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
1. 개요
당시 사건을 다룬 # #(경향신문.1984.10.5.10면-11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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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9월에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자교 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학생 등 타 학교의 학생을 포함한 민간인 4명을 경찰의 프락치로 몰아서 납치 및 고문한 사건이다. 피해자 4명은 각각 2일~6일간[1] 감금되어 각목으로 구타 당하고 물고문을 당했다. 피해자 4인 각각의 피해 기간 및 피해 내용에 대한 뉴스타운의 기사.
이 사건으로 유시민은 구속되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납치, 감금,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과 자료들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폭행자는 서울대 공과대학 학생회장 조현수 [2] 서울대 학도호국단 총학생회장이었던 백태웅[3] , 이정우[4] , 윤호중[5] 등 여러 명이다. 당시 서울대복학생협의회 집행위원장 이었던 유시민은 직접 물리적 폭행을 한 혐의는 없으나, 폭행을 주도하고 고문실 안에서 폭행을 구경하여 당시 함께 처벌받았다.
고문 피해자 중 한 명인 손현구는 모진 고문 끝에 자신이 프락치라고 말했으나, 나머지 3명은 끝까지 자신은 프락치가 아니라며 억울함을 주장하였다. 사건을 조사한 경찰과 법원은 피해자 4명이 프락치가 아니라고 판결하였다. #조선일보
유시민을 비롯한 가해자들은 아직까지도 피해자들에게 정식으로 사과를 한 적이 없었다. 2006년 유시민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정되었을 때 피해자 정용범씨의 모친이 기자회견에서 “사과 한마디도 없다”며 “장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다른 피해자 전기동씨도 2019년 언론 인터뷰에서 "판사가 합의를 권유하면서 유 이사장에게 사과하라고 하더라.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 이사장이 제게 사과했다. 진심어린 사과가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소송 때문에 유 이사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사과는 커녕 아는 체도 안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내정되었을 당시 해당 사건이 재조명되어 큰 곤욕을 치룰 때도 "당시의 모든 서울대 학생을 대신해서라도 사과 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는 책임회피성 발언을 한 적이 있고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에도 사과는 커녕 피해자에 대한 언급 자체가 거의 없다.
2. 명칭 논란
이 사건은 흔히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알려져 있으나, 피해자 측은 그 명칭은 사건을 왜곡한다고 주장하며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으로 부르기를 원하고 있다. 관련 기사
3. 심재철 가담 루머
심재철 의원이 이 사건에 가담했다는 루머가 퍼졌던 적이 있다. 2006년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의 청문회 당시 프락치로 몰려 고문을 당했던 전기동이 기자회견에서 한 주장 때문이다. 당시 전기동은 "나를 프락치로 몰았던 사람이 장관이 되면 안 된다"며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때 한나라당 의원들이 "유시민에게 폭행당하였다는 사실을 증언하라"고 하자, 전기동은 "유시민은 지켜만 봤다"고 하며 "현직 한나라당 의원이자 서울역 회군 당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이던 심재철 의원이 폭행에 가담했다"고 발언했다. 그러자, 이 기자회견은 바로 종료되었다(...)
당시 서울대 4학년으로 기자시험을 준비중이라 학생회에서 물러나 있었던 심재철은 당연히 사건과 관련이 없다. 경향신문 보도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심 의원은 당시 조사도 받지 않았으며 당연히 처벌도 받지 않았다.
만약 가담했다면 직접 폭행하지 않고 지시만 한 유시민도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은 것으로, 보아 일개 대학생이 처벌을 피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월간조선의 2006년 2월 기사를 보면 폭행 가해자들의 진술에서 유시민 이외에 심재철의 이름도 언급이 되긴 했다.
심 의원 측은 황당한 허위사실 주장이고 해프닝에 불과하니 법적 조치는 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4. 관련 문서
- 유시민/논란#s-1
-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 설인종 고문치사 사건(연세대)
- 이석 치사 사건(한양대)
- 이종권 치사 사건(전남대)
[1] 흔히 11일 동안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건이 발생한 총 기간이 11일인 것이고, 한번에 4명이 동시에 감금된 것이 아니라 각각 따로 붙잡혀 감금되었다.[2] 이 후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 되었다[3] 노동운동가 박노해, 당시 대학원을 다니고 있던 조국, 나중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되는 은수미 등 200여명과 함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를 준비하고 운영했었다. 이 활동으로 수감됐다가 김대중 정부에서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후 미국 유학을 떠났다. 현재는 미국 하와이대학교 로스쿨 교수로 재직중이며, 유엔의 각종 실무그룹에 인권문제 관련 자문을 하고 있다.[4] 서울대 수석 합격생 출신, 서울대 학도호국단 총학생장직무대행으로 나중에 학생회장이 된다. 열혈 386 운동권 인사이다. 이후 정계진출은 하지 않았다. 사법시험, 행정고시, 외무고시 모두 합격해서 일명 '고시 3관왕'으로 불리기도 했다.[5] 현 더불어민주당 21대 국회의원이자 법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