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

 


1. 고려의 인물
2. 조선 성종의 3남 안양군
3. 조선 세종의 서자 화의군
4. 조선 진종
5. 조선의 문신


1. 고려의 인물


본관은 여주(驪州)이며, 자는 주도(周道), 호는 기우자(騎牛子)·백암거사(白巖居士)·일가도인(一可道人)이다. 충주목사 이천백(李天白)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황씨(黃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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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선 성종의 3남 안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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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 세종의 서자 화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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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선 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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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선의 문신


1478년 ~ 1534년
조선 중기의 문신. 호는 용재. 김종직의 문인인 연헌 이의무의 아들이다. 1545년 을사사화의 주역인 이기#s-6.1.1(李芑)의 아우이다.[1]
벗인 남곤, 박은(읍취헌)과 함께 시문으로 이름높았으며, 연산군 갑자사화 때 함께 화를 입어 박은은 죽고 두 사람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중종 때 관로가 비교적 순탄하여 대사간 등을 거쳐 대제학, 좌의정 등을 역임하다가[2][3] 김안로의 모략으로 유배당하여 유배지에서 죽었다.[4][5] 권신으로 후대인에게 평가절하되기도 하지만, 문형을 12년간으로 역임하여 대제학이라는 시스템을 정비한 공로가 있다. 문형은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 지성균관사를 겸임해야만 일컬어지는 칭호이다. 오늘날에 비교하면 성균관대사성은 대학 총장, 지성균관사는 대학 이사장에 해당한다. 문형으로서의 자의식과 자부심이 상당하여, 후임 대제학감을 추천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아, 소세양, 정사룡, 김안로 등을 키워주거나 추천하였다. 조선조 통틀어 정승으로서 문형을 겸한 몇 안되는 인물이다. 덕수 이씨로서 후손에 택당 이식 등[6].
[1] 이기의 형은 이권인데 이권, 이기, 이행 모두 각각 무/문, 무/문예가 뛰어났다. 근데 이권과 이행이 특히 뛰어나서 이기는 늘상 샌드위치 신세였다고 불만을 토로했었다.[2] 대사간 시절에 박상과 김정이 "폐비를 복권시키고 삼대장(박원종, 유순정, 성희안)을 벌해야 합니다."(이때 장경왕후가 죽고 얼마 안된때였고 삼대장 또한 죽고 없었다.) 라는 상소를 올리자 대사헌과 함께 "이따위 의견을 올린 놈들 벌하소서" 했는데 이유는 1. 원자의 정통성이 흔들리므로, 2. 폐비의 복수 우려였는데 이게 조광조의 등장을 불렀다. 조광조가 석달 뒤 대간에 와서 "저 녀석들이 바른말 한 걸 옹호해야지 반대했으니 나 저 인간들이랑 일 못함 갈아치우셈" 했다가 진짜 대간 전체가 갈렸다. 원래 명성이 있긴 했지만 왕에게 드러낸건 이때[3] 그 외에 남곤 시절에는 그의 파트너였고 남곤 사후엔 심정,이항과 함께 주도권을 잡았는데 그래도 양심이 있던지 영의정 자리는 정광필에게 양보하고 심정이 우의정을 자신이 좌의정을 맡았다.[4] 그래도 김안로가 쫓겨나고 몇년쯤 후에 작서의 변이 발생하는데 이를 기회삼아 집권하려는 김안로가 아들 김회에게 대신 중에서 누구 구워삶으라고 했는데 김회가 이행을 선택했고 그의 선물 공세에 넘어간 이행은 김회가 "아빠가 병 걸려 죽으려 해요. 풀어주세요. ㅠㅠ" 하자 왕이 대신들 모아놓고 "이제 김안로 복권시키자" 한 자리에서 "네 전하 말씀이 옳습니다." 했다. 정광필, 심정이 반대했음에도 아무튼 그 덕인지 자신과 같은 걸음을 걸었던 심정과 이항은 사약을 먹어야 했지만 그래도 이 인간은 복 받은 셈. 이 일로 보면, 정치적인 능력은 최상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 통틀어 정치력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은 김안로를 생전에 능숙하게 저지한 이행의 벗 남곤이야말로 최상의 정치력.(그가 조광조를 죽인 장본인이라는 논란은 있지만 이건 엄연한 사실)[5] 본래 수염 많던 털보였는데 병으로 수염이 빠져 시신을 검사당해야 했다.[6] 이 사람은 당대 제일의 문장가였는데 어느 정도냐면 영의정 윤방이 인조 18년에 죽자 그 아들이 이식에게 청해 시장(시호를 청하는 글)을 받았는데 심기원의 옥사, 소현세자의 죽음, 세자 책봉, 강빈 옥사, 김자점의 옥사등 별별 사건이 터져 결국 이식은 죽고도 몇년 지난 효종 2년 조익에게 다시 청했는데 조익은 이식의 문장이 하도 좋으니 고쳐 지을거 없다며 '''몇 구절만 빼고 그대로 배껴 썼는데''' 여기에 있던 '''강빈'''을 '''실수로''' 고치지 않아 조익은 삭탈관직을 당했다. 현달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율곡 이이는 아버지 이의무의 맏형인 이의석의 현손으로, 그와 율곡은 6촌 재종조와 재종손의 관계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