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규

 


1. 개요
2. 생애
2.1. 친일 부역 이전
2.2. 친일 부역
2.3. 공산당 활동
3. 기타

1912년 2월 5일 ~ 1970년?

1. 개요


林仙圭, 본명은 임승복(林勝福). 창씨명은 하야시 나카로(林中郞, 임중랑)
일제강점기, 북한의 극작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이자 종북주의자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홍도야 우지마라)'의 제작자이자 문예봉의 남편이며,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당대 신파극 극작가의 대표자로 일제강점기에 많은 흥행을 한 연극의 작가였으나, 친일, 종북 행위로 후대에 평가가 좋지 못하다.

2. 생애



2.1. 친일 부역 이전


충청남도 논산군 출신으로 1912년[1] 2월 5일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빈곤한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강경공립상업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할 정도로 가정형편이 어려웠었다고 한다.
1932년 극작가로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고등학교 중퇴 학력이지만 많은 습작으로 실력을 쌓아왔던터라 얼마 안가 중요 극작가로 올라서게 된다. 이듬해에 배우 문예봉과 결혼하였다.
1936년에 집필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가 크게 흥행하자 당대 최고의 극작가로 올라서게 된다.

2.2. 친일 부역


태평양전쟁 시기에 아내 문예봉과 함께 연극분야에서 친일 부역행위를 하였으며, 이 시기의 내 놓은 작품들이 일본 제국을 미화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2.3. 공산당 활동


광복 이후 많은 친일부역 연극인사들이 그랬던 것 처럼 부인과 같이 좌익계열로 활동 하였으며, 남조선로동당 소속으로 활동 하였으나 별다른 활동 없이 부인을 따라 1948년 월북을 하게 된다.
월북 이후 두드러진 활동 없다가 1970년 경 결핵으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만 있다. 하지만, 월북직후 사망했다는 설이 있는 등 기록이 정확히 남아있지 않다. 아내인 문예봉이 숙청되었던 70~80년대 상황을 봤었을 때 같이 숙청되어 있을 수도 있다.

3. 기타


동양극장에서는 권해효가 맡았으며, 문예봉(정선경)의 비중이 있는편이라 그 역시 주요인물은 아니지만 조연으로써 역할을 하였다.
야인시대에도 등장하였으나 단역 수준이다. 다만 같은 단역인 아내 문예봉과 달리 대사가 전혀 없었다. 대사가 없는 탓에 야인시대/합성물에서도 지나가는 단역으로 쓰는 정도로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
[1] 일부에서는 1910년, 1914년 생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기록자체로 얼마 없어서 정확한 생년이 아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