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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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2.1. 고대
2.2. 중세
3. 관광


1. 개요


터키 코자엘리 도의 도청소재지. 이즈미트 만 안쪽에 위치해 있다. 옛 이름은 '''니코메디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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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미트 만
고대 비티니아의 중심지로 카르타고의 장수 한니발 바르카도 여기서 말년을 보냈고 근처 항구에서 자살하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이후 286년에서 324년 동안 이 도시는 로마 제국 동방의 수도가 되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로마를 다시 통일한 324년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 천도까지 임시수도 역할을 하였고 콘스탄티누스도 여기서 죽었다.
이후로도 잠깐 셀주크 제국의 지배를 제외하고는 동로마 제국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기능하였는데, 1337년에 오스만 제국에 함락되었다. 1402년, 티무르에 의하여 동로마 측에 돌아왔지만 1419년에 다시 오스만 령이 되었다. 오스만 치하에서 니코메디아는 이즈미트로 개명되었고 산작, 이후에는 파샤의 치소가 되었다.
1차 대전 이후인 1920년에 그리스가 점령하였으나 이듬해에 터키 군이 회복하여 현재에 이른다. 당시 인구는 1만 3천명이었으나 1990년 경에는 50만을 돌파하였다. 1999년에 일어난 대지진으로 1만 7천명이 사망하고 수십만의 이재민이 발생하였으나 신속히 복구되어 현재 인구는 30만명에 이른다.[2] 이스탄불의 위성도시로 취급되며, 아름다운 항구 도시이자 산업도시로 유명하다. 울산의 자매도시이다.
이즈미트에 현대자동차 생산공장이 있다.

2. 역사


니코메디아로 불리던 시절을 포함하여 이즈미트의 역사를 다룬다.

2.1. 고대


기원전 712년에 그리스 메가라 인의 식민 도시로 세워졌다. 당시 이름은 아스타쿠스 (Ἀστακός)라 불렸다.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의 지배와 알렉산드로스 3세의 원정에서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소도시였던 것으로 보인다. 디아도코이 시대 때에 리시마코스에 의하여 도시가 파괴되었으나 비티니아 왕국의 2대 왕인 니코메데스 1세[3]에 의해 재건되었다. (기원전 264년) 고대 도시의 시가지는 이 때에 형성되었으며 '니코메디아'라는 도시 이름도 그 왕명에서 유래되었다.
니케아와 함께 비티니아 왕국 (기원전 297 ~ 74년)의 수도 역할을 하던 니코메디아는 미트라다테스 전쟁에서 폰투스 왕국에게 일시적으로 점령되었다. 이후 로마에 의해 복위된 니코메데스 4세는 자신의 사후 왕국을 로마에 넘긴다는 약속을 하였고 따라서 그의 죽음과 함께 로마 공화정의 영토가 되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시기 사두 정치가 이루어질 때 동방 정제의 도읍이었다.
콘스탄티우스 2세와 황후 파우스티나가 묘사된 메달이 니코메디아에서 발굴되었다.

2.2. 중세



3.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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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랜드마크인 시계탑.

[1] 이름이 비슷해 니케아와 헷갈리기 쉽다. 더군다나 니케아가 니코메디아 바로 남쪽에 위치해 있어서 알쏭달쏭하게 만들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다른 도시다. 터키어 명칭도 각각 이즈니크이즈미트. 이럴 때는 앞의 '''이즈'''를 빼고 니크, 미트, 미르를 생각하면 그나마 '니케'아, (니코)'메디'아, 스'미르'나에 자음 음가가 살아있어서 연상하기 쉽다.[2] 농촌 일대까지 합치면 140만[3] 기원전 278 ~ 255년 재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