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정씨

 


'''하동 정씨(河東 鄭氏)'''
'''관향'''
경상남도 하동군
'''시조'''
정도정(鄭道正) - 밀직공파
정응(鄭膺) - 좌정승공파
정손위(鄭遜位) - 지예부사공파
'''집성촌'''
광주광역시 광산구·동구·북구·서구
경기도 고양시·파주시
충청북도 괴산군·영동군·옥천군·진천군·청주시
충청남도 부여군
전라북도 완주군
전라남도 곡성군·광양시·나주시·무안군·보성군
전라남도 신안군·영암군·장성군·해남군·화순군
경상남도 사천시·하동군·함양군
황해도 금천군·안악군·해주군
평안북도 박천군·선천군·용천군·운산군·의주군
평안북도 정주군·철산군·초산군·후창군
함경남도 북청군·홍원군
'''인구(2015년)'''
187,152명
1. 개요
2. 집성촌
2.1. 경기·충청
2.2. 전라
2.3. 경상
2.4. 북한
2.4.1. 황해
2.4.2. 평안
2.4.3. 함경
3. 인물


1. 개요


하동 정씨(河東鄭氏)는 경상남도 하동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 집단이다.
하동 정씨는 본관은 같지만 시조를 달리하는 세 계통이 있다.
  • 밀직공 국룡파(密直公 國龍派) : 평장사에 오른 정도정(鄭道正)을 시조로 한다. 그 후 후손의 기록이 없어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낸 후손 정석숭(鄭碩崇)을 1세조로 하고, 10세 정인지(鄭麟趾), 12세 정여창(鄭汝昌)으로 이어져 왔다.
  • 정승공 응파(政丞公 膺派) : 고려 덕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김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도첨의 좌정승(都僉議左政丞)등을 지낸 정응(鄭膺)을 시조로 하고 6세 정희(鄭熙), 7세 정초(鄭招)로 이어져왔다. 하동정씨 문성공파보(1983)에 의하면 정승공 응파의 시조 정응(鄭膺)의 부친은 정득신(鄭得申)으로 정도정(鄭道正)의 후손인 정석숭(鄭碩崇)의 삼남이다.
  • 지부사공 손위파(知部事公 遜位派) : 시조 정손위(鄭遜位)는 고려 숙종 때부터 명종 등 5대에 걸쳐 벼슬을 하여 정헌대부(正憲大夫), 지례부사(知禮部事), 응양대장군(膺揚大將軍),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하동백에 봉해졌다.

2. 집성촌



2.1. 경기·충청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덕은동
  •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적암리
  •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외령리
  •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1]
  • 충청북도 옥천군 안남면 도농리
  • 충청북도 진천군 덕산읍 석장리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덕촌리[2]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

2.2. 전라


  • 광주광역시 광산구 장수동
  • 광주광역시 동구 동명동
  •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 전라북도 완주군 용진읍 신지리
  • 전라남도 곡성군 오산면 봉동리
  • 전라남도 광양시 옥룡면 추산리[3]
  •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금안리
  • 전라남도 무안군 운남면 연리
  • 전라남도 보성군 겸백면 도안리[4]
  • 전라남도 신안군 장산면 도창리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
  •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안노리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구산리·신학리
  • 전라남도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
  • 전라남도 장성군 삼서면 금정리[5]
  • 전라남도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6]
  • 전라남도 화순군 도암면 운월리
  •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강성리·송정리[7]·용반리·초방리
  •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신리
  •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대신리
  • 전라남도 화순군 한천면 금전리

2.3. 경상


  • 경상남도 사천시 서포면 금진리·선전리
  • 경상남도 하동군 고전면 성평리
  •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우명리[8]
  •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9]·덕암리·마산리

2.4. 북한



2.4.1. 황해


  • 황해도 금천군 금천면 잠성리
  • 황해도 금천군 산외면 황룡리
  • 황해도 안악군 서하면 중도리
  • 황해도 안악군 안곡면 낙암리
  • 황해도 해주군 해남면 봉대리

2.4.2. 평안


  • 평안북도 박천군 가남면 서동동
  • 평안북도 선천군 신부면 백현동
  • 평안북도 용천군 양광면 용계동[10]
  • 평안북도 용천군 용천면 중흥동
  • 평안북도 운산군 북진면 초리동
  • 평안북도 의주군 의주읍 동부동·서부동
  • 평안북도 의주군 수진면 일원[11]
  • 평안북도 정주군 덕달면 육성동
  • 평안북도 철산군 백량면 검암동·도암동·명암동[12]
  • 평안북도 철산군 부서면 성암동·신곶동·이복동·인평동[13]
  • 평안북도 철산군 서림면 작현동[14]
  • 평안북도 철산군 여한면 가봉동·가산동·덕화동·도덕동·문봉동[15]·상석동·서봉동·쌍신동·추남동·추암동
  • 평안북도 철산군 정혜면 강하동·고암동·관암동·어산동·오봉동
  • 평안북도 철산군 철산면 도태동·동천동·송교동·신학동·영산동·월봉동[16]
  • 평안북도 초산군 동면 건양동
  • 평안북도 초산군 송면 양강동
  • 평안북도 후창군 후창면 군내동

2.4.3. 함경


  • 함경남도 북청군 신창면 만춘리
  • 함경남도 북청군 이곡면 제상리
  • 함경남도 홍원군 주익면 남당리

3. 인물


  • 정인지(鄭麟趾, 1396년 ~ 1478년) : 1453년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주도한 계유정변의 성공과 함께 좌의정에 발탁되고,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에 책록되면서 하동부원군(河東府院君)에 봉군되었다.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 정초(鄭招, ? ~ 1434년 ) : 1405년(태종 5) 문과에 급제하고, 1407년 중시에 합격하여 이조판서·대제학을 지냈다. 시호는 문경(文景).
  • 정현조(鄭顯祖, 1440년 ~ 1504년) : 정인지의 아들. 1455년(세조 1) 세조의 딸 의숙공주(懿淑公主)와 혼인하여 하성위(河城尉)에 봉해졌다. 1458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1468년 익대공신(翊戴功臣) 2등에 책록되고 수록대부 하성군에 봉하여졌으며,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1등에 책록되고 하성부원군(河城府院君)에 진봉되었다. 시호는 편정(褊玎)이다.
  • 정여창(鄭汝昌, 1450년 ~ 1504년) : 145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1495년(연산군 1) 안음현감(安陰縣監)에 임명되었다. 1498년 무오사화 때 종성(鍾城)으로 유배, 1504년 죽은 뒤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되었다. 시호는 문헌(文獻).
  • 정운(鄭運, 1543년 ~ 1592년) :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순신(李舜臣) 휘하에서 공을 세우고, 부산포해전에서 우부장(右部將)으로 선봉에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 정봉수(鄭鳳壽, 1572년 ~ 1645년) :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장으로 활약하고, 1634년 전라도병마절도사를 거쳐 부총관 겸 훈련도정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양무(襄武).
  • 정충신(鄭忠信, 1576년 ~ 1636년) : 전라도 나주의 노비였으나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을 따라 종군하다가, 16세의 나이에 왜군의 포위를 뚫고 의주까지 가서 권율의 장계를 선조에게 올렸다. 이러한 의기를 기려 백사 이항복이 그에게 충신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조선 선조는 정충신을 노비에서 면천을 시켜주었다. 이후 무과에 급제한 뒤 1621년 만포첨사(滿浦僉使)로 국경을 수비하고, 1623년 안주목사 겸 방어사가 되었다. 1623년(인조 1) 안주목사로 방어사를 겸임하고, 다음해 이괄(李适)의 난 때에는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전부대장(前部大將)으로 이괄의 군사를 황주와 서울 안산(鞍山)에서 무찔러서 진무공신(振武功臣) 1등으로 금남군(錦南君)에 봉해졌다. 이괄과 친분이 두터웠던 그가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자신의 결백을 나타내기 위하여 성을 버리고 달아나 문회(文晦) 등의 고발로 체포되었으나 은혜를 입고 풀려났다. 1627년 정묘호란 때에는 부원수를 지냈고, 1633년 조정에서 후금(後金)에 대한 세폐의 증가에 반대하여 후금과의 단교를 위하여 사신을 보내게 되자 김시양(金時讓)과 함께 이를 반대하여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나와 이듬해 포도대장·경상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1]
  • 정상기(鄭尙驥, 1678년 ~ 1752년) : 영조 때 지리학자
  • 정갑주(鄭甲柱, 1954년 ~ ) : 제30대 광주고등법원장
  • 정동채(鄭東采, 1950년 ~ ) : 제15·16·17대 국회의원. 제11대 문화관광부 장관.
  • 정명훈(鄭明勳, 1953년 ~ ) : 지휘자, 아시아필하모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
  • 정두언(鄭斗彦, 1957년 ~ 2019년 ) : 제17·18·19대 국회의원
  • 정양석(鄭亮碩, 1958년 ~ ) : 제18·20대 국회의원
  • 정청래(鄭淸來, 1965년 ~ ) : 제17·19대 국회의원
  • 정호석(鄭號錫, 1994년 ~ ) : 방탄소년단 멤버 제이홉

[1] 독립유공자 정해용·정화중이 이 마을 출신이다.[2] 독립유공자 정순만·정양필 부자가 이 마을 출신이다.[3] 독립유공자 정성련정인화 전 국회의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4] 독립유공자 정태화정양석 전 국회의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5] 정회열 전 기아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가 이 마을 출신이다.[6] 임진왜란 때 이순신 휘하에서 종군하던 정운 장군이 이 마을 출신이다.[7] 독립유공자 정을현·정찬규가 이 마을 출신이다.[8] 독립유공자 정순길·정순완이 이 마을 출신이다.[9]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였던 일두 정여창이 이 마을 출신이다.[10] 독립유공자 정제형이 이 마을 출신이다.[11] 독립유공자 정경순이 수진면 수구동 출신이다.[12] 독립유공자 정원범이 이 마을 출신이다.[13] 독립유공자 정용구가 이 마을 출신이다.[14] 독립유공자 정기주가 이 마을 출신이다.[15] 독립유공자 정용삼이 이 마을 출신이다.[16] 독립유공자 정국일이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