크사 하였다.
하지만 설인종 사건은 박종철 사건과 달리 세간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설령 그가 정말로 프락치가 맞다고 하더라도 '''본인들이 그렇게 싫어하던 독재정권과 똑같은 행태로''' 고문을 하고 사람을 때려죽였음은 어떤 의미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가담한 학생들은 취조 중 설인종이 자백을 했다고 주장하였으나 진술서를 받기 전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즉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백했다고 하더라도 고문으로 받아낸 자백에는 가치가 없다. 저들의 논리대로라면 독재정권이 인권운동가나 학생들을 고문하여 받은 자백도 똑같이 증거가 된다. 더욱이 고문은 불법이자 범죄이며 심지어 죽게 만들었으니 프락치가 맞다고 해도 빼도박도 못하는 범죄다. 시신을 수습하러 온 설인종 가족을 본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굉장히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범인들 중 주범인 양영준(21ㆍ연세대 법학 3)ㆍ김중표(22ㆍ고려대 신방 3) ㆍ장량(26ㆍ고려대 체교 4)이 징역 4년을, 김현철(24ㆍ연세대 정외 4), 오성훈(21ㆍ연세대 경제 3) 등 4명은 징역 3년ㆍ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들 중 절반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3. 여파
만화사랑은 6월항쟁 와중에 경찰의 최루탄 직격으로 사망한 이한열 열사가 생전에 직접 창립한 연세대학교 중앙동아리로, 당연히 학생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로 동아리에서 학생운동에 열성적이었던 회원들은 대부분 구속되고 동아리 자체가 존폐의 위기에 빠졌다. 관련기사 관련사진
어찌어찌해서 동아리가 살아는 남았으나 사건 이후 운동권과는 전혀 무관한 동아리가 되었으며, 이후 동아리방에서 발견된 이한열 관련 사료도 모두 기증하였다. 눈에 띄게 남은 흔적은 동아리방 책장 한켠에 모셔진 이한열 열사 사진 뿐이다.
1989년은 전대협 3기 의장 임종석 신드롬과 임수경의 방북으로 그야말로 학생운동의 최전성기였으나, 이 사건과 동의대 사태의 여파로 그 해 11월에 열린 전국 대학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비운동권 후보들이 당선되었고 전국 총학생회들은 NL-PD-비운동권 삼각 구도를 형성하였다.
비슷한 사례로 1997년 전남대학교에서 벌어진 이종권 치사 사건이 있다.
4. 관련 문서
- 서울대 프락치 사건 (유시민, 심재철)
- 이석 치사 사건 (한양대)
- 이종권 치사 사건 (전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