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송

 


[image]
성명
정서송(鄭庶松)
이명
정서성(鄭瑞聖)
생몰
1897년 1월 3일 ~ 1966년 11월 11일
출생지
경기도 남양군 초장면 이동
(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사랑리)
사망지
서울특별시
매장지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유공자,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정서송은 1897년 1월 3일 경기도 남양군 초장면 이동(현 화성시 장안면 사랑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3일, 그는 차희식·차병한·차인범 등의 동지와 함께 화성군 장안, 우정면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지휘하였다. 그는 계획대로 2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장안면 사무소로 갔는데 면장 김현묵(金賢默)의 연설이 끝나자, 군중의 선두에 서서 투석과 몽둥이로 면사무소를 부수고 공문서를 파기하였다. 군중이 1천여 명으로 늘어나자 차병한·이영쇠 등과 함께 군중을 인근의 쌍봉산(雙峰山)으로 인솔하여 그 곳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게 했다.
이어서 차인범 등과 함께 2천여 명으로 불어난 군중을 인솔하여 우정면 사무소로 달려가 면사무소 건물과 집기, 공문서를 때려부수었다. 다시 군중을 인솔하여 같은 면내인 화수리에 있던 경찰 주재소를 습격하여 투석하고 불을 질렀다. 이 때 주재소 안에서 일본인 순사 카와바타 토요타로(川端豊太郞)이 권총을 발사하며 도망치자, 그는 차희식·차인범·이순모(李順模)·장제덕·장소진 등과 함께 추격하여 격살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소요·살인·방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서울로 이주하여 조용히 지내다 1966년 11월 1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정서송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70년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