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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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정국일(鄭國一)
이명
정근도(鄭槿島)
본관
하동 정씨
생몰
1909년 5월 19일 ~ 1967년 3월 4일
출생지
평안북도 철산군 고성면 월봉동[1][2]
(현 평안북도 철산군 월봉리)
사망지
인천광역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국일은 1909년 5월 19일 평안북도 철산군 고성면 월봉동(현 철산군 월봉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8년 8월 조선일보 철산지국장 박봉수(朴鳳樹)를 비롯하여 정상윤·정치언(鄭致彦)[3] 등 8명의 동지와 더불어 신간회 철산지회를 조직하였다. 이들은 동 지회의 결성대회장에서 항일독립사상을 고취하는 강연을 하다가 발기인 전원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정국일은 1년 4개월에 걸친 예심 끝에 1929년 11월 1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았으나 항소하여 1930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 집행유예 3년형을 언도받고 출옥하였다. 출옥 후 1932년 항일결사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하던 중 일경에 체포되었으나 탈옥하여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갔다.
그는 베이징에서도 독립운동단체에 가입하여 활약하다가 1944년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8.15 광복 후 조국으로 귀환한 그는 인천에 정착했고, 1967년 3월 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정국일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4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인근의 도태동·동천동·송교동·신학동·영산동과 함께 하동 정씨 집성촌이다.[2] 독립유공자 공적조서에는 철산면 동부동이 본적으로 기재되어 있다. 하지만 1939년 쇼와사상통제사자료에는 철산면 월봉동이 출생지로 기재되어 있으며, 1930년 독립운동판결문에도 철산면 월봉동이 본적 및 주소지로 기재되어 있다.[3] 독립유공자로 지정된 정치언과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