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이월 브라운 스튜어트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기병대 장군.
풀 네임은 제임스 이월 브라운 스튜어트(James Ewell Brown Stuart)이지만, 애칭으로 이름의 앞 글자 J, E, B를 따서 젭(Jeb) 스튜어트로 통했다. 스톤월 잭슨제임스 롱스트리트가 리의 오른팔과 왼팔이라면 스튜어트는 리의 눈과 귀라고 할 수 있는 명장으로 북군의 주력의 이동방향과 배치 상황에 대한 빠르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여 북버지니아군의 승리의 열쇠가 되었다. 서부전선의 네이선 베드퍼드 포레스트와 함께 남군 최고의 기병사령관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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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남부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1854년 텍사스의 기병대 장교로 임관하여 군무를 시작,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노예해방운동가 등과 싸우며 초기 군생활을 시작하였다.
1861년 대위로 진급하지만 남부가 미연방에서 갈라지자 연방군을 떠나 남부연합군에 가담, 중령 계급을 받고 처음에는 보병을 지휘하다가 상관인 "스톤월" 잭슨에 의해 다시 기병을 맡는다.
남북전쟁 기간중 적의 후방에 침투하는 대담한 위력정찰로 명성을 높였으며, 앤티텀 전투, 프레데릭스버그 전투, 챈슬러스빌 전투에서 공훈을 세우고, 잭슨이 전사하자 그의 지휘권을 인계받아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브렌디역 전투에서 강화된 북군 기병과 교전을 벌여 큰 인명 피해만 입고 무승부를 기록하더니,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남군 사령관 로버트 E. 리의 애매한 명령 덕에 북군의 주력과는 상관없는 곳을 전전하다가 별다른 정보도 얻지 못하고 뒤늦게 합류, 전투중에는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 지휘 하의 북군기병대와 전투를 벌이지만 성과를 내지 못하는 등 삽질을 계속하여 남군의 패배에 일조하고 만다.
1864년 5월, 오버랜드 전역의 옐로 터번 전투에서 북군의 셰리던 휘하의 기병대와 전투 중 총격을 받고 31세의 젊은 나이로 전사한다.
항상 쾌활하고 자신만만한 성격으로 자기의 전과를 늘 신문에 자랑스럽게 소개했으며 기병대 전용의 우수한 악대를 대동하고 다니면서 주둔지역의 남부아가씨들과 함께 파티를 갖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아내와 금슬이 무척이나 좋았으며, 어릴 때의 부모님과의 약속으로 죽을 때까지 금주를 하는 일면도 있었다. 엄격하고 과묵한 성격이었던 잭슨과도 사이가 좋아서 가끔씩 잭슨에게 장난을 치기도 하고 농담도 주고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