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第六) 후제(侯第)'''
'''59위 벽양후(辟陽侯) 심이기'''

'''60위 고경후(高景侯) 주가'''

'''61위 안평후(安平侯) 악천추'''
1. 개요
2. 행적
3. 기타


1. 개요


'''생몰년도'''
? ~ 기원전 204년 또는 203년
'''이름'''
주가(周苛)
'''작위'''
고경후(高景侯)
초한쟁패기유방의 장수.

2. 행적


원래는 사촌 동생인 주창과 함께 사수군(泗水郡)의 졸사(卒史) 일을 했다. 이후 유방이 패현에서 봉기하여 사수군의 태수와 군감(君鑑)을 공격할 때 힘을 보탰고 빈객(賓客)이 됐다.
한왕 1년(기원전 206년)에는 어사대부(御史大夫)의 자리를 받았다.[1][2]
한왕 3년(기원전 204년) 형양 · 성고 전역에서 유방은 곤경에 처했고 결국 형양성에서 항우에게 포위 당한다. 이 해 7월, 유방은 은밀히 탈출하면서 성의 수비를 위해서 위표(...)[3], 한왕 신, 종공 그리고 주가를 남겼다.
주가는 종공과 모의해서 한 번 배신한 전력이 있는 위표와는 성을 지키기 힘들다고 파악해서 위표를 죽였고 항전을 이어나갔으나 결국 성은 함락되고 항우에게 포로로 잡힌다.
항우는 주가의 기개를 높이 사 초나라의 장수로 삼으려 했으나 오히려 주가는 '''당신이나 빨리 한왕에게 항복하시오. 그러지 않으면 얼마 있지 않아 포로가 될 것이오.''' 라고 응수했고 격분한 항우는 주가를 팽형으로 죽인다.
이후 어사대부의 자리는 사촌 동생 주창이 승계하고 주가인 아들인 주성(周成)은 아버지의 공으로 고경후(高景侯)에 봉해졌다.

3. 기타


주창에 뒤지지 않는 독설가 겸 유방의 충신. 그 항우 앞에서도 독설을 퍼붓는 등 패기가 남달랐으며, 끝까지 형양을 사수하려 하는 등 유방에게 있어서 사촌 주창과 함께 신임하는 신하였다.
[1] 어사대부(御史大夫)는 감찰직인데 이후 나오는 할 말 다하며 기개 있는 모습으로 봤을 때 그 자리에 잘 어울린다 유방이 판단한 듯.[2] 사촌 동생인 주창도 독설로 유명한걸 봤을 때 사촌끼리 비슷한 성격인 듯 하다. [3] 위표는 팽성 전투 이후 배신했다가 한신에게 털려서 다시 돌아온 전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