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소제(전한)
한(漢)나라의 제3대 황제. 이름은 유공(劉恭)이라고 하지만 《사기》(史記), 《한서》(漢書), 《자치통감》(資治通鑑) 및 그 주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으므로 근거는 알 수 없다.[1]
혜제와 장황후 사이에 자녀가 없었으므로 양자로 들여서 양육하였으나, 일설에는 남의 아이를 데려왔다는 설과 혜제와 후궁 사이에서 태어났는 설이 있다. 여후는 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을 염려하여 이 인물의 생모를 죽였다고 전해진다는 기록으로 보아 후자가 가능성이 높다.
기원전 188년, 혜제가 승하한 후 이 인물은 등극하여 소제가 된다. 여태후는 이 인물이 어리다는 이유로 정사에 관여하여 세력을 확장하기 위하여 여씨들을 왕으로 봉하는 등 전횡을 일삼는다. 이 인물이 성장하면서 과거 진상을 듣고 보복할 것을 공공연히 이야기하는데, 이를 알게 된 여태후는 대외적으로 중병이라 공표하곤 그를 유폐시킨 후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이렇게 되자 나라를 다스릴 수 없으므로 폐위되었고 머지 않아 살해되었다. 그의 뒤를 이어 또 다른 소제가 뒤를 잇는데 바로 동생(?) 유홍이다.[2]
[1] 전목(錢穆)의 《국사대강(國史大綱》이라는 책에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전목이라는 사람은 1895년 생으로 1990년까지 산 현대 인물인데, 무슨 근거로 이런 이름을 올렸는지는 모른다. 중국에서는 전소제의 이름을 미상으로 표기하고 있다. 그런데 20세기 대부분의 기록에서는 전소제의 이름이 다 유공이라고 되어 있어서, 인터넷이 없었다면 전목이 지어낸 이름이 휘로 굳어졌을지도 모른다.[2] 전소제만 혜제의 아들이고 나머지는 혜제의 아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