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진(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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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팬들에게는 '고맹'이라는 별명으로 친숙한 FC 서울의 프랜차이즈 스타 중 한 명이다.
2. 클럽 경력
2.1. 안양 LG 치타스/FC 서울
조광래 감독이 안양/서울 시절 야심차게 육성하던 유망주들 중 한 명이다. 당시 서울은 1985~88년생 유망주들에게 구단에서 대체 교육을 제공하고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병역 면제를 위한 중학교 중퇴를 권하고 영입했다. 이렇게 모인 선수들이 이청용, 안상현, 송진형, 김동석, 고요한, 배해민 등으로 모두 청소년 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을 거쳤던 A급 유망주들이었다. 당시 석관중학교에 재학 중이던 고명진도 2003년 중학교를 중퇴하고 이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2004 시즌 프로 데뷔전을 치르며 기량을 인정받았고, 2006 시즌에는 시즌의 절반 가량인 19경기에 출전하여 10월 전남 드래곤즈를 상대로 프로 데뷔골까지 기록하는 등 조금씩 자리를 잡아 가는 듯 했다.
그러나 2007 시즌, 귀네슈 감독이 이끄는 팀에서 쌍용이 비상하는 동안 성장이 정체되며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 12경기 출전에 그쳤고 2008 시즌에도 이청용, 기성용, 김치우, 김한윤, 이을용이 포진한 서울 중원에서 자리를 못 잡고 14경기에만 출전했다.
2009 시즌 이청용의 EPL 진출, 한태유의 부상, 김한윤의 노쇠화로 중원애 공백에 생기자 기회를 받았고, 고요한과 함께 고라인이라 불리며 23경기 2골 1도움을 기록하는 등 활약했다.
2010 시즌에는 극심한 슬럼프와 잔부상에 시달리며 오프 시즌 광란의 영입을 선보인 팀에서 자리를 잃어 9경기 출장에 그쳤다.
역시 전망이 밝아 보이지 않았던 2011 시즌 초반 발목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였다. 이 사이 서울은 하대성, 한태유를 부상으로 잃어 백업이었던 문기한을 급히 기용할 정도로 중원의 구멍이 그야말로 크고 아름다운 수준이었고, 거기에 제파로프와 몰리나의 부진까지 겹치며 황보관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8경기 만에 사퇴하기까지 했다. 이후 최용수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으로 취임하면서 기회를 받게 되었는데, 국가대표 주전 미드필더 기성용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평가받던 테크닉이 드디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며 그와 마찬가지로 만년 유망주였던 고요한과 함께 나란히 포텐이 터져 23경기 2골 7도움으로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2012 시즌부터는 최현태를 밀어내고 하대성과 짝을 이뤄 중앙 미드필더로 나오고 있다. 패스를 활용한 공격 전개 능력은 괜찮지만 수비력은 아쉽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4 시즌을 앞두고 하대성의 이적으로 주장직이 공석이 되자 김진규가 주장을 맡았고, 고명진은 부주장으로 선임되었다.
2014 시즌 31경기 2골 1도움을 기록했고, 2014 K리그 클래식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이후 비셀 고베와 이적 협상이 진행되었으며, 이적 확정 기사까지 나왔다. 그러나 세부 조건이 안 맞은 건지, 마음을 바꾼 건지 막판에 이적을 철회하고 잔류했다.
2015 시즌 주장으로 선임되었으나 부진에 빠지며 서울 중원의 식물화에 일조하는 중이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 카타르 스타즈 리그 소속 알 라이얀과 링크가 떴고, 7월 15일 이적이 확정되었다.
2.2. 알 라이얀 SC
2015-16 시즌 21경기 2골을 기록하며 팀의 리그 우승을 견인했다. 알 라이얀에서의 통산 기록은 ACL 포함 85경기 5골 6도움.[1]
2018-19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었는데, 여름 이적 시장에서 친정 팀 FC 서울로 복귀할 것이라는 예측이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연봉 협상 과정에서 이견이 생겨 서울 복귀는 사실상 불발되었고[2][3] 고명진은 해외 이적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
2.3. NK 슬라벤 벨루포
(현지 시간) 2019년 9월 1일, 크로아티아 1.HNL 소속 NK 슬라벤 벨루포로 이적했다. 계약 기간은 1년. #
32살의 적지 않은 나이에 유럽 무대에 진출하며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는데, 왠만한 K리그 팀보다도 턱없이 적은 연봉을 제시했지만 유럽 무대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에 선택했다고 한다.
11월 26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개인 사정으로 팀을 떠나게 되었음을 밝혔다. 차기 행선지로는 FC 서울이 거론되고 있으나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2.4. 울산 현대
2.4.1. 2020 시즌
12월 24일, 서울이 아닌 울산으로 이적했다. 계약 기간은 3년. #
ACL 조별리그 1라운드 FC 도쿄전에서 67분 정동호와 교체 투입되며 울산 데뷔전을 치렀다.
5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전에서 이청용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하며 울산에서의 첫 공격 포인트를 기록했다.
13라운드 상주 상무전에서 김인성에게 잘 찔러주며 김인성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3. 국가대표 경력
3.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17 대표팀에서 6경기 7골을 기록하며 미친 존재감을 보였고, 성인이 된 후 중동에서의 활약으로 슈틸리케 감독의 눈에 들어 레바논과 태국을 상대하는 3월 A매치 명단에 소집되었다. 손흥민과 권창훈의 올림픽 대표팀 합류로 인한 중원의 공백을 메울 것으로 보인다.
성인대표팀의 경우 2011년 6월 A매치 주간에 처음으로 발탁되었다. 당시에는 실제로 출전하지는 못했으며, 국가대표팀 데뷔는 2012년 11월 14일 평가전 호주 전에서 이루어졌다.
2016년 3월 27일 태국 원정경기에서 선발 출전해 석현준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2017년 3월 23일, 28일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중국,시리아 2연전 명단에 발탁되었다. 기성용과 짝을 이루어 3선에서 투볼란치로써 출전하였는데, 애매한 포지셔닝과 부족한 수비력, 그리 많지 않은 활동량으로써 공,수간격만 벌어지게 되면서 본인도 자신의 강점을 100% 발휘하지 못하였다. 즉, 2선에 알맞은 선수가 3선에서 뛰다보니 안맞는 옷을 입은 느낌의 경기였다.
하지만, 당시 국가대표팀 중앙 2선 자원은 구자철, 이청용, 김보경, 이재성, 남태희, 권창훈 등으로 워낙 풍부했던만큼, 2017년 3월 이후에는 대표팀에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A매치 출전기록은 5경기이다.
4. 플레이 스타일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수준급 테크니션으로, 측면 미드필더도 소화 가능하지만 본인은 중앙을 더 선호한다. 옛 동료 기성용과 비슷한 스타일로 뛰어난 패스 능력이 돋보인다. 그러나 주로 후방에 위치하며 볼 배급과 공수 조율을 담당하는 기성용과는 달리 전진 배치되어야 빛을 보는 스타일. 2017년 3월 중국전에 기성용과 짝을 이루어 3선에 배치되었더니, 부족한 수비력과 애매한 위치선정이 계속 이루어져 수비라인과 3선라인 사이에 공간이 휑하니 비는 경우가 많이 생겨났다. 그리고, 결과는 창사 쇼크...
큰 키에 중미 포지션이라 간과되는 사실이지만 의외로 스피드가 빠르고 빈 공간으로 찔러 주는 스루 패스도 일품이라 역습 상황에서 좋은 옵션으로 활용할 수 있다.
잔부상이 많고 기복이 심해 커리어 초기 부침이 많았고, 피지컬이 나쁜 건 아니지만 딱히 좋다고 하기도 애매한 수준이다. 커팅 능력은 괜찮은 편이지만 수비 스킬이 떨어져 거친 플레이가 많기 때문에 하대성, 오스마르처럼 수비력을 갖춘 파트너와 짝을 이룰 때가 많다.
단점은 역시 득점력. 상당히 앞쪽에 위치하고 플레이 스타일도 공격적이지만 시즌 평균 득점은 2~3골 정도이다.
종합하자면 테크닉을 바탕으로 1선부터 3선 사이를 오가며 횡적인 움직임으로 플레이메이커를 도와주는 조연에 적합한 플레이를 보여준다.
5. 여담
- 2014 브라질 월드컵 중 K리그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글을 썼다. 교육 부족으로 인한 일반 상식의 부재가 자주 지적되는 운동 선수의 글치고는 충분한 숙의와 차분함이 드러난다는 평이나, 기레기들은 이것을 놓치지 않고 기사화하는 것은 물론 제목 낚시까지 서슴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 서울에 있을 때 경기 중 억울해하는 표정이 정말 일품이라 수많은 억울 짤의 주인공이 되었다. 짤들은 봤어도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
- 크로아티아에 있을 때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한다. 화장실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했다거나 샤워 부스 3개에 선수 수십 명이 다 몰렸다는 등 몇몇 일화를 밝히기도 하였다.
- 울산에서는 서울 시절 클럽과 청소년 대표팀 동료였던 이청용과 제일 친하고, 울산에서 아직 집을 못 구해서 동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10년 넘게 못 본 사이였던지라 처음에는 어색했다고.
- 구단 컨텐츠의 일환으로 선수 본인이 이 문서를 읽었다! 플레이 스타일 골 결정력 문제점을 얘기할때 형편없는 이라는 말을 들었을때 억울한다고 표정을 표시하였다. 현재는 삭제됬다.
6. 관련 문서
[1] 위키백과에는 9골이라고 나와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2] 팬들 사이에서는 2017년부터 FA 선수들만 왕창 영입하면서 대놓고 긴축 정책에 들어간 프런트가 서울 시절 성적도 좋았고 팬들의 인기와 충성도까지 높은 프랜차이즈 스타 고명진을 상대로도 연봉을 후려치려다가 파토 났다는 것이 사실상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명진 이전에도 오르샤가 서울 이적을 희망했을 때 오르샤가 원했던 금액과 프런트가 원했던 금액이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아서 조금만 더 투자하면 영입이 가능했지만 그 돈을 아까워해서 시간만 끌다가 울산에 하이재킹당했던 적도 있었다.[3] 게다가 그나마 영입에 성공했던 FA 선수들도 대부분 연봉이 저렴한 국내 선수들 중심이었지 네임드 해외파 출신은 거의 없었고, 30대 FA로 데려온 해외파 출신 하대성과 송진형도 잦은 부상으로 인해 전력에는 별로 보탬이 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