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이이타이병
1. 개요
itai-itai disease / イタイイタイ病
1. 개요
카드뮴 중독증으로, 등뼈, 손발, 관절이 아프고 뼈가 잘 부러지는[1]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병이다. 미나마타병과 함께 일본 4대 공해병이라 불린다.
나머지는 1972년 미에현 욧카이치시에 있는 욧카이치 콤비나트(四日市コンビナート)가 아황산 가스나 이산화질소,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어 그 지역의 천식의 원인이 된 "욧카이치 천식(四日市ぜんそく)"과 니가타현 카노세쵸(鹿瀬町. 현 아가마치(阿賀町))에 있는 형광등을 만드는 쇼와전공(昭和電工)이 아가노강(阿賀野川)에 메틸수은을 무단 방류시켜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와 동일한 병이 발생한다고 하여 "니이가타 미나마타병(新潟水俣病)" 또는 "제2미나마타병"이라는 공해병이 있다.
일본 도야마현 진즈강(神通川) 유역에서 약 1910년부터 발생했다고 한다. 이 이름의 유래는 환자가 아픔을 호소할때 '이타이 이타이(痛い痛い, 아프다 아프다)'라고 하는 것에서 붙여진 병명이다.
이 병이 발생한 원인은 상류에 있는 광산(미쓰이금속광업(三井金属鉱業) 소유의 카미오카 광산(神岡鉱山), 기후현 히다시 카미오카정)에서 아연의 제련 과정에 의해 배출된 폐광석을 통해 카드뮴이 유출되며[2] 강으로 고스란히 흘러들어가 이를 식수, 농업용수로 사용한 주민들에게 발병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백명이 심한 고통을 호소했고 이 병으로 사망한 사람만 56명이나 된다.
해당 광산은 나라시대 (720년) 에 채굴이 시작되었으며, 1874년 미츠이 재벌이 경영권을 취득하여 대규모 채굴을 해왔다. 2001년 6월에 채광을 중단했다.
다른 광산에서는 이런 일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이 지역의 풍토병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며 이 병은 다시 확산되었다. 당시 철강 생산량이 늘어나 오염물질이 급격히 증가함과 동시에 전쟁중의 식량 부족이 증상을 악화시켰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후에는 세균이나 영양실조에 이 병에 원인이 있다는 가설이 제기됐으나, 중금속 중독이라는 원인이 1957년에 밝혀졌다. 1961년에는 카드뮴에 원인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이후 카드뮴 방류와 이타이이타이병의 인과관계는 1971년 행해진 1심 소송에서 처음 인정되었다. 1970년대에 토양오염, 피해자 보상, 출입조사를 통한 카드뮴 측정등을 실시했다. 토지복원사업은 2012년, 소송을 통한 전면해결은 2013년에 완료되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었다는 이유로 한국인들에게 쯔쯔가무시라는 벌레와 함께 인지도가 꽤 높은 질병이다. '이타이이타이'라는 말을 암기하고 있다가 나중에 일본어를 알게 되면서 뜻을 파악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다.[3]
글 주제와는 관련 없지만, 카미오카 광산 일대에는 중성미자 검출을 위한 슈퍼 카미오칸데가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이와 초기 증상이 비슷한 공해병인 온산병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