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전쟁
1. 개요
食糧戰爭
미래의 자원 싸움은 '''식량싸움'''이 될 것이라는 예상. 간단하게 설명하면 '''농업 대국이 식량 수출만 끊어 버려도''' 이겨 버린다는 가정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게 된 계기로는, 현재 급증하고 있는 인구와 한정된 토지, 그리고 국제적으로 농산물의 수요와 공급이 점점 더 일치하지 않게 되는 농업의 양극화 현상 등이 있다.
이 주장이 잘 반영된 있는 창작물이 바로 양판소다. 영지물의 경우 주인공이 식량투기를 해서 여러나라를 쥐락펴락하네하는 묘사가 있는데, 가끔 대륙이나 세계 전체 레벨로 대기근이 찾아오고, 그 와중에도 멀쩡한 주인공의 영지가 이걸 혼자 커버한다는 식으로 설정하기도 한다.
2. 쟁점
사실 이런 가설이 힘을 얻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 실제 개도국의 식량난 사례를 예로 드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식량이 무기화되었기 때문에 식량난이 벌어진 게 아니라 내부적으로 워낙에 막장이라 뭐가 되어도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경우가 많다. 즉 선후관계를 뒤틀어 사실처럼 포장하는 것.
- 자유무역주의를 바탕으로 'XXX를 팔아 식량을 사면 된다.'나 '○○팔아 식량을 사면 되니 농사 지을 필요 없다.'라는 주장이 나돌게 된 걸 사례로 드는 경우가 있다. 전세계적인 자연재해로 식량 생산이 급격히 감소하거나 다국적기업이 정치적인 이유로 식량을 팔지 않겠다고 담합이라도 하거나 제재를 가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면 식량을 사지 못하거나 바가지 쓰며 사야 한다는 것.
- 1에 대한 반박으로 식량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인류의 역사에서 자주 등장했지만,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주로 내부적인 사정 탓으로 생겼지, 타국의 고의적 관여로 일어난 경우는 없었다. 세계 대전이 터졌거나 내부적인 문제로 나라 꼴이 말이 아닌 상황이라면 애초에 뭔 사단이 일어나도 이상할 거 없다. 가끔 아이티처럼 국가 인프라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한 경우도 있는데 이 정도로 답이 없는 국가는 생각보다 드물다.
- 2에 대한 반박으로 식량자급률이 낮은 나라들은 수출국들이 수출을 하지 않으면 식량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공급처를 다각화 하고 혹은 해외 투자를 통해 지분을 확보하는 식으로 제재 등을 방지하며 여의치 않다면 후술하듯 최소 비축물자 정도는 확보해 두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여기서 여유가 된다면 국가적 차원에서 농업을 보호하고 육성하여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도 한다. 따라서 2의 주장은 지극히 1차원적인 주장이며, 상식적인 국가라면 그런 리스크에 대해 대비를 충분히 해 두고 있다.
- 아무리 식량 자급률이 낮아도 웬만한 나라에서는 몇 달~몇 년 치 전략물자 정도는 비축해둔다. 굳이 전략물자가 아니더라도 선진국에서는 많은 잉여 생산량이 남아도는 것이 현실인데, 가령 한국에서는 2017년 4월 현재 3,510,000t의 쌀이 재고로 있으며 이는 2015년 한해 생산량 4,320,000t에 육박하는 양이다. 다른 곡물, 육류, 해산물, 각종 가공식량, 보존식은 차치하고서라도, 쌀의 재고만 해도 거의 1년치 생산분이 창고에 쌓여있는 것이다.
- 미국 같은 일부 강대국이 식량을 투기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식량 자원은 애당초 투기하기에 좋은 상품이 아니다.[1] 식량 자원의 경우 유기물이라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다른 투기 대상과는 달리 지속적인 생산이 가능하다. 소설 탁류에서 보듯 과거 미두라고 불리는 곡물 투기 행위가 다른 투기에 비해 얼마나 리스크가 크고 비효율적인지 안다면 이런 음모론은 설득력이 없다. 물론 선물시장에선 거래가 되고 가끔 대박도 터지지만 선물시장의 특성상 한쪽이 돈을 벌어들인 만큼 다른 쪽에서 깨지기 때문에 그다지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투기하기에 가장 좋은 대상은 금과 같은 귀금속류다. 물론 실제로 식량과 관련한 펀드도 존재하지만 이걸로 식량을 무기화한다고 보기는 무리수. 이마저도 단지 원자재값 상승과 더불어 일시적인 투자재로 각광받은 탓이다.
- 생산성이 떨어져 수출을 제한하는 경우가 아닌 한 국가가 수출을 통제하려해도 식량을 생산하고 사고파는 회사 등에서 이를 보고만 있지는 않는다. 아무리 정치적인 이유라고 해도 아예 식량을 팔 길이 막히면 해당 사업체의 반발이 커진다. 아무리 그들이 국가의 일원이라고 해도 결국에는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개인 혹은 단체인데 당장 수입원이 막히는 걸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 국제화 사회에서 다른 국가들에게 비난받을 여지가 크다. 식량은 기본적으로 인권과 긴밀하게 연관되있기 때문에 유엔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제기구에서 개인에게 최소한의 식량권을 보장하고 기아 같은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데 특정 국가가 식량을 무기화하려고 하는 움직임이라도 보이는 순간 엄청난 지탄을 받을 것은 안봐도 뻔하다. 이는 에너지 자원이나 무기를 제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로 간주될 확률이 높고, 이런 어마어마한 정치적인 비용을 치를 수 있는 국가가 많지 않고 그로 인한 이익도 분명하지 않다. 미국같은 경우는 오히려 이익을 위해 곡물 수출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다가 만약 특정 국가로 인해 세계적인 식량위기가 올 경우 그 국가를 확실히 박살내는 경우가 더 많았다.
- 식량이 중요한 국가적 전략자원으로 분류될 때는 전 세계적인 대형재해나 포스트 아포칼립스같은 개막장 상황에서나 유효한 이론이다. 2020년에 이르러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전지구적 창궐로 인해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범유행전염병으로 인한 특수한 상황이라 여기에 부합하는 사례이며, 그 실체라는 것도 전염병 전파를 우려한 이동 제한이라는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당장 코로나바이러스가 더 심각한 문제지 이로 인한 식량 문제는 부차적인 부분이다. 실제로도 베트남이 식량안보 차원에서 쌀 수출제한을 시행하지만 어디까지나 전세계적 위기에 봉착한 상황에서 자체 재원을 확보하려는 것이지, 이걸 가지고 식량을 무기화한다고 볼 수는 없고, 정작 베트남의 농가에서는 재고로 쌓인 쌀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어 수출제재를 풀어달라고 아우성인 실정이다. 결과적으로 전술하듯 범세계적 위기가 오면 뭐가 일어나든 일어날 문제인 것이지, 통상적인 상황에서 식량을 무기화하는 이론이 유효하다고 할 수는 없다.
- 경제제재 등의 이유로 전세계가 짜고 한 나라를 말려죽이려 작정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으나 현실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물론 북한 같이 국제 제재를 당하는 나라도 있으나, 그마저도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다. 심지어 식량을 팔거나 원조하는 것은 대북제재로 막지도 않는다. 앞서 언급되었듯 식량은 기본적인 인권문제와 깊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 소련-아프간 전쟁 당시 미국은 소련에 대한 식량 판매를 중지해서 압박을 가하려 했으나, 갈길잃은 식량들은 되려 국제 식량 시세의 폭락만 불러왔고 그 피해는 미국 농부와 그 손해를 줄이려는 미국 정부가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2] 정작 소련은 폭락한 시세로 저렴하게 식량을 사는 반사이익을 얻었다. 물론 이 1개의 사례만으로 식량전쟁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지적하긴 곤란하나, 식량전쟁이 실제로 벌어질 경우 수입국이 필패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례로는 충분하다. 참고로 냉전 내내 미국이 이 식량 수출을 정략적으로 이용한 것은 사실이나, 이 소련-아프간 전쟁 당시를 제외하면 '무기'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근'으로 사용한 것에 가까웠다. 식량 시세 폭락 외에도, 위에 나온 것 처럼 아무리 소련의 식량자급률이 나빴다고는 하지만 일정 기간을 버틸 정도의 비축물자는 당연히 있었으며, 무엇보다 정말로 미국이 식량 수출을 금지하는 등의 무기로 활용할 경우 소련으로선 핵공격을 포함한 제3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는 매우 중요한 명분이 될 수 있었다. 소련과의 공멸을 원치 않았던 미국은 이를 막기 위해서 당연히 소련에게 식량 수출을 보장해주며 반감을 적절히 조절해야 했다. 게다가 소련이 그 지경에 몰린 것 역시 공산주의의 폐해로 인해 벌어진 일인만큼 소련인 공산국가가 아니었다면 벌어지지도 않을 일이었다.
3. 현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분쟁이다. 분쟁을 각오하고 싸운다면 영토나 자원 등 다양한 분쟁 이유가 있었고 실제로 분쟁이 일어나고 있으나 만성적인 기아가 지배했던 과거에도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고 야만부족 수준을 벗어난 이후에는 식량을 통한 가격통제나 분쟁을 일으킨 일은 거의 없었다. 분쟁이 오히려 식량생산과 소비를 저해하기 때문이다.
식량은 대체성이 매우 강하다. 간단하게 줄여서 "식량"이라고 줄이지만 그 품목은 이루 말할 수 없을정도로 다양하다.[3] 바나나 대두 콩 밀, 이런 상황에서 특정 식량 자원을 독점에 가깝게 생산할 수 있다면 출하량을 조절해서 가격을 일시적으로 올릴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수요와 공급 법칙에 의해 사람들이 그 식재료를 그냥 안먹는다. 결국 소비가 줄어서 가격하락 압력이 생기게 되고 그제서야 다시 생산을 늘려봐야 이미 입맛을 바꿔버린 국제시장만 잃게되는 꼴이 된다.
심지어 식량은 편재성이 매우 약하다. 그도 그럴것이 어떤 특정국가가 식료를 독점할 수 있을 정도로 지역성 생산조건을 따지는 캐비아 등의 자원이 식료주제에 편재성이 강한 자원인데 사실 이런 자주 접하지 않는 식료들은 아예 안먹어도 그만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그걸 거의 먹지않기 때문에 수입안해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밀이나 쌀, 콩같은 작물이 전세계적으로 소비되는 이유는 특별한 기술 없이도 전세계적으로 생산이 가능해서, 전세계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아, 소비되는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자원은 독점한다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조차 없는 자원이다.
더 재미있는건 식량이 부족해질 것이다. 라는 서술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것에 있다. 얼마나 부족한게 부족해지는 것인가? 엄밀히 말해 지금도 아프리카에는 식량이 부족하다. 그런데 선진국의 농업기업들은 식량생산을 할 농경지가 더 있는데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진국들은 대체로 농경지가 녹지와 공원으로 전용중이다. 적도에서 동남아까지 방대한 크기의 땅과 햇빛과 물이 그대로 안쓰이고 있음에도 거기에 농장을 만드는 기업도 없다. 이유는 모두 한가지다. '''경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 아프리카 인구가 10억이 아니라 100억이 된다할지라도 식량가격은 오르지 않는다. 단지 3억명이 굶주리던 것이 93억명이 굶주릴 뿐이다. 3억명이 굶주리고 일부는 죽어도 눈하나 깜짝안하는 세계인들이 93억명이 굶어죽는다고 특별히 달라질 이유가 없다. 그 사람들이 굶주리는 이유는 식량 생산할 땅이 없어서 굶주리는게 아니라, 식량의 생산비용+이윤을 지불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10억이 아니라 1억이 된다할지라도 식량가격이 떨어지지도 않으며 굶어죽는 사람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선진국 국민들이 농업에 종사하면서 보는 이익을 지불할 능력이 없으면 그때도 굶어죽는다. 지금 굶어죽고 있어도 추가생산을 안하는 것처럼 미래에 아프리카에 전염병이 퍼져 전인구의 90%가 1년만에 죽어 팔아먹던 식량이 남아돌아도 그 농작물을 땅에다 파묻거나 불태우지 절대 그냥 보내주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이게 말이 되려면 농업의 전지구적 경작 Capacity를 따져봐서 얼마나 쓰고 있는지를 봐야하는데, 식량확보를 위해 광합성이 가장 활발한 지역에 투자하는 국가가 있기는 커녕 딴게할게 없어서 자기네들 국가에서 농업하던 농민들 보호하기 위해 식량수입을 막으며 수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국가들 뿐이라는 것을 보면, 식량 무기화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소리인가를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편에서는 많은 이들이 굶어죽고 있지만,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인구가 10억이라도 경제학적으로는 0명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굶주리는 인구수에 0하나 더 붙힌다고 0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끔찍한 사진을 찍기에는 10억명도 이미 충분히 많다.
그래도 증가하는 개도국과 아프리카의 인구를 보면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말하자면 그 사람들의 존재야말로 글을 읽는 분들의 식량안보의 첨병이다. 기본적으로 경제개념은 분배의 개념이고, 중상위 개발도상국 이상 국민들은 분배의 상위에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전지구적 작황 불안으로 굶어죽는다면 아프리카의 100억명이 굶어죽은 다음, 개도국 사람들이 굶어죽고, 그다음으로 선진국 사람들의 차례가 된다.
즉 아프리카에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안간힘을 써서 식량생산비를 지불하면서 총생산량이 늘어났다는 말이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기상이변등으로 기근이 발생하여 그 늘어난 생산량이 어떤 이유로 줄어드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그때 선진국 국민 대신 굶어죽을 100억명분의 식량이 그만큼 버퍼(예비)로 확보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가격이 크게 올라갈 수도 없다. 기근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돈을 더 벌 수 있을리 없기 때문이다. 저축이 있을리도 없고. 그러므로 개도국 인구가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선진국 국민들이 굶주릴 가능성이 더 줄어든다.
고려,조선등 전근대에 3~5년마다 닥치는 흉년과 기근으로 빈민들은 다수 굶어 죽었지만, 왕족들은 그런거 별로 신경쓰지도 않았다. 총인구가 많은 큰 나라이면 큰나라일 수록 지배층은 빈민들의 아사에 무관심했다. 그 고대사회에서도 나라가 커지면 커질수록 작황과 자신이 점점 더 상관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스케일이 글로벌 스케일로 커졌을 뿐, 경제논리라는 것이 이렇게 잔혹한 것일 뿐이다.
[1] 오히려 미국은 잉여식량을 처분할 시나리오를 항상 연구중이다.[2] 사실 소련의 밀 생산량은 세계 1위였지만 가축 사료용으로 밀을 썼기 때문에 밀을 수입했다.[3] 충식, 배양육 등의 다양한 옵션이 있는데다, 맛을 떠나 단순히 영양과 에너지 습득 목적으로 만든다면 Nutraloaf 형태로 보급과 섭취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