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극겸

 



'''남평 문씨 가문 출신 고려 배향공신'''
'''의종'''
'''명종'''
'''정경공 문공원'''
'''충숙공 문극겸'''
'''고려국 중서문하성 평장사
문극겸
'''
'''시호'''
'''충숙공(忠肅公)'''
'''직위'''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본관'''
남평 문씨(南平 文氏)
'''이름'''
극겸(克謙)
''''''
덕병(德柄)
'''생몰연도'''
1122년 ~ 1189년 9월
1. 개요
2. 생애
3. 평가
4. 가족 관계
5. 창작물
6. 같이보기


1. 개요


고려 중기 의종 ~ 무신정권기의 문관 및 무관[1]이다.

2. 생애


문극겸은 세 차례의 과거에 낙방한 끝에 음서로 산정도감 판관에 머물다가 의종 때 문과에 급제, 좌정언 직위까지 올랐지만 환관 백선연(白善淵)을 탄핵하다 도리어 황주판관-진주판관으로 좌천되었다. 이후 유사의 상주로 합문지후로 전임, 전중내급사로 승진되었다.
1170년 의종 24년에 무신정변 당시 앞서 좌정언으로 직언하여 좌천된 일로 인해 화를 겨우 면하였으며, 의종 역시 그의 말을 좇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한다. 이 해 명종이 즉위하자 우승선 - 어사중승이 되어 많은 문신들을 화에서 구하고 무신들로부터는 고사의 지문을 받았다. 그리고 이의방의 추천을 받아서 용호군 대장군을 겸임, 후에 상장군까지 겸하게 된다. 또한 이의방의 동생들 이린, 이거의 장인이기도 해서 이의방이 자기 형인 이준의를 죽이려고 들 때 이의방을 뜯어말리기도 했다. 이의방의 문신학살의 대상에서 벗어남은 물론 자신의 위치를 활용해 다른 문신들을 살려주기도 했던 것은 이런 내력도 한몫 했다.
기록의 면면을 살펴보면 무신집권기의 초창기 집권자인 이의방 일파의 인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극겸이 우승선에 올랐을 때 이의방의 추천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고, 이후 용호군 대장군이 될 때도 이의방이 추천했다. 이후 김신윤, 김보당, 이소응 등이 그를 이의방의 친형인 이준의와 도매금으로 묶어 탄핵하려 했던 기록도 있으며, 정중부 집권기 말년에는 당시 실세였던 송유인에게 탄핵당하는 일도 있었다. 다만 갑오정변으로 이의방이 암살당한 후 이의방의 형인 이준의는 그 도당들과 함께 살해당한 반면 이의방의 동생들 이린, 이거의 장인이었던 문극겸은 별 탈이 없었는데, 이는 그가 이의방의 주변인물이었을 지언정 그의 전횡에 떡고물을 받아먹는 주구 노릇을 했던 인물은 아니었고, 문신임에도 무신들을 하대하지 않았으며, 또한 명종의 총애를 받는 유력한 문신으로서 나름대로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무튼 송유인의 탄핵으로 수사공좌복야로 좌천되는 굴곡을 겪기도 했으나, 얼마 안가 정중부 일파가 경대승의 정변으로 제거되면서 사실상 정적이 없는 유력 문신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후로 문극겸은 대부소경-예부시랑-추밀원부사-태자태보를 거쳐 1183년 중서시랑평정사-판호부사가 되고 1187년(명종17년)에 권판상서이부사에 오르는 등 경대승 집권기, 이의민 집권기 초반까지 관직생활을 하며 조정을 지키다[2] 1189년 사망하였고 남평의 장연서원에 제향되었다.

3. 평가


고려사절요에서 그의 졸기에 따르면 문극겸은 음서로 벼슬에 올랐음에도 학문에 힘써 기어이 과거에 합격하고, 사람됨이 충성스럽고 효성스러우며 부지런하고 검소하여 당시 사람들에게 어진 재상이라는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대 권력자들의 청탁을 받아들여 인사 과정에서 잘못이 있었고, 그의 어린 자제들에게 관직을 주고 노복을 시켜 토지를 널리 차지하는 등의 치부도 있어 당대의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겼다. 즉 충신이긴 했으나 무신정권기라는 난세의 시류에 영합하는 일면도 있었다는 것. 문극겸의 도덕성에 결함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으나, 당대에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수 없었던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4. 가족 관계


본관은 남평. 할아버지는 남평 문씨의 실질적 시조인 경절공 문익(敬節公 文翼)이며 아버지는 남평군 개국자 경정공 문공유(南平郡 開國子 敬靖公 文公裕)이다.
큰아버지는 3명으로 충의공 문공인(忠毅公 文公仁), 정경공 문공원(貞敬公 文公元), 조계종대선사 가관(可觀)이다. 동생은 2명으로 문극순(文克純), 문극이(文克易)이다.
큰아버지들은 아들을 두지 못했고, 동생들의 후손 역시 현재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현존하는 남평 문씨는 전부 문극겸의 후손이다.'''# 사실상 '''모든 문씨의 조상'''.[3]
문극겸의 딸은 이의방의 동생 이린과 결혼하였고, 그 6대손이 '''조선 태조 이성계'''이다. 또 다른 딸 역시 이의방과 이린의 동생인 이거와 혼인하였다. 그래서 '''시중공파를 제외한[4] 모든 전주 이씨 역시 그의 후손이다.'''

5. 창작물


[image]
《무인시대》의 문극겸
충신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김종결이 연기했다. 청렴하고 충성심 강한 충신으로 그려진다. 무신들의 반정 행위가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자칫하면 그들이 무력으로 고려 조정을 완전히 뒤엎을지 모르기에 적절히 타협하려는 현실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 때문에 일부 문신들에게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6. 같이보기


[1] 문극겸은 8개 고려 중앙군 부대 중 2등으로 높은 부대인 용호군(龍虎軍) 소속 대장군(大將軍) 직을 맡았다.[2] 이 때 당대 무신정권의 거두 중 한 명이었던 조원정을 중서문하성의 공해전을 빼앗았다는 이유로 여러 대신들과 함께 탄핵했다. 이 일로 원한을 품은 조원정은 비슷한 처지의 석린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어 결국 처형된다.[3] 다른 문씨들도 있긴 한데 감천, 정선, 장연, 강릉 문씨를 제외한 나머지 문씨들은 남평 문씨에서 갈라졌다. 감천 문씨는 2015년 기준 1,076명에 불과한 소수성이며# 그나마 감천 문씨의 일부도 남평 문씨의 분파라고 한다. 정선 문씨는 2015년 통계청 조사상 '''19명''', 장연 문씨는 '''51명''', 강릉 문씨는 '''40명'''에 불과하므로# 사실상 한국의 거의 모든 문씨는 남평 문씨이다.[4]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의 종파 분류에 따르면, 시중공파(侍中公派, 이린의 숙부 이단신이 파조)를 제외하고는 전부 이린과 이거의 후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