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第六) 후제(侯第)'''
'''30위 육이후(蓼夷侯) 공취'''

'''31위 비어후(費圉侯) 진하'''

'''32위 평도후(平悼侯) 패가'''
1. 개요
2. 행적


1. 개요


'''생몰년도'''
? ~ 기원전 180년
'''이름'''
진하(陳賀)
'''작위'''
비어후(費圉侯)
초한쟁패기유방의 장수.

2. 행적


고제 원년(기원전 206년), 훗날 같이 활약하는 공취와 비슷하게 탕(碭)[1]에서 사인(舍人)[2]으로서 유방을 섬겼고 역시 공취처럼 좌사마로 한나라에 들어갔다.
그 후 자세한 기록은 적지만 해하전투 때 전군에 위치한 한신을 보좌하는 우군을 맡았다. 전투 초반 항우의 거친 기세에 한신이 일시적으로 군대를 뒤로 물리자 좌익을 맡은 공취와 함께 협공하여 포위망을 형성하여 공격했고 대승을 거뒀다.
이후에는 회계·절강·호양 일대를 공격하여 평정했다고 하니 아직 복속하지 않은 초나라의 일부 세력을 공격한 듯 하다. 이 공적으로 고제 6년(기원전 201년) 열후가 되었다. 여태후 8년(기원전 180년)에 죽어 아들 진상(陳常)이 뒤를 이었다.
[1] 현재 안후이성 쑤저우 시 탕산현과 허난성 상추 시 사이에 위차한 곳[2] 직속 가신 정도의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