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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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교육자, 교육학자, 관료.
2. 상세
1895년 평안도 평양부 예안부 돌곶방 벽지도[1] 동(현 평양직할시 낙랑구역 벽지도리)에서 장동상(張東商)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유신소학교, 1912년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1913년 세이소쿠(正則)영어학교에 진학해 일어와 영어를 배웠다.
1914년 귀국하여 유신소학교에서 일어를 가르치다 미국 유학을 모색하고 1916년 상하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안창호를 만나 흥사단에 입단했다.
1918년 더뷰크 대학교에 입학하여 1925년 졸업하고, 1926년 컬럼비아 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46년 모교인 더뷰크 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28년 귀국하여 신성학교[2] 의 교장으로 부임했다.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일경(日警)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고, 이듬해 석방되었으나 교직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1945년 광복 직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전신인 경성사범학교 교장에 임명되었고 1946년 서울대학교 초대 사범대학장, 1948년 제3대 서울대학교 총장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과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부 고위층의 압력이 작용하여 결국 이듬해 사표를 제출하고 총장직에서 물러나, 외부의 정치적 압력으로 국립대학 총장이 사임을 강요당한 선례로 남게 되었다.
1960년 제2공화국에서 주미대사로 임명되어 활동하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의 정당성을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사임하였다.
이후 흥사단 활동과 강연, 집필에 전념하였다.
1983년 7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장녀의 집에서 노환으로 별세하였다. 향년 88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