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두리/클럽 경력
1.1.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임대)
1.2.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임대)
9. 현역 은퇴
1. 바이어 04 레버쿠젠
고려대학교 소속으로 2002년 월드컵을 맞은 차두리는 월드컵이 끝난 직후 아버지가 뛰었던 구단인 레버쿠젠의 러브콜을 받게 되어 레버쿠젠에 프로축구 데뷔를 하게 된다. 이적 직후에 아르미니아 빌레펠트로 임대되어 독일 분데스리가 생활과 자신의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하였다.
1.1. DSC 아르미니아 빌레펠트 (임대)
하지만,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2002-03 시즌 팀은 16위로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1.2.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임대)
독일에서는 차붐의 아들이란 것과 팀의 운이 잘 안 따르는 선수로 유명했다. 차두리는 독일 리그 내 모든 공격수를 대상으로 한 집계 랭크 17위에 기록되고도 팀의 성적부진으로 주목을 못 받거나 팀의 1부 리그 승격에 주춧돌이 되었으나 팀의 경영 문제로 트레이드 대상이 되어버리는 등의 일이 많았다.[1]
결국 2003-04 시즌 결과 팀은 16위로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2.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2004년 6월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로 완전 이적하였고 2004-05 시즌에는 8골을 터뜨리는 등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1부 리그로의 승격에 공헌하였다.
그러나 2005-06 시즌 초반에 저조한 활약을 보여 잠시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하기도 하였고, 팀의 DFB-포칼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3. 1.FSV 마인츠05
2006년 5월 주전 확보를 위해 새로 승격된 1. FSV 마인츠 05로 이적하였고 포지션을 오른쪽 풀백으로 변경하였다. 이때 마인츠 감독은 위르겐 클롭.
시즌 초반에는 주전 풀백이었던 크리스티안 데미르타스가 부상당하여 주전 풀백으로 발돋움하였지만, 이후 팀이 리그 최하위를 면치 못하며 기존 선수들로 안정된 경기운영을 펼칠 수밖에 없었으며 부상이 겹치는 등의 불운으로 출장기회를 많이 확보하지 못하였고 2006-07 시즌 결과 팀은 16위로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4. TuS 코블렌츠
독일 리그 초기엔 뛰어난 피지컬에 비해 떨어지는 개인기와 좁은 시야를 지적 받으며 여러 팀을 떠돌았으나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인 2007년부터 2부리그 코블렌츠에서 풀백으로 완전히 포지션 체인지에 성공.[2] 공수전반에서 대활약을 펼치며 주축 선수로 성장했다. 2008년엔 소속 팀의 팬들이 뽑은 베스트 플레이어에서 2위에 랭크되었다.
5. SC 프라이부르크
2009년 6월 SC 프라이부르크로 이적하여, 2년 만에 다시 독일 분데스리가 1부에 복귀했다.
6. 셀틱 FC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의 좋은 활약으로 분데스리가에서 스코틀랜드의 셀틱 FC로 이적했다. 그의 커리어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을 떠난 것. 2년 계약을 맺었으며 기성용과 같이 팀에서 뛰게 되었다. 때문에 셀틱 이적 후, 팀 적응 문제로 힘들어하던 기성용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차두리 본인은 첫 시즌에는 16경기, 두 번째 시즌에는 15경기를 뛰며 확실한 주전이라 보기에는 조금 애매한 출전 수를 기록했다. 그래도 분데스리가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리그 우승을 경험해 본 것은 차두리 본인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듯.[3]
7.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2012년 뒤셀도르프로 이적해 분데스리가에 복귀했으나 가족문제로 인해서 소속팀에서 활동하지 못했고 계속해서 특별휴가를 받다가 결국은 상호 협의 하에 계약해지를 하였다. 아내가 계속되는 해외생활에 힘들어 했다는 게 해외 언론들의 보도.
8. FC 서울
2013년 3월 말 갑작스럽게 FC 서울 영입설이 떴다. 많은 축구팬들은 환영하는 분위기이면서도 동시에 신빙성을 의심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언론에서 입단을 기정사실화했고 3월 25일 서울 유니폼을 입은 공식 사진이 배포되면서 입단 확정되었다. 정식 입단 발표는 3월 27일이며 등번호는 5번을 배정받았다.
8.1. 2013 시즌
4월 14일 슈퍼매치에 선발 출장하여 K리그 클래식 데뷔전을 치렀다. 많은 이들이 우려했던 체력이나 실전감각 문제는 없었지만, 역시나 전술한 장점과 단점을 고스란히 노출한 모습을 보였다. 고요한과 짝을 이룬 오른쪽 라인의 파괴력은 뛰어났고, 수원의 스테보와 피지컬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면서 지난 2년간 윤성효가 서울을 농락한 수단이었던 스테보 - 라돈치치 트윈 타워를 앞세운 롱볼 전술에 유효한 대비책이 되었다. 그러나 후반 막판 페널티 에어리어 안쪽에서 수비 위치 선정에 미스를 범하면서 라돈치치를 무방비 상태로 놓치며 동점골을 허용하는 우를 범했다. 2013 시즌 최종 기록은 30경기 3어시스트. 경쟁자 고요한, 최효진을 가볍게 제압하며 주전 자리를 꿰찼다.
8.2. 2014 시즌
14시즌에는 명실상부 '''K리그 최고의 오른쪽 수비수'''로 자리 잡았다.
전성기보다는 피지컬이 좀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 떨어졌다는 피지컬로 내로라하는 K리그 공격수들을 압도했다. 수비력만 따지면 최효진보다 떨어졌지만 14시즌 서울이 3백을 주포지션으로 쓰면서 윙백으로 많이 출전했기에 단점을 상쇄할 수 있었고 최효진보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피지컬과 스피드, 공격가담으로 압도적으로 꾸준히 최효진을 앞지르고 주전 출장했다. 물론 스리백에서만 우수 했던건 아니고 가끔 사용한 4백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수비력이 약한 건 사실이지만 그간의 경험을 허투로 먹진 않아서 옛날 뉴캐슬 3B 같은 폼은 절대 아니고 파트리스 에브라나 조제 보싱와같은 유형의 선수가 되었다.[4] 이 활약을 인정받아 14시즌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에 당당히 선정되었다.
8.3. 2015 시즌
2014 시즌이 끝난 후 은퇴 이야기가 나왔다. 자기보다 한 살 어린 박지성[5] 도 은퇴한 마당이라 은퇴를 생각할 나이기는 하지만 만 33에 은퇴한 박지성은 대표 팀에서의 지나친 혹사로 인한 고질적인 무릎부상 때문에 요즘 선수치고 은퇴를 꽤 빨리한 편이고 30대 후반까지 현역으로 활약하는 선수가 많다는 걸 생각하면 아직 이르다며 더 뛰어주길 바라는 의견이 많았다.
시즌이 끝난 뒤, 시상식에 참여해 2015 호주 아시안컵이 끝난 뒤,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할 것을 선언했다. 단, 현역 은퇴는 아니라고 한다. FC 서울과 1년 재계약을 맺으며 2015시즌을 함께하게 됐다. 하지만, 대다수의 네티즌들은 국가대표팀 은퇴를 만류하는 목소리도 높다. [6]
그리고 2015 시즌이 끝난 뒤, 현역으로도 은퇴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시즌 중, 부상을 당한 고명진을 대신하여 팀의 주장이 되었다.
15시즌 22라운드 포항전에서 드디어 K리그 데뷔골을 넣었다! 정조국이 찬 슈팅을 신화용이 제대로 잡지 못하고 흘린 공을 동점골로 연결시켜 1 : 1로 만들었으나, FC서울은 후반전에 내리 두 골을 실점하며 1 : 3으로 패배.
그리고 9월 19일 슈퍼매치에서 자신의 시즌 2호골을 집어넣었다.
9. 현역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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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1일 FA컵 결승전 FC 서울이 인천 유나이티드를 꺾고 우승하였고 경기 직후 차두리는 이 경기를 마지막으로 남은 K리그 클래식 경기는 더이상 뛰지 않고 현역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시즌 막판 발바닥 부상을 당했지만 참고 뛰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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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컵 우승을 확정 지은 후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2015년 11월 7일 FC 서울과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슈퍼매치 더비에서 클럽 소속으로도 공식적인 커리어 마침표를 찍는 은퇴식이 진행 되었다. 본인의 의지와 K리그 클래식 경고 누적으로 인한 출장정지로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FC 서울과 서로 앙숙인 수원 삼성의 서포터즈 그랑블루조차 차두리의 은퇴를 기립박수로 축하해주는 훈훈한 분위기 속에 이루어졌다.
[1] 단 집계 랭크 17위는 2003년 분데스리가 데뷔 당시 초반 잠깐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의 점수이다. 사실 피지컬은 당시 독일에서도 뛰어난 수준이었고, 풀백으로 전환하기 이전에도 간혹 좋은 크로스를 올리며 공격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성공하기에는 개인기와 시야 문제가 너무 컸다.[2] 마인츠 시절에 풀백 포지션 변경을 제안 받았으나, 바로 완전 자리 잡지는 못하고 윙과 풀백을 번갈아가면서 봤다.[3] 참고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시절 DFB-포칼 결승까지 진출했던 전적이 있다. 다만 결승전에서 FC 바이에른 뮌헨에게 패해 우승하지는 못했으나 다음 시즌 UEFA컵 진출권을 따내는 데는 성공했다...만 정작 차두리는 그 다음 시즌 마인츠로 이적해 UEFA 컵 무대를 밟지 못했다.[4] 에브라와 보싱와 둘 다 수비력으로 정상급인 선수는 아니었으나 발이 빠르고 공격력이 우수해 맨유와 첼시라는 리그 정상급 팀에서 주전으로 뛰었다.[5] 사실 빠른 81이라 사실상 동갑이긴 하다.[6] 사실 다른 선수들이 무조건 차두리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윙어 출신이기에 수비력이 떨어지는 편인 차두리에 비하면, 사실 현재 K리그 국대급 라이트백 중에 차두리보다 수비력이 떨어진 풀백은 드물다. 문제는 그 만한 공격력, 그리고 그만한 피지컬을 가진 선수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