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춘추전국시대)
춘추전국시대에는 진이 3개 이상 존재한다(晉, 秦, 陳 등).
1. 晉
- 진(춘추오패) 항목 참조.
2. 秦
- 진(통일왕조) 항목 참조.
3. 軫
- 춘추시대에 존재하던 소국으로 기원전 701년에 이(貳)나라와 함께 초나라와 동맹을 맺었다는 기록 외에는 달리 찾을 수 없는 국가이다.
4. 陳
4.1. 개요
중국의 서주 시대부터 존재하던 국가로 오제 중 한명인 순의 후손이 주나라의 무왕으로부터 분봉받은 제후국으로 황하강 유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도는 완구였다가 나중에 진으로 옮겼다. 국성은 규(嬀)성이고 작위는 공작이다.
4.2. 역사
시조는 호공 규만으로 역사서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순(舜) 임금의 후손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무왕 때 무왕의 맏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그의 사위가 되었다. 규만은 요 임금 이후의 조상 대대로 도공으로 일했는데 그의 가문이 만든 도기들이 백성들의 생활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기에 이를 치하하는 의미로 무왕이 자신의 큰 딸을 규만의 아내로 삼게 했다고 한다. 왕의 맏사위가 된 규만에게는 완구 일대가 봉읍되었으며 후작에 봉작받아 왕가 척족의 제후국을 열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진나라의 건국 배경이라고 전한다.
이처럼 제후국으로서의 정통성은 확고한 진나라였지만 주변의 제후국들이 강성해지는 동안 그 성장세를 따라잡지 못해 언제나 약소국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진나라는 언제나 주변국들의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나 강국이었던 초나라가 이웃해 있었기 때문에 진나라는 항상 초나라의 의향에 휘둘리다가 결국 반속국화되었다.
또 여공(厲公)의 대에 이르러서는 내정마저 혼란해져 후계를 두고 이웃 나라의 간섭까지 받으며 나라의 세력은 더욱 뿌리가 약해지게 되었다. 이 중 여공의 아들인 공자 완(完)은 나라를 버리고 기원전 672년에 제나라로 망명하여서 장사를 하다가 제 환공의 신하가 되어 새로운 세력을 키워나갔다. 완은 고국의 이름을 따서 진완(陳完)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처음에 환공이 대부 벼슬을 내렸을 때 겸손하게 거절하고 대신 공정이 되었다. 문제는 제나라는 해안가에 위치했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라 소금, 어패류, 철 등이 흔했고 수공예가 뛰어났다. 공정이라는 벼슬은 이것을 관리하는 벼슬로 높지는 않지만 경제력을 손에 쥐는 벼슬이라 대대로 공정을 세습해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게 된 완의 후손은 스스로 전(田)씨를 칭하기에 이르렀다. 나중에 그의 후손인 전씨 일족은 제나라 안에서 커다란 세력가로 성장하여 완의 후손인 전항(일명 전상)의 대에 이르러서는 제나라 왕실마저 좌지우지할만큼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전항의 증손자 전화는 마침내 제나라 마지막 군주 강공(康公)을 제나라 해변으로 내쫓음으로써 사실상 태공망의 후손이 다스렸던 강(姜)씨의 제나라, 즉 강제(姜齊)는 기원전 386년을 기점으로 멸망하고, 전씨가 새로운 통치 세력이 되어 제나라를 다스리게 되니 이때부터의 제나라를 전제(田齊)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외국으로 나간 일족의 눈부신 활약과는 달리 본국 진나라는 계속 이웃 강대국들에게 시달리는 신세였다. 기원전 599년, 대부 하징서(夏徵舒)가 임금 영공을 시해하고 스스로 임금이 되자 초 장왕이 하징서의 시해를 벌하자는 명분으로 진나라를 쳐 하징서를 죽이고 일시 진나라를 병탄했다가 신숙시의 충언을 듣고 영공의 세자 오를 진후로 세워 복국시켰다. 일단 복국은 됐으나, 완전히 초나라의 속국이 됐으며 기원전 534년, 진나라에 군위 계승을 둔 또 내란이 발생하자 초 영왕이 이를 틈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시 초의 속령으로 삼았다. 그런데 기원전 529년, 초 영왕을 몰아내고 새로 초왕에 등극한 초 평왕의 외교 방책에 따라 평왕은 애공의 후손 오를 진후로 세워 다시 복국되었다. 하지만 초나라가 오나라의 공격으로 잠시 쇠퇴한 사이 진나라는 다시 배신했고, 기원전 479년에 초 혜왕은 군사를 보내 진 민공을 잡아죽이고 진나라를 완전히 멸하고 진현으로 만들었다.
이후 망국의 백성이 된 진나라의 제후 일족은 동족이 다스리는 전제로 망명하여 고국의 이름을 따서 진(陳)을 성으로 삼았다. 이것이 바로 현재 중국과 한국, 일본에 분포하고 있는 모든 진씨의 시초라고 전한다.
4.3. 역대 군주
앞에는 시호, 뒤에는 이름이다. 예를 들면 호공 만, 호이라는 시호를 받은 공작 규만
- 호공 만(胡公 滿)
- 신공 서후(申公 犀侯) - 호공의 아들
- 상공 고양(相公 皋羊) - 신공의 동생
- 효공 돌(孝公 嬀突) - 신공의 아들
- 신공 어융(愼公 嬀圉戎) - 효공의 아들
- 유공 영(幽公 嬀寧, 기원전 854년 ~ 기원전 832년, 재위 : 22년) - 신공(愼公)의 아들
- 희공 효(釐公 嬀孝, 기원전 832년 ~ 기원전 796년, 재위 : 36년) - 유공의 아들
- 무공 영(武公 嬀靈, 기원전 796년 ~ 기원전 781년, 재위 : 15년) - 희공의 아들
- 이공 열(夷公 說, 기원전 781년 ~ 기원전 778년, 재위 : 3년) - 무공의 아들
- 평공 섭(平公 燮, 기원전 778년 ~ 기원전 755년, 재위 : 23년) - 이공의 동생
- 문공 어(文公 圉, 기원전 755년 ~ 기원전 745년, 재위 : 10년) - 평공의 아들
- 환공 포(桓公 鮑, 기원전 745년 ~ 기원전 707년, 재위 : 38년) - 문공의 아들
- 여공 타(厲公 佗, 기원전 707년 ~ 기원전 706년, 재위 : 1년) 혹은 진후 타(陳侯 佗) - 환공의 아들, 채나라 사람들이 세자 면을 죽이고 그를 세웠다. 그런데 훗날 선공이 애첩의 아들 관을 태자로 삼으려고 원래 태자 어구를 죽이자 어구가 아꼈던 완은 화를 입을까봐 두려워 망명했다. 그의 시호가 폐위가 되어서 원래는 없는데, 사마천이 다음 군주인 여공 약(厲公 躍)과 착각을 하여 시호를 잘못 기록하였다. 중국에서는 지금들어 진 폐공이라 칭한다.
- 이공 약(利公 躍, 기원전 706년 ~ 기원전 700년, 재위 : 6년) 혹은 여공 약(厲公 躍) - 여공의 동생, 동생 임, 저구와 함께 여공을 죽이고 그를 세웠다. 사마천이 시호를 잘못 기록하여 이공으로 기록하였다. 사실은 이 사람이 진여공이다.
- 장공 임(莊公 林, 기원전 700년 ~ 기원전 693년, 재위 : 7년) - 이공의 동생
- 선공 저구(宣公 杵臼, 기원전 693년 ~ 기원전 648년, 재위 : 45년) - 장공의 동생
- 목공 관(穆公 款, 기원전 648년 ~ 기원전 632년, 재위 : 15년) - 선공의 아들
- 공공 삭(共公 朔,기원전 632년 ~ 기원전 614년, 재위 : 18년) - 목공의 아들
- 영공 평국(靈公 平國,기원전 614년 ~ 기원전 599년, 재위 : 15년) - 공공의 아들, 간신들과 함께 하징서의 어머니 하희와 간통하는 사이였는데 간신들이 하징서가 영공과 닮았다며 사실은 하징서가 영공의 자식이 아니겠냐고 패드립을 치자 빡친 하징서에게 시해당하고 태자 오는 진(晉)으로 도주했다.
- 하징서[1] (夏徵舒, 기원전 599년, 재위 : 수개월) - 대부 하어숙과 하희의 아들로 어머니와 자신을 농락한 영공을 죽이고 찬탈했다. 하지만 간신들이 초나라로 달아나 이를 알렸고 곧 초 장왕의 공격으로 죽음을 당했다. 장왕은 진나라를 멸하고 진현으로 삼았다. 진의 1차 멸망.
- 성공 오(成公 午,기원전 598년 ~ 기원전 569년, 재위 : 30년) - 영공의 아들, 신숙시가 장왕을 설득하여 영공의 태자 오를 진나라에서 데려다가 진후로 삼았다. 진의 1차 복국.' 그러나 재위 29년 초를 배신했다.
- 애공 약(哀公 弱,기원전 569년 ~ 기원전 534년, 재위 : 35년) - 성공의 아들, 재위 34년 병이 들어 와병 중 그의 동생 초가 그의 태자 사를 죽이고 애공을 포위하자 자살했다.
- 진군 유(陳君 留, 기원전 534년, 재위 : 9개월) - 애공의 아들, 첩의 아들로 애공이 자살하자 공자 초의 의해 군위에 올랐으나, 초 영왕이 내분을 틈타 진을 공격하자 정나라로 망명했다. 영완은 진나라를 다시 진현으로 삼았다. 진의 2차 멸망.
- 혜공 오(惠公 吳,기원전 534년 ~ 기원전 506년, 재위 : 28년) - 애공의 손자이자 애공의 아들 도태자 사의 아들, 초 영왕을 죽인 평왕이 그를 찾아 진후로 만들고 복국시켰다. 진의 2차 복국.
- 회공 유(懷公 柳,기원전 506년 ~ 기원전 502년, 재위 : 4년) - 혜공의 아들, 재위 4년 오나라로 갔다가 예전에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억류되고 결국 거기서 죽었다.
- 민공 월(湣公 越,기원전 502년 ~ 기원전 479년, 재위 : 23년) - 회공의 아들, 재위 23년 초나라 백공 승이 초나라 혜왕을 습격하는 내분[2] 이 일어나자 그 틈을 사서 초나라를 배신하고 되려 공격했다. 하지만 다음 해 혜왕은 백공의 반란을 평정하고 진을 공격해 민공을 잡아죽이고 진을 완전히 멸했다.
[1] 찬탈.[2] 백공 승은 평왕의 태자였던 건의 아들이었고 혜왕은 평왕의 아들이었던 소왕의 아들로 사촌 형이었던 백공을 우대해줬지만 백공이 아버지 태자 건의 원수인 정나라를 치기 위해 혜왕을 몰아내고 초나라 임금이 되려 반란을 일으켰다. 백공과 초나라 공실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오자서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