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중학교
1. 개요
- 전라중 홈페이지
- 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들사평1길 39
1968.3.28에 남중학교로 개교했으며 1998.3.2에 남녀 공학이 되었다.
전라중학교의 교화는 국화이며 교목은 느티나무이다.
학교가 학생수에 비해 넓은 편이며[1] 학교에서도 학교 이야기 를 할 때 학생들에게 항상 그 점을 강조한다.
2. 역사
- 1968. 03. 28 전라중학교(남학교) 개교
- 1971. 02. 10 제1회 341명 졸업
- 1974. 07. 31 전라고등학교 교지 및 교사 인수
- 1998. 03. 02 여학생 신입생 입학(남녀 공학)
- 2005. 01. 20 강당 준공
- 2008. 06. 01 교사 현대화 신축 이전
- 2010. 03. 01 교육과학기술부 지정 교과교실제(C형) 시범학교
- 2011. 11. 09 전라북도교육청지정 혁신학교
- 2013. 03. 01 제19대 전을석 교장 부임
- 2015. 02. 10 제45회 76명 졸업(총 21,112명 졸업)
- 2015. 03. 01 신입생 75명 입학, 전라중학교 부설 방통송신중학교[2] 개교(신입생 90명, 3개 학급)
- 2016. 03. 12 전라중학교 부설 방통송신중학교 제2회 입학(신입생 90명, 재학생 83명, 6개 학급)
3. 시설
본관과 급식실 및 도서관건물, 강당, 소강당, 운동부 숙소, 실내연습장, 운동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3.1. 본관
1층에는 행정실과 교무실, 교장실, 과학실, 늘푸른교실(특수반) 등이 있고
2층은 시청각실[3] , 학년별 교실, 보건실, 희망나무 교육 복지실[4] , 방송실, 교무실 등이 자리하고
3층은 학년별 교실과 음악실, 방통중 교실[5] , 영어실, 교무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지막으로 4층은 미술실, 수학실, 교무실, 학년별 교실, 가사실 등이 있다.
3.2. 급식실 및 도서관 건물
운동장에서 봤을 때 본관 우측에 있으며 1층은 급식실과 밴드부실[6] 2층은 도서관, 컴퓨터실, 목공실 등이 있다.
3.3. 강당
강당 이름은 가람터이다.
운동장에서 봤을 때 좌측에 있으며 시청각실에서 못하는 프로그램이나 체육시간, 그리고 선거 할 때도 사용된다.
3.4. 소강당
여기서 소강당이란 소강당 건물의 2층을 말하고 1층은 운동부가 사용한다.
소강당에서는 학생들이 공놀이를 하거나 학교 내에서 와이파이가 터지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이용하기도 한다.
3.5. 운동부 숙소
3.6. 실내연습장
3.7. 운동장
모든 선생님들이 칭찬하는 세 가지[7] 중 두번째로 큰 비율을 차지한다.[8] 체육시간이나 점심시간 등에 이용 하고 야구부가 연습할 때도 사용한다.
4. 동아리와 방과후학교
추가 예정
5. 출신 인물
6. 과거 (남학교 시절)
- 운동장이 비좁기 그지 없었다. 한 반이 45-50명인데, 36학급이라 생각해보라. 전교생 조회할땐 운동장을 꽉 채우다못해 빈 공간이 없을 정도였다. 수도 시설도 부족하기 일쑤여서, 여름에 체육시간이나 점심시간 끝날즈음엔 줄서서 씻어야 했다.
- 현재 후배들이 보면 믿을지 모르겠지만 90년대 당시 배치기준이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건지, 인후동은 흔했고(인후동 소재의 전라, 북일, 기린, 동북, 금평초 모두 전라중이 배치대상교), 우아동(동신, 아중초등학교가 배치대상교), 완산구 노송동(!)(풍남초등학교 동초등학교가 배치대상교) 등에서도 전라중으로 배정이 되었었다.(가까운데 살다 이사간게 아니다!) 이쯤되면 서신동 중화산동 태평동 이런데는 그냥 가까운 곳으로 보일 정도. 그런데 또 중화산동이나 태평동의 학교들은 여기에 배정이 안 되었다.[9] 이렇다보니 많은 학생들이 시내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였고, 등교시간엔 전북대 앞 버스정류장-덕진국민학교 앞-전라중학교까지 약 500M에 등교하는 학생들이 쭉 늘어섰었다.
- 본관 (당시 3학년 및 2학년 일부 교사)가 현재 위치가 아니었다. 뒤쪽. 즉 지금 주차장으로 쓰는 자리에 있었다.
- 현재 급식실 및 도서관으로 쓰는 건물은 당시 2학년 교사였으며, 이 건물 뒤쪽 (정확히는 이 건물과 현 실내야구장 사이)에 쓰레기 소각장이 있었다.
- 실내야구장 자리에 1학년 교사가 있었다. (현재는 철거) 정확히 그 자리는 아니고, 현재 실내야구장 자리보다 10M 정도 운동장쪽에 있었다. 즉, 현재의 실내야구장처럼 소강당과 일직선은 아니었다.
- 현재 소강당으로 서술된 곳은, 남학교 당시엔 체육관이었다. 당시엔 강당이 없었고 여기를 강당으로 쓰기는 좁았다. 그래서 보통 입학식 졸업식 이런건 모두 운동장에서 이루어졌고, 비 올땐 여기서 체육수업을 했다.
- 남학교라 농업 실습이 있었다. 현재의 강당자리.
- 당시 1학년 교사 뒤쪽과 야구장(교내 말고 종합경기장 야구장) 사이에 담이 낮은 부분이 있었는데 (현재는 철조망이 쳐져있음) 월담 장소로 애용되곤 했다.
- 현 실내야구장 뒤쪽의 숲은 탈선( )의 장소였다.
- 남학교 마지막 때까지 급식이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 체벌이 있던 시기에다 남학교였고, 공부하는 애들이 없었던 3단콤보로.. 체벌이 많았다. 수업시간에 졸거나 필기만 늦게 해도 엉덩이 맞는 건 기본이었다. 쪽지시험 못 보면 당연하고, 잘 봐도 반 평균이 안되면 다 같이 맞았다. 심지어 국어책이나 영어책 읽다가 발음이 틀려도 맞았다.
7. 에코시티로 이전
학령 인구 감소로 교육부에서 에코시티 내 중학교 신설을 허가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전라북도교육청에서 학생 수가 적은 전라중학교를 에코시티로 이전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그 이유는 에코시티 내 과밀 학급 때문이다. 2024년까지 전라중학교를 에코시티 KCC스위첸 옆 중학교 부지로 이전한다. 덕진동 학사 자리에는 전주시교육지원청과 업그레이드 된 야구부 시설이 들어설 예정. 이제 이 동네 아이들은 2km 거리에 있는 서신중학교나 덕진중학교로 가게 생겼다.
8. 기타
- 마찬가지로 교장선생님이 돈을 아끼겠다며 모든 쓰레기를 아주 세세하게 분리하여 버리게 한다. 그렇게 해서 분류한 재활용 쓰레기를 고물상에 팔아 학교 자금으로 이용한다는듯 하다.
- 교장 선생님의 절약정신은 이 뿐만이 아니다. 학교에서 화단일부분과 텃밭을 이용해 농사를 짓고 체험학습[11] 이나 판매를 하기도 한다.
- 마찬가지로 번 돈은 모두 학생들의 체험활동에 쓴다.[12]
- 이렇게 많은 노력으로 돈을 모아 체험활동에 투자하지만 실제로 학생들이 좋아하는 활동은 드물다.
- 학교이름이 전라 중학교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졸라중이라고 부른다.
- 학생 수가 적고 공부하는 학생이 타 중학교에 비해 적어 성적 올리기 좋다.
- 학교에서 닭을 키운다. 닭은 1학년의 꼬꼬닭 동아리가 관리한다.이렇게 기른 닭이 낳은 달걀은 판매하거나 부화를 시킨다. 학생들의 정서를 위해 기른다고 한다.
[1] 90년대만 해도 학년당 10학급이 넘는 큰 학교였는데, 지금은 그 때 이 곳으로 배정받았던 동네들에 다 중학교가 생기는 바람에... 그리고 그 동네들이 다 사람많은 아파트단지.. 그리고 여긴 공동화되는지라.. 덕분에 36학급 기준으로 지어진 교사에서 10학급도 안 되는 학생들이 공부를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2] 이곳은 공부하고 싶으신 어르신들을 위한 것으로 교내에 방통중 교실을 만들어 2주에 한번,토요일마다 수업을 하고있다.[3] 한두 학년만 모일때는 이곳을 이용한다 주로 강연이나 회장단선거를 하는데 의자가 굉장히 푹신해 잠자기 좋다[4] 보드게임이 많이 있어 학생들의 휴식을 위해 자주 이용 되었으나 교육 복지 선생님이 가시고 과학선생님이자 위 클래스 선생님이 이 곳을 사용하게 되며 이 곳을 찾는 학생이 없어졌다. [5] 주로 방통중 학생들이 이용하나 스마트 패드가 있어서 스마트 패드로 수업을 하는 경우에는 일반학생들도 이곳을 이용한다.[6] 방음재 대신 게란판을 붙여서 밴드부 이름도 계란판이고 당연하게도 방음효과는 거의 없다.[7] 넓은 운동장, 적은 학생, 다양한 체험활동[8] 첫번째는 다양한 체험활동[9] 이 당시 전주 시내에 중학교 배정 학군이 딸랑 두개다 보니 생기는 문제인데, 이게 또 덕진구와 완산구로 나눠지지도 않아서 이 모양이 되었다. 이러다 보니 당장 풍남초등학교와 중앙초등학교, 서신초등학교와 진북초등학교의 경우는 학교간 거리가 멀지 않았지만 두 학교에서 배정받는 중학교는 전혀 딴판이어서 아예 겹치지 않았다.[10] 90년대 당시에도 학교폭력, 왕따 문제는 심했다. 어쩌면 쉬쉬하던 때라 지금보다 더 했을지도 모른다. 주변 학교 어디든 불문하고 괴롭힘 당하는 아이들이 있단 소식이 들려오곤 했으니..[11] 김장[12] 이때 농사일과 쓰레기 분리를 환경 동아리가 대부분 관여하기 때문에 굉장히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