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1. 정의
資本主義 / Capitalism
자본주의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용어 중 하나이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다. 각 학자마다 용어의 정의 자체가 큰 폭으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 자본주의의 공통점과 조건을 찾을 순 있어도 자본주의를 포괄하는 핵심을 정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화가 진행되고 있다"거나, "특정 시대의 특정 지역이 자본주의에 도달했다"는 서술의 경우, 과연 어떠한 면에서 자본주의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지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다음은 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자본주의의 핵심 요건이다.
- 사회 공동체 내에서 재화의 사적 소유권을 개인의 천부의 권리로 인정한다.
- 다른 모든 요소의 전제조건이 된다. 단 사적 소유권의 인정은 로마 제국을 비롯해 고대 세계의 상당수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사적 소유권의 존재만으로 자본주의를 규정할 경우에 더 엄밀한(=좁은) 정의들과 혼란을 일으키기 매우 쉽다.
- 혈통적 조건이 아닌 생산수단의 소유로 결정되는 뚜렷한 계층의 존재.[1]
- 자본의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기재의 존재.
1.1. 논쟁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그 내용과 발달 과정에 대하여 명확한 규정은 어렵다. 이는 그 당시의 정치, 사회, 경제적 시스템에게 '자본주의'란 이름을 붙이고 이를 처음으로 구체적인 분석과 관찰의 대상으로 삼은 이가 바로 자본주의 체제를 언젠가는 박살내려고 했던 칼 마르크스였고, 따라서 자본주의는 사회 체제를 말하는 것이지 흔히 대립 대상으로 지목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같은 이념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자본주의의 핵심 근간인 자유 시장에 대한 정의와 추구는 애덤 스미스가 하였다 한들, 당시의 관점에서 스미스는 일종의 정치철학적인 관점에서 지도자들과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던 것이지, 마르크스가 공산주의를 두고 한 것처럼 "이러이러한 시스템을 우리는 자본주의라 부르고 그 구체적인 가르침은 요렇고 이를 추구하는 우리는 자본주의자다!"라는 식으로 의식적으로 하나의 이념을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자본주의를 경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기에 이 역시 한계는 있다.
사적 '''소유'''를 자본주의의 표지로 삼기도 한다. 사회주의 국가나 자본주의 이전의 국가, 혹은 비 자본주의 부족들, 심지어 마르크스도 '개인적 소유'[2] 는 인정하고 있었기에 흔히 오해하듯 소유권 자체가 자본주의를 가르는 표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자본에 대한 사적 소유를 '''국가권력'''이 '''물권'''으로 인정하는가, 그것이 경제의 중추를 이루는가는 자본주의의 표지가 될 수는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하게 사적 소유의 여부가 자본주의냐, 자본주의가 아니냐(사회주의, 봉건제, 부족사회 등등)을 가를 수 있는 것은 다름이 아닌 토지의 사적 소유가 법으로 인정되는가이다.[3][4] 이러한 접근에도 한계는 따른다. 특히나 소유권과 같은 물권의 경우에는 각 민족과 국가, 지역별로 특색이 강하게 존재하는 편이기에 서양 중심의 경제사적 분석이 더더욱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중에서도 현대 자본주의를 파악할 때에는 '''금융'''자본주의라는 면에 초점을 맞추어서 보기도 한다. 이자를 받기 위한 대부업(혹은 고리대금업)은 성경에도 기록될 정도로 역사가 깊지만, 고도로 발달된 주식을 비롯한 각종 금융제도들이 경제의 중추를 이루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이다. 특히 대다수의 회사가 주식회사인 것은 근대에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현대에 와서 이루어진 부분이다.[5] 마르크스가 이를 예견한 바 있다.
생산의 차원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쉽게 설명하면 자신이 쓰기 위해 생산하거나 자신이 쓰기 위해 착취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지만, 팔기 위해서 생산하거나 착취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특징이라고 본다.
맨큐의 경제학에 나온 표현을 사용하자면 '수많은 기업과 가계가 시장에서 상호 작용하면서 분산된 의사결정에 의해 자원 배분이 이루어지는 경제체제'라 한다.
1.2. 시장경제와의 관계
위와 같은 논쟁으로 인하여 주류경제학자 등은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쓰는 것을 꺼리며 되도록 자본주의가 쓰일 법한 상황에서는 '시장경제(Market economy)'라는 용어를 대신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전경련이나 자유기업원 등의 단체나 보수 정치인들은 자본주의라는 말을 어지간해서는 쓰지 않고 시장경제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6][7]
시장경제라는 표현을 자본주의 대신에 쓰는 것이 이념적 함의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체제가 반드시 동치의 개념이라고 볼 수도 없다. 시장경제가 아닌 자본주의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시장 자체는 미숙하게나마 자본주의 성립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현실 사회주의 체제나 혹은 사회주의 이론에서도 제한적으로 시장이 존재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리고 시장경제 모델 자체의 이론적 결함과 현실과의 불일치 또한 시장경제를 자본주의와 동일하게 해석하는 것을 힘들게 한다. 또한 시장경제 모델은 유통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서 생산과 분배 부분을 설명하는 데 모자람이 있다. 고등학교의 경제 교과 역시 자본주의/사회주의를 생산수단의 소유 형태에 따른 구분으로, 시장경제/계획경제를 자원배분을 결정하는 주체에 따른 구분으로 서술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동의어가 아니라고 가르치고 있다.
2. 용어
아래의 역사 문단에서 보듯이 자본주의의 기원은 16세기 경으로 보지만, 'capitalism'(자본주의)라는 말은 그것에 비하면 더 늦은 시기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1854년에는 "자본을 가지고 있는 상태"[8] 라는 뜻으로 처음 등장했고, 오늘날의 의미대로 "자본가가 되기를 부추기는 경제/사회 체계"라는 의미로서의 '자본주의'라는 단어는 1872년에서야 비로소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주로 사회주의 진영에서 비판적인 맥락에서 자주 쓰였다.# 한편 'capital'이라는 말은 좀 더 이르게 1610년경으로 추측된다.
아마 자본주의의 핵심 구성원인 자본가들이 생각보다 최근까지 귀족보다 낮은 계급이었기에 그럴 수 있다. 프랑스, 영국이나 독일 등 자본주의가 발달한 강국들에서조차 19세기까지는 여전히 귀족들이 형식상, 심지어 실질적으로도 자본가들보다 위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실제로 제1차 세계 대전 때까지만 해도 귀족들이 우세에 있는 영국이나 독일 같은 나라들이 자본가의 나라인 미국에 비해서 밀린다고 보기 힘들었다.[9] 더구나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러시아 같은 나머지 강국들까지도 귀족들이 지배하였다. 쉽게 말해서 귀족들이 지배하는 국가들의 세력이 그 시대를 주도했다.
귀족들이 몰락한 이유는 1차 세계 대전에서 귀족 국가들끼리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기 때문이며 그래서 독일이 영국에 도전했을 때 독일 황제는 집안에서 양아치 같은 놈이라고 욕을 엄청나게 먹기도 했다. 역사를 살피면 귀족들끼리 싸우지 않았다면 귀족들의 시대가 계속 지속되었을 수도 있다.[10] 스스로 삽질을 반복해서야 간신히 무너졌을만큼 귀족들의 역량은 전혀 만만하지 않았고 지금과는 달리 힘을 합치면 당시 미국을 일방적으로 압도하는 세력을 가지고 있던 유럽이 귀족들의 세상이라 자본가들은 그다지 대단한 취급을 못받았다. 이런 세상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미국의 자본가들 역시 귀족 국가들을 망하게 하려고 직간접적으로 노력을 많이 했다. 냉전 기간에 극단적인 자유지상주의자들과 자본주의자들이 붉게 물드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는 식으로 외친 것처럼 모든 왕족과 귀족의 목이 떨어질 때까지 혁명은 끝나지 않는다는 식의 구호가 나오기도 했을 정도였다.
사실 귀족들도 자유주의자들이나 자본가들을 마찬가지로 틈만 나면 깎아내렸다. 그래서 반코민테른 협정(반공협정)부터 출발한 추축국도 그 영향을 받았다. 예를 들어, 나치 독일은 자신들을 억압하던 군사귀족인 융커들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마치 융커들처럼 자유주의자들이나 자본가들을 말라깽이에 헛소리하는 학자 등으로 나약하거나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고 나치들은 근육질이거나 건강한 몸을 지닌 똑똑한 지식인으로 그렸다. 본래 미국은 공산주의인 소련보다 반공인 나치 독일을 더 신뢰하고 있었으나 저런 어그로들이 지속되자 마음이 변했다. 어떻게 보면 나치 독일은 소련보다도 더 미국 주요 계층의 사상과 자존심을 긁어대는 용납할 수 없는 존재였다. 의외로 소련은 트로츠키 등이 능력만 따지자면 자유주의나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 우월하다고 봤다.
시민 혁명 이전에는 정치적으로 구체제가 강력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시민 혁명 이후에야 현대까지 이어오는 자유주의·보수주의·사회주의가 출현했듯이, 경제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는 보다 일찍 등장했어도 자본가 계급에 의한 정치적인 관점에서의 자본주의는 마찬가지로 시민 혁명 이후에 두각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11]
자본 문서에서도 보듯이 한자어 '資本'은 의외로 근대 번역어는 아니고 에도 시대부터 쓰이던 말이다. 경제요록(経済要録, 1827)에서 쓰인 것이 가장 이른 시기의 출현이라고 한다. 물론 '자본', '자본주의' 등의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된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영어 'capital'의 번역어로 채택되면서이다.#
3. 역사
러시아계 영국인 경제학자 아나톨 칼레츠키(1942~)는 1776년 이후 자본주의를 버전별로 나눴는데, 여기서는 칼레츠키의 기준도 바탕으로 한다.
3.1. 기원
자본주의는 흔히 16세기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것으로 본다. 이는 페르낭 브로델의 설명이며, 지난 세기 세계사의 거장인 이매뉴얼 월러스틴을 포함한 많은 학자들이 여전히 지지한다.
한편 아부재닛 루고드는 이를 13세기까지(나아가 그 이전 이슬람 세계에서 시작되었다고) 올려 잡았으며, 캘리포니아 학파 역시 고개를 갸우뚱하는 편.
반대로 브로델을 비롯한 아날 학파가 '근대 이전 자본주의의 기원'을 찾는 것에 너무나 많은 분량과 심혈을 기울인 나머지 여기에 반발한 현 세대의 역사학자들은 마사 호웰처럼 "단순히 현대 자본주의의 정신적 근간을 이루는 '상업 정신'와 하나의 근대적 정치, 경제적 '''체제'''로서의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후자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근대적 의미의 공업 생산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산업혁명이 태동한 18세기 후반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기원을 더 늦게 잡는 경우도 있다.
안드레 군더 프랑크의 경우엔 자본주의의 시작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라고까지 말했다.
3.2. 상업 자본주의
자본주의의 초기 형태로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신대륙의 발견과 신항로가 개척되고 중상주의 정책과 적극적인 해외 식민지 개척을 통해 발달하게 된다. 당시 유럽은 산업 혁명 이후 상공업의 발달과 공장제 수공업이 확대되며 자본이 축적되었으며 적극적으로 산업적인 재화 생산보다는 재화의 교환과 판매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경제 체제이다. 동양과의 무역이 확대되며 향신료와 비단 등 큰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재화가 유럽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반대로 유럽은 새로운 원료 산지와 판매 시장을 얻게 되었다.
3.3. 자본주의 1.0 시대 (1776 ~ 1932)
3.3.1. 산업 자본주의
1776년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출간된 후 정부가 경제활동에 간섭하지 말라는 자유방임주의가 점차 뿌리내리기 시작했고, 같은 시기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이 사상을 바탕으로 산업 자본주의가 성장했다. 산업혁명 후 기계를 이용해서 질 좋은 상품들이 나오자 수공업자들이 몰락하여 도시 노동자로 전락했고, 이에 따라 사람들은 도시로 몰렸으나 일자리 수는 따라주질 않았다. 기업가들은 정부의 비호를 받은 채 고용여탈권을 가지며 싼 값으로 고용한 후 부려먹으면서 이윤 창출에 주력했으며, 노동자들은 일요일도 없이 하루 16시간이나 일하는가 하면 여자와 어린이들까지 공장에 내몰렸다. 작업 중 병이 들거나 사고로 다쳐도 보상 없이 쫓겨났다. 이에 따라 노동운동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으며 카를 마르크스 같은 공산주의 시조들도 출현했다.
3.3.2. 독점 자본주의
소수의 자본이 국가 전체의 산업을 넘어 문화까지 독점하는 독점 자본주의는 흔히 제국주의와도 같다. 그저 자기네들 이익만 챙기는 자본주의로서 대표적인 나라로는 대영제국, 프랑스 제국, 일본제국이 대표적이다. 많은 제국주의 국가가 독점 자본주의라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 미국에선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 듀퐁, 맥코믹, 벨 컴퍼니, US 스틸 등 제조업 재벌(트러스트)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산업화에 따른 경제성장으로 금융업도 같이 발달해 JP 모건, 씨티뱅크 같은 독과점 업체들이 나왔다. 연방정부의 자유방임 속에서 일부 주를 제외하고 대다수 주들은 세금을 많이 걷기 위해 독점자본을 허용했다. 그러나 독과점의 피해가 점차 커지자 1890년에 벤자민 해리슨 행정부가 '셔먼 독점금지법'을 제정했고, 시어도어 루스벨트 행정부 때 적극 활용하기도 했으나 오히려 대기업들은 법망을 피해서 시장독점을 지속했다.
독점자본주의 시기 자본주의는 유래 없을 정도로 그 실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독과점, 부정적 외부효과, 공공재 부족 등 시장실패가 트러스트 기업들로 인해 극대화되었으며 식민지에서는 비인간적인 착취가 이어졌다. 어쨌든 식민지에서 팔아온 것을 잘 분배했으면 적어도 자기나라 국민은 먹여살릴 수 있었겠지만 그마저도 잘 분배되지 않아 가계는 점점 수요를 상실한다.[12] 그 모순이 쌓여 일어난 폭풍이 바로 대공황이다.
대공황 이후 존 메이너드 케인즈를 필두로 데뷔한 케인즈 학파가 뉴딜 정책 등으로 자신들의 이론이 맞음을 어느정도 입증해냈고 사회민주주의가 발흥하게 된다.[13]
3.4. 자본주의 2.0 시대 (1932 ~ 1980)
이 시대에는 FDR 행정부의 '뉴딜 정책' 같이 정부가 경제활동에 개입하여 시장을 간섭하고 질서를 바로잡지만, 기업들은 온갖 규제 때문에 경제활동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 실제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했고, 이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사태'로 이어졌다.
3.5. 자본주의 3.0 시대 (1980 ~ 2010)
1981년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후 규제와 세금을 줄여 경제활동을 자유화하는 '레이거노믹스'를 창안하면서 신자유주의의 뿌리가 마련됐고, 1990년대 들어 소련 등 공산권의 붕괴로 자본주의의 승리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인류의 역사는 자본주의에서 끝날 거라는 전망도 있었다. 이를 설파한 학자는 <역사의 종말>의 저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이다. 그러나 기업활동이 또 자유화되면서 기업가들은 끝없는 욕망으로 독점을 더더욱 강화하는가 하면, 글로벌화된 세계 시장에서 거침없이 부를 빨아들인 탓에 빈부격차가 더해져 2000년대의 20:80에서 2010년대에는 1:99로 벌어졌다.
무한한 탐욕 때문에서 서민 경제가 파탄나자 2008년 대침체 당시 월스트리트 금융업체들은 파산 신청을 했고, 정부도 국민의 세금으로 제너럴 모터스, AIG, 씨티그룹 등지에 구제금융을 해줬지만 정작 금융기관들은 반성 없이 보너스 파티를 벌였다. 이와 같은 모습은 2010년 월가 점령 시위로 번졌다.
이 상황 속에서도 대다수 유럽의 국가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자본주의적 색깔이 옅어진 면도 있다. 사회민주주의로 불리는 체제, 즉 고율의 조세제도로 뒷받침되는 고복지 국가가 실현된 상태라 할 수 있다.
한편 구 공산권 해체와 2000년대 이후 세계 정세의 불안정, 2010년대 이후의 세계 경제의 위기를 거치며 시장자유주의와 자본의 사유화(민영화) 등을 주장하는 우파적 담론이 거세고, 또 그에 반대하는 좌파적 담론들, 또는 제3의 길의 후신들, 대안 우파들까지 각종 사상이 학계에서, 그리고 정치계에서 각축장을 벌이는 상황이다. 재미있게도 신자유주의는 경제적인 차원에서 논의되는 자본주의보다도 더 모호하다.
3.6. 자본주의 4.0을 향하다 (2010 ~ )
4차 산업혁명, 특히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은 자본주의에서 노동의 가치를 거의 0으로 만들고 있다. 노동뿐더러 한계생산성이 0으로 수렴하면서 기업들이 이익을 창출하는 일마저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플랫폼 회사들은 막대한 수입을 거두는 반면, 많은 기업들은 수익모델이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다.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은 소수의 고급 전문가 밖에는 시장 법칙에 따라 인공지능에 투자할 만큼의 가치도 없을 정도로 부가가치가 낮은 업종에서만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런 양극화는 소비 계층이 있어야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자본주의를 위기로 몰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주의는 자칫 거대한 플랫폼을 가진 기업들만 남는 봉건주의와 비슷한 사회가 될 수도 있다.
2008년 대침체를 계기로 아나톨 칼레츠키 같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인도적 성격을 지닌 '자본주의 4.0' 시대가 올 거라고 얘기했고, 자본주의 국가들은 정글 자본주의 대신 인도적 자본주의로 이행해야 한다는 과제를 떠안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같이 친기업적이고 능력중시적인 국가들은 이러한 딜레마를 안고 있다. 인류가 기술적 특이점에 도달해 노동에서 완전히 해방되면 자본주의가 무너질 것이라는 이 기사 역시 그러한 맥락이다. 하지만 기사는 현 체제에 불만이 많다는 것을 방증할 뿐 어떠한 시대가 열릴 것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찰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은 자본주의를 긍정적 혹은 필연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자본주의를 초역사적 체제로 여긴다. 즉, 영원히 과거나 미래는 없는 현재의 체제이다. 그러나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기에 공산주의보다 오래 갔기는 했어도 인류가 사라질 때까지 영원히 지속될 체제일지는 알 수 없다. 코로나19 발발 이후에 자본주의 붕괴설이 나온 바도 있고, 이는 결국 이권 문제이다. '경로의존성' 문서의 '이권 문제' 문단에도 관련 내용이 있다.
위와 같은 말도 있다. 차라리 세계의 종말을 상상할지 언정, 자본주의의 종말은 상상하지도 못하는 세태를 일컫는 말이다. 미디어에서도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재는 차고 넘치지만 문명이 붕괴되고 나서도 대체화폐 등을 사용해서 사회를 구축하는 등 자본주의가 멸망하는 내용의 작품은 거의 없다.[14]"우리는 자본주의라는 체제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쉬운 시대에 살고 있다."
'''프레더릭 제임슨'''
3.7. 자본주의는 왜 사라지지 않았는가?
아래에서도 다루고 있는 것처럼 제국주의 시대의 독점자본주의는 큰 폐해를 보이고 있었다. 일종의 자본주의의 위기라고도 볼 수 있을 듯하다. 이에 따라 마르크스와 같은 학자는 자본주의가 곧 막을 내릴 것이며 공산주의 사회가 등장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하지만 21세기를 맞은 지금 공산주의의 실험은 막을 내렸고 자본주의 사회는 여전히 이어져나가고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생산계급이 자본을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의 비율인 이윤율이 줄어든다. 이는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경제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인 측면의 기술혁신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의 생산계급은 줄어드는 이윤율을 만회하기 위해 인간의 생활세계를 자본으로 치환하는데 교통, 교육, 의료 등 국가공공부분의 민영화가 일례이다. 생산계급의 이윤율이 자본계급에 비해 계속 저하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욕망 때문이다. 따라서 자본계급의 이윤추구가 극단적으로 흐르게 되면 노동계급이 반기를 들어 사회주의 혁명이 발생할 것이라는 게 마르크스의 이론이다.
다만 이런 한계이윤율저하 경향의 법칙은 어디까지나 경향에 그칠 뿐이지 정말 그런지는 마르크스 본인도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또한 수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이 후일 연구하길 한계이윤율저하 경향의 법칙과 노동가치설은 상호 간에 논리적 모순이 있기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고,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은 폐기처분을 받았다. 참고로, 주류 경제학의 실증분석에 따르면 이른바 이윤율(이자율)은 자본이 축적될수록 일정 수준에서 수렴한다.
또,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가 찾아왔던 1920년대의 대공황은 국가의 재정지출 확대와 수정 자본주의 이론으로 극복할 수 있었으며 전후 인플레이션은 브레튼우즈 체제를 통해서 억제할 수 있었다. 이러한 처방 이외에도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체제와 자유주의를 통해 공산진영에 비해 놀라운 기술혁신이 이루어진 점도 자본주의 진영이 체제경쟁에서 승리했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가 망하지 않았다는 게 자본주의 자체에 결점이 없다는 말은 아예 아니다. 이러한 맹신적인 태도는 자본주의 사회건, 공산주의 사회건 사회 자체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안 된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자본주의 자체가 문제라고 보는 좌파적 사상들 역시 아직까지는 유의미하다.
아직까지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더 나은 사상이 등장하지 않은 이유도 있다. 만약 그러한 사상이 등장하더라도 기존의 자본주의 지지자들의 저항을 받을 수도 있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사유재산의 인정과 개개인의 자유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유재산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는 쉽게 사라지지 않으리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즉, 혈통에 의해 지위가 결정되던 전근대 신분제 사회 속에서, 재산은 개개인이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의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으로 기능해왔기 때문에 이를 전폭적으로 인정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쉽사리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다. 또한 자본주의 이전에도 시장경제의 틀은 존재해왔기 때문에 미래에도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는 사라질지언정 시장경제 자체가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4. 문제점
4.1. 부의 양극화
자본을 가진 사람은 자본에 기반한 더 많은 수익을 거두고, 자본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노동 밖에 팔지 못하는데, 대단한 기술이라도 가지지 않은 이상 큰 소득을 벌기는 어렵다. 자본이 축적될수록 자본이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 간의 부의 격차는 커져 간다. 예를 들어 시장 상인들이 대형 유통점이 들어서면 일자리를 잃고, 자본이 많은 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심해져 가며, 첨단 기술에 대한 지식을 소유한 사람은 노동자라도 일종의 자본 역할을 하는 지식 덕분에 고소득을 받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예전에는 육체노동이라도 열심히 하고 저축을 많이 하면 부를 모을 기회가 있었으나 이제는 월세 내고 생계를 유지하기도 벅찬 상황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상대적인 후진국에서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에 이들 국가는 진정한 사회주의가 아니고 국가가 자본가의 역할을 대행하는 국가자본주의 단계라고 말하기도 한다. 독점 문서도 참고.
4.2. 황금만능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소득과 부를 가장 높은 가치로 보고,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본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이윤을 추가하는 기업의 논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기업에 자기의 노동을 팔아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기업의 사고방식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하게 된다. 기업이 돈을 벌 수 있게 해 주는 사람, 돈을 잘 벌고 돈을 잘 쓰는 사람들이 존중을 받는다. 예전의 대량생산 체제에서는 조직의 부속품처럼 성실한 사람들이 환영받았지만, 21세기의 달라진 환경에서는 창의적인 사람, 협업을 잘 하는 사람들이 환영을 받는데, 이런 움직임에조차 기업의 논리가 영향을 미친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목적으로 대하지 못하고 자신이 돈을 버는 데 최대한 도움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애쓴다. 대기업은 납품회사들을 쥐어짜고 경영자는 근로자를 쥐어짜고 광고를 통해 끊임없이 소비를 자극한다. 사적인 이익과 돈이 우선적인 기준이 되다 보니, 환경 보존이나, 여가, 평등, 자율성, 공유, 사회 안전망 확보, 옛 문화 보전과 같은 여러 요소들은 자기 주장을 하더라도 항상 뒤로 밀린다. 탄소배출제처럼 환경보존도 돈의 가치로 바꾸어 놓지 않으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데, 모든 것이 돈의 흐름 혹은 그 흐름을 따르는 개인[15] 의 입장에서 느끼는 가치를 기준으로 환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철학자 강신주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종교나 다름없다고 한다.강의 녹취 돈을 받고 또 그 돈을 써야만 하는 구조라서 벗어날 수 없으며, 돈에 소비재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그래서 강의 중간에 돈을 태우고 사람들이 놀라는 반응을 보이자 종이에 종이 이상의 것을 보았기에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다고 지적했다. 영상 단, 신용 화폐의 발전에 비추어보면 오늘날의 화폐에는 국가의 신용이 보장되어 때문에 종이 이상의 가치가 담겨있는 것이 당연하다.
5. 참고 자료
5.1. 도서
-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11권: 미국 2-역사 편 - 이원복 글/그림. 김영사. 2004. p145~150.
-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 11권: 미국 2-역사 편 - 저자/출판사 동일. 2018. p262~265.
5.2. 영상
6. 관련 문서
6.1. 인물
6.2. 체제
6.3. 이미지
6.4. 밈
[1] 와 함께 그로 인해 점증하는 노사 간의 대립도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2] '사적 소유'와는 다르다.[3] 민법주해(곽윤직 편집대표) 물권법 1편 서설 참조.[4] 대표적으로 중국이나 베트남 등 국가에서 개인의 토지소유가 금지되어 있어 기한이 한정된 사용권이란 걸 사고판다. 이 때문에 이들 국가를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보기도 한다.[5] 이런 주식회사들은 절대 다수가 자본주의라는 문자 그대로 돈으로 정치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이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기업들을 쓰러뜨리고 결국 세계를 정복했다. [6]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학계에서 비주류인 것은 아니다. 의외로 이게 학문적으로는 상대적으로 경제보다 정치, 권력 같은 지배력을 가진 주요 계층과 관계된 개념이라 생각보다 경제쪽에서 쓰이지 않는 것뿐이다.[7] 대표적으로 아나코 캐피탈리즘이 돈으로 지배하자는 이야기며 기업국가와 친밀하다.[8] 영어의 '-ism'은 한자어 '-주의'와는 달리 늘상 사상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tourism', 'terrorism' 등과 같이 '~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때도 있다.[9] 그 시기의 영국은 미국에 물량으로는 밀리는 추세였지만 전통적인 과학기술 최강국이라 드레드노트, 전차나 심지어 나중의 레이더 등 전쟁을 주도하는 병기를 선도하는 국가였고, 그 영국으로부터 초강대국이라는 말까지 들은 독일도 경제나 과학기술 등의 분야에서 엄청났다.[10] 미국의 독립도 귀족 국가들의 다툼이 많은 도움이 되었고, 프랑스 혁명 때도 힘을 모아 프랑스를 공격하기는 했지만 결국 서로 다투느라 프랑스를 귀족 국가로 유지시키는 데 실패했다.[11] 이 시기가 자유주의 시민 혁명과 때를 같이하기 때문에 사회주의 진영에서는 자유주의 시민 혁명을 자본가의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한편, 이 부르주아 혁명 개념은 공산주의의 유물사관에서 역사 발달의 한 단계로 언급되었기 때문에, 북한과 같이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등장 시기가 그다지 일치하지 않는 곳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실제로는 자유주의나 자본주의와는 별 관련이 없는) 갑신정변을 부르주아 혁명으로 간주하기도 한다.[12] 정확히 얘기하자면, 수중에 돈이 없어 수요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13] 이를 일본에서는 수정자본주의, 아나톨 칼레츠키는 '자본주의 2.0'이라고 부르기도 한다.[14] 스타 트렉에서는 물질재조합장치가 등장하여 사람들이 물질적 가치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모습을 그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작품에서도 물질 재조합이 불가능한 라티넘이라는 금속을 대체화폐로 삼기 때문에 완전히 탈자본주의적인 세계관을 보여주지 못했다.[15] 여기서 개인은 결코 평범한 대다수인 개개인을 뜻하지 않는다. 사회기여로 나타나는 지분과 자산의 독과점이 만들어낸 새로운 계층이자 세계 부의 절반을 긁어모으는 실질 권력자들, 그 부류의 집합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