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딩파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역대 해군사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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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7대

8대
스윈성

장딩파

우성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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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


중국군인, 제독. 한국의 해군참모총장격인 7대 해군사령원을 지냈다.

2. 생애


1943년 12월 8일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1960년 7월에 양사중학을 졸업한 뒤에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에 입대하였다. 1964년에는 중국 공산당에 입당을 허가 받았다. 커리어는 주로 잠수함으로 쌓은 탓에 중국 해군 내에서는 '잠정(잠수함)파'라고 불렸다. 특히 핵잠정(원자력 잠수함의 중국식 표현)을 중시했다. 1985년에 북해함대참모장조리[1]에 올랐고 칭따오기지사령부 참모장을 지냈다. 1988년에 계급이 부활하자 해군 대교로 계급을 받았다. 1991년에는 해군 소장[2]으로 진급했고 1993년에 북해함대 참모장, 1995년에 같은 함대의 부사령원으로 영전했다. 1996년에는 제남군구 부사령원 겸 북해함대 사령원을 맡았다. 1998년에는 해군 중장으로 올라갔다. 이래저래 커리어를 쌓은 곳이 죄다 북해함대 쪽이다.[3]
2003년에 스윈성에 이어 인민해방군 해군의 최정점인 해군사령원에 올랐다. 엄밀히는 해군 내부의 최정점이고 동급인 정치위원도 있고 총참모부나 다른 주요 해방군 4대 부서에 다른 해군상장도 있긴 하지만 해군에서 작전권을 지닌 사령관으로서는 최선임이다. 중장으로 해당 보직을 수행하다가 2004년에 해군상장으로 진급했고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의 위원으로도 들어가게 되었다.
보통 중국의 해군사령원은 길게는 30년이고 보통 못 해도 5-6년은 복무하는 것과 달리 3년만 복무했다.[4] 폐암이 발병해서 2006년에 베이징에서 사망했기 때문. 후임자는 우성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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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무덤.

[1] 조리(助理)는 중국어로 보좌관을 뜻한다.[2] 중국군에는 준장이 없어 소장이 첫 장관급 장교이자 제독이다. 그러나 상급대령에 속하는 대교를 준장의 카운터파트로 대해주는 편이고 소장이 해외에 가면 별은 원스타 달고 있지만 투스타에 상당하게 대우해준다.[3] 북해함대는 한국 입장에서는 제2함대서해를 공유하는 함대이다.[4] 1대 사령원인 장아이핑은 1년만 하긴 했다. 문제는 다음인 2대 사령원 샤오징광이 30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