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무

 


'''목조의 부친'''
'''先祖考 | 선조고'''

[image]}}}{{{-2 이양무의 묘 준경묘(濬慶墓)
'''존호'''
'''선조고고려장군존령
(先祖考高麗將軍尊靈)'''
'''관직'''
장군(將軍)
'''본관'''
전주(全州)
'''휘'''
양무(陽茂)
'''출생'''
미상
'''사망'''
1231년
'''능호'''
준경묘(濬慶墓)
'''부친'''
이린
'''부인'''
선조비(先祖妣)
1. 개요
2.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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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李陽茂
? ~ 1231년(고려 고종 18년)
고려장군. 고려 무신정권 집권자 이의방의 동생 이린의 아들, 고려 문신 문극겸의 외손자, 조선 추존왕 목조의 아버지, 조선 태조의 5대조이다.
그의 큰아버지들 이준의, 이의방 2명 전부 역적으로 처형당했고 그의 아버지 이린은 이준의, 이의방 사망 이후의 기록이 부실하여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없는데,[1] 이양무는 살아남아서 장군까지 되었다. 아마 그의 숙부 이거가 고려 고종에게 궤장까지 받을 정도로 나라에 헌신한 충신이라는 점이 그가 역적들의 조카임에도 불구하고 장군으로 승진할 수 있게한 요인이 아닌가 싶다.
왕조의 개창자가 자신의 선조(先祖)를 추존할 때, 4대조까지만 추존하기에 이양무는 왕으로 추존되지 않았다. 대신 고종황제가 1899년 이양무의 묘소를 수축, 장식하고 묘호(墓號; 무덤(墓)의 이름)를 올려 예를 갖추었다.

2. 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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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경묘. 높임의 의미를 담아 준경릉(濬慶陵)이라 칭하기도 한다.
본래 이양무는 전주에 살았는데 삼척 땅에 묻힌 이유는 그의 아들 조선 목조와 관련된 일화가 있었다. 이 부분은 조선 목조 항목을 참조.
1899년[2] 대한제국 고종이 그동안 위치를 알 수 없었던 황실의 뿌리 이양무의 묘와 거기에서 약 4km 떨어진 하사전리에서 부인 이씨[3]의 묘를 찾았고 그들의 묘역을 정비하여 예를 갖추고 이양무의 묘를 준경묘(濬慶墓), 부인 삼척 이씨의 묘를 영경묘(永慶墓)로 올림으로써 이양무의 무덤은 준경묘로 불리게 되었다.
목조와 관련해서 한 도승의 예언대로 백우금관(百牛金棺)의 명당 터에 아버지 양무를 안장하므로써 5대에 이르러 이성계조선을 창업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준경묘 일대의 송림을 황장목이라 하는데, 이 황장목은 경복궁을 고칠 때 자재로 사용한 적이 있다.

[1] 여러 기록 탓에 이의방이 몰락한 1174년에 형제들과 같이 암살되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자세한 사항은 이린 항목 참조.[2] 고종 36년.[3] 삼척 이씨(李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