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몬 신호장
1. 개요
일본 홋카이도 키타미시에 위치한 JR 홋카이도 세키호쿠 본선의 폐지된 신호장이다. 1914년에 조몬 신호소(常紋信号所)로 개업, 1922년에 신호장으로 승격되고 1951년에 가승강장을 건설하여 역으로 승격되었으나 1975년에 다시 신호장으로 격하되었다.
주로 증기 기관차가 스위치백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를 촬영하기 위해 전국의 철도 동호인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었는데, 이는 일본국유철도가 신호장에 가승강장까지 설치해가며 여객영업을 한 주된 이유이다. 물론 증기 기관차 운행이 끝난 뒤로는 신호장 업무도 중지되었고, 2017년 3월 4일에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주변에는 숲밖에 없다.
2. 조몬터널
신호장이 역 북쪽의 조몬터널과 매우 가깝기 때문에 여객영업을 하던 시기에 당직 직원이 심령현상을 겪었다고 한다.
조몬터널은 건설 당시 가혹한 강제노동으로 악명이 자자하여,[1] 1912년부터 1914년까지 공사기간 36개월 동안 사망자가 100명 이상 나왔다. 병든 노동자에게도 일을 열심히 안 한다고 폭행을 가했고, 사망하면 현장 부근의 숲에 묻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개통 이후에도 열차가 터널 안에서 급정거하는 사고가 종종 발생하자 1959년 일본국유철도는 1 km 떨어진, 시신을 묻은 공터 앞에 위령 목적으로 조그만 석조 지장보살 입상 한 좌를 세웠다. 보살상 뒤편 공터에서 '''유골 50여 구'''를 수습했다고 한다.
더 무서운 사실은 현장 감독자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를 삽으로 때려 죽인 뒤 본보기로 '''시신을 터널 벽에 세워놓았다'''는 것이다.[2] 완공 이후 전설처럼 구전되던 내용이었는데, 1968년 산리쿠 해역지진(三陸沖地震)이 일어나 터널을 수리하던 중 1970년 터널 벽 안쪽에서 '''두개골에 금이 간 해골'''이 발견되어 사실로 드러났다. 이후 조사에서 시신 10구를 추가로 발견하여 마을 공동묘지에 안장했다. 1980년에는 카네하나역 앞에 위령비를 세웠다. 이 위령비에선 망자들을 피해자나 희생자가 아니라 '순직자'라고, 마치 공사 중 불의의 사고로 죽은 양 묘사했다.
3. 배선 구조
좌측이 조몬터널/이쿠타하라 방면, 우측이 니시루베시베 방면이다. (배선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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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홋카이도에서는 문어방 노동(タコ部屋労働)이라 하여 장기간 노동자들의 신체를 구속하고 육체노동을 시키는 노동 착취가 성행했다. 현재는 일본 노동 기준법 5조에 의해 금지되었다.[2] 일본어로는 히토바시라(人柱)라고 한다. 본디 히토바시라는 무너지기 쉬운 건축물에 인신공양을 바쳐 튼튼하게 하려는 주술적 목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여기서는 그런 주술적인 이유 따위는 전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