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
1. 개요
自給自足
Self-sufficiency
스스로 공급해서 스스로 충족한다는 의미.
2. 상세
개인적인 수준에서는 농업/축산업/임업/어업 등의 1차 산업에 자신이 직접 종사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여러가지 소비재를 스스로 얻는 활동을 의미한다. 이것이 국가나 지역단위 수준으로 올라가게 되면 1·2차산업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데 1차산업으로 생산되는 소비재 수급과 2차산업에 필요한 원자재 수급을 모두 하여서 필요한 단위에 분배하는 것이 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참고로 self-sufficient은 개인이 자급자족을 할 때 쓰이는 단어이고, 국가가 자급자족을 할때는 autarky라고 불린다.
이것이 되지 않으면 결국 물자를 외부에서 수입을 해와야 한다. 현대에는 인구가 많은 중국, 인도, 미국을 비롯하여 지구상에 알려진 그 어느 나라도 자급자족을 하진 않는다. 미국에 있는 공산품 태반은 수입산이고, 중국 역시 수요가 공급보다 많아 다른 국가에서 석유 등을 수입해야 한다. 한국 같은 경우 중국과 달리 석유가 거의 나지 않으므로 수입에 더욱 의존한다. 휴대전화의 경우 엑시노스와 스냅드래곤 835 이상의 8xx 시리즈를 달고 나오는 삼성 스마트폰은 패널, 램, 프로세서, 메모리 모두 자급자족하지만 그것을 만드는 제조설비나 거기에 들어가는 기술들은 자급자족을 하고 있진 않다.
사회학에선 경제, 산업의 발전으로 인해 이런 자급자족의 형태가 무너지는 형태로 사회의 발달이 이루어진다고 주로 설명한다. 근대 사회사상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분업'과 '전문화'인데 자급자족이 불가능해지는 것도 넓은 의미의 분업에 의한 결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한 사람이 의식주를 다 해결해야 했고 그럴 능력도 있었으나 점차 산업이 분화되면서[1] 한 사람이 자급자족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고 결국 사회는 분업과 전문화로 인해 더 공고해졌다는 것이다.[2]
얼핏 보면 모순된 설명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데 일례로 한 사람이 의식주를 혼자 해결할 경우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밀집된 사회를 구성할 의지가 거의 사라지게 된다.[3] 혼자서 살아나갈 능력이 되니까 다른 사람을 의지할 필요성이 적다. 하지만 점차 산업이 분화되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의지할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자급자족의 예시가 되는 농사꾼은 농업에만 전문적으로 종사하기에 의, 주가 해결이 안되고 농기구 또한 공장노동자에 의해 만들어지게 된다. 그 자원의 채취에 광부와 나무꾼, 기업가가 개입되는 것은 덤이다. 그러므로 자기가 부족한 것을 마련하기 위해 좋든 싫든 의지하게 된다는 것이 사회학에서 말하는 자급자족과 사회의 의미이다.
자급자족은 굉장히 좋아보이지만 그 효율성이 심각하게 떨어진다. 당장 당신이 농사도 짓고 가축도 기르며 가죽이나 천을 기워 옷을 만들며 집까지 짓고 보수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기술의 발전? 일어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선 현대 사회 전문화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전문화된 지식노동자는 절대 등장하지 못한다. 그나마 등장한다 쳐도 신화를 다루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4] 게다가 근본적으로 인간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존재이다.[5] 자급자족이 분업보다 더 효율적이었다면 그걸 유지하지 않을 리가 없다.[6]
그렇기에 자급자족은 정말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고려되는 수단이다. 지구멸망사태라든가, 식품이라든가, 전략물자라든가 하는 정도만 자급자족화를 고려할 뿐이다.
사실 대표적 사례로 알려진 식량전쟁이라는 상황도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자급자족이 강요되는 품목은 정말 한정적이다. 웬만한 나라들은 어디 한둘의 식량 공급이 끊겨도 미리 비축해둔 식량/다른 데서 수입할 자금이 있다. 그리고 식량은 자국이든 타국이든 어디선가 지속적으로 생산된다. 현대서 식량난은 자급률의 문제가 아니라 그 국가 내부가 멀쩡하지 않아서 발생한다.
미국의 생존주의자들 중에 일부는 비상시에 지속적으로 자급자족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계멸망 수준은 아니더라도, 실제 역사에서 전쟁이나 불황 등 재난으로 식량이 부족해진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2차 대전에서 이겨놓고도 50년대까지 배급제를 유지하며 텃밭을 통한 자급자족을 강조했고, 구소련은 다차(별장)가 중요한 식자재 공급원 역할을 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성동 자유의 마을에서도 주민들이 자급자족으로 의식주를 해결한다. 물론 이건 자급자족이 좋아서가 아니라, 대성동 마을이 처해 있는 매우 특수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다. 대성동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마을이 DMZ 안에 있는 특성 때문에 외부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고 마트나 편의점도 없다 보니 생필품 하나 사려고 해도 차를 타고 검문검색을 받으며 문산읍까지 왔다갔다해야 하는 점 때문에 의식주의 대부분을 자급자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1] 이는 사회에서 산출되는 생산량과 그로 인한 노동량의 증가로도 설명된다. 당장 1900년도와 2000년도를 비교해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2] 사실 이것보다는 이로 인해 일어나는 인간소외가 사회학자들에게 관심거리가 된다.[3] 물론 예기치 못한 위험은 예외로 한다.[4] 발전된 고대 그리스의 철학도 결국 이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대 그리스는 노예경제가 이루어 지는 시기였는데 노예가 주인의 노동을 대신 하였기에 주인은 그만큼 정신적, 기술적 가치에 신경을 쏟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분업에 가깝다. 비자발적이고 강제적인 것이지만.[5] 물론 예외가 되는 몇 가지 경우도 있는데 말 그대로 예외다.[6] 일례로 경제학쪽 측면에선 사회계약설과 시장경제를 이렇게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