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바베라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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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image]
'''이름'''
'''해나 바베라
HANNA BARBERA
'''
'''분야'''
'''텔레비전'''
'''입성날짜'''
'''1976년 7월 21일'''
'''위치'''
'''6751 Hollywood Blv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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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있는 사람은 윌리엄 해나.
1. 개요
2. 생애
3. 관련 영상
4. 작품 목록[1]


1. 개요


풀네임은 조지프 롤런드 "조" 바베라(Joseph Roland "Joe" Barbera). 1911.3.24 ~ 2006.12.18
미국 뉴욕 주 출신 애니메이터, 감독, 제작자

2. 생애


이탈리아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재학 중 재단사의 배달부로 일하면서 잡지에 만화를 연재해보잔 꿈을 가졌고, 대공황 초기에 은행 업무원을 맡으며 동시에 여러 잡지들에 자신이 그린 만화를 기고하기도 했었다. 이후 뉴욕에 소재한 뉴욕 예술학생 연맹(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과 프랫 연구소(Pratt Institute)에서 미술 수업을 배웠고, 1932년 밴 보런(Van Boeren) 스튜디오로 입사해 스토리보드 아티스트로 첫 애니메이션 경력을 시작하였다.
1936년 밴보런 스튜디오가 폐쇄되면서 테리툰즈 스튜디오로 이직했고, 이듬해에 메트로-골드윈-메이어로 이직해 그곳에서 평생의 동반자이자 친구인 윌리엄 해나를 만나 팀을 형성하게 된다. 둘은 1940년 《고양이, 쫓겨나다》(puss gets the boot)을 발표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제작자인 프레드 큄비의 반대를 무시하고 계속 톰과 제리 단편을 감독해 애니메이션계에 인지도를 쌓았다.[2] 1955년에 MGM의 애니메이션 부문으로 해나와 같이 배치되어 근무하였으나 2년이 지난 1957년 해고당하면서 바베라는 동료인 해나와 같이 여러 아티스트들과 TV 관계자들과 교류, 연락해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을 설립했다.
설립 이후 바베라는 친구 해나와 같이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제작에 나섰으며, 1960년 발표한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이 대흥행을 거두면서 약 30년간 수많은 해나-바베라 애니메이션의 공동 책임 제작자를 맡는 등 지속적으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활동하였다. 1991년까지 윌리엄 해나와 같이 회사의 실질적 우두머리 중 하나였었고 이듬해(1992년) 터너 방송국에서 회사를 인수하면서 《덱스터의 실험실》, 《파워퍼프걸》 등 자신들과 관련없는 애니메이션들이 제작되기 시작했음에도, 바베라와 해나는 플린스톤 극장판과 스쿠비 두 극장판 제작에 참여하는등 계속 현역으로 활동했으며, 2001년 해나가 목의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도 본인은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을 합병한 워너 브라더스 애니메이션에 근무하여 말년까지 업계 활동을 지속하였다.
이직한 지 얼마 안 된 2006년 12월 18일,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자연사로 세상을 떠났고, 무덤은 글렌데일의 내부 공원에 안장되었다. 그의 유작이라고 할수 있는 작품은 《톰과 제리: 호두까기 인형》이다
자세한 인생사는 https://en.wikipedia.org/wiki/Joseph_Barbera 참조.
바베라와 해나가 생전 감독하거나 제작에 관여한 애니메이션들에서 나타난 우정 파트너십, 콤비 캐릭터 구도, 우스꽝스러운 슬랩스틱 코미디, 가족주의 연출은 1980년대 후기의 현대기 이전까지 미국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남겼다.
1957년 바베라와 해나가 설립한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의 (UPA의) 제한 애니메이션 기법에서 영향을 받은 예산 규모 축소, 도면 사용 감소는 현재까지 미국의 많은 TV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계속 활용하고 있으며, 캐릭터간의 대화 집중적 활용, 배경화면 변경속도 증가는 《심슨 가족》, 《네모바지 스폰지밥》, 《사우스 파크》 등의 현대기의 미국 애니들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자신이 창립한 해나-바베라 프로덕션에서 근무한 애니메이터들 중에 훗날 메이저로 대접받는 애니메이터들이 나왔는데, 겐디 타르타콥스키, 세스 맥팔레인, 크레이그 매크래컨[3] 등이 이에 속하며 현재까지 미국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3. 관련 영상



생전 인터뷰 영상 2.[4]

4. 작품 목록[5]


[1] 이 문단에서 톰과 제리를 제외한 작품들(tv 애니메이션)은 윌리엄 해나와 공동으로 책임 제작자(executive producer)를 맡은 경우에 속한다.[2] 이런 앙금으로 인해, 아카데미상 시상식 개최마다 큄비는 그들을 초대하지 않고 단독으로 시상식에 참석하기도 했었다.[3] 파워퍼프걸, Foster's Home for Imaginary Friends[4] 윌리엄 해나와 공동으로 인터뷰.[5] 이 문단에서 톰과 제리를 제외한 작품들(tv 애니메이션)은 윌리엄 해나와 공동으로 책임 제작자(executive producer)를 맡은 경우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