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보싱와
1. 개요
포르투갈의 前 축구선수.
2. 클럽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나라인 포르투갈로 건너와 보아비스타 FC 유스 출신으로서 축구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는 측면 미드필더와 수비형 미드필더를 오가며 활약했다. 그리고 2000년에는 포르투갈 2부 팀인 SC 프레아문데로 임대가 활약하다가 2001년부터 친정팀인 보아비스타 FC에서 뛰었다.
2002/03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확보한 보싱와는 좋은 활약을 보여 2003년, 주제 무리뉴 감독의 눈에 들어 FC 포르투로 이적했다. 허나 그 시즌에는 파울루 페레이라에게 밀리며 자주 기용되지는 못했으며, 주제 무리뉴가 히카르두 카르발류, 파울루 페레이라 등을 데리고 첼시 FC로 건너가면서부터 주전으로 자리잡아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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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자신 역시 2008년 첼시 FC로 건너갔다. 첫 시즌 초반에는 대활약을 펼치며 첼시 팬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축구팬들에게 오른쪽의 지배자급으로 찬양을 받았다. 하지만 루이스 스콜라리 감독의 전술이 모두 노출되고 공략법이 나오자 첼시는 몇시즌간 보이지 않았던 극심한 부진을 겪게되었고 결국 팀에서 돌파와 스피드가 모두 받혀주는 선수는 살로몬 칼루...와 보싱와가 전부였고 칼루는 당시에도 후반 조커로 기용되는 선수였다. 스콜라리의 답없는 전술은 오히려 첼시의 강점이었던 팀워크마저 잃어버리게 만들었고 결국 공격상황에서 보싱와에 대한 의존도가 쏠리는 악영향을 초래했다... 상대팀은 상대팀대로 보싱와만 잘 막으면 공격흐름이 끊기게 되었기 때문에 이걸 노리고 첼시전을 준비하는 팀도 많았고, 보싱와도 시즌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서서히 부진하기 시작하였다. 스콜라리가 경질되고 거스 히딩크가 임시 감독직책을 맡았을때는 오히려 센터백 백업으로 영입되었던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에게 주전자리를 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이바노비치가 정상급 라이트백까지 성장한 시기는 아니었기때문에 완전히 밀렸다고 보기는 어려웠고 주로 더 공격적인 전술을 사용할때는 보싱와가 기용되었다.
하지만 2009/10시즌에는 잘 뛰다가 갑작스런 장기 부상을 당해 무려 1년 가까이 출전하지 못하고 2010/11시즌 중반 즈음에야 겨우 출전하게 되었다. 다시 돌아온 보싱와는 이전과 같지 않은, 폼이 급격하게 떨어진 선수였으며, 당시 부진하고 있던 첼시에 맞게 본인 역시 OME급의 활약을 선보이며 자책골까지 기록할 정도였다.
거의 방출이 확정되다시피 할 정도로 부진해 시즌 종료 후 이적설이 나올 정도였는데, 안드레 빌라스보아스 감독이 부임하고, 쩌리 생활을 하던 유리 지르코프가 떠난 후에도 이적하지 않고 오히려 주전 자리를 꿰차며 시즌을 맞이했다. 빌라스 보아스의 전술은 스콜라리와 약간 비슷한 측면이 있었는데 보싱와가 그런 전술에 잘 들어맞았기에 이바노비치보다 더 선호되기도 했다.
그리고 2011/12시즌, 첫 세 경기에서 생각보다 훨씬 준수한 활약을 보이며 골까지 넣고 어시스트도 하나 기록했다. 얼리 크로스 남발이 좀 심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움직임이나 드리블은 확실히 전성기 급을 보여줘 팬들은 기대를 갖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후로는 공격, 수비 모두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공격적인 풀백 스타일이었지만 드리블, 크로스 모두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첼시팬들에게 까였다. 그리고 겨울 이적 시장에서 방출 명단에 들었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정작 겨울 이적 시장이 끝나도 계속 팀에 남아있었다. 당연히 팬들은 분노. 그리고 재계약을 할 거라는 뉴스까지 나오면서 팬들은 2차 분노했다. 게다가 브라니슬라프 이바노비치의 부상공백이 생겼는데 라이트백은 딱히 파울루 페레이라밖에 없어서 은퇴를 번복하고 팀에 돌아온 리저브팀 오른쪽 풀백 샘 허친슨이나 다비드 루이스를 쓰자는 의견도 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2012/13시즌을 앞두고 첼시에서 방출되었으나 QPR이 공짜로 데려갔다. 그리고 레드냅 감독과 싸우기도 하면서(...) QPR 강등 멤버가 됐다. 강등이 확정된 경기에서 웃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며 욕만 더 먹었다. 결국에는 방출되고 2013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트라브존스포르로 이적하였다. 현재는 QPR 시절보단 나은 듯하다.
3. 국가대표
2007년 5월 UEFA 유로 2008 지역예선 벨기에전에 출전하면서 포르투갈 국가대표에 첫 데뷔했다. 이후 UEFA 유로 2008에 출전하여 기존의 주전이었던 미구엘을 제치고 대회 4경기 전부 주전으로 출장한다. 그러나 2010년 월드컵에는 장기 부상으로 인해 출전이 좌절되었다.
2011년 11월 UEFA 유로 2012 지역 예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의 홈 & 어웨이 경기에 명단 제외되었고, 보싱와는 이를 결정한 파울루 벤투 포르투갈 국가대표팀 감독을 맹비난했다. 벤투 감독은 보싱와의 제외 이유를 두고 그의 태도와 정신 상태에 문제가 있다며 설명했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보싱와는 감독이 바뀌지 않는 한 내가 국가대표에 돌아갈 일은 없다고 말하며 포르투갈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3년 후, 2014년 11월 UEFA 유로 2016 지역예선 아르메니아전과 아르헨티나와의 친선 경기에 페르난두 산투스 감독이 보싱와를 재발탁하면서 국가대표에 복귀했다. 그러나 많은 나이로 인한 노쇠화와 젊은 세드릭과 비에이리냐에게 밀려 UEFA 유로 2016 최종 명단에는 탈락했다.
4. 플레이 스타일
활발한 오버래핑과 스피드, 그리고 간간히 찔러주는 패스와 중거리 슛을 가진 선수이다. 일대일 마크 능력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지만 강한 압박 수비를 통해 상대의 패스길을 차단하는 것을 통해 수비력을 메꾸는 선수. 전성기 시절에는 풀백과 윙어도 겸하며 적극적인 공격 참여와 크로스로 상대를 위협하는데에 능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예전만한 움직임과 스피드 및 공격력은 떨어졌지만 수비력이 상승하면서 2012년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는 FC 바이에른 뮌헨의 맹공을 협력 수비로 막아내었다.
5. 우승
- FC 포르투 (2003 ~ 2008)
- 프리메이라 리가 :2003-04 , 2005-06 , 2006-07 , 2007-08
- 타사 드 포르투갈 : 2005-06
- 수페르타사 : 2003 , 2004 , 2006
- UEFA 챔피언스리그 : 2003-04
- 인터컨티넨탈컵 : 2004
- 첼시 FC
- FA컵 2008-09 , 2011-12
- FA 커뮤니티 쉴드 2009
- UEFA 챔피언스리그 2011-12
6. 빅 이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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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존 테리와 부주장 프랭크 램파드를 가리고 주인공을 차지한 보싱와
11/12 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이바노비치-존테리의 결장으로 뛰게 되었는데 경기가 끝난 이후 전세계에서 보싱와와 관련해 엄청난 후폭풍이 있었다. 우승 이후 트로피 욕심을 엄청나게 내는 바람에 존 테리와 램파드를 제치고 첼시 역사에 남을 사진에 주인공 포지션으로 위치하게 되었다.
팀의 고참인 디디에 드록바는 오랫동안 첼시를 지켜온 존 테리와 램파드가 정중앙에서 트로피를 동시에 들어올릴 수 있도록 선수들에게 길을 트라고 지시하였다.[2] '''보싱와가 앞에서 길을 막고 있자 드록바가 계속해서 비키라고 말하는데도 이를 끝까지 무시하더니''' 이윽고 세레모니 시간이 되어 선수들의 환호 속에 테리와 램파드가 트로피를 들려고 하는데 '''보싱와가 앞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트로피를 낚아채 들어올렸다.''' 보싱와의 행동에 당황한 동료들은 자연스럽게 테리와 램파드가 앞으로 나가서 들 수 있도록 시도하는데, 이에 보싱와는 한 술 더 떠서 트로피를 아예 빼앗았다.
그렇게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차지하며 보싱와는 '''영원한 첼전드'''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시상식 영상을 풀로 보면 시상대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로베르토 디 마테오 감독 다음으로 입장해 계속해서 트로피 바로 옆에서 서성거리는데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저지른 일이 아닌가 싶다. 이를 라이브로 지켜본 첼시팬들의 흥은 완전히 깨져버렸고 로만 아브라모비치 부임 이후 빅이어를 드는 모습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첼시팬들 사이에서 보싱와는 역적이 되어 엄청나게 까였고, 지금까지 까이고 있다. 클럽의 주장과 부주장인 테리와 램파드가 감격스럽게 드는 모습을 수 년간 꿈에서라도 상상해 온 팬들에게 보싱와가 제대로 뒷통수를 가격한 것. 이 사건으로 인해 팬들 사이에서 완벽히 비호감으로 전락한 '''보싱와는 지금도 첼시 팬들에게 제대로 낙인이 찍혔다.'''[3] 구글에서 영문으로 보싱와를 검색하면 '''bosingwa trophy'''가 자동으로 검색되는 수준.[4]
그런데 사실 센터싱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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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시 트로피 세레머니 때마다 항상 센터에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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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포르투 시절에도 센터에서 설쳐댔다.
[1] 현 콩고민주공화국[2] 드록바가 계획했던 세레모니는 FA컵 우승 세레모니 상황과 같다. 그런데 '''보싱와는 이 사진에서도 트로피를 낚아채려고 벼르고 있다.''' 말루다가 앞으로 뛰쳐나오려는 보싱와를 막았기에 세레모니는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3] 11-12시즌에 보여준 폼을 생각하면 방출은 거의 예정되어있는 수순이었다. 부상 복귀 후 폼이 너무나도 떨어져 공격과 수비 모두 불안했고 주전 자리도 이바노비치에게 많이 넘어간 상황이었다. 괜히 첼시 팬들이 챔스 결승전에서 보싱와가 보여준 준수한 수비력을 보고 놀란 것이 아니다.[4] 여담이지만 농구에서도 이런 비슷한 사건이 일어날 뻔한 적이 있다. 1996년 당시 마이클 조던이 이끌던 시카고 불스는 네번째 우승을 차지했는데, 야구에서 복귀한 조던이 호사가들의 비판을 제치고 다시 정상에 오른 점, 72승이란 당시 역대 1위 기록을 남긴 팀이 화룡점정을 찍은 점, 무엇보다 강도에게 아버지가 살해당해 충격받아 은퇴한 조던이 하필이면 '''아버지의 날에 우승해''' 감정이 폭발한 그가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 농구공을 붙잡고 코트에 쓰러져 오열한다. 당연히 언론도 그 극적인 순간을 잡으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근데 조던의 파트너인 스카티 피펜이나 감독 필 잭슨도 아니고 눈치없는 랜디 브라운이란 '''후보가드가''' 조던과 같이 공을 잡고 그를 안고 같이 코트 바닥에 눕는 바람에 정작 세계가 보려고 했던 '''조던은 완전히 가려지고 왠 듣보잡 유니폼만 보이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도 한 팀 관계자가 브라운의 등을 계속 치며 비키라고 한 덕에 늦게나마 그가 정신을 차리고 비키고, 조던이 코트 위에서 엎드려 오열하는 그 유명한 사진이 찍히게 됐다는 점에서 보싱와 사건과 다르게 결말은 해피엔딩이 됐다는 점이 다행.