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환공(통일왕조)

 


<colbgcolor=#000> '''진(秦)나라 13대 국군
환공
桓公
'''
''''''
영(嬴)
''''''
조(趙)
''''''
영(榮)[1]
'''아버지'''
진공공(秦共公) 영도(嬴稻)[2]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577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603년 ~ 기원전 577년
1. 개요
2. 재위 기간에 일어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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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진(秦)나라의 제13대 군주. 진공공의 아들. 진경공(秦景公)의 아버지.

2. 재위 기간에 일어난 일


진환공 3년(기원전 601년), 진(晉)나라가 백적과 함께 진(秦)나라의 첩자를 잡아갔다.
진환공 10년(기원전 594년), 7월 환공이 진(晉)나라를 쳤다. 양군이 보씨에서 교전했다. 진(晉)나라의 장수 위과가 진(秦)나라 장수인 두회와 싸워 두회를 사로잡았는데, 그것은 그 아버지의 첩을 아버지의 유언대로 순장시키지 않아 그 첩의 아버지가 풀을 묶어 도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결초보은의 고사다.
진환공 15년(기원전 589년), 노성공, 초나라의 공자 영제, 송나라의 화원, 진(陳)나라 공손녕, 위나라의 공자 량부, 정나라의 공자 거질, 제나라의 대부, 조(曹)나라, 주(邾)나라, 설나라, 증(鄫)나라와 촉 땅에서 회맹했다.
진환공 21년(기원전 583년), 진경공(晉景公)은 진환공(秦桓公)과 황하에서 회맹했다.
진환공 22년(기원전 582년), 진환공이 맹약을 저버리고 적과 함께 진(晉)나라를 쳤다.
진환공 23년(기원전 581년), 진경공이 죽자 다시 진(晉)나라를 쳤다. 진여공이 영호에서 회맹해 당장은 넘겼다.
진환공 24년(기원전 580년), 진환공이 맹약을 파기했다.
진환공 25년(기원전 579년), 백적과 함게 진(晉)나라를 쳤다. 그러나 같이 온 백적이 패해 결국 일은 실패했다.
진환공 26년(기원전 578년), 낙읍에서 회맹했다.
진환공 27년(기워전 577년), 진환공이 죽고 아들인 영석(嬴石)이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진경공(秦景公)이다.
[1] 춘추분기(春秋分紀)에서 기록된 이름.[2] 기록마다 이름이 다르다.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