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

 




박지성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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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김남일
(2006~2008)

박지성
(2008~2011)


박주영
(2011~2012)

박지성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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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대한축구협회 올해의 선수
-

2010년

2011년
상 제정
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기성용
(셀틱 FC)

전북 현대 모터스 어드바이저
Jeonbuk Hyundai Motors
이름
박지성
朴智星 / Park Ji-Sung

출생
1981년 3월 30일[1] (42세)
서울특별시
국적
[image] 대한민국
본관
밀양 박씨
신체
175cm[2][4], 72kg / O형
직업
축구선수 (윙어[5], 미드필더[7] / 은퇴)
홍보대사, 축구행정가
소속
선수
교토 퍼플 상가 (2000~2003)
PSV 에인트호번 (2003~200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5~2012)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2012~2014)
PSV 에인트호번 (2013~2014 / 임대)
기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15~2020 / 앰버서더)
SBS (2018 / 해설가[8])
대한축구협회 (2017~2018 / 유스전략본부장)
전북 현대 모터스 (2021~ / 클럽 어드바이저)[9]
국가대표
100경기 13골 (대한민국 / 2000~2011)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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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번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21번[107], 14번, 7번
교토 퍼플 상가 - 12번, 7번
PSV 에인트호번 - 21번, 7번, 33번[10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 13번
퀸즈 파크 레인저스 - 7번[109]
주발
오른발 (양발)[110]
학력
세류초등학교
안용중학교
수원공업고등학교
명지대학교(체육학 / 학사)
명지대학교 대학원(체육학 / 석사)
종교
불교[111]
가족
아버지 박성종(1958년생), 어머니 장명자(1959~2018.1.12)[112]
배우자
김민지 (2014~ )
자녀
딸 박연우 (2015년 11월 19일생)
아들 박선우 (2018년 2월생)
응원가
Pigbag - Papa's Got A Brand New Pigbag#[113]
The Dubliners - Lord of the Dance#[114]
Billy Ray Cyrus[115] - Achy Breaky Heart#[116]

1. 개요
2. 상세
4. 플레이 스타일
4.1. 전술적 입지 및 가치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5.3. 수훈
5.4. 통산 기록
5.4.1. 클럽
5.4.2. 국가대표
5.5. 개인 기록
6. 은퇴 이후
7. 방송 출연
7.1.1. 2012년
7.1.2. 2013년
7.1.3. 2014년
7.2. 기타 방송 출연
9. 어록
10. 박지성에 대한 언사
12. 한국 축구계가 박지성을 외면했다?
12.1. 외면했다는 주장
12.2. 반박
13. 사건 사고
13.1. 개고기 응원가
14. 언론
15. 여담
15.1. 열애설
15.2. 결혼
16. 둘러보기

[clearfix]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No.13 시절[10]
한일 친선전 셀레브레이션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축구선수 출신의 스포츠인. 현역 시절 포지션은 공격수[11](윙어[12])였다.
서울 신림동에 정착한 부모에게서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태어난지 1~2년도 안되어 아버지의 사정으로 고흥으로 내려가서 아버지 고향인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 신안리 775번지. 에서 자랐다. 초등학교[13] 3학년 때 수원으로 이사하여 수원 산남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나[14] 축구부 해체로 세류초등학교로 전학갔으며, 그 뒤 2000년 일본 교토 퍼플 상가에서 프로로 데뷔하였다. 이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에서 활약하였다. 이후 2014년 PSV 아인트호벤으로 돌아와 1년을 뛰고, 이른 나이에 은퇴하였다.[15] 국가대표로서는 2010 남아공 월드컵 주장 등으로 활약했다. 은퇴 이후엔 JS파운데이션 이사장,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앰버서더로 활동 중이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UEFA 올해의 공격수 후보(5인)와 UEFA 올해의 팀 후보(55인, LM 3위)로 선정되었고 그 외엔 발롱도르 후보 50인 선정, FIFA 월드컵 아시아 선수 최다 Man of the Match[16] 등의 커리어를 보유한 선수이다. 히딩크호 23인 엔트리에선 차두리와 더불어 2002 월드컵 당시까지 K리그에 소속된 적이 없는 단 2명뿐인 멤버다. 다만 차두리는 10년 넘게 지난 뒤 FC 서울에 입단하여 2골을 넣었다. 따라서 히딩크호 선수 중 유일하게 K리그 출장경력이 없는 선수이기도 하다. 자세한 이야기는 후술.

2. 상세


국가대표 선수로서 박지성은 2000년 4월 5일 국가대표팀에 데뷔한 후 한동안 주전과 비주전을 오갔지만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달성한 황금세대 히딩크호의 주전 중 한 명으로 활약하면서 이후 한국 축구 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과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했고, 3개의 월드컵에서 모두 1골씩 득점하여 3연속 월드컵에서 골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클럽에서는 명지대 1학년 재학 중에 일본 교토 퍼블상가에 입단하여 일본 1,2부 리그에서 활약했다. 이후 히딩크 감독에게 발탁되어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로 이적했다. 네덜란드 시절 초기에는 리그에 적응하지 못하며 부상 재활보다도 고통스운 시절이었더고 회고했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었지만 리그에 적응한 뒤 팀의 리그 우승과 챔스 4강을 달성에 기여했다. 이후 EPL의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하여, 최초의 한국인 프리미어 리거가 되었다.[17] 박지성 본인도 맨유에서 주전은 아니었고 반주전이었다고 말했 듯, 비록 맨유에서 주전으로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로테이션 멤버로서 맨유의 프리미어 리그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FIFA 클럽 월드컵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아시안컵에서는 매우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13경기 연속 무득점이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2008년 10월부터 2011월 1월까지 2년 3개월 동안 대표팀 주장을 역임했으나 A매치 100번째 경기에 출장한 직후 만29세의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표팀에서 총 100경기 출장 13골을 기록했다. 최후방 수비수(스위퍼)였던 홍명보가 대표팀에서 기록한 통산 10골과 큰 차이가 없다며 공격형 미드필더치고는 득점 기록이 무척 저조했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대표팀에서 박지성과 기본적으로 같은 포지션에서 뛰었던 설기현의 경우 선수시절 내내 골결정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고질적으로 받았는데, 그랬던 설기현이 대표팀에서 기록한 82경기 19골과 비교해봐도 박지성의 득점력은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18].
이처럼 박지성은 비록 공격수로서 공격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고질적으로 들었지만 플레이어 박지성의 진가는 대인방어가 뛰어난 전술 이행능력과 수비 능력에서 나타난다. 또한 멀티 플레이어[19]로서의 면모도 있었다. 두 개의 심장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의 많은 활동량와 넓은 활동범위가 특징이었다. 공격적인 면에서는 득점력과 도움이 부족하여 질타를 받기도 했지만, 공격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많은 활동량과 대인 마크를 기반으로 한 수비력으로 만회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수비형 윙어의 대표자로 불리기도 했다.

3. 선수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측면 공격수[20]로서 득점력, 도움, 드리블, 돌파 능력같은 개인 기량이 전반적으로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왕성한 활동량, 적극적인 수비 가담과 볼 경합, 상대팀이 볼을 소유할 때의 패스 차단, 이타적인 플레이 등으로 이를 만회하는 특징을 가진 선수로 평가 받았다.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내려앉은 약팀의 수비라인을 개인 기량으로 뚫을 만한 공격력을 갖추진 못했었으나 특유의 활동량과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성이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전술적인 옵션이 될 수 있었다.
이런 플레이스타일을 가지다 보니 박지성이 참전한 대다수의 경기를 보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에야 공을 잡고 오래 끌지 않는다. 즉 스스로 드리블 돌파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패스를 받으면 다른 플레이어에게 즉각적으로 패스를 넘겨주는 편. 패스를 받기 전에 이미 빈공간을 향해서 뛰고 있고 그 공을 받기 전에 이미 다음 행동을 판단해서 받자마자 바로 시행한다. '빈공간 쇄도→받자마자 1:2 패스→ 반복' 식의 움직임을 보이는데, 당시 맨유가 전술적으로 이런 움직임에 대단히 특화되어 있었다. 물론 호날두, 나니, 영 등 다른 선수들은 윙어로서 많은 돌파도 시도했지만 박지성은 주로 짧고 빠른 패스로 상대의 돌파를 도와주는 역할을 택했다. 이에 대해 박지성의 판단이 빠르다고 칭송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실력 면으로 박지성을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시각에서는 박지성의 이런 플레이가 드리블 및 돌파, 그리고 볼 간수에 자신이 없다보니 받자마자 패스로 공을 넘겨 버리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곤 하며, 빠르게 패스하는 것 외에 돌파, 즉 상대 수비수와 맞상대하여 이를 털어내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을 그 일례로 든다. 실제로 박지성의 플레이는 공격 상황에서 패스를 받았을 때 10 중에 9의 경우는 바로 패스에 연결되는데, 언뜻 상기한 플레이스타일의 설명 그 자체만 놓고보면 볼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배급하는 당대 맨유 스타일 및 현대 축구에 적합한 플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패스의 판단력이 좋지 않은 경우가 여러번 있기도 하며, 가끔 본인이 충분히 돌파해서 슛까지 시도할 만한 상황에서도 굳이 패스를 고집한다는 것이다. 또한 팀 동료한테 패스를 하고 본인이 쇄도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박지성은 혼자 뛰어들어가고 동료한테 패스를 못 받는 경우가 매우 자주 연출된다. 이것을 맨유 선수들이 실력이 안 좋다거나 박지성에게 일부러 패스하지 않는 거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이런 이유는 박지성이 뛰어들어가는 공간이 상대편 수비수에게 차단당하기 쉽다는 것에서 연원한다고 한다.
즉 박지성은 수비수를 자기가 끌어와서 그 틈에 팀 동료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 하는 의도 내지는 나름의 라인브레이킹 시도를 하는 것인데, 이것이 같은 편이 패스를 주기에는 부적절한 위치선정이거나 무의미한 시도가 잦다는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박지성이 전체적으로 욕먹지 않을 정도의 소극적 플레이를 하며, 공격 장면에서도 이처럼 무의미한 장면들을 많이 연출한다고 화자한다. 또 국내에서는 호루박 움짤로 유명하지만 상기했듯이 기실은 패스 능력과 전진 능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정작 이러한 라인이 가동될 만한 역습 상황에서 사방에서 쇄도하며 스프린트하는 동료들을 보고도 자기 진영으로 백패스를 하는 등, 역습 상황의 템포를 끊어먹는 경우가 꽤 잦았다. 이는 원래부터 공격적인 능력이 빅리그에서 먹힐 정도로 훌륭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1]. 결국 공격수임에도 불구하고 수비수처럼 맨마킹에 자주 중용되었던 이유는 이러한 단점들을 커버하고 맨유에서 살아남기 위했던 박지성 나름대로의 선택과 퍼거슨의 이해관계가 맞물렸다고도 볼 수 있다.
국내에서는 주로 활동량이 뛰어나다, 축구 지능이 뛰어나다, 경기를 보는 시야가 뛰어나다, 패스 퀄리티가 뛰어나다, 오프 더 볼 상황에서 움직임이 뛰어나다 라는 잘못된 인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 맨유같이 EPL 상위 클래스에서까지 항상 통할 정도로 이런 능력이 뛰어났던 것은 아니다[22]. 만약 위와 같은 장점이 실제로 통했다면 박지성은 주전급인지를 차치하고서 차비 에르난데스처럼[23] 중앙 미드필더, 혹은 인자기같이 윙어 중에서도 포쳐 롤을 맡았을 것이다. 실제로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해 보기도 했다. 맨유는 로이 킨이 떠나고 폴 스콜스가 은퇴할 때가 지나면서 한동안 중앙 미드필더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고생했던 팀이다. 킨 이적 후 이 자리에 키런 리처드슨, 앨런 스미스, 대런 플레처, 심지어 존 오셔 등 여러 선수들이 기용되었다. 박지성 역시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박지성은 맨유에서 중앙 미드필더가 되기에는 피지컬, 넓은 시야, 롱패스, 돌파 저지 능력 등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결국 퍼거슨 감독은 여러 실험 끝에 노장 긱스와 플레처, 캐릭을 중앙 미드필더로 고정했으며, 박지성의 마지막 팀인 QPR에서는 주전이자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되었으나 도리어 커리어 내 최대 흑역사로 뽑힐 정도의 폼만 보여주었다. 그 외에 박지성이 인자기 같은 유형처럼 개인 스킬이 떨어지는 대신 높은 공간이해도로 공의 흐름을 귀신같이 잘 읽어내어 득점으로 연결할 만큼 축구지능과 오프더볼 위치선정이 좋은 선수였는가는 엄밀히 말해서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한 롤은 동료인 반니스텔루이, 호날두가 맡게 되었다.
국가대표에서는 포지션이 조금 다르다. 기본적으로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플레이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공격적인 측면에서 훨씬 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2000년대 대한민국 대표팀의 크랙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그래서 박지성이 전성기였을 당시에는 이를 두고 넷상에서 축빠들의 많은 토론이 있었다. 다만 박지성의 자서전에 따르면 맨유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공격적 능력이 더 뛰어나고 자기가 공격을 하는 것보다 그들이 공격하는 것이 더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해서 조연의 역할을 맡는 것이라고 했으며 국가대표에서는 자기가 주연이 되어야 하니 그렇게 플레이 스타일을 가져가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선수로서 박지성이 자랑한 가장 큰 장점은 전술하였듯 높은 스테미너와 전술 헌신도로, 개인능력이 월드클래스급인 선수가 넘쳐나는 맨유에서 이런 능력을 살려 쓸 만한 로테이션 멤버로 활약했다. 간단히 말해 기량이 괜찮을 때는 원터치 패스를 통해 역습시 공격 루트를 여는 중간 다리 역할을 맡기도 했고, 공격력이 하락한 박지성은 맨마킹 역할을 헌신적으로 받아들여서 안드레아 피를로 같은 거물 선수들을 대인마킹 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때문에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은 상대적으로 떨어짐에도 오랜 시간 맨유에서 꾸준한 활약을 했으며 점차 그의 가치가 인정받게 되었다.[24]
반면 공격수로서 부족한 피지컬과 공격력은 늘 아쉬웠다[25]. 활동량과 정신력은 우수했으나 피지컬과 기술적인 능력이 다른 선수들보다 떨어진 탓에 윙어로서의 파괴력은 다른 팀의 윙어들에 비해 한계가 있었다. 혹자는 무릎 부상 이후로 공격력이 저하된 것이며 그 전에는 공격적으로도 훌륭했다고도 하는데, 박지성이 무릎으로 고생길을 걷기 전인 04-05 시즌에 PSV에서 리그 7골, 05-06 시즌에 맨유에서 리그 1골밖에 넣지 못했다는 대목만 봐도 원래부터 공격력이 빈말로도 유럽에서 뛰어난 수준이 절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05-06 시즌 맨유 이적 직후 곧바로 선발로 기용되며 리그 경기만 34경기를 뛰었지만 공격포인트는 많이 올리지 못했고 호날두나 긱스같은 경쟁자들과 비교해 개인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신체적으로 키가 작다든지 근육량이 떨어진다든지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신체 밸런스가 좋지 못해서 경기를 뛰다가 혼자서 넘어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딱히 상대를 막으러 쫓아가는 상황이 아니라도 그런 모습을 보였을 정도.
또한 나중에는 무릎 문제로 계속해서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는데 어떻게 보면 이게 제일 큰 문제였다. 공격력은 애초에 박지성보다 더 훌륭한 선수들이 있고, 박지성은 그보단 로테이션급 선수로서 존 오셰이처럼 여차 싶을 때에 바로 투입시킬 수 있어야 하지만 정작 부상으로 인해 전력에서 이미 아웃됐던 상황이 적지 않았기 때문.
박지성은 말년을 제외하고 4시즌을 부상+A매치 기간을 합산해서 연속적으로 10경기 이상 제외된 경기가 4시즌이나 된다. 06-07 시즌에는 개막전부터 잘 출전하다가 토트넘전에서 부상당하여 3개월 연속 무릎 부상으로 이탈했고, 그후 31라운드 블랙번전 이후 시즌아웃을 당해서 부상으로 리그경기 명단 제외만 20경기 정도 된다. 그 후 07-08 19라운드 선더랜드전에 복귀하였고, 09-10시즌에도 독감->세네갈전 이후 부상으로 5경기 연속결장->회복 후 세르비아 A매치를 치뤘고(리그 8경기 연속, 챔스 2경기 명단제외) 10-11 시즌에는 아시안컵 이후 햄스트링 부상을 당한 후 96일만에 복귀하였다.(리그 10경기 연속, 챔스 2경기 명단제외)

4.1. 전술적 입지 및 가치


2002 월드컵 이후 대한민국 국대와 교토 시절에서는 거의 붙박이 주전으로 출전했었다. PSV 시절에는 초반에는 부상보다 힘들었다고 말했을 정도로 힘겨운 시기가 있었지만 적응한 후에는 거의 풀타임 출장했다. 체력 관리 차원에서 결장시킬 정도. 당시의 플레이 스타일은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움직임이 왕성한 역동적인 윙어였다. 공격 시에는 빠른 스피드와 침투 능력을 이용해 자신에게 볼이 오지 않아도 언제나 공간을 찾아 움직였고 수비 시에는 전방부터 압박을 전개하고 윙백과의 뛰어난 협력 플레이를 보여줬다.
가장 오랜 시간 몸 담았고 이름을 날렸던 맨유 소속일 때의 위치는 로테이션급 플레이어였다. 한국인으로서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팀 내 위치를 본다면 주전이라 할 순 없었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7년간 총 리그 경기 266경기 중에서 박지성은 134경기를 출장했다.이는 전체의 50%에 달하지만 선발로 출장한 경기는 95경기, 총 경기 중에서 고작 36%밖에 되지 않는다. 맨유에서 챔피언스리그도 총 73경기 중 39경기를 출전했고(53%) 선발로 출전한 경기는 21경기, 전체에서 29%밖에 되지 않는다. 박지성이 맨유에 있었던 7년간 그의 출장시간은 평균 팀내 14위였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가장 많이 출장했던 데뷔 시즌에도 박지성의 출장 시간은 맨유 탑 11 안에 들지 못했다.[26][27][28] 팬들도 새벽에 박지성의 경기 출장을 기대하였으나 선발에서 곧잘 빠져 매주 주말 선발 명단을 보며 퍼거슨을 욕하는 일이 일상다반사이기도 했다. 겉으로 이를 드러내지는 않았으며 아버지 박성종 씨에게 '그 양반은 늘 그래요' 하고 푸념하는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전술상 필요한 경기, 특히 수비를 두텁게 가져가야 하는 강팀과의 경기에서는 자주 선발출전했으며 괜찮은 활약을 보인 경기도 많았다. 또 퍼거슨 감독은 이미 은퇴할 나이를 한참 넘긴 긱스, 스콜스와 같은 노장들의 체력 안배에 많이 신경을 썼기 때문에 박지성의 주기적인 출전은 꼭 필요했다. 따라서 입지고 뭐고 없는 수준은 절대 아니었던 것. 정리하자면 맨유 시절 박지성은 주전이었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틀린 말이나, 그렇다고 벤치만 달구는 만년 후보 선수였다고 하는 것 역시 어폐가 있다.
맨유 첫 시즌에 주전 윙어로 나섰으나 공격적으로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한 박지성에게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주목하게 된 부분은 맨마킹과 관련된 전술 이행 능력이었다. 퍼거슨의 자서전에서 박지성은 9회 언급되는데 주로 상대팀의 플레이메이커를 봉쇄하는 부차적인 임무에 관련된 내용들이다[29]. 이런 능력도 능력이지만 감독의 전술 지시에 군말없이 잘 따른 헌신성이 그의 가치를 더 올려주었는데, 퍼거슨 감독은 자서전에서 피를로의 전담마크 일화를 설명하며 "내가 지시사항을 전달하면 박지성은 뼈다귀를 문 와 같았다. 그냥 흘려듣는 법이 없었다"고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관련 기사 축구 전술에서 대인방어 개념이 사실상 사라진 80년대 이후 마그맨 역할은 선수들이 가장 기피하는 역할 중 하나인데[30] 잡음 하나 없이 묵묵하게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이를 잘 수행한 박지성에 대한 헌사인 셈이다.
여담으로 박지성에게 대인마크를 당한 장본인인 피를로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퍼거슨 감독이 본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유혹을 떨쳐내지 못하고 자신에게 마크맨을 붙였고, 그것은 순수성을 버린 것이며 추한 결정이었다고 비난했다. 피를로는 또 퍼거슨 감독이 자신을 따라다니도록 경기장에 박지성을 '풀어 놓았다'고 표현했고, 박지성을 '경비견'에 비유하면서 간접적으로 공격했다.관련 기사 이러한 인식에서 드러나듯이 퍼거슨 감독의 자서전에도 감독이 선수들에게 맨마킹 역할을 맡기면 의도적으로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실망하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지성은 이러한 지시에 군말없이 따르며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퍼거슨은 수비를 단단히 해야하는 빅매치에서 박지성을 꾸준히 기용하면서, 다른 선수들이 수치스럽게 생각하며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려 했던 맨마킹 롤을 맡겼고 이를 박지성이 잘 맡아가자 큰 경기에서 꾸준히 중용받게 되었다.
맨유의 레전드인 폴 스콜스도 이런 박지성의 맨마킹 능력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스콜스는 "훈련장에서 최악의 선수가 누군지 아는가. 박지성이다. 정말 악몽이었다. 나를 마크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 붙어 다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지성이 피를로를 상대한 일을 기억하는가. 정말 비현실적이었다. 하루 종일 체력을 유지했다."라고 언급했다.
박지성을 챙겨주기로 유명했던 리오 퍼디난드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퍼디난드 역시 피를로의 일화를 언급하면서 "감독이 그에게 어떤 것을 맡기든, 누구를 수비해서 플레이를 멈추게 하는 것이든, 혹은 상대팀의 박스 안에 들어가서 차이를 만드는 것이든, 그는 해냈다."고 말했다. 웨인 루니 역시 밀란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언급하며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에게 공 만지지 말고 피를로만 쫓으라고 했으며, 그 결과 피를로의 패스가 평소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처럼 맨유 출신들이 박지성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은 하나같이 그의 대인방어 능력에 집중되어 있다[31]. 스콜스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퍼거슨 감독은 평소 훈련장에서도 박지성에게 맨마킹을 집중적으로 연습시켰고 강팀과의 경기 때마다 박지성을 투입하며 이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처럼 공격수 치고 상대적으로 수비 가담을 많이 하다보니 수비형 윙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아예 수비형 윙어라는 롤을 창조해냈다는 잘못된 소문이 있었는데, 박지성의 자서전에서 밝혀진 바로는 영국의 언론인 가디언이 수비형 윙어라는 포지션을 박지성이 만들었다며 기사를 올린 것이 발단이라고 한다.[32] 박지성 이전에도 수비지향적인 윙어들이 없지는 않았다. 리버풀의 윙포워드인 디르크 카윗도 수비형 윙어 소리를 듣기도 했다.[33][34] 현대축구에서 윙어는 단순히 측면공격 뿐 아닌 적의 측면 공격을 차단하는 역할도 겸하는데다 한쪽 측면이 공격을 나가면 다른 한쪽 측면은 포지션을 지키며 2선 라인을 조율하는 편이 안정적이다.[35] 어쨌든 그의 능력을 폄하할 수는 없고 PSV 시절 04/05 챔피언스리그에서 이러한 능력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전 시즌 챔스 준우승팀이었던 모나코와의 16강 경기에서 에브라를 발랐고 리옹전에서도 이영표와 협력으로 좌측을 밀어버렸다.[36] 특히 4강인 AC 밀란전에서 혼자서 한쪽 측면을 휘젓다시피 하면서 1인 압박축구를 펼친 장면은 유명하다. 2009년 5월 6일 아스날 FC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2차전에선 아스날의 측면 공격수 시오 월콧을 경기장에서 지워버렸는데 그 날 월콧은 평점 4점을 받았다.
맨유 시절 박지성의 출장 횟수가 적지만 강팀과의 경기에는 많이 나온 이유가 이것이다. 강팀들끼리 붙을 때는 약팀이랑 할 때와는 다르게 개인 능력으로 찍어누르는 플레이를 할 수 없고 더 강한 팀과 할 때는 더더욱 그럴 수 없다. 결국 전술적이고 팀플레이로서 평가되는 요인들이 경기에 큰 영향을 끼치게 돼있으므로, 개인 능력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팀이 요구하는 전술적인 플레이를 잘하는 박지성을 출전시키는 것이다. 박지성은 이런 팀의 의도에 잘 부응하며 좋은 경기를 펼치는 경우가 많았다. 박지성이 이런 역할을 통해 승리에 크게 기여한 경기들은 대표적으로 2008년 UCL 4강 바르셀로나전, 2010년 UCL 16강 AC밀란전[37], 2011년 UCL 8강 첼시전, 10-11 EPL 리그 후반기 첼시전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역할로 나왔음에도 부진한 경기들도 있었다. 2009년 UCL 결승전, 2011년 UCL 결승전[38], 11-12 EPL 리그 후반기 맨시티전 등이 있다. 퍼거슨 감독은 자서전에서 바르셀로나전에서 선수들의 전술 이행 능력에 실망감을 표시하면서 박지성의 이름도 거론했다. 맨시티전에 대해서도 퍼거슨 감독은 자서전에 서술하고 있는데, 맨시티전에서 야야 투레를 봉쇄시키기 위해 6주 동안 결장하고 있던 박지성을 출장시켰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의 '사냥감을 쫓아다니는(marauding run)' 능력이 필요했다고 서술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투레를 봉쇄하는 실패했고 매우 실망스러운 모습만 보였다. 이 경기가 끝나고 해외 언론의 혹평이 쏟아졌다. 결국 맨시티전은 맨유에서 박지성의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39] 허나 이적한 팀인 QPR에서의 말년 선수생활은 자타가 공인하는 박지성 커리어 내 최악의 흑역사가 되었는데, QPR같이 하위권 팀들은 팀플레이 중심의 전술적인 경기 운영보다는 선수 개인의 능력에 더 의존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QPR 역시 다를 게 없었다. 따라서 아델 타랍, 제이미 맥키 같이 기술이 좋은 선수들이 자신들의 개인기를 바탕으로 팀을 캐리해야 했고, 박지성은 혼자서 플레이해도 먹힐 수준의 개인 능력이 없었기에 활약할 수가 없었다.
2010년 이후 축구 전술에서 각광받는 게겐프레싱, 두줄수비 등 공격형 윙어라도 수비가담을 안하면 욕먹는 전술들이 트렌드화 되고 또한 2010년대 중반 이후 3백 전술이 큰 유행을 하게 되면서 왕성한 활동량과 수비 공격에 다재다능한 윙백에 대한 주목도가 올라가자 많은 축구팬들은 박지성을 다시금 한번 떠올렸다.
현지에서도 그랬던 것인지 박지성과 퍼거슨의 은퇴 후 여러 호사가들과 전문가들이 박지성 같은 좋은 수비가담과 높은 전술적 이해도를 가진 선수가 지금의 맨유에게 필요하다고 말한다.[40]
박지성이 전술적으로 쓸 만한 선수였음은 확실하다. 비록 공격수이면서도 공격 능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으나, 반대로 수비력과 전술 헌신도는 윙어들 중에서도 최상급이였으며 이 때문에 상대의 공격적인 미드필더나 풀백, 윙어들을 막는 데 자주 투입되곤 했다. 팀의 공격 자원이 포화 상태였던 08-09 시즌에는 더 이상의 공격 자원이 필요없었고, 이에 파울 유도, 밸런스 등 수비적인 목적으로 많이 기용되었다. 09-10 시즌에는 큰 경기에는 자주 선발출전했으나 그외 약팀과의 경기에서는 나니, 발렌시아에게 선발 자리를 내주곤 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5.2. 개인 수상



  • UEFA 올해의 공격수 후보: 2005[41] ##
  • UEFA 올해의 팀 후보: 2005 (LM 3위)[42] ##
  • FIFA 월드컵 원더풀 골 베스트 8: 2018[43] #
  • AFC 아시안컵 우수 선수: 2011[44] #
  • MLS 올스타전 MVP: 2011 #
  • K리그 올스타전 MVP: 2014 #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달의 선수: 2009년 3월, 2010년 11월ㆍ12월
  • KFA 올해의 선수: 2010[45]
  • KFA 올해의 골: 2002, 2010[46]
  • AFC 아시아 월드컵 역대 베스트 XI: 2020[47] #
  • AFC 아시아 월드컵 영웅: 2020 (1위)[48] #

5.3. 수훈


  • 체육훈장 맹호장: 2002 

5.4. 통산 기록



5.4.1. 클럽


<rowcolor=#373a3c> 시즌

소속 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
-
<rowcolor=#373a3c> 경기

경기

경기

-
-
-
-
-
-
2000[49]
교토 퍼플 상가
J리그 디비전 1
13
1
1
0
2
0
-
-
2001
J리그 디비전 2
38
3
1
0
1
0
2002
J리그 디비전 1
13
4
4
1
0
0
<rowcolor=#373a3c> 시즌

소속 리그
리그
KNVB컵
슈퍼컵
UEFA컵
UCL
<rowcolor=#373a3c> 경기

경기

경기

경기

도움
경기

도움
02-03[50]
PSV 에인트호번
에레디비시
8
0
0
0
-
-
-
-
-
-
-
-
03-04
28
6
2
0
1
0
5
0
-
5
0
1
04-05
28
7
5
2
-
-
-
-
-
13
2
2
<rowcolor=#373a3c> 시즌

소속 리그
리그
FA컵
리그컵
UCL
<rowcolor=#373a3c>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05-06[5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리그
34
1
6
2
0
0
3
1
0
6
0
0
06-07
14
5
2
5
0
0
0
0
0
1
0
0
07-08
12
1
1
2
0
0
0
0
0
4
0
0
08-09
25
2
2
3
1
0
1
0
0
9
1
0
09-10
17
3
1
0
0
0
2
0
0
6
1
0
10-11
15
5
3
1
0
0
2
2
2
9
1
1
11-12
17
2
3
1
1
0
3
0
3
4
0
0
12-13[52]
퀸즈 파크 레인저스
20
0
3
3
0
0
2
0
1
-
-
-
<rowcolor=#373a3c> 시즌

소속 리그
리그
KNVB컵
UEL
UCL
<rowcolor=#373a3c>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경기

도움
13-14[53]
PSV 에인트호번
에레디비시
23
2
5
0
0
0
2
0
0
2
0
0

5.4.2. 국가대표


통산
일시
장소
대회
상대국가
득점원
도움
결과
1호
2000, 6/7
아자디 스타디움
LG컵 4개국 친선대회
마케도니아
왼발
없음
2:1 승
2호
2002, 5/21
제주월드컵경기장
친선경기
잉글랜드
헤딩
최진철
1:1 무
3호
2002, 5/26
수원월드컵경기장
친선경기
프랑스
왼발
김남일
2:3 패
4호
2002, 6/14
인천월드컵경기장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포르투갈
왼발
이영표
1:0 승
5호
2005, 6/8
카즈마 경기장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
쿠웨이트
오른발
김동진
4:0 승
6호
2006, 6/18
레드불 아레나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프랑스
오른발
조재진
1:1 무
7호
2008, 2/6
서울월드컵경기장
남아공 월드컵 3차예선
투르크메니스탄
오른발
박주영
4:0 승
8호
2008, 5/31
서울월드컵경기장
남아공 월드컵 3차예선
요르단
오른발
이청용
2:2 무
9호
2008, 10/15
서울월드컵경기장
남아공 월드컵 3차예선
UAE
오른발
없음
4:1 승
10호
2009, 2/11
아자디 스타디움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
헤딩
없음
1:1 무
11호
2009, 6/17
서울월드컵경기장
남아공 월드컵 최종예선
이란
왼발
이근호
1:1 무
12호
2010, 5/24
사이타마 스타디움
친선경기
일본
오른발
없음
2:0 승
13호
2010, 6/12
포트엘리자베스 넬슨만델라베이 스타디움
남아공 월드컵 조별리그
그리스
왼발
없음
2:0 승
연령
출전

U-17
0
0
U-20
2
0
U-23
23
2
A대표
100
13
종합기록
125
15

5.5. 개인 기록


  • 아시아 최초 FIFA 월드컵 3대회 연속 득점: 2002 한일 월드컵 포르투갈전, 2006 독일 월드컵 프랑스전, 2010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전
  • 아시아 최초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선발 출전: 2008-09, 2010-11 시즌
  • 아시아 최초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007-08 시즌
  • 아시아 최초 프리미어리그 우승[54]
  • 아시아 최초 프리미어리그 100경기 출장
  • 2005년 발롱도르 50인 후보
  • 2005년 UEFA 올해의 공격수 5인 후보

6. 은퇴 이후



6.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앰버서더


2014년 10월 1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박지성을 맨유의 앰버서더로 임명했음을 공식 발표했다.
맨유 앰버서더란 맨유의 이벤트에 참여하는 홍보대사와 같은 직책이다. 애초에 홍보대사라는 우리말 자체가 영어의 앰버서더(ambassador, 대사, 사절)라는 단어를 번안한 것이다. 박지성의 경우를 보면 아시아 전역에 걸쳐 맨유의 스폰서 기업의 마케팅 이벤트에 참여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박지성의 앰버서더 계약 조건은 1년에 10차례 맨유와 관련된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며, 연봉 개념으로 연간 활동비 1억 5천만원을 분기별로 나누어 지급받는다. 계약 기간은 1년이라고 국내 언론에 보도되었지만 다년 계약이라고 한다.
맨유 앰버서더로는 박지성 외에 보비 찰튼, 데니스 로, 브라이언 롭슨, 알렉스 퍼거슨, 데니스 어윈[55], 피터 슈마이켈, 게리 네빌, 로니 욘센, 앤드루 콜, 드와이트 요크, 미카엘 실베스트르, 네마냐 비디치 등이 활동해오고 있다. 또 선수 출신이 아닌 DJ 쿠피 같은 연예인들도 앰버서더로 위촉하고 있다. 주로 맨유에서 일정 기간 활약하고 은퇴한 선수 중에서 지도자축구행정가 등의 경력을 가지지 않는 사람 중에서 위촉하고 있다. 보비 찰튼, 데니스 로, 브라이언 롭슨 등 발롱도르 위너나 세계적인 선수들은 지도자 커리어에서도 완전히 은퇴한 후 맨유 앰버서더를 맡고 있다.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 역시 감독에서 은퇴한 이후 앰버서더가 되었다. 마케팅 활동을 목적으로 위촉하는 것이기 때문에 2010년 이후에는 잉글랜드 바깥의 해외파 출신 위주로 선정되는 경향이 강하다.
에릭 칸토나를 비롯해서 집에서 쉬고 있는 여러 은퇴 선수들에게 꾸준히 앰버서더를 제의하고 있지만 대부분 사양한다고 한다. 앰버서더를 맡으면 감독, 코치 등 지도자나 축구행정가를 커리어를 가질 수 없다는 점, 그리고 후원 기업의 마케팅 이벤트에 얼굴 마담으로 나서는 걸 꺼려하는 등의 이유가 작용하는 듯 하다. 물론 퍼거슨, 찰튼, 롭슨 같은 진짜 레전드들은 팀의 상징적인 행사에만 얼굴을 비추고 스폰서 마케팅 이벤트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런 행사에는 대부분 앤디 콜, 드와이트 요크, 박지성 등 신참들이 주로 투입된다.
앰버서더를 사양하는 경우가 많아져서인지 최근에는 현역 선수들을 입도선매식으로 영입하려 하고 있다. 선수가 은퇴하여 다른 팀에서 지도자나 행정가로 채가기 전에, 아직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있는 현역 시절에 미리 앰버서더 사전 계약을 체결하려는 것이다. 이미 웨인 루니, 후안 마타 등에게 미래에 현역에서 은퇴하면 직후에 곧바로 맨유 앰버서더에 취임한다는 계약 제의를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56] 앰버서더는 아니지만 비슷한 롤로 맨유 관련 행사에 참여하는 전직 선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루이 사하가 최근 각국의 맨유 스폰서 기업 행사에 자주 얼굴을 내비추는데, 박지성, 앤디 콜, 데니스 어윈 등 다른 앰버서더들과 함께 참석하는 경우도 많다. 이 때 루이 사하는 '맨유 앰버서더' 대신 '맨유 레전드'라고 소개된다. 맨유가 공식적으로 앰버서더 제의를 하지 않고 파트타임으로 돌리는 것인지 아니면 루이 사하가 지도자나 행정가 제의가 올까봐 공식적인 앰버서더 취임을 사양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파트리스 에브라의 경우 코치, 앰버서더 두 가지 모두 가능성을 열어두고 교섭 중인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본인은 코치를 강하게 원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결렬된 상태다. 대런 플레처의 경우 처음에 코치로 오는 것으로 구단과 이야기가 오가다가 신임 솔샤르 감독이 취임하면서 팀이 재편되는 바람에 내부 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자 코치 대신 앰버서더를 맡는 것으로 결정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이후에도 플레처 본인이 엠버서더가 아닌 코치직을 계속 강하게 원했고 유소년팀이라도 코치를 하겠다고 하여 엠버서더 임명이 철회되고 2020년 10월 맨유 유소년팀 코치로 임명되었다. 이후 두달만에 솔샤르 감독에 의해 1군 코치로 승격되었다.
맨유 앰버서더라 하더라도 맡은 역할과 계약 조건은 각기 매우 상이한데, 참고로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이 맨유 앰버서더로서 받는 연봉은 약 32억원(2013-14시즌 기준)이다. 그런데 퍼거슨 전 감독은 본인이 감독에서 물러나고 앰버서더가 된 이후 앰버서더 인원을 대폭 늘려가고 있는데, 이렇게 자신의 제자들을 대거 박봉(?)으로 채용하여 본인의 업무 부담을 크게 줄여나가면서 고연봉은 그대로 받아가고 있는 '여우(퍼거슨 감독의 별명)'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지성의 맨유 엠버서더 임명 보도가 나간 직후, 박지성 측은 선정된 이유에 대해 "아시아에서 박지성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것을 맨유가 인정하고 앰버서더로 임명해 아시아시장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언론도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한 축구 선수라는 이미지를 가진 박지성은 마케팅 차원에서 아시아시장을 중요시하는 맨유의 정책에 따라 팀의 앰버서더로 뽑혔다.', '박지성의 엠버서더 선정은 맨유의 아시아 시장 공략에 대한 강한 의지가 반영되었다.'고 보도했다. # # # # #[57]

2014년 10월 5일 프리미어리그 7라운드 에버턴 전에서 경기 시작 전에 홈팬들 앞에서 앰버서더 위촉식이 행해졌다.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이 함께 참석하여 직접 위촉했다. 참고로 영상 3분 30초부터 관중들으 부르는 노래는 박지성 응원가로 유명한 개고기송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에도 많은 스폰서 기업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 아시아 기업의 마케팅 행사에 박지성이 수시로 투입되고 있다.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과 동남아의 맨유 스폰서 기업의 마케팅 이벤트에 대부분 박지성이 참여하고 있다. 과거 맨유는 앤디 콜을 앰버서더로 동남아에 보낸 적이 있지만 박지성을 앰버서더로 위촉한 후 수시로 박지성을 아시아에 보내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앰버서더로서의 공식적인 첫 활동은 2014년 11월 14일 수원 영통 '축구센터'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함께 하는 신한카드 아름인 축구 교실' 행사에 참여한 것이었다. 아시아 해외 언론에 따르면 박지성이 맨유 앰버서더로서 갖는 공식 첫 행사라고 한다. 이 행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식 금융 서비스 제휴 파트너(Manchester United's Official Financial Services Affinity Partner)인 신한카드의 주최로 이루어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신한카드 이외에도 아시아 금융 기업들의 스폰서를 많이 받고 있었다. 신한카드는 2005년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트로 이적한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스폰서 기업이 되었고, 2006년 2월 '신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마스터카드'를 출시하여 한달새 무려 6만장이 발급되는 등 불티나게 팔리며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거둔 바 있었다. '맨유카드' 한달새 6만장 발급‥"박지성 효과 정말 대단하네". 신한 맨유 카드는 2007년에 이미 60만장이나 발급되었다. 하지만 2012년 7월 박지성이 맨유를 떠나 QPR로 이적하면서 신한 맨유 카드 대량 해지 사태가 발생했다. 맨유 떠난 박지성, ‘신한맨유 카드’어쩌나. 신한카드는 아직 맨유와 스폰서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고 박지성 이적으로 인한 대량 해제 사태 때문에 맨유 측에 분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법정 소송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박지성은 은퇴 직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앰버서더가 되었고 그 첫 공식 행사로 신한카드 행사에 공식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당시 박지성이 소외계층 학생을 대상으로 축구클리닉을 연다고 언론에 화려하게 보도되었지만, 실상을 보면 참여 대상은 신한카드의 제휴처인 '월드비전'이 운영하는 축구 동아리에 소속된 20명으로 제한되었다. 박지성은 이 행사를 위해 결혼식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고, 행사에 참여한 유소년들과 15분간 축구 게임을 즐겼다. 박지성은 "맨유 앰버서더로서 첫 번째 활동에 나서며, 클럽과 파트너가 함께 내 고향인 한국에서도 긍정적인 일들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보고 놀랐다. 어린 소외계층아동들에게 꿈을 이뤄주는 일은 클럽과 신한카드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이 아니었다면 솔직히 불가능했을 수도 있다. 어린 아이들이 그라운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목격해 좋았다.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메인 스폰서인 쉐보레가 한국에서 개최하는 마케팅 이벤트에 참석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귀국하고 있다. 한국GM의 프레스 컨퍼런스에 참여했으며, 서울모터쇼 쉐보레 부스에서 쉐보레 스파크 시연회, 팬싸인회, 유소년 선수들과의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한국GM, 서울모터쇼에서 박지성과 '꿈' 선물하다. 이듬해인 2016년에도 쉐보레 행사를 위해 내한하여 용산 아이파크몰에서도 팬미팅, 유소년 축구 행사 등을 가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대한민국 공식 파트너 조아제약의 이벤트에도 매년 참석하고 있다. # 조아제약, 맨유 레전드 박지성과 마케팅 활동, 박지성 선수, 조아제약 ‘프로젝트A’ 전시회 방문. 조아제약은 대한민국 국내 행사 뿐만 아니라 베트남 등 해외에서도 박지성을 동원한 활발한 마케팅 활동을 벌이며 현지에서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다. 조아제약, 베트남 축구열풍에 박지성 초청 현지 팬미팅 개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공식 스폰서 와인 업체인 ㈜아영FBC의 행사에도 참여하고 있다. ‘박지성과 함께하는 디아블로 와인 디너’ 소비자 초청행사
신한카드, 쉐보레, 조아제약 등은 모두 자사의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한 사회적 공헌 행사에 주로 박지성을 투입하고 있다. 박지성은 스폰서가 주최한 유소년, 소외계층, 장애아동 행사에 꾸준히 참석하며 대중들에게 사회공헌활동에 헌선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또 박지성이 맨유 스폰서 기업의 마케팅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국민들은 박지성이 한국에서 꾸준히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박지성은 한국 외에도 중국, 홍콩,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서 열린 맨유 이벤트에 참석했으며, 맨유의 중국 투어 때도 맨유 앰버서더 자격으로 중국에 가서 현지 이벤트에 참여했다. 박지성이 아시아 시장을 담당하기 위해 앰버서더에 선정된 것과 비슷하게 중남미 지역을 담당하는 앰버서더인 드와이트 요크가 때때로 박지성과 동행하여 아시아의 맨유 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박지성 팬들이 박지성이 아시아 담당이 아닌 글로벌 대사라고 기를 쓰고 강조하지만 박지성이 참여하는 맨유 행사의 거의 대부분이 한국과 아시아 행사에 몰려있으며, 영국이나 유럽에서의 활동은 아래의 예시 정도를 제외하면 찾아볼 수 없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국에서는 큰 행사에는 보비 찰튼, 브라이언 롭슨 등이 나서고 있고 중간 이하 규모의 행사에는 데니스 어윈이 자주 나온다. 그 이하 작은 규모에는 앤디 콜 등 여러 앰버서더가 돌아가며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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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간 2019년 12월 16일 저녁 2019-20시즌 UEFA 유로파 리그 32강 대진 추첨식에 박지성이 맨유 대표단 자격으로 화면에 등장했다. 이날 맨유의 대진 상대는 벨기에클뤼프 브뤼허 KV로 결정됐으며, 박지성은 영국 'BT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이 단계에서는 쉬운 팀이 없다. 이기고 싶다면 잘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후 2021년 1월에 전북 현대 모터스 공식 어드바이저로 임명되면서 앰버서더 직책을 그만뒀다고 한다.

6.2. 축구해설가


2015-16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객원 해설위원으로서 잠깐이나마 해설 데뷔를 했었다. 다만 처음이다 보니 그다지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었다.[58]
이후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SBS의 정식 해설위원으로 발탁되면서 본격적인 해설 데뷔를 하게 된다. 개막전인 러시아와 사우디와의 경기에서 처음 선보인 해설자 박지성은 초반엔 좋지 않았지만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엔 "목소리가 너무 하이톤이다", "해설에서 기자회견 때에 말하는 것과 똑같이 뭔가 건성건성으로 말하는 간신같은 말투가 답답하다", "생각보다 재미가 없다", "너무 무난하다" 라는 의견이 많았다. 특히 발성에 대한 지적이 대다수. 박지성에 대한 팬심으로 SBS를 틀었으나 목소리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다른 채널로 돌렸다는 말이 꽤 많이 보였다. 박지성 본인도 아직 마이크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어떻게 들리는지, 그리고 어떻게 발성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있다.
이후 피드백을 받으면서 다음 경기에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려를 불식시켰다. 물론 배성재의 도움도 있었고 처음에 지나치게 너무 떠버린 목소리가 많이 안정적이고 단단한 목소리로 개선되었다. 특히 축구선수로서 정점의 커리어에 있던 사람인지라 중간 중간 푸는 썰들, 파울 시비에서도 한 걸음 물러나는다른 해설진들과 다르게 단호하게 "맞다, 아니다." 찝어주는 모습이 신선했고, 두 방송사 해설이 다소 언행이 차분하지 못했던 면과 비교되어 선수들이 부진했어도 '아쉽다', '한국축구 전체 책임이다' 정도에서 끝내는 정도로 참았다. 2인 해설의 한계상 장지현과 같은 축잘알 해설이 붙어서 시너지를 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텐데 하는 의견들도 많지만 다른 경기들을 해설해야하는 장지현의 스케줄상 아무래도 어렵다. 결과적으로 첫해설 치고는 잘했다는 평이다. "어떤"이라는 단어를 중간중간에 너무 많이 쓴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다음에 해설할 때는 모니터에 포스트잇으로 "어떤"을 써놓고 가위표를 쳐놔서 스스로 피드백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서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어록 항목에 나와있는 것과 같이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경기: 멕시코 vs 독일에서 독일의 이뭐병 스러운 경기능력을 보고나서는 아무 망설임 없이 비벼볼 만합니다라는 발언을 해서 사람들이 '제아무리 박지성이라지만 더위 먹고 실성한 게 아닌가 라는 평가마저 받았는데... 결국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경기: 대한민국 vs 독일에서 대한민국이 독일을 정말로 싹싹 비벼버리는 사태가 벌어져 버렸고 그 결과 박지성의 통찰력에 사람들이 감탄했다.
대한민국의 조별리그 3경기가 끝난뒤 육아 휴가 차원에서 영국 런던의 자택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후에 4강전부터는 다시 러시아로 와서 중계를 마무리 지었으며 2018년 8월달에 진행될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해설은 안 한다고 밝혔다.
그 이후 SBS에서 축구를 중계할 때에는 장지현이 계속 하다보니 앞으로도 SBS 축구 해설위원으로 있을지는 예측 불가이다.

6.3. 축구행정가


박지성은 은퇴하기 전부터 축구행정가가 되겠다고 말해왔고, 은퇴 이후에도 2021년 현재까지 축구행정가가 되기 위해 배우고 있다고 인터뷰하고 있다. 그러나 본인의 염원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은퇴한지 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박지성은 축구행정가로서 커리어를 쌓지 못하고 런던 자택에서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다.
2014년 7월 결혼 후 거주지를 한국이 아닌 영국 런던에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 머무르지 않고 영국에 거처하는 이유는 축구 행정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박지성은 “은퇴 후에 뭘 해야 하나 생각했다. 축구계에는 계속 있고 싶지만 감독은 되고 싶지 않아 행정 쪽으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현역 시절 구단에서 선수들의 은퇴 후를 위해 제공하는 코치 수업이 있었지만 지도자가 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도 안받았다고 말했다. 스포츠 행정가가 되어 한국 축구 나아가 한국 스포츠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명지대에서 석사를 받았기 때문에 런던에서 축구 행정 박사 학위에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친 박성종씨는 이미 스포츠 마케팅을 공부할 교육기관을 몇 군데 추천받았다고 말했다.
2015년 7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사회공헌위원으로 임명되었다. 대한축구협회는 "박지성을 비롯한 9명의 한국인이 분과위원으로 임명됐다"고 알리며 박지성이 아시아 전역의 사회공헌 활동에 힘쓰게 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처음으로 축구 행정 기구의 일원이 되었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박지성, AFC 사회공헌위원 임명 '축구행정가 변신'
2016년 3월 오랜만에 근황이 전해졌다. 런던에서 백수로 평범하게 지내고 있다고 한다. 자가용이 아닌 지하철(튜브)과 빨간 이층 버스를 타고 다니며 런던에서의 삶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딸을 돌보느라고 바쁘다고. 육아에 충실하려 하고 있고 아내도 좋은 가장이라는 말을 종종한다고 전했다. ‘런던 백수’ 박지성의 행복한 25시
2016년 FIFA 마스터 코스에 합격했다. 본격적인 행정가 수업을 받을 계획이라고 한다. 지도자로 나설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FIFA 마스터 코스는 스위스국제축구연구센터(CIES)에서 운영하는 축구 행정인을 양성하기 위한 10개월 과정의 코스이며, 지원 자격으로는 학사 학위가 있어야 하며, 스포츠 관련 업계에서 2년 이상의 경력이 요구되지만 필수는 아니라고 한다. 정원은 30명이지만 지역 배분이 매우 중요하여 한 나라에서 2명 이상은 뽑지 않으며 20개국 이상에서 선발된다고 한다. 등록금은 한화로 약 3000만원.
2016년 9월 22일 영국 레스터에 위치한 드몽포르대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 전공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는 보도가 국내 언론에 일제히 나왔다. 그런데 국내 언론 보도 내용은 오류가 있는데, 드몽포르대 석사 과정에 입학한 것이 아니고 FIFA 마스터 코스 과정에 들어간 것이다. FIFA 마스터 코스는 1년 과정으로 영국 레스터 시티의 드몽포르대, 이탈리아 밀라노의 SDA 보코니 매니지먼트 스쿨, 스위스 노이샤텔대에서 각각 3개월씩 총 3학기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 첫 학기 과정이 레스터 시티의 드몽포르대에서 진행되는 것. 박지성은 드몽포르대 홈페이지에 "한 동료가 (이곳에서)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며 "축구장 안팎에서 지식을 향상시키고 싶었다. 이후엔 어쩌면 K리그에서 일할 수도 있다"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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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드몽포르대에서 동기 신입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드몽포르대 입학 이후 10월에 교내 축구 경기에 출장했다는 #트윗과 뉴스가 나왔다. 하지만 팀은 7-1로 대패했다고 한다.
2017년 7월 14일 30여명의 동료들과 함께 FIFA 마스터 코스를 수료했다. 이 과정을 마친 후 “앞으로 더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이런 보도가 나가자 박지성은 "‘공부’를 하고 싶은 건 아니고요. ‘경험’을 하고 싶은 거죠.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은 없고.(웃음)"라고 말했다. 시험 때문에 선수 시절보다 훨씬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한 해였다고 한다. "이제 다시는 공부를 할 생각이(웃음). 그런 생각을 안 하게 만들어줬죠 이 과정이.(웃음)", "지금 계획은 유럽에서 더 경험을 쌓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며 공부가 아닌 경험을 쌓고 싶어서 영국에 머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향후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으며 "이 과정이 다 끝나고 난 후에 좀 많은 사람들을 만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저에 대한 기대에 대해 부담감은 당연히 갖고 있고요. 하지만 그건 선수 때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제가 어떤 노력을 하느냐, 제가 노력한 것에 대해서 만족을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2017년 7월 24일 국제축구평의회(IFAB)의 신임 자문위원 18명 중 한 명으로 위촉되었다. 박지성, 국제축구평의회 자문위원 위촉…'한국인 1호'
IFAB 자문위원의 역할은 IFAB가 축구 규정을 바꿀 때 전문가적인 시선에서 규정의 장단점을 조언을 해주는 역할이라고 한다. 무보수이며 1년에 한 두 번씩 미팅에 참가해 의견을 나눈다고 한다. 이에 배성재가 "백수가 아니냐"고 말하자 "맨유에서 앰버서드 역할로 홍보활동을 하고 있다. 분기별로 활동 보수를 받고 있어 백수가 아니다"고 말했다.
2017년 11월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을 맡으며 처음으로 한국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홍명보 전무이사, 이임생 기술위원장 등과 함께 발탁되었다.[59] 축협의 인적쇄신을 위한 카드라는 언론 평가가 나왔다. 원래 유스전략 본부는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산하 조직이었지만 박지성이 맡게 되면서 본부로 승격되었다고 한다. 박지성 본부장은 "그동안 협회에서 꾸준히 부탁과 제안이 있어왔다. 최근 한국 축구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계속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한국 축구의 미래인 유스 시스템의 방향을 갖추는데 동의했고 직책을 맡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지성은 이 직책은 상근직은 아니며 따라서 한국에 거주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유럽에서 보고 느낀 것을 협회에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지성은 "아직은 영국에서 배워야 할 일이 더 많이 남아 있다. 최대한 오랫동안 유럽에서 많은 경험을 하고 싶다. 행정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유럽에서 공부할 생각이다. 물론 아직 정확하게 결정된 것은 없다. 어쨌든 유럽에서 계속 공부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2018년 12월, 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을 1년만에 사임하였다. # 축구협회가 여러 차례 만류했지만 박지성이 사임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축구협회의 한 관계자는 박지성이 귀국했을 때 유소년 관계자와 2~3시간씩 이야기하는 등 열의를 보였었는데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지성은 사퇴 사유로 “나는 영국에 머물러 있는데 한국에서 부딪히면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본부장을 하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행정가 공부를 위해서는) 아직 영국 머무르며 배워야 할게 많다고 느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물러나게 되었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일각에서는 대한축구협회에서 본부장을 맡았으면서 사임할 때까지 본인의 개인적인 스케줄로 귀국한 것을 제외하면 줄곧 해외에만 체류했던 것을 보면 박지성이 과연 축구협회와 한국 축구를 위해 일할 의지가 있었는지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과거 안정환이 K리그 홍보대사를 맡았을 때 그의 명예에 걸맞지 않게 정말 아무 권한도 없는 직책이었지만 전국 16개 경기장을 순회하며 헌신적으로 일했던 것과 너무 대조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2020년 4월 '비트볼 유럽'은 박지성과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박지성은 “난 지도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공부를 더하고 싶다”며 축구행정가로서 포부를 밝혔다. 박지성은 현재 런던에 머물며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박지성은 은퇴 이후 현재까지 축구행정가가 되기 위해 유럽에서 공부하고 경험을 쌓겠다고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2021년 현재까지 아직은 축구행정가로서의 커리어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본인이 현지 언론에 밝혔듯이 아직까지는 육아에만 전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IFAB 자문위원에 선임되었지만 무보수직이며 1년에 한두번 만나 의견을 나누는 것이 활동의 전부라고 밝힌 바 있다. 무보수이기 때문에 백수라는 배성재의 말에 박지성은 맨유 앰버서더로 연봉을 받고 있기 때문에 백수가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또 대한축구협회에서 유스전략본부장을 맡았지만 취임하면서 박지성 본인이 비상근직이며 따라서 영국에서 재택근무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었다. 그리고 “유럽에서 보고 느낀 것을 협회에 전달하는 것”이 본인의 업무라고 말했다. 즉 행정력을 가지고 운영에 관여한 것이 아니라 조언과 컨설팅을 해주는 역할에 불과했다. 게다가 사퇴할 때 박지성 본인의 발언을 보면 항상 영국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언을 전달하는 역할마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6.3.1. 전북 현대 모터스 어드바이저


2021년 1월 18일, K리그1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축구 행정가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다는 기사가 발표되었다. # 같은날 전북 현대 모터스의 홈구장인 전주월드컵경기장을 방문한 전북팬이 온라인 전북팬 커뮤니티인 에버그린에 사진을 올리며 박지성이 구단 관계자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았다는 사실을 인증했다.#
2021년 1월 19일 오피셜이 떴으며, 공식 직책은 "어드바이저"이다. 구단의 팀컬러를 만들고 유소년 육성시스템을 관리하는 등 장기적 비전을 제시하고 선수단 운영, 스탭 및 훈련 등에 대한 아이디어 제공 등의 임무를 맡는다고 한다.
1월 23일, 남해군의 남해스포츠파크에서 전지훈련 중인 전북 선수단의 공식 훈련에 참관하는 것으로 첫 일과를 시작하였다. 이후 선수 개별면담, 스카우트 팀 구성 등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했다고 한다.

6.4. 자선경기 출전


2015년 6월 14일, 맨유와 뮌헨의 레전드 매치에 맨유 레전드로 선발 출장하였다.
2015년 11월 15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리는 영국 연방팀과 세계 올스타가 맞붙는 유니세프 자선경기에 '세계 올스타' 소속으로 풀타임 출전했다. 데이비드 베컴,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존 테리 등이 포함된 영연방팀의 수장은 알렉스 퍼거슨 전 감독이며,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 이끄는 세계 올스타는 에드빈 판데르사르, 카푸, 파트리크 비에라, 로베르 피레스, 파트릭 클라위버르트, 지네딘 지단, 루이스 피구, 호나우지뉴 등의 화려한 선수들로 구성되었다.[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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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26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맨유 vs 뮌헨 레전드 매치가 열렸다. 이 경기에 박지성도 참가가 예상됐으나, 고질적인 무릎 상태 때문에 결국 불참하게 됐다.# 경기 결과 맨유가 5:0으로 완승을 거뒀다. 참고로 박지성 무릎 상태가 너무 나빠서 이후 자선경기도 못 뛴다고 밝혔다.

7. 방송 출연



7.1. SBS 런닝맨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박지성의 활약상을 담은 항목으로 해당 프로그램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다. 2013년 말까지는 런닝맨에만 2회 출연했고 런닝맨에 세번째 출연한다.

7.1.1. 2012년


2012년 5월 20일~6월 4일까지 태국에서 열리는 아시안 드림컵 홍보를 위해 런닝맨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처음에는 런닝맨 멤버들에게 미션만 나눠주는 정도로 출연하는가 싶더니 런닝맨 멤버들을 JS파운데이션 운동장으로 불러내고 직접 출연해 멤버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추가 게스트인 아이유까지 들어와 '초능력 축구'및 기타 미션을 2일간 진행하였다.
초능력 축구에서부터 생각보다 괜찮은 예능감을 보이기도 했는데, 기린이 능력을 써서 시간을 멈춘 사이 골대 앞까지 공을 끌고가서 누워서 골을 넣는 능욕을 선보였다. 물론 선수 숫자 2:7의 페널티를 씹어먹는 축구 실력으로도 멤버들을 농락했다.
다음날 진행된 이름표 뜯기에선 스파이가 되어 미션 중에 얻은 태국 화폐로 런닝맨 멤버 1명을 파트너로 고용할 수 있었고, 유재석을 고용해 쏠쏠하게 써먹었다. 맴버들 스스로 내분을 일으켜 아웃시키고, 유재석을 활용해 이광수를 아웃시키고, 유재석을 끝까지 믿은 김종국도 유재석에 의해 아웃. 마지막에 남은 아이유는 유재석과 둘이서 연극을 해서 방심시킨 후 아웃시켜서 최종 승리했다. 그리고 우승자 특권으로 런닝맨 멤버 전원을 태국으로 초청했다.
태국에 도착한 후 스케줄 사정으로 귀국하게 된 유재석을 대신해 1일 MC로 활약하기도 했다. 멤버들과 제작진이 많이 도와 준 점을 감안하더라도 꽤 깔끔한 진행이다. 뱀발로 방송 중 팔뚝에 검은 줄무늬가 찍혀 혹시 '팔에 문신을 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이 때문에 네티즌들이 이 떡밥으로 물고 늘어졌지만, 다음 방송에서 그 정체가 밝혀졌다. 싱겁게도 그냥 싸인하다 매직이 팔뚝에 묻은 거였다. 우정 출연으로 리오 퍼디난드정대세가 출연하였고 아시안 드림컵 경기중엔 골 찬스를 놓친 크리스티아누 호랑이를 멱살을 잡는 적절한 예능감을 보여줬다.

7.1.2. 2013년


2013년 6월 30일~7월 14일 1년만에 다시 런닝맨에 출연하여 여전히 살아있는 입담을 과시했다. 특히 촬영 전날에 김민지 SBS 아나운서와의 열애설이 터졌던터라 그쪽으로 관심이 많이 쏠렸고, 본인도 "SBS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등 능글맞게 대처했다. 하지만 그 직후 상대편 주장으로 출연한 구자철에게 관심이 쏠리자 씁쓸하게 바라보고, 옆에서 구자철 보겠다고 카메라 가리는 국민MC에게 핀잔을 주는 등 방송분량은 적절하게 뽑아내고 있다. 이번에도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안 드림컵 홍보일환으로 참가였고, 런닝맨 멤버들도 런닝맨 방송에서 진행되는 게임을 통해 4명까지 선발되어 경기에 참여하게 된다.
7월 7일 방영분 첫 게임인 족구에선 축구선수 클래스를 발휘해 미스 없이 공수 전반에서 활약. 다른 남자 멤버인 유재석, 하하, 개리가 후반까지는 무난하게 활약해주었으나 막판에 실수가 겹치면서 아쉽게 패배. 두번째는 식당에서 알람토크[61]를 진행하면서 열애설과 국가대표팀 복귀 등등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마지막 이름표 뜯기 레이스에선 공을 차서 패널에 달린 이름표를 달아야 레이스에 참가할 수 있는데, 상대편의 이광수, 구자철, 김종국에게 큰 이름표를 선사해 게임을 나름 유리하게 가져갔다. 본인은 다른 멤버들 이름표 다 달아주고 마지막에 입장했고, 구자철과 막판에 서로 이름표를 뜯기 위한 수컷의 몸싸움을 보여주었다. 결국 송지효가 아웃되면서 박지성팀이 우승하고 상하이로 넘어가게 된다.
7월 14일에는 우정 출연으로 박지성의 절친인 파트리스 에브라가 출연했다. 등장하면서 에브라가 "노 바보입니다"라고 했는데, 예전에 박지성이 한국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에브라에게 한국말로 장난친 게 있었다고 한다.[62] 에브라의 예능감도 대단해서 박지성과 미션으로 치열하게 방송분량을 뽑는 등 꽤 활약해주었다.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시안 드림컵에서는 선수 겸 감독으로 경기를 지휘했고, 특히 경기 중에 프리킥 실수를 한 이광수에게 킥을 날리는 등 방송에 쓸만 한 장면을 여럿 만들기도 했다.

7.1.3. 2014년


이쯤되면 런닝맨의 연례행사라 할 수 있겠다. 2014년 6월 8일부터 6월 15일까지 출연했으며 역시 런닝맨의 인도네시아에서 있을 아시안 드림컵 참여와 홍보를 위해 나왔다. 하지만 김종국의 방향잃은 헛다리, 이광수는 키만 컸지 헤딩은 불가능하고 유재석은 페널티킥을 실축 하는 등 런닝맨 멤버들이 지난 두 경기에서 보여준 모습에 결국 몇가지 수련[63]의 과정을 겪게 된다. 더군다나 방송에 나왔을 쯤 에는 프로 은퇴를 선언한 후라서 뭐 런닝맨 멤버들도 이미 두번이나 봤겠다 별로 신기해하지도 않고 오히려 지석진은 박지성을 막 대한다.
6월 8일 방송분의 첫번째 수련은 목동 SBS 사옥에 있었고 멤버들이 미션을 수행하고 다 끝낼 때까지 혼자서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처음엔 멤버들이 다른 색깔의 옷을 겹치지 않게 빌려입는 동안 박지성은 제기차기 하는 거지만 박지성이 실패했고 두번째는 멤버들이 초성 'ㅁㅈ'로 시작하는 물건을 갖고오는 동안 박지성은 줄넘기를 해야 했지만 역시 박지성이 실패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멤버들이 각각 다른 나이대 분들을 모셔와야 하는 거고 박지성은 그동안 축구공 리프팅을 해야 했는데 이건 성공한다. [64] 그리고 두번째 수련은 사옥 야외에서 박지성이 차 안에다 공을 차서 넣는건데 이것도 쉽게 성공, 그리고 세번째엔 논두렁에 가서 릴레이를 했다. 네번째엔 차범근이 나와서 런닝맨 멤버들에게 축구 기본기를 가르쳐 줬고 그리고 마지막엔 설기현이 감독하는 축구 좀 하는 아이돌[65] 들이 나와서 런닝맨 멤버들과 풋살을 했고 [66] 여기서 런닝맨이 5골을 먹으며 털렸지만 박지성이 나오니 한골을 어시스트 하고 두골을 혼자서 넣으며 아마추어와 프로의 갭을 명확히 보여줬다.
6월 15일 방송은 인도네시아에 간 것부터 시작해서 바로 자선경기로 넘어갔다. 이 자선경기에는 이탈리아 국가대표 주전 풀백 이었던 잔루카 잠브로타와 현재 AC밀란에서 뛰고있는 스테판 엘 샤라위[67]가 나왔고 이광수가 선발로 뛰었다. 박지성을 포함한 런닝맨 멤버들에게는 경기를 뛰면서 할 만한 미션이 주어졌고 박지성 에겐 해트트릭 [68], 유재석, 개리, 김종국, 하하, 이광수는 지난 두 경기에서 뛰어 본 경험이 있기에 공격포인트 1점을 기록하고 그리고 첫 출전하는 지석진송지효는 볼터치 다섯번을 해야 했다. 미션을 실패하는 사람들은 벌칙을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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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는 선발로 뛰었지만 공이 가질 않았고, 결국 그가 뛰었는지 아무도 모를 정도의 활약만 펼치고 벤치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후 지석진이 교체로 뛰게 됐는데 근데 지석진과 교체한 선수가 캡틴 지(Ji) 로 경기에 나섰고 솔직히 볼터치 5번 쉬울 줄 알았지만 딱 한번 했고 그것도 실점 후 중앙에서 시작 할 때. 만지자 마자 전반이 끝났다.
후반에는 박지성, 유재석, 김종국, 개리, 하하 그리고 차범근 까지 다 출전했고 전 해, 전전 해 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줬다.[69] 그렇지만 미션 자체는 모두 다 실패했고 결국 전부 다 벌칙을 받게 됐다.
벌칙은 다음날에 사파리 파크에 가서 미션을 수행하는 것 이었고 전날 축구와는 다르게 전부 다 성공한 모습을 보여줬고[70] 더군다나 그 회는 런닝맨 200번째 에피소드였고 쉽게 모시기 어려운 게스트와 같이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후 런닝맨에서 4월에 '축구 고향' 수원에서 열린 JS컵 응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7.2. 기타 방송 출연


집사부일체 23회 (2018.06.10) / 24회 (2018.06.17) 사부로 출연하였다.
2018년부터 유튜브 채널 슛포러브에 게스트로 가끔 출연하고 있다. 박지성 조기축구 영입 이 영상 때문에 한때는 본 항목의 '경력'란 매 마지막에 취소선 치고 하나FC[71](2018, 2시간 임대)로 적혀있었다(...)
2021년 2월 14일부터 박찬호, 박세리와 함께 쓰리박에 출연한다.

8. 별명




9. 어록


쓰러질지언정, 무릎은 꿇지 않는다.

불가능이란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한다.

‘축구를 잘했던 사람’, ‘우리나라 최초의 프리미어리거’ 이런 걸 다 떠나서 많은 팬들이 내가 경기장에서 뛰고 있는 모습을 보고 믿음을 느꼈다면, “저 선수는 믿음이 가는 선수였어.”하고 한번이라도 생각했다면, 저는 그걸로 제가 원했던 행복한 축구 선수 생활을 했다고 생각해요.

박지성 마이 스토리

오늘 우리 선수들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대해서 저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단지, 우리의 축구 수준, 지금의 축구 현실이 (지금) 여기까지인 걸로 저는 판단을 내리는 거고요.

우리가 더 잘하기 위해서는, 대표팀에 대한, 선수들에 대해서, 선수들의 능력을 더 키우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한국 축구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지금 보이는 것만 바꿔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어두운 것들[72]

을 얼마나 털어내고, 그것을 그 벽을 깨부수고 우리가 (과연)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축구인들이 서로가 힘을 합쳐서 희생을 감내해서라도 뭔가를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4년마다 매번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게 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경기: 대한민국 vs 멕시코 종료 후에 박지성 SBS 축구 해설위원이자 대한축구협회 유스 전략 본부장이 평가한 한국 축구의 현실

과연 독일이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을 하려고 나온 건지 저는 잘 모르겠네요.

네, 이 정도면 우리나라도 비벼 볼 만하겠는데요.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F조 경기: 독일 vs 멕시코 전반전 종료 후에 박지성 SBS 축구 해설위원이자 대한축구협회 유스 전략 본부장이 평가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후배들에게 진정한 선배가 되고 싶다면, 실력으로 승부하길 바란다. 실력과 인품이 뛰어난 선배들에게는 저절로 존경심이 생기는 법이다.

일단 보자

#

2009년 4월 19일 MBC 스페셜에서


10. 박지성에 대한 언사


박지성은 아주 환상적이고 내가 좋아하는 선수이다. 그와 가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박지성과 한 팀에서 뛰고 있어서 좋다. 그는 하루 종일 뛰어도 지치지 않을 정도의 뛰어난 체력을 가지고 있다. 경기 외적으로도 나의 좋은 친구이다. 그는 마치 전기(Electricity)와 같이 지칠 줄 모르는 스테미너로 끊임없이 달리며 경기장을 누빈다. 나는 그와 함께 뛰는 것이 즐겁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출처

박지성 선수와 여러 번 경기를 했죠. 챔피언스 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 월드컵의 한국전에서 상대를 한 적이 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아주 중요한 선수죠. 퍼거슨 감독이 좋아하는 선수고요. 한국 대표팀에서도 아주 중요한 선수입니다. 완벽한 선수라고 생각해요.

리오넬 메시 출처

박지성 선수는 한국에서만 유명한 선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팀에 있건 간에 제 역할을 다 해주는 선수로서 세계에서 유명한 선수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모두가 그를 좋아합니다.

리오넬 메시 출처[73]

당신이 만약 12살짜리 어린이에게 호날두에 관해 물어본다면 어린이는 즉시 "호날두는 맨유에서 엄청나게 훌륭한 선수였지"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박지성에 대해 말한다면, 그는 박지성이 누구일지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박지성과 함께했던 동료들은 그가 맨유의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고 있다. 나와 호날두, 테베즈와 같은 선수들이 미디어의 헤드라인을 장식했지만, 박지성과 플레처가 팀을 위해 한 일은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우리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이었다. 또한 그들이 자기 스스로를 희생하기 때문에 개인이 가진 실력이 종종 저평가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웨인 루니 출처

박지성은 어느 경기에 나가든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는 선수이다. 에너지가 넘치고 현명한 플레이를 한다. 또 어떤 상황에도 눈에 띄는 플레이를 한다. 박지성이 상대 수비수들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하면 그들은 박지성이 너무 빨라서 막아야 할지, 태클을 해야 할지를 몰라 당황해 한다.

웨인 루니 출처

가끔 그를 유령이라고 부른다. 박지성의 움직임의 변화는 정말 놀랍다.

나는 그가 우리 팀에 가장 중요한 선수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뛰는 것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하루 종일이라도 달릴 수 있다. 가끔씩 내가 지쳐도, 내가 괜찮을 것을 아는데, 왜냐하면 지(Ji)가 나를 위해 뛰어줄 것을 알기 때문이다.

파트리스 에브라 출처

PSV전에서는 등번호 7번의 한국인, Park ji sung이 신경쓰였다. 쭉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모기와 같은 인상이었다. 여기서 쫓아버려도, 그는 다른 곳에 나타난다. 언제나 달리고 있고, 돌파력도 있으며 항상 위험한 존재다. 어디서 그런 체력을 손에 넣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정말로 좋은 선수인 것 같고, 이탈리아 1부 리그 어느 팀에서도 통할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는 헌신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와 타입이 비슷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헌신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알고 있는 선수이다.

젠나로 가투소

그는 정말 대단한 선수다. 특히 그렇게 큰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유럽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같은 아시아 선수로서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의 활약을 보고 감탄했다.

나카타 히데토시 출처

박지성은 큰 경기에 매우 강했던 선수다. 아스널, 첼시 같은 강팀과의 경기나, 챔피언스 리그 경기에서 그는 언제나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박지성은 정말 훌륭한 팀 동료였고 또한 언제나 겸손했다. 그는 언제나 그의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충실했던 진정한 아시아의 슈퍼스타이자, 그럼에도 자신의 성실한 모습을 티내지 않은 진정한 프로 선수이며 위대한 선수다. 사람들은 그의 운동량만을 언급하지만 그는 기술적인 면에서도 매우 훌륭했던 축구 선수였다.

대런 플레처 출처[74]

플레처는 정말 경이로운 스테미너를 가지고 있다. 우리 팀에서 아마 박지성만이 유일하게 체력으로 플레처랑 대등할 것이다.

리오 퍼디난드

박지성은 좋은 윙 플레이어의 조건을 모두 갖춘 선수다. 움직임이 매우 좋고 다른 선수들을 독려한다. 부상으로 박지성이 빠져서 내 출전시간이 늘었다.

라이언 긱스

박지성 같은 선수가 있기에 루니, 호날두와 같은 공격수들이 신경쓰지 않고 골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박지성이 맨유에 반드시 필요한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카를로스 테베스

솔직히 놀라울 것도 없지 않은가. 그 같은 환상적인 플레이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명문으로 가는 것은 정해진 수순인지도 모른다. 퍼거슨은 그에게 감사하라. 박지성이 PSV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이제야 느낀다. 그의 공백이 너무 크다.

필립 코쿠

나의 베스트 11을 뽑는다면 왼쪽 날개는 박지성이다.

마르크 판보멀

어렸을 때부터 박지성의 플레이를 TV에서 봤다. 박지성은 나의 영웅이었다. 물론 박지성은 나와 포지션이 달라 내가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박지성을 따라잡은 건 아니다.

손흥민 출처

한국의 좌우 측면에는 박지성과 볼턴 원더러스에서 뛰는 선수가 있다. 세계 무대에 나서기 전 (플레이의) 속도감 등을 배우고 싶다.

나가토모 유토 출처

그는 첼시에서 뛰고 있는 아르연 로번보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이다. 만약 2차전에서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 주인공은 박지성이 될 것이다.

요한 크루이프[75]

마이클 오언을 영입했다면 좋은 옵션이 되었겠지만, 그보다 난 박지성을 원했다. 100% 확실한 선수다. 헌신적이고 훌륭한 축구선수다. 경기장 위에서의 지능이 좋다. 그것이 내가 그를 존중하고 기용하는 이유다. 그는 결코 우리에게 패배를 안겨주지 않는다.

알렉스 퍼거슨

박지성은 공격은 물론이고 수비도 잘한다. 상대가 전진하도록 놔두질 않는다. 공격할 때 패스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다.

우치다 아츠토 출처

최후방에서부터 달려나가 상대 4백의 뒤를 잡는다. 상대는 그것에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가 공이 없는 곳에서 보여주는 움직임은 특별한 것이었다.

알렉스 퍼거슨 출처

난 언제까지나 그를 내 first 선수로 여길 것이다. 박지성과 같은 선수와 함께 한다는 것은 모든 감독들의 꿈이자 바람이다. 그의 유일한 단점은 자신이 세계 최고 중 하나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알렉스 퍼거슨 출처

네가 해야할 일은 볼을 만지는 것이 아니다. 패스를 하는 것도 아니다. 피를로다. 그것이 전부다

알렉스 퍼거슨 출처[76]

아마도 피를로는 09-10 시즌 AC 밀란이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탈락한 다음 날 그의 침대 밑에 박지성이 있지는 않은지 확인했을 것이다.

리오 퍼디난드

박지성의 가세로 우리는 더욱 거센 공격을 받을 것이고, 그는 잉글랜드 축구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다.

주제 무리뉴

박지성을 처음부터 막았더라면 경기를 더 쉽게 풀 수 있었을 것이다.

게리 케이힐

동료 선수들 중에서 박지성의 실력을 저평가하는 선수는 한 명도 없다. 훈련 중에 박지성은 악몽 그 자체다.

게리 네빌 출처

박지성은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모두 다재다능하다. 비록 박지성은 팬들에게 돋보이는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는 아니더라도 그가 뛰는 모든 경기에서 우리 팀에게 굉장한 도움을 준다.

네마냐 비디치

당시 그는 한국 국가대표팀의 아이콘이었다. 경기 전 우리 팀 감독이 박지성의 수비에 대해 강조했던 기억이 뚜렷하다. 90분 내내 그를 놓치지 말라는 지시가 팀 전원에게 떨어졌다. 그와 유니폼을 교환하는 건 영광이었다.

루이스 수아레스

박지성은 절대적으로 위협적인 존재다.

루이 사하

박지성은 맨유에 뛸 자격이 있다. 그에게 행운을 빈다.

데이비드 베컴 출처

박지성은 맨유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보비 찰튼 출처

그는 언제나 충직한 하인(servant)처럼 자신을 버리고 동료를 위해 뛰어 맨유 전성기의 일부가 됐다.

리오 퍼디난드

박지성이 선발로 나온 경기는 승률이 높다라는 것을 잘 알고있다. 오늘 그는 환상적인 골을 넣었다. 그를 볼때마다 마치 융베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앞으로 맨유와의 경기에서 그를 더욱 조심 해야한다.

아르센 벵거[77]

(가장 저평가된 선수 중 한 명이라 이야기하며)

더 이상의 표현은 없다. 박지성은 내가 발굴한 최고의 선수다.

거스 히딩크

박지성은 아시아 최고의 선수다. 나도 그처럼 되고 싶다.

혼다 케이스케 출처

피를로를 막을 선수가 필요하다. 박지성은 선수 시절 피를로가 공을 건드리지도 못하게 했다.[78]

[79]

폴 스콜스

지금 잉글랜드에는 박지성 같은 선수가 필요하다.

폴 스콜스 출처[80]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이 딱 1명 있었는데 그는 바로 박지성이었다. 박지성은 악몽 같았다. 믿을 수 없는 1:1 맨마킹 능력을 가지고 있어 훈련 때 1:1로 그를 상대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훈련이었다. 그는 정말 비현실적인 선수다.

폴 스콜스

그는 전자(electron)의 속도로 경기장을 뛰어다녔고 아마 한국 역사상 원자력으로 움직이는 첫 한국인이었을 것이다.'

안드레아 피를로

기술적으로 가장 강한 동료는 호나우지뉴였다. 최고의 상대는 메시였다. 가장 까다로운 상대는 박지성이었다. 이들은 내가 지도자가 되는데 큰 가르침이 될 것이다.

안드레아 피를로 출처[81]

박지성과 다른 선수들이 있기에 한국 축구는 앞으로 더 발전할 것입니다.

티에리 앙리

박지성은 루니에 버금가는 강한 심장을 가지고 있다.

뤼트 판니스텔로이 출처

박지성은 이제 유럽의 축구선수라면 모두가 아는 하이레벨의 선수이다.

사무엘 에투

박지성은 에너지가 충만하고 이기적이지 않으며 팀을 위해 봉사한다. 그는 위험을 감지하고 불을 끄는 소방관처럼 작전을 수행한다. 양쪽 측면을 오가면서 풀백들의 수비를 지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전방으로 돌진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또 그의 저돌적인 돌파로 상대의 기를 꺾는다.

밥 휴스

박지성은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선수이고, 그의 움직임은 상대 팀을 곤란하게 했다. 팀에게 정말 가치있는 선수이다.

패디 크레란드

박지성은 진정한 하드워커다. 경기장 구석구석을 뛰어다니며 공격부터 수비까지 팀에 보탬이 되기 위해 정말 부지런히 뛰는 선수이며 맨유에서 꾸준히 성장해나가고 있다.

엠마누엘 프티

박지성이 라이언 긱스를 부동의 왼쪽 자리에서 중앙으로 내몰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박지성은 좌우 어느 쪽이든 뛸 수 있을 뿐더러 상대를 끊임없이 흔들다보니 항상 위협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솔저 같다.

루드 굴리트 출처

도저히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스태미너로 달리는 박지성은 골까지 터뜨릴 뻔 했고, 나니가 넣었어야 할 결정적인 찬스도 제공했다.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

맨유가 아시아 시장을 위해 그를 영입했다고 말한다면, 그건 박지성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하는 소리다.

FourFourTwo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몇 안 되는 진정한 아시아의 슈퍼스타를 영입했다.

타임즈

로마에는 또 다른 다니엘레 데 로시가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유나이티드의 아시아인이었던 PARK이나 미하엘 발락처럼 팀에 에너지가 되는 선수들이요. 그들은 하드워커이면서 매우 영리하기까지 하거든요.

알레산드로 네스타

맨유의 아주 훌륭한 미드필더.

호나우두

역시 정신력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불가능한 지점에서 헤딩 크로스를 올린 박지성의 정신력이 우리 팀에는 없었다. 다음 주 열리는 원정 2차전에서 우리 선수들이 박지성과 같은 정신력을 갖지 않는다면 차라리 집에 머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루치아노 스팔레티 출처

박지성은 아시아 최고의 축구 선수다.

쑨지하이

박지성은 환상적인 선수다. 골과 어시스트를 모두 잘했고, 내가 같이 뛴 동료들 중에서 가장 저평가된 선수다.

웨인 루니 출처[82]

아시아가 배출한 최고의 선수는 박지성 선수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랜 기간 맨유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길을 열었다. 박지성 선수처럼 위대한 선수가 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지는 아직 판단하기 힘들 것 같다. 매일 노력하겠다.

카가와 신지 출처

제발 그만 좀 뛰어라.

마이클 에시엔 출처[83]

역대 아시아 최고의 프리미어 리거는 박지성.

오카자키 신지 출처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선수다. 정말 축구를 사랑하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다.

다비드 비야 출처

메시를 1:1로 막는 건 거의 불가능하지만 네스타와 박지성이 그를 가장 잘 막았다.

잔루카 잠브로타 출처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으로 하여금 나를 수비하게 했다. 퍼거슨 감독에게 감사하다. 박지성 같은 선수를 나에게 붙였다는 건 그가 날 알아봤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안데르 에레라 출처 (2011-12 시즌 UEFA 유로파 리그에서 빌바오 소속으로 맨유와 경기를 치른 뒤)

박지성은 최고의 공간 지배자였다.

리오 퍼디난드 출처

선수 중에 선수, 팀 플레이어 등 당신이 어떤 호칭을 해도 좋다. 모두 어울린다. 박지성은 정말 영리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엄청난 퀄리티를 가졌던 선수였다.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마이클 캐릭 출처

박지성은 빅매치마다 결정적인 득점을 했으며, 그토록 훌륭한 선수와 뛴다는 것은 내 기쁨이었다. 우리는 피치 위에서 서로를 잘 이해했다.

마이클 캐릭 출처

스포츠맨으로서, 축구선수로서 피부색은 아무것도 아니다. 피부색이 아니라 축구 능력을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 호나우지뉴, 메시, 호날두, 박지성 같은 축구선수들을 볼 때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에 그저 감탄하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봐야 할 모습이다.

폴 포그바 출처 [84]

2010 남아공 월드컵이 내 첫 월드컵이었고 나는 거기서 앙리, 에시앙, 리베리, 박지성, 로번, 외질, 슈바인슈타이거와 경기했고 악수했다. 그들과 경기하면서 느낀 점은 그들은 국가를 위해서는 다리가 부서지는 투지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존경한다.

에딘손 카바니 출처

역습도 아스날과의 역사 중 일부분이다. 그간 아스날과의 대결을 살펴보면 나도 1997년에 코너킥 후 득점을 했다. 긱스, 포보르스키, 콜을 거쳐 나에게 이어진 역습이었다. 2009년에는 박지성, 호날두, 루니가 역습을 만들었다. 루니가 득점했고, 박지성도 그런 장면이 있었다. 그 것이 우리가 만들어낸 역습의 역사다.

올레 군나르 솔샤르 출처

내 옆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의 선수가 있다는 것, 이 위압감은 굉장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팀 선수도 마찬가지로 아, 저 팀에는 맨유 소속의 선수가 있어.(...라고 생각하게 되니까) 대단한 것입니다.

임성일 기자, 히스토리 후 한국축구를 구하라! 박지성이 그리운 이유#

지성과 함께 뛴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그는 인격적으로 훌륭했다. 그는 맨유에서 활약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팀에는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큰 경기 때마다 퍼거슨 감독이 가장 사랑하고, 가장 큰 믿음을 준 선수다. 맨유에서 뛴 선수에게 퍼거슨 감독의 믿음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업적은 없다.

팀 하워드 출처


11. 악성 팬덤




12. 한국 축구계가 박지성을 외면했다?



12.1. 외면했다는 주장


박지성이 고교 졸업을 하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입단하고 싶어했으나 안받아줬고, 대학교들도 외면해서 겨우 명지대에 갔으며, K리그에서도 외면했다는 주장이다. 특히 대학생 박지성을 영입해 좋은 결과를 낸 J리그보다 안목이 없다며 대차게 까였다. 박지성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기도 했지만 탈락했으며 당시 수원의 스카우트이던 정규풍은[85] 당시 박지성의 피지컬이 타 선수들에 비해 약해서 크게 성장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여서 영입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박지성의 피지컬이 같은 세대의 한국 선수들에 비해 밀렸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나중에 K리그보다 피지컬, 압박, 미친 일정탓에 체력 소모가 더욱 심한 프리미어 리그 + 유럽 대항전에서도 잘 적응 해낸 것을 보면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잘못을 저질렀다는게 주요 내용이다.

12.2. 반박


  • 당시 고교 졸업하고 바로 프로팀에 입단하는 사례는 드물었다.
일종의 관례처럼 대학 졸업 후 K리그로 가는 것이 보통인 시절이었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유소년과 프로의 격차가 그만큼 커서 그렇다. 지금 대학 리그가 옛날에 월드컵에까지 대학 선수를 내보내던 시절에 비하면 위상이 많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역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보면 대학에서 2년 정도 뛰고 프로 리그로 올라온 경우도 많다. 특급 유망주를 쓸어담아 국대급 스쿼드를 구축 가능한 정도는 확실히 아닐지라도 프로리그로 가는 최종 관문 정도의 역할은 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후 고교계를 평정했던 윤화평이 고등학교 졸업 후 프로팀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직행한 적이 있는데 성장도 못하고 기회를 잡지 못해서 기대 이하의 선수 생활을 이어간 것을 보면 보수적으로 구단들이 접근하는 것이 이해가 간다. 물론 정말 심하게 쩔어주면 이조차도 프리패스다. 게다가 이 때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고종수, 서정원, 데니스, 샤샤, 박건하, 김진우 등이 포진하여 슈퍼컵, 대한화재컵, 아디다스컵에 이어 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던 K리그 역대 최강급 스쿼드를 자랑하고 있었기에 당시 박지성의 입지로는 발붙일래야 발붙일 수가 없었다.# MBC 스페셜에도 나왔지만 박지성 또한 원래 프로팀 입단보다 대학 진학을 우선에 뒀고 고려대가 목표였다고 했었다.
박지성/선수 경력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실제로 박지성의 고교 경력은 늦은 신체 성장으로 인해 초등학교 때 차범근축구상을 수상하고, 중학교 때 팀을 상위권으로 끌어올린 선수답지 않게 미싱링크 수준으로 기록이 없다. 실제로 신체 발달이 늦어져서 유망주 때 기대받은 것에 비해 프로 무대에서 아예 잉여가 될 뻔한 이승우의 사례를 봐도 웃어넘기기 힘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박지성이 빛을 낸 건 신체조건이 좋아지고서 부터다.
  • 대학 진학이 어려울만한 이유가 있었다.
대학 진학을 알아봐야 할 시기에 프로팀 입단테스트를 보느라 대학들이 이미 선수들을 다 선발한 뒤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대학 진학을 노리던 선수들과 상황이 달랐던 것. 박지성이 뛰던 수원공고가 우승한 적도 없었고 대학에서 서로 데려갈만큼의 초고교급 선수도 아니었다.[86] 비슷한 예시로 김영권을 들 수 있다. 김영권도 박지성과 비슷한 상황에서 대학교를 진학하기 힘들었는데 당시 전주대 감독이 받아주다시피 해서 결국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고 라디오스타에서 밝힌 바 있다. 거기에 김영권은 현재 국가대표팀의 어엿한 주전 수비수다. 정말 외면받은 것일까?
  • K리그는 박지성을 택할 기회도 없었다.
수원 입단에 실패하자 박지성은 대학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대학 재학중 일본 교토팀으로 갔으니 K리그로서는 드래프트도 안나온 선수를 영입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만약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다고 해도 박지성이 K리그를 선택했을지도 의문이다. 왜냐면 교토는 대학생 박지성을 본 것이 아니라 올림픽 대표 선수 박지성을 보고 데려갔다. 그만큼 당시 실력이 올라왔다는 뜻.
당시 박지성의 프로 데뷔 연봉이 무려 5천만엔(한화 5억)이다. 올대에서 활약을 보이니 교토에서 파격적인 제안을 한 듯 보이며 당시 J리그에서도 꽤나 높은 연봉이었을 것이다. 2004년 J리그 연봉 통계 자료 김정우가 2012년 전북과 맺었던 15억의 연봉 계약이 리그 역대 최고액이었고, 전설적인 외인 공격수로 평가되는 데얀이 FC 서울에게 받았던 연봉도 10억이 약간 되지 않았다. 이들도 리그 최고의 기량에 리그 최고의 부자팀에서 뛰었으니까 이 정도다. 그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2014년 K리그에서도 5억이면 시민 구단은 줄 수도 없고 기업 구단이라도 핵심 멤버들이나 받는 금액이다. 당시 신인들한테 줄수 있는 최고 연봉이 5천만원이었던걸 감안하면 머니싸움에서 절대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올대 이후엔 영입을 하고 싶어도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당시 박지성이 처음으로 국가대표로 뽑혔을 때 인맥으로 뽑았냐고 비아냥거렸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프로 무대는 어림도 없었던 소리다.
  • 박지성을 만개시킨 것은 히딩크호지만, 그 이전부터 박지성은 중용받았다.
항간에 퍼진 잘못 알려진 사실 중 하나가 "박지성은 대한축구협회에서 천대와 무시를 받다가 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공정한 명장 거스 히딩크가 발굴하여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다."라는 주장인데, 조금만 사실관계를 고려해봐도 터무니없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 히딩크는 2002년 박지성을 중용해 4강에 진출하고, 이후에도 본인 소속팀 PSV에 그를 데려가 무려 챔스 4강에 올리는 등 그가 유럽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게 도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박지성은 이미 히딩크 재임기가 시작하는 2000년 12월 이전부터 국가대표팀에서 중용받았다.[87] 2000년에 열린 아시안컵, AFC U-19 챔피언십, 시드니 올림픽 등 무려 3개의 국제대회에 선발되었다. 심지어 저 대회 중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오히려 박지성을 깜짝발탁한 허정무가 뇌물이니 인맥축구니 욕을 먹었다. 지금은 몰라도 당시에는 대학교 축구부 소속인 것을 제외하면 특출난 것 없는 선수였으니 저런 얘기가 안 나오는 게 이상하다.[88] 2019년 현재 극성 FC코리아 등에게 박지성 홀대 논란으로 근거 없는 비난을 받는 허정무 및 협회 관계자들만 환장할 노릇. 눈 씻고 찾아봐도 이 선수를 국가대표팀에서 천대했었다는 증거를 찾아볼 수 없다.[89] 상술했듯 히딩크 아래에서 만개했음에는 분명하지만, 그것을 회고하는 과정에 거짓이 들어가서는 안될 일이다.

13. 사건 사고



13.1. 개고기 응원가




14. 언론


기자들의 단골 낚시 사용 소재로 전락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박지성 맨유 달력에서 1월달 모델'이라는 기사를 들여다 보면 맨유 아시아 발매판 달력이라는걸 알 수 있으며 '박지성, 퍼거슨에게 맨유에서 꼭 필요한 선수로 정해져'라는 기사를 보면 십중팔구 나니, 긱스, 호날두, 박지성, 하그리브스 이런 식으로 묶어서 발언한 것이다.[90]
하지만 인터뷰를 하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박지성은 기자들 사이에서 인터뷰하기 까다로운 선수로 꼽히며, 기껏 인터뷰를 해도 "특별히 없다."라는 답변이 인터뷰 절반을 차지해 인터뷰를 밋밋하게 만든다. 거기다 "~때문에"라는 말을 정말 많이 사용한다.[91] 이 버릇을 CF에 그대로 가져가 쓰기까지 했다! OOO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부족한 화술 때문인지 국내에서는 그의 부친 박성종이 대변인격으로 언론에 자주 노출된다.
그래도 2017년 일본 인터뷰 당시엔 말이 꽤 늘었다. 일본어 인터뷰[92]였는데 대한축구협회 삽질이 워낙 거해서 그것 까려고 작심한 듯 대한축구협회를 정통으로 저격한 것.
결국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SBS에서는 박지성을 방송위원으로 초빙하여 박지성의 때문에라는 코너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15. 여담


  • 어린 시절에는 야빠라서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 했다. 박지성의 아버지가 직접 언급하기도 했으며, '축구선수가 안 되었다면 무슨 일을 하까요?'라는 질문에 회사원이나 야구선수가 되어 있었을 듯이라고 말했다. 박지성은 "컴퓨터와 IT에 관련된 일반 회사원이 되지 않았을까"라고 반문한 뒤 "아니면 야구선수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축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야구를 많이 하곤 했다. 당시 학교 야구부에 가입을 하려 했는데 너무 어리다고 받아주지 않았다. 1년 뒤에 오라고 해 대신 축구부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당시 야구부에서 받아 주었다면 이후 계속 야구를 해서 야구선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야구를 계속했다 하더라도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 무릎팍도사에 나온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원래 이름은 박지선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출생신고를 받은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사무소 직원이 실수로 박지성으로 잘못 알아듣고 이름을 적었고 이후 그냥 바꾸지 않고 현재까지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 박지성이 재능형 선수냐 노력형 선수냐에 대한 논쟁이 붙을 때 재능형을 주장하는 측에서 주로 활용하는 근거가 초등학교 때 수상한 차범근축구상인데, 박지성은 자신은 6명 중 가장 끝인 장려상을 받은 것이고, 재능형 선수였다면 대학 진학이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재라고 하기엔 학창시절 한 번도 청소년 대표팀에 뽑히지 못했고, 대학에 진학한 후 올림픽 대표에 선발된 것이 첫 대표팀 커리어이기 때문에 자신은 재능형 선수라기보단 노력형 선수라고 생각한다고 인터뷰했다.
  • 수원공고 시절 막 창단된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볼보이를 하면서 "난 언제 저기서 뛰어보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 명지대 재학시절 올림픽 대표팀이 명지대와 연습경기를 하게 됐는데 당시 명지대 소속이던 박지성이 단독 드리블로 올림픽 대표팀 여러명을 제끼고 골을 성공시켰다고 한다. 경기 후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됐다는 전화를 받게 되었는데 자신은 당연히 19세 이하 대표팀에 선발된 줄 알았다고 한다. 대표팀에 소집된 후 올림픽 대표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자신보다 4살 정도 많은 형들과 훈련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고.
  • 맨체스터 유나이트에서 활동하는 7년 동안 맨체스터에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살았다고 한다. 이유에 대해서 부친 박성종씨는 "언제 쫓겨날지 몰랐으니까. 하하."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맨체스터에서 7시즌이나 보낼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 2009년부터 박지성 가족이 개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이름이 한골이었다고 한다. 제발 한 골만 넣자는 염원에서 였다고 한다. 관련 기사.
  • 2014년 은퇴 직후 결혼을 올린 후 거주지를 영국 런던에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 머무르지 않고 영국에 거처하는 이유는 축구 행정가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실제로 2년 후인 2016년 9월 레스터 시티에 있는 드몽포르대 스포츠 매니지먼트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 나이키에서 출시한 박지성의 축구화 JS PARK TIEMPO LEGEND의 프로모션을 3D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는데 만들긴 잘 만들었지만 보기 민망하다는 견해가 많다.
  • 쉬는 날에는 위닝일레븐을 즐겨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엔 맨유 동료들에게 영미 버전 위닝인 프로 에볼루션 사커로 붙어서 관광당했으나 위닝으로 갈아타자마자 역으로 팀 동료들을 관광시켰다.[93] 이적 초기에는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뤼트 판 니스텔로이(반니)와 에드윈 판 데르 사르, 루이 사하와 친했으나 반니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버리자 할 일 없는 박까들이 박지성 왕따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가장 친한 친구는 파트리스 에브라카를로스 테베즈로 서로가 인터뷰에서 밝혔으며 셋이 같이 찍은 사진이 많다.
  • 2002년 월드컵 4강으로 병역 특례를 받은 뒤, 맹호부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4주간의 기초군사훈련 가운데 사격에서 만점을 기록, '사격왕' 메달을 수여 받기도 했다. 주간·야간·영점 사격 등 세 분야로 실시된 사격훈련에서 150명의 훈련병 中, 그는 주간과 야간에서 만점을 받았으며 특히 과녁조준에 대한 정교함 및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영점사격에서는 다른 두명의 만점 훈련병들을 제치고 당당히 사격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고 한다.
  • 한국 언론에는 그다지 소개되지 않지만, 친한 일본 선수들이 꽤 있다. 비시즌 중에 곧잘 일본으로 놀러가는 모양. 박지성이 휴식차 한국에 잠시 들렀을 때, 절친으로 알려져 있는 일본축구의 전설 미우라 카즈요시가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박지성을 보러 한국에 갈까말까 고민하다가 박지성한테 만나러가도 되는지 물어보려고 전화를 했더니 '응? 지금 다들 모여있는거야? 기다려, 내가 당장 갈게!'라는 말을 남기곤, 다음날 아침 나리타 공항에서 선물을 한웅큼 끌어안고는 '나 여깄어~'라며 손을 흔들고 있었을 정도라고 한다. 다들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는 사람이 그리도 반갑게 찾아오는 걸 보고서 굉장히 감동했다고. 그 이외에도 교토 시절 같이 뛰었던 마츠이 다이스케[94]와는 그의 부인과도 친할 정도로 절친한 관계다. 상술했듯이 교토에서 대활약을 했던 경력도 있어서 2ch의 혐한들도 박지성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편. 그대신 친일파니, 일본이 키웠다느니 등등의 드립을 치긴 하지만 적어도 디스의 강도는 이청용과 더불어 타 한국 축구 선수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다. 지금도 간혹 박지성에 대한 기사나 영상이 올라오면 '한국은 싫어도 박지성은 인정.'이라는 식의 댓글들이 심심치 않게 보이곤 한다.
  • 디시인사이드 해외축구 갤러리에서는 박지성의 일거수일투족을 별명으로 만들어 부르기도 한다. 별명의 마지막에는 반드시 이 들어가는게 포인트. 수비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 수비성, 넘어졌다 → 자빠지성, 패스했다 → 패스성, 반칙했다 → 반칙성, 선발 엔트리에 없다 → 벤치성, 후보 명단에도 없다 → 없성, 부상으로 쓰러져있다 → 아팠성, 골을 넣었지만 주워서 넣었다 → 줍지성. 양복을 입은 채로 결승을 관람했다(2007/08챔스) → 양복성, 포지션에 따라 → 우지성, 중앙성, 좌지성등이 있다. 2009/10 시즌에는 맨날 벤치신세라고 '의자왕'이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다. 2010/11 시즌에는 맨유 입단 때부터 칼링컵에 출전하면 날아다니는 그에게 박칼링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2011/12시즌에는 결장이 잦아 쩌리팍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은퇴후에는 해버지(해외축구,해충갤+아버지)라 부르며 찬양하고있다. 물론 과도한 찬양도 있는만큼 반발로인해 벤치성 드립도 많다. 과도한 찬양을 풍자하기위해 펠레, 마라도나 등 전세계적으로 역사에 남을 축구선수들과 비교해서 박지성이 비기거나 승리하는 우스개 글이 유행하기도 했다.[95] 해외파 선수들의 경기력이 별로면 박지성 하이라이트를 올린뒤에 비교하며 '해버지 실력좀 봐라' 이런식의 글을 많이 올렸지만 은퇴한지 꽤 지난 최근에는 가끔씩 올라오는 편이다. 여러모로 한국 축구사의 거인이라고 볼 수밖에. 얼마 전 해축갤에 박지성과 버기의 공통점이라는 글이 올라오면서, 최근 박지성과 버기를 합쳐 버기성이라는 별명으로 박지성을 조롱하곤한다.
  • 한때 MBC ESPN의 초강력한 밥줄... 이었으나 프리미어리그 중계가 2009년부터 SBS 스포츠로 넘어가게 되어 이후에는 한동안 SBS ESPN의 초강력 밥줄이었다. 물론 이청용의 해외진출로 인해 이청용의 경기도 중계해주지만 같은 날 동시에 경기할 경우 맨유의 경기를 먼저 틀어주는 등 아직까지는 박지성의 아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2018년 현재 SBS 의 해설위원이 되었다.
훈련 중 박지성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모종의 이유로 버로우 시켜버렸다는 짤도 유명하다. 다만 슛포러브의 더 클래스 레전드 기획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 박지성이 이 사진에 대한 해명(?)을 했는데 아마 각도 때문에 저렇게 보였을 거라고 생각하고, 또한 호날두가 어디가서 쉽게 버로우 할 사람이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해당 영상
  • 맨 위의 프로필에서 봤듯이 종교불교이며, 부모화성시 용주사를 자주 다녔고, 할아버지 박동래의 49재도 용주사에서 지냈기 때문에 용주사에 개인적으로 의미를 두고 있다고 한다. 사찰이 위치한 곳이 송산동이라 송산동과 안용중학교는 한국축구에 있어서 중요한 지역과 학교가 아니냐는 설레발도 나오게 되었다. 2005년에는 조계종 불자대상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이영표가 박지성을 개신교개종시킨다는 말을 토트넘 핫스퍼 시절에 인터뷰로 말했던 적도 있다.[96]
  • 2012년 박지성이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의 이적하면서 박지성을 후원하던 아시아나항공이 물을 먹게 되었다. 박지성은 아시아나항공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퀸즈 파크 레인저스의 구단주가 아시아나항공의 경쟁사인 에어아시아의 오너이기 때문이다. 퀸즈 파크 레인저스의 메인스폰서는 에어아시아였고 박지성은 에어아시아 로고가 찍힌 유니폼을 입고 뛰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아시아나항공사는 박지성과 아시아나항공은 2013년 4월까지 계약되어 있었다. 아시아나항공은 겉으론 박지성이 국위선양에 이바지했으므로 계약기한까지 박지성을 모델로 쓰겠다는 방침을 보여줬다.
  • 동명이인으로 축구계에 몸담고 있는 1984년 박지성도 있다. 중학교 졸업 후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떠났을 정도로 열의에 찬 인물이었지만 박지성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온갖 불운을 다 겪어야 했고[97] 심지어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떨어지며 프로 무대조차 제대로 밟아보지 못한 채 아마추어와 실업 무대를 전전하다 은퇴한 비운의 인물. 지도자로 선회한 이후에도 불운은 끊이지 않아 지방의 한 축구교실로부터 봉급을 떼먹히는 등 온갖 수난을 겪다가 서울 둔촌중학교 축구부 코치로 가까스로 자리잡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이 칼럼을 참고하자. '동명이인' 박지성으로 한국 축구계에서 산다는 것.
배우 유해진과 닮았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심지어 평발인 것도 똑같다.
  • 2015년 11월 득녀하였다. 이름은 연우.
  • 모국어인 한국어를 비롯해, 일어영어까지 3개국어 구사가 가능하다. 의외로 네덜란드어를 잘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어 어려워서 잘 못한다고 인터뷰까지 했다.영상[98]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레알 마드리드의 2016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때 배성재, 박문성과 함께 SBS 해설위원으로 등장했다. 방송 도중 언급된 바로는, 호날두와 같이 뛸 때 "로니"라고 불렀다고.
  • 과거의 많은 운동선수들이 똥군기로 인해 많은 구타를 당했듯이, 박지성 또한 선배들에게 구타를 당하면서 축구를 했다고 한다. 본인은 그런 고통을 후배들이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절대로 후배들을 구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결국 그것을 실천해냈다. "후배들에게 진정한 선배가 되고 싶다면, 실력으로 승부하길 바란다. 실력과 인품이 뛰어난 선배들에게는 저절로 권위가 생긴다."는 말을 하면서 군기를 중요시하는 모 유도선수같은 꼰대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날렸다.[99][100][101] 참고로, 박지성 축구센터 설립의 이유도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더 이상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환경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한 환경에서 축구하길 바란다는 것이었다.
  • 호날두가 UEFA 유로 2004 종료 직후 호나우지뉴를 비롯한 몇몇 동료들과 함께 쇼걸 20명을 불러서 집단 섹스 파티를 벌였는데, 이때 박지성에게도 초대장이 왔었다고 한다.[102]
  •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키배의 가장 큰 떡밥은 역시 차범근 vs 박지성. 요새는 손흥민 vs 박지성이 대세 떡밥이다. 그 외에도 과연 누가 박지성의 부인이 될 것인가는 전국민의 관심사였다.
  • 런닝맨에 같이 출연했던 아이유와 친해졌는지 아이유의 전국투어 콘서트에 갔다. 콘서트 중에 박지성 선수 왔다고 소개를 받았다. 장내는 남성들 환호의 도가니로 변했다.
  • 인터뷰 중 인터뷰어의 낚시질에 낚였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오아시스의 갤러거 형제는 악질 맨체스터 시티 훌리건 출신이다...물론 맨유를 아주 혐오한다. 박지성에 대해 아냐고 질문받았을 때 자기들은 맨시티 팬이라 그런 선수 모른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웨인 루니와의 기타 일화도 유명하다. 더 자세한 사항은 오아시스(밴드) 항목 참조.
  • 팀 내에서 유독 왼쪽 풀백들과 친하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다. PSV 시절에는 이영표, 맨유 시절에는 파트리스 에브라와 친했으며 QPR 이적 후에는 파비우가 항상 박지성을 따라다니는 중. 이중 에브라는 박지성과 같은 라인이면 풀백들이 편하다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 안정환을 축알못(?)으로 만들어버린 적이 있다. 마리텔 19회에서 안정환이 '솔샤르는 공격형 미드필더'라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안정환의 말이 맞다'/'안정환 축알못이다'로 논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에 대해 박지성은 '솔샤르는 공격수가 맞다'라고 단정내려서 졸지에 안정환을 축알못으로 인정해버렸다. 사실 이 논쟁은 포지션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관점이 달라지는 것이라서 안정환의 주장도 완전히 틀렸다고 보긴 힘들다. 박지성 본인 또한 결론을 내면서도 '정환이 형을 디스하는 셈이지만'라는 말을 하며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웃어 넘기는 수준이었다. 물론 네티즌들 사이에선 안정환은 축알못 확정이다.
  • 경기도 화성시수원시를 연결하는 도로에 그의 이름이 붙어있다. 동탄지성로가 해당 도로로, 수원시 영통구 망포동에 위치한 박지성축구센터가 이 도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수원구간에는 아예 대놓고 '박지성로'라고 이름이 붙었지만 도로명 주소 시행 과정에서 도로를 통합하면서, 실존인물의 이름은 도로명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정책에 따라 해당 도로가 연결되는 화성시(동탄)와 수원시의 협의로 동탄지성로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다만 교차로 이름으로는 아직 잔존하고 있어서, 박지성삼거리는 수원시에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 2018년 1월 12일 어머니 장명자가 한국시간 새벽 교통사고로 영국에서 사망했다는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단독]박지성, 어머니 영국서 잃고 큰 슬픔 ‘교통사고’ 이후 얘기로는 어머니와 박지성의 딸 연우와 같이 차를 타고 있었는데 사고가 나면서 손녀를 지킬 생각에 몸을 던졌고 정작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103] 설상가상 어머니가 사망한지 몇 시간 뒤인 오후 친할머니 김매심마저 한국에서 사망하면서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 기네스 기록을 갖고 있었다. 36m 높이 상공에서 떨어지는 공을 5회 리프팅에 성공하여 기록을 인증받았다. 슛포러브가 기록 달성 당시 상황을 영상에 담았다. 종전 기록은 시오 월콧이 갖고 있던 34m. 그러나 동년 5월 3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Christopher Njokwana 라는 사람이 37.458미터로 기록경신을 하였다. 그 후 제이미 레드냅이 38.9m로 기록을 경신했고, 레드냅의 기록을 조원희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50m를 기록하여 이를 갈아치웠다.
  • 2015-2016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때 SBS 객원해설을 맡았는데 별로라는 평가가 많았다. 목소리와 발성은 해설자 스타일은 아닌듯하다.
  • 그렇지만 2018년 5월에 SBS 월드컵 해설위원으로 지명되어 배성재 캐스터와 함께 러시아로 가게 됐다. 그 전 까지 자리를 맡았던 차범근 이 고령으로 은퇴한 뒤 이미 몇 번 맡아본 경험도 있겠다 그리고 아내도 SBS 출신이라 더욱 익숙 한 지라 해설위원이 된 듯하다. 이로써 지상파 3사 전부 메인 해설을 2002년 멤버들이 하게 되었다.[104]
  • 러시아 월드컵 중계 도중 본인이 밝힌 바로는 그 유명한 알렉스 퍼거슨의 헤어드라이기를 맞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퍼거슨 시절 맨유 선수라면 한번쯤은 맞아봤을 터인데 나름 업적이라면 업적(?)[105][106]
  • 피부가 좋지 않다.
  • 2018년 6월 10일, 17일에 SBS 집사부일체 11대 사부로 출연하였다.
  • 2019년 10월 4일, 제100회 전국체육대회에 최종 성화봉송 주자 10명 중 1명으로 참석했다.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소위 말하는 개족보로 인해 대표팀 동료들이 약간 고생한 것으로 보인다. 박지성의 양력 생일은 1981년 3월이지만, 호적상 박지성은 음력 생일인 2월을 사용해서 1980년 생과 동창으로 지냈고, 이것 때문에 동갑내기인 이천수는 박지성을 '지성이 형'이라고 부른다.

15.1. 열애설


  • 2011년 시점에서 30세, 즉 혼기에 들어선 나이였기 때문에 열애설이 빈번하게 나왔었다.
  • 2008년 솔비와의 열애설 : 전혀 사실 무근으로 솔비는 박지성과 만난 적도 없다고.
  • 2008년 배우 이보영과의 열애설 : 당시 이보영이 박지성을 만나기 위해 영국으로 출국했다는 루머가 퍼졌지만 이보영은 “박지성을 한 번도 본 적 없다”라고 열애설을 일축했다. 결국 둘의 열애설은 박지성과 배우 지성의 이름이 같아 발생한 해프닝으로 종결됐다.
  • 2010년 일본의 배구선수 기무라 사오리와 열애설: 이 보도의 근원지는 베트남의 스포츠 신문 인터넷판으로 박지성 선수의 아버지인 박성종이 직접 라디오에서 근거 없는 소식임을 밝혔다. 박지성 본인도 "나보다 키가 큰 여자는 싫다."라는 농담으로 일축했다. 또한 "모르는 분하고 스캔들이 나서 정말 당황스러웠다. 이런 일도 세상에 벌어지는구나라고 생각했다."라고 언급하기도.
  • 2011년 허정무 감독의 둘째 딸 허은과의 열애설: 2년 전부터 교제해왔으며 결혼이 임박해왔다고 기사가 떴다. 박지성 측은 사실무근이라 부인하며 법적 대응까지 거론했었다.
  • 박지성의 여자친구 문제는 영국 현지 언론에서도 떡밥거리였는지 해당 업계에서는 유명하다는 파파라치가 한달여 동안 몰래 따라다니며 취재를 했지만 아무것도 건져내지 못했다. 그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성추문에 연루된 선수들이 나오면서 이런 곳에서 사고 한번 안 친 박지성을 칭찬했다.
  • 2012년 1월 11일 스포츠서울닷컴에서 재일동포 사업가 오지선과 열애사실을 특종으로 냈다. 반응은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였는데, 기사내용도 틀린 부분이 많으며, 아버지 박성종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 본인도 심드렁한 반응을 나타내며 흐지부지해졌다.
  • 2012년 7월 14일, 배우 배두나와 스캔들이 터졌다. 한 네티즌이 '박지성과 배두나가 런던에서 함께 우산을 쓰고 걸어가더라!'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고, 이것이 퍼져 각종 매체에서 뉴스화까지 된 것. 배두나의 소속사는 두 사람의 친분을 알지 못했는지 "두 사람은 아예 친분이 없다." "영국에서 만난 것은 친한 사진작가."라는 식으로 입장을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 배두나는 미니홈피에 "이봐, 나를 대신해 그것에 대해 말하기 전에 최소한 나한테 먼저 전화를 했어야지(hey. you should have phoned me at least before you spoke about it on my behalf)라는 글을 올렸다. 이후 박지성은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배두나와 친분이 있는 것은 맞지만 열애설은 사실무근임을 밝혔다. 당시 인터뷰
  • 2013년 6월 배우 김사랑과 열애설 및 결혼설이 터졌다. 김사랑과 박지성이 면도기 광고를 통해 커플 컨셉의 화보를 촬영한 후 소위 카톡 찌라시를 통해 루머가 유포된 것이었다. 결국 6월 15일 김사랑 측이 유포자에 대한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카톡 찌라시와는 다르게 박지성은 김민지 아나운서와 열애중이었고 커뮤니티에서 구체적인 장소와 데이트 목격담이 돌기도 했다. 김사랑과의 열애설은 헛소문이었던 것. 6월 20일 박지성은 김민지와의 열애 파파라치 기사가 난 후 열애설을 인정하는 기자회견에서 김사랑에게도 직접 공개 사과했다. 괜히 자신과의 헛소문으로 인해 김사랑이 피해를 보지 않았을까 배려한 것이다. 박지성 공개사과, "김사랑 상처 준 것 같아 미안해". 이에 대해 김사랑 측은 박지성 본인이 사과하는 상황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고 답변했다. 박지성이 열애설을 유포한 것도 아닌데 사과를 받기도 안받기도 애매하다는 것김사랑,"박지성과 훈훈하게 마무리,법적대응 없다".
  • 당초 선자리에 정계 내지 재계 인사의 딸, 판사, 검사 등 법조인을 추천하려 했으나 박지성 본인이 고사했다고 한다. 상대방으로 인해 부담을 느껴서라고 밝혔었다.

15.2. 결혼


  • 2013년 6월 19일 스포츠서울닷컴 보도를 통해 SBS 김민지 아나운서와 열애설이 터졌다!!!# 결국 김민지는 사귀는 게 맞다고 시인했다. 두 사람의 오작교는 배성재 아나운서..2013년 6월 20일에 박지성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민지와의 열애를 시인했지만 일각에서 제기한 7월 결혼설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은퇴 전까진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 그리고 2013년 11월 12일, 드디어 결혼 기사가 떴다. 게다가 이미 상견례에서 결혼을 확정지었다고 한다!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은 구체적인 날짜는 미정이며, 2013-14시즌이 끝나면 결혼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SBS 연예대상에서 김민지 아나운서가 시상소감을 말하는 중 프로포즈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 2014년 7월 27일 김민지 아나운서와 결혼식을 갖는다고 한다.
  •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돌렸는데, 이 청첩장이 호평을 받고있다. 영국에도 보도되었다고 한다. #
  • 마침내 2015년 11월 19일 득녀하였다. 한국에서 태어나지는 않았고 영국에서 출산했다고. 박지성은 은퇴 이후 2020년 현재까지 줄곧 영국 런던에 거주하고 있다.
  • 집사부일체 출연 당시(2018년 6월 10일) 언급하기론 박지성이 김민지를 부르는 애칭은 각시라고 한다.
  • 부인인 김민지 아나운서가 유튜브를 시작한 이후 종종 얼굴을 보이고 있다.

16. 둘러보기





[1] 음력 2월 25일.[2] 구글과 네이버에는 175cm로 표기되어 있고, 프리미어리그 공식 웹사이트에도 175cm로 표기됐었다.[3] 박지성과의 동반 인터뷰 때 자신의 키는 공식 프로필(179cm)보다 조금 작다고 밝혔다.[4] 이에 대해 박지성 본인은 자신의 키가 178cm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런데 2019년 차범근과의 동반 인터뷰 때는 '프로필보단 작다.'고 밝히기도 했고,# 차범근[3]과 나란히 섰을 때 차범근보다 조금 작은 걸 감안하면### 실제 키는 178cm보다는 작은 것으로 추정된다.[5] 박지성의 주 포지션. PSV시절에는 4-3-3 윙포워드가 주 포지션이었고 맨유로 이적한 후에는 주로 4-4-2 좌우 측면 미드필더(윙어)로 뛰었다. 퍼거슨 감독이 4-3-34-2-3-1 포메이션을 사용할 때는 윙포워드 포지션에서도 많은 경기를 소화했다.[6] 풀백으로는 맨유에서 09-10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VfL 볼프스부르크전에서 주축 수비진의 줄부상으로 단 1경기를 뛰었다. 원래 중앙지향적인 선수고 상황에 따라 중앙에서 뛰었다. 다른선수를 대신해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 했다는건 잘못된 사실이다.[7] 종종 측면이 아닌 중앙 미드필더로도 뛰었다. 4-2-3-1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뛰었다. 윙백으로는 명지대 시절에 뛰었다.[6][8]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해설가.[9] 테크니컬 디렉터 역할도 겸한다.[10] 2009-10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2차전, AC 밀란을 상대로 골을 넣은 직후[11] 박지성 본인이 여러차례 자신을 공격수라고 말했다.[12] 선수 생활 초기를 제외하면 박지성의 주포지션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비롯해 유럽 시절 대부분 이 포지션에서 뛰었다. 또 4-2-3-1에서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윙백(명지대 시절)에서 뛴 적도 있다.[13] 박지성이 다녔던 신안초등학교는 점암초등학교의 분교장으로 강등되었다가 2019년에 폐교되었다.[14] 기사 [15] '박지성의 맨유 은퇴', 백스스포츠, 스포츠인물, 2019년 07월 23일.[16] 2002년 포르투갈, 2006년 프랑스, 2010년 그리스와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선정되었으며 혼다 케이스케와 공동 1위 기록이다. 랭킹[17] 1호 박지성(2005, 맨유 이적), 2호 이영표(2005, 토트넘 이적), 3호 설기현(2006, 레딩 승격이적), 4호 이동국(2007, 미들스보로 이적), 5호 김두현(2009, WBA 승격), 6호 조원희(2009, 위건 이적), 7호 이청용(2009, 볼턴 이적), 8호 지동원(2011, 선더랜드 이적), 9호 박주영(2011, 아스날 이적), 10호 기성용(2012, 스완지 이적), 11호 김보경(2013, 카디프 승격), 12호 윤석영 (2013, 퀸즈 파크 레인저스 이적), 13호 손흥민 (2015, 토트넘 이적). 참고로 설기현이 2004년 오프시즌에 RSC 안데를레흐트에서 디비전1 울버햄튼 원더러스 FC로 이적하여 잉글랜드 리그에서 먼저 뛰긴 했으나, 승격은 레딩으로 이적하면서 하게 된다.[18] 박지성은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으로 약 50경기 정도 뛰었다. 윙포워드로 쓰인것은 월드컵 시작 직전 평가전부터이며 이미 수미로 30경기이상 뛴 상태였다. 히딩크 이후에도 여러 포지션을 시험한다고 수미로 약 20경기를 더 뛰었고 본격적으로 공격적인 포지션을 맡게된 것은 2008년 주장으로 임명된 후 부터였다.[19] 어느 포지션에 있던 공수 모두 뛰어난 살림꾼이었다. 올림픽 대표팀에 뽑힐 때는 왼쪽 윙백이었고 이후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다가 히딩크가 윙포워드로 포지션 변경하여 대박을 터뜨렸다. 이후 국대에서는 주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 맨유에서는 주로 윙어로 뛰면서 이따금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는데, 이때의 박지성을 Central Park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맨유 부상병동 때는 오른쪽 수비수로 나서기도 했다. 참고로 그 경기는 아스널 FC 전이었는데, 센터백은 대런 플레처마이클 캐릭이었고, 경기는 3:1로 이겼다. QPR에서는 중앙 미드필더로 주로 뛰었다.[20] 박지성의 포지션은 명확히 규정짓기 어려우나 psv시절에는 윙포로, 맨유에서는 대부분 윙어(LM)로 뛰었다. 국가대표팀에선 히딩크 합류 전까지 약 30경기를 윙백, 수미로 뛰었으며 한국축구에서 본격적으로 공격 포지션을 맡게 된것은 08년 주장으로 임명된 이후이다. [21] 기본적으로 활발한 선수이긴 했으나 테크닉적으로 훌륭한 편은 아니었는데 더욱이 2007년에 당한 무릎 부상까지 겹치다보니 빈말로도 공격 능력이 월드클래스 팀에 걸맞을 만큼이라고 할 수 없었다.[22] 박지성의 장점으로 흔히 알려져 있는 활동량도 포함되는 이유는, 주전급인 타 선수들과 달리 로테이션 멤버라서 결장 횟수가 매우 많은 박지성은 체력 안배에 압도적인 이점을 가질 수 있었다보니 객관적인 기량 판단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메수트 외질같이 근본적으로 활동량이 낮은 선수들에 비해선 훨씬 낫지만 주전급, 혹은 그에 준하는 빈도로 출전하면서 경기마다 박지성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대인 10km대 활동량을 찍는 여타 공격수들과는 대조해보기가 어렵다.[23] 실제로 차비 또한 피지컬이 좋지 않았지만 넓은 시야와 높은 축구지능을 통한 판단력, 정교한 패스스킬, 많은 활동량을 가지고 있었기에 간혹 펠레와 같은 축구계 유명인사들이 메시가 그에게 얹혀간다는 얘기를 진지하게 꺼낼 정도로 대체불가한 바르셀로나의 핵심 멤버 중 하나였다.[24] 지금도 박지성을 칭하는 말 중 하나로 'Unsung Hero'가 나온다.[25] 국가대표팀에서는 온더볼 능력이 박지성 정도면 수준급이었기 때문에 에이스로 활용할 수 있었지만 프리미어리그 수준에서는 온더볼이 뛰어난 편이 아니기 때문에 박지성을 중심으로 전술을 짤 경우 에이스가 아닌 다른 선수들이 만들어준 공간을 활용하는 역할이나 공간 침투를 통한 상대 수비 진영 붕괴 등 보조 역할을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26] 맨유에서 통산 200경기 이상을 출전했다는 것은 2012년 기준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리그컵 등을 모두 합산한 수치이다.[27] 박지성은 06-07 시즌에 있던 부상과 수술로 07-08 시즌 중반까지 뛰지 못해 2시즌 가까이를 날려버렸다. 이후 박지성의 무릎은 매시즌 거듭할 수록 회복이 늦어지고 국대에 다녀올 때마다 문제가 생겨 기용할 수 없는 경우가 빈번했다. 하지만 출전수로 그를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건 그가 어떤 경기들에 출전했는지 보면 알 수 있다. 퍼거슨이 말하는 맨유 역대 최고 전성기인 그 기간에 맨유의 성공에 있어 중요한 경기에 항상 박지성이 있었고 활약을 해주었다. 리그에서도 강팀에 뛰고 약팀에 쉬는 패턴을 볼 수 있고, 챔스에서도 토너먼트에서 강팀 상대로 주로 나온 걸 알 수 있다.[28] 라이언 긱스부터 시작해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보급형 호날두라는 얘기를 듣던 루이스 나니나 당시 맨유에서 7번을 줄 정도로 잘했던 안토니오 발렌시아, 한 때 프리미어리그 탑클래스 윙어였던 애슐리 영이였던 걸 감안하면 플레이스타일 변화와는 무관하게 박지성의 능력만으로는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 어렵다 못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즉 출전 기록에서 알 수 있듯, 당시 팀내 동료들에 비해 기량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29] 자서전에 저술된 해당 단락 발췌[30] 74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요한 크루이프를 전담 마크했던 베르티 포크츠는 당대 기술이 가장 뛰어난 수비수 중 한 명이었지만 크루이프를 전담마크한 그 한 경기로 인해 볼터치조차 못하는 선수로 지금까지 폄하당하고 있다.[31] 국내에서 이와 관련하여 축구지능, 오프더 볼의 움직임이 좋은 선수라는 평가가 공격수로서의 의미로 다소 와전된 감이 있는데, 박지성 선수의 커리어 통산 도움, 득점 스텟 등에서도 드러나는 부분이지만 이는 당연히 그런 방향의 오프더볼 능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박지성 선수의 수비력에 대한 칭찬에 가깝다.[32] 애초에 우리나라에 박지성이 수비형 윙어의 창시자라는 말이 떠돌게 된 이유는 영국의 가디언지에서 박지성을 수비형 윙어의 창시자라고 했다는 기사 때문인데, 실제로는 그런 말 없다. 오역이든 낚시든 퍼온 기자가 잘못 전달한 것. 어쨌든 박지성이 수비적인 롤로 뛴 것은 사실이며 수비형 윙어의 창시자라는 것이 오역일런지는 몰라도 박지성이 수비적인 측면 미드필더라는 지적은 국내외 언론과 전문가들에게 여러 차례 지적된 것이므로 가타부타를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33] 설기현을 지도했던 감독으로 알려진 스티븐 코펠도 맨유에서 7번을 달고 뛰었을 때 공격보다는 수비로 존재감을 발휘한 선수였다.[34] 당시 똑같은 측면 미드필더로 활약하던 안토니오 발렌시아는 박지성만큼의 태클과 마킹 능력을 가지진 못했지만 박지성만큼의 수비가담과 활동량을 가졌고, 더욱 빠른 스피드/뛰어난 크로스 능력으로 공격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 두 명의 측면 미드필더 조합은 10-11 시즌 맨유가 강팀과의 대결에서 계속 이길 수 있었던 이유이며 언론에서도 이를 지적한 바 있다.[35] 특히 호날두가 엄청난 공격력을 보인 06~08시즌까지 박지성이 중용되었는데, 호날두가 나간 밸런스를 맞춰줄 선수가 박지성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내 신문에서는 경쟁자라고 불리던 호날두가 이적한 뒤 오히려 박지성의 출장이 줄어들게 된다.[36] 경기를 중계하던 크루이프가 엄청난 칭찬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37] 이 경기에서 박지성은 위치상 루니 바로 밑의 공격형 미드필더였으나 경기 내내 안드레아 피를로를 전담마크하며 글자 그대로 지워버렸다. 이 당시 피를로의 경기당 평균 패스 갯수는 78개 정도였으나 이 경기에서 피를로의 패스 수는 27개. 이것이 인상깊었는지 퍼거슨이 박지성을 언급하면 이 경기를 자주 언급할 정도이다.[38] 이 경기는 메시를 향한 백태클 움짤로 유명하지만 박지성은 메시가 아니라 다니 알베스를 막기 위해서 선발출장했다. 결과적으로 다니 알베스를 막지도 못했고 특별한 모습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를 반대로 놓고 생각하면, 상대 풀백을 뚫을 생각을 해야 하는 포지션의 선수가 상대 풀백을 막기 위해 출전했다는 점에서 선수 시절 박지성의 장단점을 바로 알 수 있다.[39] 물론 그 전까지 수많은 경기들에 투입되지 못하여 경기감각이 떨어져 있던 것도 한 몫하긴 했을 것이다.[40] 그 뒤로 박지성의 후계자로써 비슷한 유형으로 지목됐던 선수가 제시 린가드이다.[41] 호나우지뉴, 안드리 셰브첸코, 아드리아누, 사무엘 에투와 함께 후보 5인에 선정되면서 아시아 선수 최초이자 유일하게 UEFA 클럽 풋볼 어워드 후보에 올랐다. 수상자는 호나우지뉴.[42] UEFA 올해의 팀 후보 55인에 든 최초의 아시아 선수가 되었다. 그 중 왼쪽 미드필더 부문 5인에 올랐으며 투표 결과는 수상자 파벨 네드베드 (29.10%)와 아르연 로번 (27.94%)에 이은 3위 (22.61%)였다. 베스트 11으로 팀을 나눌 때 3군에 들어간 셈이다.[43] 02 월드컵 포르투갈전[44] AFC는 2011년 아시안컵에서 베스트 11을 선정하지 않았고 대신 기술위원회가 선정한 우수 선수 4인을 대회 공식 리포트를 통해 발표했다. 선정된 4인은 대회 MVP인 혼다 케이스케와 박지성, 해리 큐얼, 세르베르 제파로프.[45] 1990년까지 시상하던 대한축구협회 최우수 선수상 이후 최초 수상.[46] 02 월드컵 포르투갈전, 10 월드컵 그리스전[47] 팬투표, 옵타 선정 베스트 XI에 모두 포함되었다.[48] 팬투표에서는 4위에 머물렀지만 패널들이 선정한 순위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49] 후기리그 시기에 J리그 교토 퍼플 상가에서 첫 프로 계약.[50] 겨울 이적시장에서 자유계약으로 PSV 에인트호번 이적.[51] 여름 이적시장에서 85억 원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52] 여름 이적시장에서 36억 원에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이적.[53] 여름 이적시장에서 임대이적으로 PSV 에인트호번 복귀.[54] 이나모토 준이치도 아스날 시절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했지만 단 1경기도 못나오면서 우승 메달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55] "박지성은 마케팅 이외에는 맨유에 필요 없는 선수이며 차라리 센터백으로 전향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고 평가한 것으로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는 바로 그 분이다.[56] 실제로 루니는 2014년 재계약 당시 이 조항이 계약서에까지 들어갔지만 이후 루니가 애버튼으로 이적하면서 효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니 본인이 원하면 은퇴 후 앰버서더가 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영국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물론 루니가 최근 지도자가 되려는 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있어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상황.[57] 맨유에서 400경기 이상 출전하거나 100골 이상을 기록해야 맨유의 앰버서더가 될 자격이 주어진다는 기사가 떴지만, 이는 잘못된 내용이며 앰버서더가 되는데 자격 조건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맨유 공식 웹사이트의 레전드[58] 여담으로 이 경기는 현지 중계였다.[59] '축구협회 조직개편… 전무 홍명보, 유스본부장 박지성', 김태현, 국민일보, 2017년 11월 8일. '한국축구 쇄신 핵심 '홍명보·박지성'… 위기 탈출 '특급 조커'로 나선다', 권영준, 스포츠월드, 2017년 11월 8일.[60] KBS의 세상의 모든 다큐에 베컴이 여러 대륙을 돌아다닌 이야기를 다른 다큐에서는 한번 나오지만...[61] 2012년 성룡이 출연했을 때 했던 그 게임. 알람 시간을 랜덤으로 셋팅하고 질문&답변. 알람이 울릴 때 휴대폰을 가진 자가 탈락.[62] [image] [image][63] 수련을 위해 차범근을 섭외한다(!) 근데 어차피 월드컵도 다가오니.[64] 방송을 보면 10분을 넘기면서 했는데 보통의 프로선수 들이 1분에 100개 정도 하는 걸 감안하면 박지성은 방송에서 리프팅 1000번을 한거다.[65] 청소년 대표팀 출신인 빅스레오, 옆 동네 에서 이영표가 축구선수 했으면 국가대표급 재능이라고 칭찬한 비스트 이기광, 축구 좋아하고 즐기기로 유명한 비스트윤두준양요섭, 2AM창민, B1A4바로, BTOB민혁 그리고 제국의아이들동준.[66] 박지성은 총 15분밖에 뛸 수 없는 핸디캡이 주어졌다.[67] 부상으로 시축만 했지 뛰진 못했다.[68] 박지성은 자기가 축구하면서 해트트릭을 해본 적이 없다고 너무하다는 반응을 보였다.[69] 개리는 어시스트를 할 뻔 했고 프로선수를 상대로 볼키핑을 보여줬고 유재석을 프로선수를 제끼고 골키퍼와 1대1 찬스까지 만들었다. 김종국이야 런닝맨 멤버 중 운동 특히 축구를 자주 즐기니 보여준 크로스나 패스 자체는 좋았다.[70] 만약 사파리 미션을 실패했더라면 200회 특집벌칙이었던 스카이다이빙을 해야했다.[71] 경기도 고양시, 김포시 등을 주축으로 모인 축구동호인 모임[72] 박지성은 이미 정확하게 어떤 부분이 한국 축구에 있어서 문제인지를 충분히 알고 있다. 다만, 저 표현은 박지성이 상당히 애둘러서 말한 것이다. 박지성은 대한축구협회의 중요한 직책인 유스 전략 본부장을 맡고 있고 그런 직위를 가진 상태에서 방송으로 섣불리 자기가 몸담고 있는 조직의 탓이라고 말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73] 2010년에 내한했을 때 한국의 어린이 축구 팬들을 대상으로 팬미팅을 가졌는데, 한 어린이가 박지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74] 국내에서는 플레처가 박지성에게 보낸 편지라는 제목으로 축구 커뮤니티 곳곳에 돌아다닌다. 실제로는 편지가 아니라 인터뷰 내용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75] 2004-05 시즌 PSV와 AC 밀란과의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을 앞두고 한 말. 여담으로 박지성은 그 경기에서 골을 뽑아내며 기적을 연출할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원정 다득점 원칙으로 인해 PSV는 탈락했다.[76] 09-10 챔피언스리그 16강 AC밀란전 피를로 맨마킹 때 퍼거슨이 내린 지시[77] 사실 벵거에게 박지성의 플레이가 특히 인상에 남았을지 모른다. 박지성이 유독 아스날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펼쳤고, 골도 많이 기록했기 때문.[78] 2014-15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 1차전 유벤투스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에 대해 폴 스콜스가 영국 ITV 해설자로서 직접 한 말이다.[79] 실제로도 박지성이 피를로를 막았을 때 평균 79회의 패스 시도가 25회로 줄었을 정도로 피를로가 경기장에서 아예 지워져버렸다.[80] 이번엔 2016년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을 비판하며 나온 말이라는데 기사는 2015년으로 되어 있다.[81] 이 밖에도 가장 멋진 선수로는 알레산드로 네스타, 가장 미친 친구는 안토니오 카사노,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로 활용한 선수는 젠나로 가투소를 꼽았고, 가장 잊고 싶은 경기는 2005년 리버풀과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 최고의 경기는 2006 독일 월드컵 결승이었다고 말했다.[82] 동료가 아니었던 선수들 중에 가장 저평가됐다고 생각하는 선수로는 젠나로 가투소를 꼽았다.[83] 박지성의 자서전에 언급된 내용으로 2010-11 시즌 우승을 두고 다투던 첼시와의 홈경기에서 경기 시작 35초 만에 치차리토에게 어시스트를 찌르고, PSV 시절 1인 압박 축구를 재현하며 첼시 우측면을 도륙을 내버리고 평점 9점을 받았던 그 경기 당시 에시엔이 다가와서 한 말이라고 한다.[84] 실제 인터뷰 영상. 0:50 쯤에서 언급한다. 링크[85] 고종수, 고창현김호의 아이들 중 상당수를 직접 스카우트한 사람이다.[86]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홍명보의 자서전 내용을 통해 납득할 수 있다. 홍명보가 나온 동북고는 당시나 지금이나 축구 명문으로 명성이 있었다. 그런데 기수 차이가 얼마 안나는 한두학년 위의 선배들이 그 명문 동북고를 졸업하고도 대학교에 입학하지 못했다고 서술한다. 이를 들어 홍명보는 "대회 성적이 저조했기 때문에 프로팀은 고사하고 불러주는 대학교도 없었다."고 회상한다. 수원공고보다도 훨씬 명문에 속하는 동북고마저 대회 성적이 낮으면 대학교조차 진학하기 힘든데, 그보다 더 지명도가 낮고 심지어 대회 성적마저 저조했던 수원공고에서 좋은 대학을 진학하기 쉬웠을 리가 없다.[87] 박지성의 A매치 데뷔 일은 2000년 4월 5일 2000년 AFC 아시안컵 예선 라오스전이다.[88] 발탁 계기는, 당시 명지대 축구부와 같은 곳에서 훈련하던 올림픽 대표팀과 감독 허정무는 우연히 친선경기를 치뤘고, 이 과정에서 선수보는 눈이 좋다고 정평이 난 허정무는 박지성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깜짝발탁했다. 결론만 이야기하자면 박지성 '발굴' 자체는 허정무의 공이 크다. 즉, 박지성을 처음 발굴한 사람이 히딩크라고 주장하면 스스로 축알못이라는거를 인증하는거다.[89] 그리고 박지성이 맨유로 이적할 때 워크퍼밋 발급 조건에 걸려서 입단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는데, 워크퍼밋 발급 조건이 2년간 열린 국가대표 경기 중 75% 이상을 뛰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때 축협에서는 선수 보호 차원에서 박지성을 못 불렀던 경기도 있어 64%밖에 못 채워서 결국 다른 방법인 3명의 유명 축구인의 보증을 받는 조건으로 히딩크, 퍼거슨, 크루이프가 추천서를 써줘서 워크퍼밋을 발급받고 입단하게 되었다. 즉, 축협에서는 박지성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고 오히려 박지성을 대우해주고 있었다는 얘기다.[90] 박지성 팬들이 이런 기사에 환호한다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편견이다. 이런 기사의 댓글에서 사실지적이 나오며 기자를 욕하는 댓글이 넘쳐난다. 정확히는 낚시일지 않을까 의심하며 눌러보는 경우가 많다.[91] 영어로 인터뷰할 때도 "because"라는 말을 많이 쓴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박지성이 인터뷰로 한번 크게 데인 적이 있기 때문. 선수 시절 초창기 인터뷰를 했는데 이게 꽤나 안 좋은 쪽으로 화제거리가 되어서 그 이후로는 아는 바와 같이 모범적인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92] 박지성은 외국어로 영어, 일본어 2개국어에 매우 능통하며 통역 없이 인터뷰가 가능한 수준이다.[93] 이 때 박지성이 위닝 박지성을 보고 "박지성 못하네!"라고 말하는 짤이 유명해지기도 했다.[94] 아내가 배우인 카토 로사다.[95] 근데 이것도 챔스나 리그커리어, 월드컵 4강 등 커리어가 대단한 편이기 때문에 장난식으로 맞춘거긴해도 가능한거다.[96] 출처는 <프리미어를 보러가다>[97] 대표적으로 2002년 이탈리아의 3부 팀과 계약했으나 구단주가 안정환이 몸담았던 그 페루자의 구단주도 겸하고 있었던지라 이탈리아의 한국전 패배에 대한 분풀이로 계약 파기. 이후 이탈리아 지역 리그에 입단하려고 이탈리아 축구협회에 신분증명서를 요청했더니 저 박지성의 신분증명서가 날아와서 등록에 실패한다.[98] 하지만 들리는 이야기론 2005년 맨유 이적 막 했을 당시 팀 동료인 에드윈 반데사르 에게 네덜란드어로 인터넷 설치를 도와달라 했다 한다.[99] 한국 축구 대표팀은 그가 주장일 때를 기점으로 똥군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러한 마인드는 이후 주장이었던 기성용-손흥민에게도 이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기성용은 자신의 성격있는 모습을 주장이 되고 나서는 최대한 자제하고 팀이 부진할 경우 자신을 먼저 자책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는 차후에 이강인이나 이동경 등 U-20 출신 젊은 선수들이 부담없이 성인대표팀에 쉽게 적응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100] 실제로, 지네딘 지단 같은 레전드급 선수를 생각해보면 공감이 갈 것이다. 지단은 조용한 성격이면서도 팀워크가 오합지졸이었던 프랑스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던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였다. 그리고, 지단의 은퇴 이후 2010년 프랑스 대표팀은 카리스마를 가진 지네딘 지단이 없어지자마자 그야말로 사분오열되고 최악의 팀워크를 보여주면서 망했다.[101] 똥군기를 옹호하는 모 유도선수는 결국 여러 사건사고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더니, 결국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을 일으켜 구속되었다. 개인적으로도 대한유도회에 의해 삭단 징계를 받았다.[102] 이 일화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문서의 '여담' 항목에도 소개되어 있다.[103] 하지만 일부 언론은 이에대해 추측성 보도를 내자 그만하라는 반응이 나오는중.#[104] SBS 박지성, MBC 안정환, KBS 이영표.[105] 박지성 말고 칸토나도 헤어드라이어를 맞지 않았다. 물론 칸토나는 그의 성격 때문에 퍼거슨이 알아서 안 한 거지만.[106] 하지만 팀 단체로 헤어드라이기는 맞아 본 적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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