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남

 

李英男
1563년 ~ 1598년
1. 개요
2. 생애
3. 창작물


1. 개요


조선시대의 인물로 임진왜란 당시 무관.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사수(士秀).

2. 생애


이영남은 1563년 충청도 진천현(현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면 기전리)#에서 창신교위(彰信校尉)를 지낸 이사종(李嗣宗)의 아들로 태어났다. 1584년(선조 17) 별시 무과에 병과 163위로 급제하였다.#
개전 당시에는 원균의 아래에서 경상 우수군 권관으로 활동했으며, 정유재란 당시에는 가리포 첨사로 삼도 수군 통제사 이순신 장군 휘하에 있었다. 근데 임란 당시에 권관에 위치하기 전까지의 경력이 모호한 인물인데, 그게 1592년 당시에는 무려 종4품 율포 만호로 임명되었지만,[1] 그 중간에 딱히 탄핵을 받은 기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임란 개전 당시에는 9품 권관으로 떨어졌었다. 그 이유는 상관인 원균과 마찰이 있었다거나 전란 당시 엉망이 되어버린 인사권의 피해자였던 게 아닌가 짐작은 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고, 전라 좌수영에 와서 이순신에게 원균의 뒷담화를 하거나[2] 임진왜란 초기에 원균이 이순신에게 연합 작전을 벌이자고 간곡히 요청할 때 이영남을 5번(...)씩이나 전라 좌수영으로 보냈던 점 등만 확인할 수 있다.
1598년의 노량해전에는 가리포 첨사로서 참전했으며 이순신이 전사한 뒤 잔적을 소탕하던 도중 자신도 역시 전사했다. 묘소는 충청북도 진천군 산정면에 있으며 고금도 충무사에는 이순신과 함께 모셔져 있다. 현재 전라북도 전주시 중화산동 예수 병원 근처에 그를 모시는 선충사 사당이 있으며, 양성 이씨 후손들이 제를 지내고 있다.[3]

3. 창작물


[image]
맨 왼쪽 인물이 이영남(유태웅 분)이다.

제가, 가장 두려워 했던 분이 누구였는지 아십니까?

바로 장군이셨습니다....

제가, 가장 자랑스러워 했던 분도, 장군이셨습니다!

진정으로 장군을 닮고 싶었습니다....!

노량해전, 전사하기 직전 이순신에게.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배우 유태웅이 연기했는데 작중의 등장인물들 가운데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배우의 발음 때문인지는 몰라도 슴다체를 자주 쓰는 것처럼 들리며 혈기방장한 젊은 무장으로 묘사된다.[4] 처음에는 원균과 비슷한 성격으로 묘사되어서, 원균이 출정하자고 할때 이순신이 거부하자 홀로 전라좌수영으로 계속 찾아와서 같이 가자며 사정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에서 좌수영의 여종이 '좌수사 나으리가 계속 저 부탁을 거부하셔야 저 '잘생긴' 분이 계속 오실것이라며 깔깔대는데, 작중 설정상 젊고 훤칠하며 장래가 유망한 장수임을 강조하는 듯 하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제멋대로 하려는 원균과 달리 충분히 설득하면 알아먹는 타입이었으며, 부하 동료야 죽든 말든 무조건 돌격이나 외치고 보는 원균과 달리 책임감이 강하고 전우를 아끼는 모습을 보였다. 어쨌든 그 성격 때문에 첫 화부터 왜교성 전투에서 고립된 황세득을 구출하러 가겠다고 하다가 충무공의 지휘봉을 맞고 기절한다.
이순신이 막 전라 좌수사로 부임한 시점에는 원균과 닮은 성격 탓인지 그를 충실히 보좌하며 좀처럼 출진하지 않는 이순신을 겁쟁이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5] 원균이 점차 졸장이 되어 가자 이순신의 충실한 부하가 되어간다. 심지어 윤두수의 꼬드김을 받고 이순신의 지휘권을 박탈하려는 원균에 맞서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했을 정도다.
역사대로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는데 여기에서 어느 정도 각색되었다. 드라마에서는 이순신와키자카 야스하루와 싸우던 도중 위험에 빠진 모습[6]을 목격하고, 그를 구하기 위해 와키자카의 대장선을 습격[7]하여 그의 배에 오른다. 그리고 일본군을 처지한 후 와키자카가 직접 나서서 칼을 뽑자 그와 맞서다가 자신의 칼이 부러지고 그에게 오른팔이 베여 쓰러진다. 그러나 기운을 차리고 다시 일어나서 덤벼들지만 와키자카에게 복부를 찔렸고, 이에 그를 붙잡고 함께 바다에 뛰어든다. 다행히 이순신에 의해 구출되지만 이미 치명상을 입은 탓에 최후를 맞이한다.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이순신보다 일찍 전사했으며 이순신은 이영남의 눈을 감겨주고 입고 있던 갑옷을 벗어 덮어준다. 실제로 이 장면을 보면 와키자카 야스히루의 이순신에 대한 논평이 이영남의 최후 대사로 실려있고 이영남이 와키자카 야스히루와 함께 바다로 빠지는 장면은 논개를 연상하게한다.

[1] 1584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에 종4품 만호가 되었다면 꽤나 파격 승진인 것이다.[2] 난중일기 1593년 3월 2일의 기록 - 비. 종일 비가 왔다. 배 봉창 밑에 앉았노라니 온갖 생각에 가슴이 치밀어 올라 회포가 어지럽다... 이영남, 이여념이 왔다. 그들에게 원 수사의 비리(非理)를 들으니 한탄스럽다.[3] 출처(위키피디아)[4] 다만 중후하게 묘사돼서 마치 부자 사이를 보는것 같았던 주인공 이순신이랑은 배우끼리 동갑이다. 게다가 이쪽이 수개월 위다.[5] 원균이나 이영남처럼 성격이 급한 쪽이 보기에는 영락없이 이런 것이었지만, 이순신은 나름대로 출정에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6] 와키자카의 대장선이 이순신의 대장선에 사조구를 던졌다.[7] 두 배의 사이에 끼어들어 이순신의 대장선에 걸려 있는 사조구의 줄을 한 번에 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