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카를로 파스퀴니
'''Giancarlo Pasquini''' (지안카를로 파스퀴니[1] )
[image]
(2006년 모습)
페이스북
유튜브
이탈리아의 가수, 작곡가, 프로듀서. 1963년 2월 21일에 만토바에서 태어났다. 본명보다는 Dave Rodgers(데이브 로저스)라는 예명으로 더 유명하다.
이탈로 디스코 뮤지션으로 시작해 유로비트 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으며, 테크노와 팝락 곡들도 발표했다.
다른 유로비트/이탈로 디스코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예명을 사용했다. 다른 가수들과 예명을 공유하기도 했다.
만토바의 C. Galliani 음악 학교를 졸업. 학생 때 처음으로 디스코텍에 갔다가, 음악이 마음에 안 들어서 자신이 직접 디스코를 작곡하기로 결심했다는 설이 있다.
1981년에 Aleph라는 밴드를 결성[3] , 음악계에서 처음 활동하기 시작한다. 1984년에 안토니오 카란치(Antonio Caranci)가 지안카를로에게 Aleph의 곡 중 하나인 In Your Eyes[4] 를 Caravel Records에서 발매하라고 권유했다. 이 곡은 Aleph의 데뷔 싱글 곡이 되었으며 이웃 나라 스페인에서 인기를 얻었다. 한편 지안카를로는 1984년부터 DISCOMAGIC 레이블의 작곡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85년에는 DISCOMAGIC 산하의 Time Records와 계약. 같은 해에 Aleph가 두 번째 싱글 Fly to me로 유명해진 후, 지안카를로는 마우로 파리나가 빠진 Time Records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 다른 가수들의 작곡과 프로듀스도 하기 시작했다. 1986년에 발표된 Aleph의 세 번째 싱글 Fire On The Moon도 성공을 거두었다. 1988년에는 Aleph의 첫 번째 정규 앨범 Black Out이 발표되었는데, 이 시기부터는 지안카를로가 Aleph에서 보컬뿐만이 아니라 작곡, 편곡, 레코딩 등 거의 모든 부분을 담당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5]
1988년 11월에는 That's EUROBEAT SPECIAL GIGS를 통해 처음으로 일본에서 공연했다. 1989년에는 두 번째로 일본에서 공연을 했으며 두 번째 정규 앨범인 Take My Life도 발표했다.
1989년에는 Flea Records로 이적.[6] Flea에서 사용한 예명으로는 Coo Coo(노래), Alkogan(작곡)[7] , Frankie Lee (& Felix the Fox)(프로듀스) 등이 있다. 또 이 때 지안카를로는 'King Kong & D.Jungle Girls'의 후기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8]
유로비트 초창기부터 작곡가 및 프로듀서로서 활발히 활동했을 뿐 아니라 보컬리스트로서도 수많은 곡을 남겨 유로비트의 대부로 추앙받고 있다. 지안카를로는 다른 유로비트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예명을 사용했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987년부터 사용한 Dave Rodgers라는 이름으로, 90년대 초반 후로는 이 예명을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했다.
1990년 지안카를로는 메탈 밴드 Bulldozer의 보컬 겸 베이시스트이자 DISCOMAGIC의 A&R이었던 Alberto Contini와 만나서 함께 A Beat C를 세우고(정확히는 Rodgers & Contini Records를 세우고 그 산하에 A-Beat C를 만든 형태) SUPER EUROBEAT 시리즈의 에이벡스와 전속 계약을 맺는다. SUPER EUROBEAT는 원래 수입 음반이었으나, A-Beat C와 에이벡스의 계약을 계기로 에이벡스가 직접 SUPER EUROBEAT를 생산하게 된다. A-Beat C는 당시 신생 소규모 레이블이었던 에이벡스의 첫 정식 파트너였다.
A-Beat C를 설립한 직후 지안카를로는 The Big Brother라는 예명으로 '''Wild Reputation'''[9] 을 발표해 유로비트 시장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다. 또 Wild Reputation과 함께 SUPER EUROBEAT Vol.9에 실린 Norma Sheffied의 Your Body Lies, SUPER EUROBEAT Vol.10에 실린 Virginelle의 Fantasy 등을 프로듀스해 애수 유로비트의 기초를 쌓는다.
한편으로는 코무로 테츠야가 에이벡스와 연결된 계기가 되었는데, 에이벡스에서 TM NETWORK 곡들의 유로비트 편곡 앨범인 TMN Song Meets Disco Style[10] 을 지안파를로 파스퀴니한테 내게 된 것. Get Wild를 비롯한 TM NETWORK의 히트곡들을 유로비트 영어 버전으로 새롭게 편곡했는데, 이후로 코무로 테츠야가 에이벡스에서 프로듀서로서 활동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된 앨범이다.
일본의 유로비트 시장에서는 1990년 전후에 1차 붐, 90년대 중반에 2차 붐, 90년대 후반에 3차 붐이 있었는데[11] , 그 동안 지안카를로는 가수 겸 프로듀서로서 유로비트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일본 가수 V6의 곡 MUSIC FOR THE PEOPLE과 BEAT YOUR HEART, TAKE ME HIGHER를 작곡하기도 했다. 또 이니셜D 시리즈에 삽입된 '''Space Boy'''와 '''Deja Vu''' 등도 유명해져 현재까지 대표곡으로 꼽히고 있다. 2000년 SUPER EUROBEAT presents INITIAL D ~D NON-STOP MEGA MIX~가 일본 골드디스크 올해의 애니메이션 앨범으로, 2001년 SUPER EUROBEAT Vol.110이 일본 골드디스크 올해의 기획앨범으로 선정되었을 때 지안카를로가 대표로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받았다.[12]
2010년, 지안카를로는 유로비트 뮤지션인 에벨린 말페라리(예명 Futura, Oceania)와 함께 Sun Fire Records를 세워서 A-Beat C를 떠났다[13] . Sun Fire에서는 A Beat C 시절만큼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작곡과 프로듀스를 했으며, 보컬리스트로서도 솔로 곡 및 에벨린과의 듀엣곡을 발표했다.
2015년 초, Aleph 데뷔 30주년을 기념해서 Fly To Me를 리메이크하겠다고 페이스북에서 발표했다.[14] 그리고 한국/일본 시간으로 2016년 1월 1일, 유럽 시간으로 2015년 12월 31일 유튜브를 통해 약속대로 Fly To Me 2016을 발표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Aleph feat. Dave Rodgers. 락 기타리스트이며 예전부터 지안카를로와 같이 일한 Alex de Rosso[15] 가 기타 솔로를 맡았다.
2016년 1월 30일에는 멕시코에서 Patrick Miller Fest 2016에 Aleph로 출연해 80년대 이탈로 디스코 곡들을 불렀다. 2007년에도 Aleph의 이름으로 멕시코에서 공연한 적이 있으므로 이번이 두 번째다.
2016년 5월 7일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I Venti d'Azzurro 30주년 파티에 참석했다. 이탈로 디스코 뮤지션들이 모인 파티여서 Aleph의 이름으로 참석했고 공연은 하지 않았다. 팬들도 입장권을 사서 들어갈 수 있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전 세계(라고 해도 주로 서양)의 팬들이 지안카를로와 함께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다.
2016년 12월 13일 The Official Dave Rodgers Aleph Store라는 이름의 공식 굿즈 쇼핑몰이 문을 열었다. 200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 발매했던 것과 똑같은 디자인의 티셔츠를 주로 팔고 있고(...) 2017년 1월에 발매한 Fly To Me 2017의 LP도 판다. 한국에서도 직구 가능.
2016년 12월 17일에는 네덜란드 날드바이크에서 열린 I Venti d'Azzurro 겨울 파티에 참석했다. 같은 해 5월과 마찬가지로 Aleph의 이름으로 참석했으며 이 때는 공연을 했다. 다음날에는 네덜란드의 한 이탈로 디스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영어로 이야기했다. 네덜란드에 며칠 머물다가 일본으로 이동, 29일에 에이벡스의 종무식에 참석해서 설립자이자 CEO인 MAX 마츠우라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종무식에서 공연한 피코타로와 함께 사진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리고 예전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언급.
2017년 Sun Fire와 공식적으로 결별. 그 후 친구인 David Dima(Davide di Marcantonio)와 함께 신곡을 준비하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그러나 Dima Music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2017년 7월 현재 기준으로 가장 최근에 직접 노래한 유로비트 곡은 2017년 4월 SUPER EUROBEAT Vol.242에 실린 Break Into The Music이다. 239집에 실린 Restarted Tonight을 기점으로 옛날 전성기 시절의 리듬과 요즘에 걸맞는 멜로디로 호평을 받고있다.
2018년에 잠깐 일본을 방문했고, 이 때 DJ Command가 작곡한 곡인 GOLD NIGHT와 MISTY BLUE를 노래했으며, 이 곡은 2019년에 수록된 이니셜D Dream Collection에 논스톱 버전으로 수록되고, 익스텐디드 버전은 그 해에 디지털 싱글로 발매되었다가 2019년 말에 나온 THE BEST OF SUPER EUROBEAT 2019에 정식으로 물리 매체(CD)에 수록된다. 이 두 곡은 명의가 DAVE RODGERS feat. Eurobeat Union[16] 으로 되어 있다.
2019년도엔 놀랍게도 Space Boy, Deja Vu, Running in the 90's등 지금도 자주 회자되는 이니셜D OST를 본인이 직접 리믹스하였고, 덧붙여 Space Rocket라는 사실상 Space Boy의 후속곡까지 새로 내놨으며 이 곡들은 본인의 유튜브에 업로드 된 상황이다. 이니셜D 팬들이 남긴 밈 요소를 담은 댓글들이 압권. 또한 Dave Rodgers Music이라는 1인 레이블을 세우고 옛 부인 알렉산드라(Domino)의 Go Go's Music과 디 마르칸토니오(David Dima)의 Dima Music과 협력하면서 사실상 구 A-Beat C의 기능을 회복하는 추세다.
2019년 10월 말에는 Manuel의 Gas Gas Gas를 리믹스해서 본인의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2020년 4월에는 개인 앨범인 Initial Dave Eurobeat Series Vol.1을 출시했는데, 앨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니셜D로 유로비트를 알게 된 리스너들을 의식한 앨범으로, 자신의 곡들 뿐 아니라 Delta 등의 타 레이블의 곡들 또한 새로 리믹스를 했고, 또한 약간의 신곡도 포함된 앨범이다. 하지만 반응은 별로 좋지 않다. One Night in Arabia와 Save Me가 특히 원곡을 심하게 훼손했다는 평가.
5월 18일에는 Euro Beats Covid the Virus를 공개했다. 유로비트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무찌른다는 병맛스런 가사가 돋보인다..#[17]
부모님과 여동생으로 이루어진 4인 가정에서 매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위안을 얻을 정도라고 한다. 가족들 중에 음악인은 없었지만,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해서 음반을 많이 모았고 최신 장비도 적극적으로 구입했다. 만 15세 때 처음으로 밴드에서 노래하기 시작했고 주로 딥퍼플, 데이비드 보위, 롤링스톤즈 등의 곡을 불렀다. Aleph도 디스코 곡으로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락 밴드였다고 한다.
80년대에 Aleph의 공연장에서, 지안카를로는 현재 Domino라는 예명으로 유명한 알레산드라 미르카 가티와 처음 만난다. 알레산드라는 지안카를로보다 여섯 살 어렸고 Aleph의 팬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으며, 1985년에 지안카를로가 알레산드라에게 Fire On The Moon의 내레이션과 코러스를 맡기면서 알레산드라는 음악계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마우로 파리나와 함께 일하게 된 지안카를로가 알레산드라를 마우로에게 소개했고, 알레산드라는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18] 알레산드라가 Domino라는 예명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89년에 지안카를로에게 Fever라는 솔로곡을 받아서 발표했을 때다. 지안카를로와 알레산드라가 처음으로 함께 부른 듀엣곡은 Bella & Blue라는 예명으로 1991년에 Flea Records에서 발표한 Magic이다.
두 사람은 1990년에 결혼했다. 알레산드라는 지안카를로와 같은 레이블에서 부부 유로비트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다수의 듀엣곡과 솔로곡을 남겼을 뿐 아니라, 알베르토 콘티니의 감독 하에 음악 외의 업무에도 크게 관여했다. 1991년에는 아들 페데리코 파스퀴니를 낳았다.
그러나 1~2년의 별거를 거쳐 2003년 혹은 2004년 이혼. 90년대부터 잡지 인터뷰에서 지안카를로가 '알레산드라와 싸우고 나면 좋은 곡이 나온다'고 말하고, 알레산드라가 '좋은 곡을 내놓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부부싸움을 한다. 화가 나야 곡이 잘 나온다고 해서 나는 도와주고 있는 것뿐이다'라고 응수한 것을 보면 부부 사이가 평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안카를로가 예민하고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 반면 알레산드라는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혼 후 잠시 SCP 등의 다른 레이블을 전전하며 방황하던 알레산드라는, 2006년에 A-Beat C의 주요 프로듀서 산드로 올리바와 함께 Gogo's Music이라는 레이블을 세워서 독립했다.[19] 하지만 두 사람은 이혼한 후에도 친구 사이로 지내 왔다.[20] 페데리코는 알레산드라에게 갔지만, 2005년에 페데리코가 Freddy Rodgers와 Freddy R.이라는 예명으로 지안카를로의 프로듀스를 받아 유로비트 가수로 데뷔한 것을 보면 양쪽 집을 오가면서 자란 모양이다.[21]
이혼 얼마 후에는 지안카를로가 A-Beat C의 대형 신인 여가수였던 Nuage(데니스 데 빈첸초)와 불륜을 저지른 것에 알레산드라가 분노해서 페데리코를 데리고 나갔다는 구체적인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지안카를로는 알레산드라와 별거를 시작한 후 Nuage와 처음 만났기 때문에, Nuage가 이혼의 원인이라는 루머는 사실이 아니다. 지안카를로와 Nuage는 짧은 교제를 했고, 두 사람의 열애설이 인터넷에 본격적으로 퍼져나간 2005년과 2006년에 지안카를로는 이미 Nuage와 헤어져서 Francesca라는 이름의 다른 여자[22] 를 만나고 있었다.
2009년 혹은 2010년, 같은 A-Beat C 소속 가수 겸 프로듀서이며 81년생으로 열여덟 살 연하인 에벨린 말페라리(예명 Futura, Oceania)와 교제를 시작.
이후 지안카를로는 A-Beat C를 정리하고 에벨린과 함께 Sun Fire Records를 세웠다. 2011년 7월 16일 페이스북에서 에벨린과 약혼했다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이 때 결혼했다. 2014년 지안카를로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Sun Fire의 업무 중 많은 부분이 에벨린에게 넘어갔고, 지안카를로의 건강이 회복된 후에도 그 상태가 유지되었다. 2015년 11월에 잠시 공개적으로 헤어져서 Sun Fire가 위태로워졌으나 12월에 재결합. 2016년 1월 20일에는 마침내 페이스북 프로필에도 서로 결혼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지안카를로가 Patrick Miller Fest 2016에서 공연할 때는 아들 페데리코와 새엄마(...) 에벨린이 동행했다. 재혼 후 지안카를로, 에벨린, 그리고 에벨린이 기르는 개(킹 찰스 스패니얼, 이름은 엘리자베스)가 함께 국내외로 부지런히 놀러다니는 모습을 두 사람의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은 해 가을에 지안카를로는 에벨린과 이혼하고 모든 교류를 끊었다(...). Sun Fire의 회사 명의는 예전부터 에벨린의 소유였고, 원래 지안카를로가 세운 Rodgers 스튜디오도 몇 년 전에 에벨린이 넘겨받았기 때문에 Sun Fire는 에벨린의 단독 레이블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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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모습)
페이스북
유튜브
이탈리아의 가수, 작곡가, 프로듀서. 1963년 2월 21일에 만토바에서 태어났다. 본명보다는 Dave Rodgers(데이브 로저스)라는 예명으로 더 유명하다.
이탈로 디스코 뮤지션으로 시작해 유로비트 계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으며, 테크노와 팝락 곡들도 발표했다.
1. 예명 목록
다른 유로비트/이탈로 디스코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예명을 사용했다. 다른 가수들과 예명을 공유하기도 했다.
- Dave Rodgers
- Dave & Domino(알레산드라 미르카 가티와 듀엣)
- Dave & Futura(에벨린 말페라리와 듀엣)
- Dave & Karen/Karen & Dave(Karen J. Wainwright와 듀엣)
- Dave & Meri(Meri Neeser와 듀엣)
- Aki(지안카를로가 A-Beat C를 세운 후로는 일본인 여성 보컬인 사나다 세츠에가 이 이름을 사용)
- Aleph(Super Eurobeat 77과 79에서는 다른 가수가 이 이름을 사용하고[2] 지안카를로는 곡 제작과 코러스에 참여)
- Alkogan
- Angel
- Bella & Blue(알레산드라 미르카 가티와 듀엣)
- Blue Sunbeam
- Cary On(지안카를로가 노래와 내레이션, 알레산드라 미르카 가티가 내레이션)
- Chester(Luigi Raimondi도 이 이름을 사용. 지안카를로가 Time Records를 떠난 후로는 Gino Caria가 이 이름을 사용)
- Coo Coo(1987-1989년에는 마우로 파리나가, 1990-1993년에는 지안카를로와 지안니 코라이니가 이 이름을 사용)
- Coy Mc. Coy(Island라는 곡에서만 지안카를로와 지안니 코라이니가 이 이름으로 듀엣)
- Derek Simon
- Dr. Money(Give Up이라는 곡에서만 지안카를로가 이 이름을 사용. 그 전후로 Gino Caria를 포함한 여러 가수들이 이 이름을 사용)
- Frankie Lee & Felix The Fox
- Gary Cooper
- Jill Sander
- King Kong & D'Jungle Girls(Clara Moroni, Elena Ferretti, 마우로 파리나가 먼저 이 이름을 사용)
- La Cima
- Manzi Bellini
- Marco Manzi
- Mario Ross
- Michael Dream
- Mike Hammer(주로 Fernando Bonini가 사용한 이름)
- Mr. Beat
- Mr. Lust
- Nevada(알레산드라 미르카 가티와 듀엣)
- Patrick Hooley
- R.C.S.(Rodgers, Contini, Sinclaire)(프로젝트성 밴드. 레코딩 외의 활동은 하지 않았지만 콘티니가 신디사이저, 싱클레어가 기타를 맡았다.)
- Red Skins
- Robert Newman
- Robert Stone
- Roby Benvenuto
- The Big Brother
- The Spiders From Mars(미켈라 카푸로와 듀엣)
- Thomas & Schubert
- Venice
2. 이탈로 디스코 계에서의 활동
만토바의 C. Galliani 음악 학교를 졸업. 학생 때 처음으로 디스코텍에 갔다가, 음악이 마음에 안 들어서 자신이 직접 디스코를 작곡하기로 결심했다는 설이 있다.
1981년에 Aleph라는 밴드를 결성[3] , 음악계에서 처음 활동하기 시작한다. 1984년에 안토니오 카란치(Antonio Caranci)가 지안카를로에게 Aleph의 곡 중 하나인 In Your Eyes[4] 를 Caravel Records에서 발매하라고 권유했다. 이 곡은 Aleph의 데뷔 싱글 곡이 되었으며 이웃 나라 스페인에서 인기를 얻었다. 한편 지안카를로는 1984년부터 DISCOMAGIC 레이블의 작곡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85년에는 DISCOMAGIC 산하의 Time Records와 계약. 같은 해에 Aleph가 두 번째 싱글 Fly to me로 유명해진 후, 지안카를로는 마우로 파리나가 빠진 Time Records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 다른 가수들의 작곡과 프로듀스도 하기 시작했다. 1986년에 발표된 Aleph의 세 번째 싱글 Fire On The Moon도 성공을 거두었다. 1988년에는 Aleph의 첫 번째 정규 앨범 Black Out이 발표되었는데, 이 시기부터는 지안카를로가 Aleph에서 보컬뿐만이 아니라 작곡, 편곡, 레코딩 등 거의 모든 부분을 담당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5]
1988년 11월에는 That's EUROBEAT SPECIAL GIGS를 통해 처음으로 일본에서 공연했다. 1989년에는 두 번째로 일본에서 공연을 했으며 두 번째 정규 앨범인 Take My Life도 발표했다.
1989년에는 Flea Records로 이적.[6] Flea에서 사용한 예명으로는 Coo Coo(노래), Alkogan(작곡)[7] , Frankie Lee (& Felix the Fox)(프로듀스) 등이 있다. 또 이 때 지안카를로는 'King Kong & D.Jungle Girls'의 후기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8]
3. 본격적인 유로비트 시장으로의 진출
유로비트 초창기부터 작곡가 및 프로듀서로서 활발히 활동했을 뿐 아니라 보컬리스트로서도 수많은 곡을 남겨 유로비트의 대부로 추앙받고 있다. 지안카를로는 다른 유로비트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예명을 사용했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1987년부터 사용한 Dave Rodgers라는 이름으로, 90년대 초반 후로는 이 예명을 압도적으로 많이 사용했다.
1990년 지안카를로는 메탈 밴드 Bulldozer의 보컬 겸 베이시스트이자 DISCOMAGIC의 A&R이었던 Alberto Contini와 만나서 함께 A Beat C를 세우고(정확히는 Rodgers & Contini Records를 세우고 그 산하에 A-Beat C를 만든 형태) SUPER EUROBEAT 시리즈의 에이벡스와 전속 계약을 맺는다. SUPER EUROBEAT는 원래 수입 음반이었으나, A-Beat C와 에이벡스의 계약을 계기로 에이벡스가 직접 SUPER EUROBEAT를 생산하게 된다. A-Beat C는 당시 신생 소규모 레이블이었던 에이벡스의 첫 정식 파트너였다.
A-Beat C를 설립한 직후 지안카를로는 The Big Brother라는 예명으로 '''Wild Reputation'''[9] 을 발표해 유로비트 시장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다. 또 Wild Reputation과 함께 SUPER EUROBEAT Vol.9에 실린 Norma Sheffied의 Your Body Lies, SUPER EUROBEAT Vol.10에 실린 Virginelle의 Fantasy 등을 프로듀스해 애수 유로비트의 기초를 쌓는다.
한편으로는 코무로 테츠야가 에이벡스와 연결된 계기가 되었는데, 에이벡스에서 TM NETWORK 곡들의 유로비트 편곡 앨범인 TMN Song Meets Disco Style[10] 을 지안파를로 파스퀴니한테 내게 된 것. Get Wild를 비롯한 TM NETWORK의 히트곡들을 유로비트 영어 버전으로 새롭게 편곡했는데, 이후로 코무로 테츠야가 에이벡스에서 프로듀서로서 활동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된 앨범이다.
일본의 유로비트 시장에서는 1990년 전후에 1차 붐, 90년대 중반에 2차 붐, 90년대 후반에 3차 붐이 있었는데[11] , 그 동안 지안카를로는 가수 겸 프로듀서로서 유로비트 시장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일본 가수 V6의 곡 MUSIC FOR THE PEOPLE과 BEAT YOUR HEART, TAKE ME HIGHER를 작곡하기도 했다. 또 이니셜D 시리즈에 삽입된 '''Space Boy'''와 '''Deja Vu''' 등도 유명해져 현재까지 대표곡으로 꼽히고 있다. 2000년 SUPER EUROBEAT presents INITIAL D ~D NON-STOP MEGA MIX~가 일본 골드디스크 올해의 애니메이션 앨범으로, 2001년 SUPER EUROBEAT Vol.110이 일본 골드디스크 올해의 기획앨범으로 선정되었을 때 지안카를로가 대표로 무대에 올라 트로피를 받았다.[12]
2010년, 지안카를로는 유로비트 뮤지션인 에벨린 말페라리(예명 Futura, Oceania)와 함께 Sun Fire Records를 세워서 A-Beat C를 떠났다[13] . Sun Fire에서는 A Beat C 시절만큼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았지만 계속 작곡과 프로듀스를 했으며, 보컬리스트로서도 솔로 곡 및 에벨린과의 듀엣곡을 발표했다.
4. Aleph의 부활과 최근 활동
2015년 초, Aleph 데뷔 30주년을 기념해서 Fly To Me를 리메이크하겠다고 페이스북에서 발표했다.[14] 그리고 한국/일본 시간으로 2016년 1월 1일, 유럽 시간으로 2015년 12월 31일 유튜브를 통해 약속대로 Fly To Me 2016을 발표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Aleph feat. Dave Rodgers. 락 기타리스트이며 예전부터 지안카를로와 같이 일한 Alex de Rosso[15] 가 기타 솔로를 맡았다.
2016년 1월 30일에는 멕시코에서 Patrick Miller Fest 2016에 Aleph로 출연해 80년대 이탈로 디스코 곡들을 불렀다. 2007년에도 Aleph의 이름으로 멕시코에서 공연한 적이 있으므로 이번이 두 번째다.
2016년 5월 7일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I Venti d'Azzurro 30주년 파티에 참석했다. 이탈로 디스코 뮤지션들이 모인 파티여서 Aleph의 이름으로 참석했고 공연은 하지 않았다. 팬들도 입장권을 사서 들어갈 수 있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전 세계(라고 해도 주로 서양)의 팬들이 지안카를로와 함께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렸다.
2016년 12월 13일 The Official Dave Rodgers Aleph Store라는 이름의 공식 굿즈 쇼핑몰이 문을 열었다. 2000년대 초반에 일본에서 발매했던 것과 똑같은 디자인의 티셔츠를 주로 팔고 있고(...) 2017년 1월에 발매한 Fly To Me 2017의 LP도 판다. 한국에서도 직구 가능.
2016년 12월 17일에는 네덜란드 날드바이크에서 열린 I Venti d'Azzurro 겨울 파티에 참석했다. 같은 해 5월과 마찬가지로 Aleph의 이름으로 참석했으며 이 때는 공연을 했다. 다음날에는 네덜란드의 한 이탈로 디스코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서 영어로 이야기했다. 네덜란드에 며칠 머물다가 일본으로 이동, 29일에 에이벡스의 종무식에 참석해서 설립자이자 CEO인 MAX 마츠우라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종무식에서 공연한 피코타로와 함께 사진을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리고 예전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언급.
2017년 Sun Fire와 공식적으로 결별. 그 후 친구인 David Dima(Davide di Marcantonio)와 함께 신곡을 준비하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그러나 Dima Music에 들어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2017년 7월 현재 기준으로 가장 최근에 직접 노래한 유로비트 곡은 2017년 4월 SUPER EUROBEAT Vol.242에 실린 Break Into The Music이다. 239집에 실린 Restarted Tonight을 기점으로 옛날 전성기 시절의 리듬과 요즘에 걸맞는 멜로디로 호평을 받고있다.
2018년에 잠깐 일본을 방문했고, 이 때 DJ Command가 작곡한 곡인 GOLD NIGHT와 MISTY BLUE를 노래했으며, 이 곡은 2019년에 수록된 이니셜D Dream Collection에 논스톱 버전으로 수록되고, 익스텐디드 버전은 그 해에 디지털 싱글로 발매되었다가 2019년 말에 나온 THE BEST OF SUPER EUROBEAT 2019에 정식으로 물리 매체(CD)에 수록된다. 이 두 곡은 명의가 DAVE RODGERS feat. Eurobeat Union[16] 으로 되어 있다.
2019년도엔 놀랍게도 Space Boy, Deja Vu, Running in the 90's등 지금도 자주 회자되는 이니셜D OST를 본인이 직접 리믹스하였고, 덧붙여 Space Rocket라는 사실상 Space Boy의 후속곡까지 새로 내놨으며 이 곡들은 본인의 유튜브에 업로드 된 상황이다. 이니셜D 팬들이 남긴 밈 요소를 담은 댓글들이 압권. 또한 Dave Rodgers Music이라는 1인 레이블을 세우고 옛 부인 알렉산드라(Domino)의 Go Go's Music과 디 마르칸토니오(David Dima)의 Dima Music과 협력하면서 사실상 구 A-Beat C의 기능을 회복하는 추세다.
2019년 10월 말에는 Manuel의 Gas Gas Gas를 리믹스해서 본인의 유튜브에 업로드했다.
2020년 4월에는 개인 앨범인 Initial Dave Eurobeat Series Vol.1을 출시했는데, 앨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니셜D로 유로비트를 알게 된 리스너들을 의식한 앨범으로, 자신의 곡들 뿐 아니라 Delta 등의 타 레이블의 곡들 또한 새로 리믹스를 했고, 또한 약간의 신곡도 포함된 앨범이다. 하지만 반응은 별로 좋지 않다. One Night in Arabia와 Save Me가 특히 원곡을 심하게 훼손했다는 평가.
5월 18일에는 Euro Beats Covid the Virus를 공개했다. 유로비트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무찌른다는 병맛스런 가사가 돋보인다..#[17]
5. 사생활
부모님과 여동생으로 이루어진 4인 가정에서 매우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위안을 얻을 정도라고 한다. 가족들 중에 음악인은 없었지만,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해서 음반을 많이 모았고 최신 장비도 적극적으로 구입했다. 만 15세 때 처음으로 밴드에서 노래하기 시작했고 주로 딥퍼플, 데이비드 보위, 롤링스톤즈 등의 곡을 불렀다. Aleph도 디스코 곡으로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락 밴드였다고 한다.
80년대에 Aleph의 공연장에서, 지안카를로는 현재 Domino라는 예명으로 유명한 알레산드라 미르카 가티와 처음 만난다. 알레산드라는 지안카를로보다 여섯 살 어렸고 Aleph의 팬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연인이 되었으며, 1985년에 지안카를로가 알레산드라에게 Fire On The Moon의 내레이션과 코러스를 맡기면서 알레산드라는 음악계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마우로 파리나와 함께 일하게 된 지안카를로가 알레산드라를 마우로에게 소개했고, 알레산드라는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18] 알레산드라가 Domino라는 예명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89년에 지안카를로에게 Fever라는 솔로곡을 받아서 발표했을 때다. 지안카를로와 알레산드라가 처음으로 함께 부른 듀엣곡은 Bella & Blue라는 예명으로 1991년에 Flea Records에서 발표한 Magic이다.
두 사람은 1990년에 결혼했다. 알레산드라는 지안카를로와 같은 레이블에서 부부 유로비트 아티스트로 활동하며 다수의 듀엣곡과 솔로곡을 남겼을 뿐 아니라, 알베르토 콘티니의 감독 하에 음악 외의 업무에도 크게 관여했다. 1991년에는 아들 페데리코 파스퀴니를 낳았다.
그러나 1~2년의 별거를 거쳐 2003년 혹은 2004년 이혼. 90년대부터 잡지 인터뷰에서 지안카를로가 '알레산드라와 싸우고 나면 좋은 곡이 나온다'고 말하고, 알레산드라가 '좋은 곡을 내놓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부부싸움을 한다. 화가 나야 곡이 잘 나온다고 해서 나는 도와주고 있는 것뿐이다'라고 응수한 것을 보면 부부 사이가 평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지안카를로가 예민하고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 반면 알레산드라는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치기 때문에 서로 성격이 맞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혼 후 잠시 SCP 등의 다른 레이블을 전전하며 방황하던 알레산드라는, 2006년에 A-Beat C의 주요 프로듀서 산드로 올리바와 함께 Gogo's Music이라는 레이블을 세워서 독립했다.[19] 하지만 두 사람은 이혼한 후에도 친구 사이로 지내 왔다.[20] 페데리코는 알레산드라에게 갔지만, 2005년에 페데리코가 Freddy Rodgers와 Freddy R.이라는 예명으로 지안카를로의 프로듀스를 받아 유로비트 가수로 데뷔한 것을 보면 양쪽 집을 오가면서 자란 모양이다.[21]
이혼 얼마 후에는 지안카를로가 A-Beat C의 대형 신인 여가수였던 Nuage(데니스 데 빈첸초)와 불륜을 저지른 것에 알레산드라가 분노해서 페데리코를 데리고 나갔다는 구체적인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지안카를로는 알레산드라와 별거를 시작한 후 Nuage와 처음 만났기 때문에, Nuage가 이혼의 원인이라는 루머는 사실이 아니다. 지안카를로와 Nuage는 짧은 교제를 했고, 두 사람의 열애설이 인터넷에 본격적으로 퍼져나간 2005년과 2006년에 지안카를로는 이미 Nuage와 헤어져서 Francesca라는 이름의 다른 여자[22] 를 만나고 있었다.
2009년 혹은 2010년, 같은 A-Beat C 소속 가수 겸 프로듀서이며 81년생으로 열여덟 살 연하인 에벨린 말페라리(예명 Futura, Oceania)와 교제를 시작.
이후 지안카를로는 A-Beat C를 정리하고 에벨린과 함께 Sun Fire Records를 세웠다. 2011년 7월 16일 페이스북에서 에벨린과 약혼했다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이 때 결혼했다. 2014년 지안카를로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Sun Fire의 업무 중 많은 부분이 에벨린에게 넘어갔고, 지안카를로의 건강이 회복된 후에도 그 상태가 유지되었다. 2015년 11월에 잠시 공개적으로 헤어져서 Sun Fire가 위태로워졌으나 12월에 재결합. 2016년 1월 20일에는 마침내 페이스북 프로필에도 서로 결혼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지안카를로가 Patrick Miller Fest 2016에서 공연할 때는 아들 페데리코와 새엄마(...) 에벨린이 동행했다. 재혼 후 지안카를로, 에벨린, 그리고 에벨린이 기르는 개(킹 찰스 스패니얼, 이름은 엘리자베스)가 함께 국내외로 부지런히 놀러다니는 모습을 두 사람의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같은 해 가을에 지안카를로는 에벨린과 이혼하고 모든 교류를 끊었다(...). Sun Fire의 회사 명의는 예전부터 에벨린의 소유였고, 원래 지안카를로가 세운 Rodgers 스튜디오도 몇 년 전에 에벨린이 넘겨받았기 때문에 Sun Fire는 에벨린의 단독 레이블이 될 가능성이 높다.
[1] 일본에서는 Pasquini를 'パスキーニ(파스키니)'라고 표기하나, 실제 이탈리아어 발음은 '파스퀴니'에 더 가깝다.[2] 79에 수록된 Generation Of Love는 Paolo Campitelli라는 가수가 불렀다고 지안카를로가 직접 밝혔다.[3] 흔히 3인조 밴드이며 지안카를로, Marco Manzi, Donato Bellini가 멤버였다고 알려져 있다. Aleph의 곡 다수도 Manzi와 Bellini가 작곡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 지안카를로를 제외한 두 사람은 1983년에 In Your Eyes의 작곡에만 참여했으며 1984년부터 Marco Manzi는 지안카를로의 예명, Donato Bellini는 다른 작곡가들(주로 Luigi Raimondi)의 예명으로 사용되었다. 또 1집까지는 실제 Manzi와 Bellini가 같이 활동했으나 그 이후로 Aleph는 사실상 지안카를로의 원맨 밴드가 된다. 지안카를로는 2015년 페이스북에서 '당시 나와 Luigi Raimondi는 실제 이름으로 음반사와 계약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 이름들을 사용했다'고 밝혔다.[4] 1991년에 지안카를로는 이 곡을 리메이크해 SUPER EUROBEAT Vol.14에 실었으며, 이 때는 Manzi Bellini라는 예명을 사용했다.[5] Black Out 앨범에는 레코딩을 담당한 사람의 이름이 Dave Rodgers라고 표기되어 있다. 여담이지만 이 앨범의 믹싱은 Laurent Gelmetti(Newfield)가 맡았다.[6] 비밀리에 작업하던 Wild Reputation의 데모테이프가 유출되었는데 그 직후 Time 소속 가수 Maio & Co.가 비슷한 곡(Black Power)을 발표한 사건, Aleph 명의 사용권에 관한 분쟁, Time 측의 곡 수익 미지급 등이 원인이 되었다. Wild Reputation 사건은 심지어 Super Eurobeat 141의 속지에도 언급되어 있다.[7] 이 이름은 SUPER EUROBEAT 시리즈에도 가끔 등장했으며 특히 지안카를로가 A-Beat C를 떠날 준비를 하던 2010년경에 여러 번 보였다.[8] 전기 보컬리스트는 Clara Moroni, Elena Ferretti, 마우로 파리나. BOOM BOOM DOLLAR를 불렀을 당시의 보컬은 마우로 파리나다.[9] 이후 나온 리메이크 버전 Wild Reputation 2006이 이니셜D Fourth Stage에 배경음악으로 쓰이게 된다.[10] 앨범 이름에 유로비트가 들어가지 않아서 유로비트 리스너들이 놓치는 경우가 꽤 있다.[11] 2000년대 중반에 4차 붐도 있었지만 에이벡스가 억지로 조성한 느낌이 강하다.[12] 2000년에는 SUPER EUROBEAT Vol.100이 올해의 기획앨범으로 선정되었는데 이 트로피는 Night Of Fire로 유명한 Niko가 대표로 받았다. 2001년에는 지안카를로와 알레산드라가 함께 트로피를 받았다.[13] Sun Fire Records는 Rodgers & Contini Records에 속하지 않는 완전히 새로운 레이블이며 에벨린의 소유다.[14] Aleph의 이름으로 처음 발표한 음반은 1984년의 In Your Eyes지만 본격적인 커리어는 1985년의 Fly To Me부터 시작되었다.[15] 참고로 유로비트 가수 Ace Warrior가 Alex de Rosso라는 사실이 2017년에야 밝혀졌다.[16] DJ Command가 만든 일본의 동인 유로비트 서클이다.[17] 여담으로 5월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망한 이탈로 디스코 보컬 알베르토 카르파니(Alberto Carpani)와 인연이 있던 바 있으며 그의 기일에 본인의 페이스북에서 추모글을 올린 바 있었다. 이를 알게된 팬들 중에서 코로나에 대한 원한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추측되고 있다.[18] 1986년 마우로 파리나가 Diux의 Comet을 작업할 때 알레산드라가 코러스를 맡았다. 너무 수줍어서 녹음하는 데에 오래 걸렸다고 알레산드라가 나중에 밝힌 것을 보면, 아마 마우로 파리나와의 첫 작업이었던 것 같다. 또 크레딧에는 없지만 지안카를로도 같이 작업했던 것으로 추측된다.[19] 다만 Gogo's Music도 A-Beat C와 마찬가지로 Rodgers & Contini Records의 산하 레이블이었다.[20] 이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의 인터뷰에서도 알레산드라는 지안카를로를 상당히 좋게 말했다. 심지어 2015년 7월에는 알레산드라가 지안카를로의 페이스북 팬 그룹에 가입. 8월부터는 두 사람이 페이스북 친구가 되어서 서로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주고 있다(...)[21] 변성기가 지난 후에는 예명을 Kaioh로 바꾸고 Gogo's Music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 명의로 북두의 권 TVA 2부 오프닝인 TOUGH BOY의 유로비트 버전을 부르기도 했다.[22] 지안카를로보다 22살 연하이고 유로비트와는 관계가 없는 인물. 두 사람이 2003년에 결혼 내지는 동거를 시작했으며 아들도 하나 낳았다는 증언이 인터넷에서 나왔다. 다만 지안카를로는 최소한 인터넷상에서는 페데리코 외의 다른 자녀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