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무기제한협정

 


1. 개요
2. 배경
3. 1차 협정
4. 2차 협정
5. 관련 문서

'''S'''trategic '''A'''rms '''L'''imitation '''T'''reaty ('''SALT''')
(Strategic Arms Limitation Talks)
Переговоры об '''о'''граничении '''с'''тратегических '''в'''ооружений ('''ОСВ''')

1. 개요


1969년부터 시작된 미국과 소련 간의 전략 핵무기 제한 협상. 총 2차례가 있었으며 1972년 5월 모스크바에서 조인된 1차 조약은 SALT I / ОСВ-I, 1979년 6월 비엔나에서 조인된 2차 조약은 SALT II / ОСВ-II 로 불린다. 둘 다 현대사에서 큰 이정표가 됐던 조약이다.[1]

2. 배경


1962년 10월에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자, 미국소련에서는 전략 핵무기 상호 제한의 필요성을 어느정도 통감했다. 이전까지는 핵전쟁을 각오할 수 있었지만 핵무기의 위력이 점차 증대되고, ICBM과 전략 핵잠수함에서 발사할 수 있는 SLBM이 개발되면서 하룻밤 만에 전 세계가 쑥대밭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였다. 이후 정부에 핵무기의 제한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커져가기 시작했다.

3. 1차 협정


1972년 5월 26일 소비에트 연방 모스크바에서 조인된 1차 협정은 양국간의 핵무기 배치를 '동결'하는 것을 중점으로 합의되었다. 운반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미사일 사일로가 전략 미사일 1기, 잠수함의 경우 잠수함의 발사관 수당 미사일 1기, 폭격기는 대당 1기라는 개념을 세웠으며, 서로의 핵무기 기술 공개를 꺼렸기 때문에 일단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운반체를 제한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 조약으로 미국ICBM 1,054기, SLBM 710기로 제한되었고, 소련ICBM 1,618기, SLBM 950기로 제한되었다. 양국의 수치에 차이가 있는 이유는 이 협정 자체가 핵의 감축이 아닌 동결을 목적으로 하는 조약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이 가진 수가 적다고 무조건 불리하다고 하기도 힘들다. 이때 이미 영국프랑스 같은 자본주의 진영 유럽 국가도 핵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2] 그 당시 세계가 가진 핵은 이미 인류를 멸망시키기에 충분한 개수였다.
또한, 미-소 양측의 ABM 기지를 2곳으로 제한하고 ABM 미사일도 100기를 넘게 보유하지 못하도록 제한되었다.[3]

4. 2차 협정


1979년 6월 18일 비엔나에서 조인된 2차 협정은 본격적인 감축과 기존의 양적 제한이 아닌 질적 제한까지 포괄적으로 다뤄졌다.
이로 인해 양국은 모두 2,250기의 핵 운송수단을 가질 수 있으며, 특히 다탄두 미사일의 경우 1,200기, 잠수함과 폭격기는 합쳐서 총 1,320기로 제한하는 협정을 맺었다.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으로 인해 미국 측에서 비준 조약을 거부하면서 논란이 되긴 했지만, 레이건 행정부는 어쨌든 이 조약을 준수할 것을 다짐했다. 이후 START I를 비롯한 전략무기 감축 조약으로 이어진다.

5. 관련 문서



[1] 전략 무기 제한 협상 (위키백과 한국어판)[2] 물론 중국도 핵무기는 있었지만 이쪽은 소련과 동맹이라 보기엔 미묘한 관계이다.[3] ABM 조약은 2002년에 미국이 미사일 방어 체제 구축을 위해 파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